글 김창호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어원을 따지기는 힘들지만, 우리는 보통 효용 가능성이 소멸되어 사용자와의 연관성이 완벽하게 끊어진 것을 쓰레기라고 한다. 쉽게 말해 버려진 물건이 곧 쓰레기다. 근간 쓰레기의 급격한 증가는 전 지구적 문젯거리가 돼버렸는데, 이는 쓸 만한 것임에도 너무 쉽게 버려지는 데에 기인한다. 우리는 보통 사용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에 대한 개념적 경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기준은 시대적으로 폭넓은 차이를 보인다.
과거 전통적 농경사회에서는 ‘버릴 것이 없다’고 표현할 정도로 생활에서 파생되는 부산물을 재활용하거나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삶에 익숙했다. 필요한 물건을 얻는 방식도 자급 내지는 물물교환에 의존했기에 필요한 정도를 넘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분뇨마저도 비옥한 토지를 위한 자원으로 소중히 여겨1) 함부로 버리는 것을 금하기도 했다.
그러나 산업화가 가져온 생산 방식의 변화, 특히 대량생산 체계로 재화가 범람하면서 대중적 대량소비로 연결되었다. 다양한 재화가 넘쳐나는 사회, 미국의 경제학자 갤브레이스(John Kenneth Galbraith)는 이를 ‘풍요’라는 말로 표현했지만, 생산과 소비의 지속적 증가를 담보로 유지되는 풍요는 사람들로 하여금 점점 재화의 소비 주기를 줄이도록 요구했고, 그 결과로 사람들 주변에는 새것을 취하기 위해 강제적으로 폐기 처분된, 쓸 만한 쓰레기가 점차 쌓이게 되었다. 사회학자 수전 스트레서(Susan Strasser)는 자신의 저서 『낭비와 욕망』을 통해 이 시점을 ‘인간의 역사 속에서 처음으로 생산과 소비의 순환 과정에서 분리된, 폐기라는 사건이 일어난 시기’로 구분하여 지목한다.
보편적 대량 소비시대는 거국적인 자원 유통 시스템을 통해 더욱 공고해졌다. 해외에서 수급된 값싼 원료는 생산물의 가격을 더욱 하락시켰으며, 급기야 이미 사용한 물건의 재활용을 위한 공정을 운영하는 비용보다 더 낮은 가격에 새 물건을 생산하게 되었다. 더불어 재화의 풍족함에서 오는 상대적인 가치 하락은 물건의 사용주기를 지속적으로 단축시켰음은 물론 사용 가능한 쓰레기 양산의 원인이 되었다. 산업사회의 생산체계는 분명 필수 재화에 대한 평등한 소비의 바탕이 되었지만 사회학자 바우만(Zygmunt Bauman)의 표현처럼2) 쓰레기 생산의 역사가 시작된 계기도 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평범한 물건들의 범람 속에서 상대적으로 가치가 높은 것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도록 소비자를 다그치는 현상도 벌어졌다. 시간마다 매체에서 쏟아지는 광고는 소비자가 특정 물건을 사용함으로써 얼마나 혁신적이고 우아하며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하여 반복해 설명한다. 그리고 연이어 선보이는 비교 우위의 물건들은 이전 것들의 가치를 급격하게 하락시킨다. 취향에 의해 선택된 물건이 또 다른 새로운 선택에 의해 쓰레기로 전락하는 상황의 반복이 산업사회의 경제구조를 유지하는 한 축이 되었다.
