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 서양화과, 영국 Brighton University 순수예술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서울대 서양화 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기억을 간직한 작업을 씨알콜렉티브에서 《H양의 그릇가게》, 보스토크에서 《이리의 밤》, 박수근갤러리에서 《타인의 삶》 등의 전시로 선보였다.
무시되고 버려지는 일상적 사물에 대한 애정
2016년 가을, 나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작업실이 있었던 동네를 지나고 있었다. 밥을 챙겨주던 길고양이 3남매가 사라진 것을 시작으로 재개발에 막 들어선 그 곳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쓰레기더미가 쌓여만 갔고, 벚꽃이 흐드러지던 마을은 하루가 다르게 피폐해졌다. 그리고 우연히 나는 근처에서 고이 버려진 그릇들을 발견했다.
낙엽이 수북한 숲속에 나란히 놓여있는 접시, 와인 잔, 밥공기, 국그릇들은 버려졌다기보다는 오히려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듯 보였다. 나는 그릇들을 집으로 가져와 깨끗이 씻기 시작했다. 더러운 흙과 먼지들을 씻어내면서 음식들이 가득 올라 있었을 그 접시들의 과거를 상상했다. 그리고 한 물건에 쓰임새를 부여하는 것은 새 생명을 부여하는 것과 같다고, 나는 설거지를 하면서 생각했다.
사물은 기억을 품고 있다
유행이 지나고 이가 빠진 낡은 나의 그릇들이 이야기하고 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그릇들의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어떤 맛난 음식들을 품었으며 어느 소중한 손님들을 반갑게 맞이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버려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전해주는 듯 나지막한 속삭임이 들린다.
모든 버려지는 것들에 경의를
오래되어 낡고 쓸모를 잃은 사물들에 대한 관심은 2011년 개인전 《기억하는 사물들》로부터 시작되었고,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인 《H양의 그릇가게》 역시 사소한 일상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되었다. 오래된 기억들이 낡음과 덧없음이 아니라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매개체로서 작용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과 함께, 각각의 사물에 얽힌 의미를 찾아내고 이를 서술하고 기록함으로써 평범함 속에 감추어진 특별함을 이끌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버려진 사물은 어쩌면 이 사회의 구조 변화로 인해 가장자리로 밀려난 “잔여물”이며, 나에게 그릇들은 그렇게 밀려난 안쓰러운 잔여물을 대표하는 어떤 것들이다. 나는 버려진 그릇들을 모으고 더러움을 씻어내면서 기억의 복권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릇의 집적을 통하여 평범한 사물들이 만들어내는 평범하지 않은 근사한 아름다움과 늘 주목받지 못했으나 언제나 그 자격을 가졌던 세상의 모든 사소함이 가지는 힘을 보여주고 싶었다. – 작가노트
1982년 태어났다. 성균관대 미술학과와 동 대학원 미술학과를 졸업했다. 카이스트 갤러리, 테이크아웃드로잉 등지에서 8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공간과 몸에 대한 관심으로 다양한 퍼포먼스와 워크숍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으며 ‘아트 스타 코리아’ 최종 우승이라는 아트테이너로서의 특이한 경력도 있다.
2007년부터 도시문제, 특히 재개발과 젠트리피케이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몰래 재개발 현장에 들어가 사진과 영상을 찍는 작업을 했는데 이때 집집마다 재밌는 물건이 많이 버려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물건들을 모아 의자나 책장 같은 가구를 만들다가 당시 공간을 악기로 만드는 작업을 하던 중이어서 버려진 물건들로 악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서교동, 한남동, 서대문 일대를 돌아다니며 매년 5~6개의 악기를 만들고 공연을 하면서 수십 개의 악기가 모이다 보니 일종의 젠트리피케이션 지역별 소리 아카이브가 되었다. 각 지역마다 악기의 모양과 재료의 특성이 다르다 보니 시각적으로도 청각적으로도 그 지역의 특성을 보여주게 된 것이다.
예를 들면 홍대에서는 문 닫는 옷가게들에서 내놓은 마네킹이나 옷걸이로, 악기점에서 버린 기타와 술병으로 악기를 만들고, 이태원에서는 가구골목에 버려진 앤티크 가구와 뻐꾸기시계로 악기를 만든다.
악기를 만들 때 울림통이 되는 재료와 크기는 모두 같다. 같은 악보를 세계 어디서나 똑같이 연주해야 하기 때문인데 이는 반대로 생각하면 어떤 특정한 지역에서 나온 물건으로 악기를 만들면 그 지역만의 고유한 소리를 낸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악기의 재료가 단순히 버려진 쓰레기라기보다는 젠트리피케이션에 의해 쫓겨난 사람들의 물건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나는 2015년부터 테이크아웃 드로잉. 우장창창, 서대문 옥바라지 골목 등에서 연대하면서 건물주의 소송에 휘말리거나 용역깡패들에게 맞아가며 긴 시간을 보냈다. 단순히 조각으로서의 예술작품이 아닌 액티비즘의 효과적인 도구로도 작용해서 사회와 예술을 연결하는 지점들이 있었던 거 같다.