현대사회에서 구성원의 소비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 중 중요한 요인 하나는 재화가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통용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지닌 물건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거나, 상대가 지닌 물건을 통해 그 소유자를 판단하는 데 익숙하다. 이것은 물건의 스타일이나 경제적 가치, 혹은 소유한 물건의 양 등 다양한 정보의 교환을 통해 인식된다. 이와 관련하여 수전 스트레서가 거론한 ‘경쟁적이고 과시적인 소비’, ‘유행에 대한 반응’, 새로운 소비를 위한 ‘의도적인 낡은 것 만들기’ 등은 현대사회에서 쓰레기 양산을 촉진하는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아울러 더 본질적으로는 능동적인 소비와 쓰레기의 양산이 권력 과시의 한 방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한 소비를 자양분으로 자라나는 자본주의 산업사회에서 소비는 곧 권력이다. 소비 주체는 시장 위에 군림하는 권력집단임과 동시에 소비 집단 내에서도 소비력에 따라 그 층위가 구분된다. 남이 가진 것과는 다른 특별한 재화의 소비는 그러한 권력의 표현 방식 중 하나이며, 새로운 소비를 위해 쓸 만한 물건을 아낌없이 버리는 행위도 경제적 우위를 지닌 개인 혹은 집단의 권력 과시욕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이로써 쓰레기에 대한 정의도 ‘보편적 정의’에서 지속적으로 변화 과정을 겪어 개별적 가치에 입각한 다양한 ‘개인적 정의’들로 옮겨가게 되었다. 이제 쓰레기는 누가 보아도 버려질 만한 것이 아닌, 다양한 의도를 충족하기 위해 버려져야만 하는 물건이 된 것이다.
현대 인간의 삶은 필연적으로 쓰레기를 만들어낸다. 소비하는 만큼 폐기되는 것이 나오기에, ‘무엇을 어떻게 영위하는가’는 결국 ‘어떤 것들이 어떻게 폐기되는가’로 귀결된다. 이 때문에 쓰레기에는 그것을 버린 사람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포함된다. 일본 야마나시 대학 미야스카 도시오(宮塚利雄) 교수는 여러 경로를 통해 북한의 쓰레기를 수집·분석하여 북한 사회상을 연구하는 학자인데,3) 그에게 쓰레기란 이방인에게 폐쇄적인 북한의 일상생활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인 셈이다.
그러나 쓰레기가 보여주는 본질적인 정보는 그것이 다양한 방법으로 낭비된 인간의 노동력을 투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은 인간을 인간이게끔 하는 본질적인 속성이다. 생산 방식의 주인이던 인간이 거대한 생산 체계에 종속되면서 노동 산물과의 직접적 연결성을 상실한 탓에 그 가치를 잊고 있었지만, 모든 재화는 ‘인간으로 살고 있음’을 증명하는 소중한 산물이다. ‘쓰레기’라는 주제로의 접근이 쓰레기와 직접 연결된 생태·환경적 문제들에 대한 관찰은 물론 개별적 생활문화와 공동의 시대 상황, 인간 본질에 대한 접근을 포함하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근간 사회적 문제로 도래한 쓰레기와 관련하여 환경과 산업, 예술을 넘어 미니멀리즘과 같은 개념과 관련된 것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현상을 직시하고 방안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현재의 사회·경제적 체제하에서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것이 여전히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이제 우리가 만드는 쓰레기를 통해 ‘무엇을 남길 것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작금의 쓰레기가 지금까지 우리가 지녀온 삶의 방식을 대변하고 있듯, 이를 처리하는 방식은 곧 우리가 앞으로 중요하게 생각할 가치기준을 대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1 일찍 일어나 일을 하고 저물면 쉬며, 논밭을 갈 때는 반드시 깊게 갈고 김을 맬 때는 반드시 깨끗이 매며, 분뇨를 져다가 척박한 땅을 기름지게 하고 피를 뽑아 좋은 싹을 길러 밭에는 나쁜 채소가 없게 하고 창고에 곡식을 쌓는 것은 농부의 직업이다. (早而作、暮而休, 耕之必深, 耨之必易, 擔糞而膏瘠土, 除莠而養嘉苗, 田無汙萊, 粟有倉庚, 農夫之職也.) "정조실록", 『조선왕조실록』, 정조7년 1월 1일.
2 지그문트 바우만, 『쓰레기가 되는 삶들: 모더니티와 그 추방자들』, 정일준 역, 새물결, 2008.
3 "To Solve the Riddle of North Korea, a Scholar Collects Its Garbage-Toshio Miyatsuka finds clues about country’s secretive culture in its clutter", 『Wall Street Journal』, March 23, 2016.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