내 작품은 대부분 가치중립적인(neutral) 재료보다는 뭔가 의미 있는 재료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장소 특정적이라는 말이 있듯이 특정한 재료가 작품이 말하려는 논리를 좀더 설득력 있게 하거나 흥미롭게 하는 재료 특정적 작용을 하는 것 같다. 외국에서는 유독물질로 판매 금지되었지만 한국에서는 합법적으로 판매되는 사탕이나 결혼정보회사에서 나눈 등급에 해당하는 남자들의 정액, 버려진 전쟁무기나 야생 마리화나 같은 것들은 이미 재료 자체가 많은 정보를 매우 효과적으로 전달해 주기 때문이다. – 작가노트
1983년 태어났다. 홍익대 도예유리과, 동 대학원 조소과를 졸업하고 서울에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윌링앤딜링, 송은아트큐브, P21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서울시립미술관의 《2018 SeMA 예술가 길드:만랩(萬lab)》 등 다수 단체전에 참여했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전시장에서 무엇인가 관찰하고 기록하고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런 습관은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과 사고를 기록하고, 그런 기록들이 내가 하는 일과 예술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했다. 처음에는 현장에서 사진을 찍는 것으로 시작했다. 전시가 오픈하고 나면 보이지 않을 과정의 이야기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장면들, 흥미롭다고 여기는 순간들을 포착했다. 이렇게 모인 사진시리즈를 ‘겹쳐지는 지점’이라고 명명하고, 전시장과 관련한 데이터를 축적해 나갔다. 각각 다른 전시장의 환경, 조건은 각 전시장의 성격을 분류하게 되고 이것은 기억으로 저장된다.
전시공간에서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순간, 그리고 전시공간의 작업 중 힘들었던 순간까지. 그렇게 전시장을 기억하는 내 경험은 작업의 재료가 된다. 사진을 찍는 것과 더불어 전시 부산물을 모아 작업으로 만들었다(〈페인터〉(2016), 〈먼지 수집 장치〉(2017), 〈보이는 것의 무게〉(2018)).
나는 전시장에서 수집한 다양한 오브제, 상황, 기억들을 모두 전시 부산물이라고 칭한다. 나에게 전시 부산물은 전시장에서 폐기된 오브제부터 사진으로만 남겨진 기록, 그리고 당시의 상황을 대변하는 현장성까지 포함하는 광의적인 의미를 가진다. 선물의 포장지나 포장된 형태를 보고 선물이 무엇일까 유추해볼 수 있듯이 전시라는 환경에서 수집한 부산물들은 전시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시장이 어떠한 규칙으로 돌아가는지를 보여줄 수 있다. 전시장이라는 특수한 공간성과 환경에서 수집되는 부산물들은 전시라는 문화와 시스템, 예술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단초가 된다. 이런 부산물들을 통해 동시대에 전시가 이루어지는 제도적, 환경적 방식이나, 예술이 예술의 과정에서 발견되는 흥미로운 지점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전시는 한시적이고 계속해서 변하는 가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한동안 전시의 한시성과 유한함에 대한 작업을 해왔다(〈Light Construction〉(2017), 〈오늘의 현장(The site before Your eyes)〉(2017)). 최근에는 한시적인 성격과 반대로 더 단단하고 영원한 형태의 작업을 시도했다(〈쌓인 좌대〉(2018)). 전시 부산물을 통해 전시 플랫폼이 가지는 성격에 대해 생각해보고 이것을 가벼운 가설의 상태, 그리고 단단한 조각의 형태로 변용시키면서 전시가 갖는 성격과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떻게 확장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 작가노트
1986년 태어났다. 남서울대에서 시각정보디자인학과와 환경조형학과를 졸업하고, 성신여대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문래예술공장, 성북예술가압장 등에서 버려진 오브제를 재조합한 작품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현재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인류세를 다루는 전시 2019 서울포커스 《두 번의 똑같은 밤은 없다》(2.26~6.9)에 참여 중이다.
주변을 돌아다니며 사물들을 수집하는 것에서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주변에서 흔히 버려지는 플라스틱 용기, 유리파편, 낡은 가구, 일회용품 등 많은 사물을 작품의 재료로 사용한다.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에서는 많은 것이 소비되고 새로운 것들에 의해 이전 것들이 너무 쉽게 밀려나거나 사라지는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본인 또한 서울에서 나고 자라면서 재개발로 타의에 의해 주거지를 옮겨야 하는 일을 겪으면서 소비되고 잊히는 것들을 목격하고 그것에 대한 의문을 품기 시작하였다.
그중 내게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랫동안 거주하던 보금자리를 옮기는 과정에서 많은 것이 버려진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이런 사물들 중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을 주워 집에 가져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물을 주워 모으면서 버려지는 것들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이런 고민은 자연스럽게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사물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고 사물이 가진 특성에 대한 관점을 바꾸고 변형시켜 또 다른 개체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자연스럽게 현재 가지고 있는 고민이나 사회적인 문제, 환경에 대한 생각이 작품에 들어오게 되고 새로운 이야기가 되었다. 소외된 음악 매체인 레코드판을 유기되거나 멸종 위기 동물의 형상과 접목한 작업을 하기도 한다.
최근 작업은 오래된 사물들이 히말라야 산맥처럼 높고 길게 늘어져 재배치된 〈히말라야〉다.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이리저리 이사하며 살면서 느낀 감정들과 히말라야를 등반하면서 느낀 감정들이 짐을 지고 이동한다는 면에서 묘하게 중첩된다고 느낀 것을 표현한 것이다. 재개발 때문에 이동해야 했던 상황이 뿌리 없는 식물의 형태로 보였다. 수집되고 배치된 인조식물들은 그런 감정의 표현이다. 작품 중간마다 배치된 모니터 속 영상은 2018년 히말라야를 직접 다녀왔을 때의 영상과 노원구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재료를 수집하는 영상, 작품을 운송하는 블랙박스 영상들이다.
작품을 운송하는 영상이나 재료를 수집, 보관하는 것, 작업을 해나가는 것 모두가 공간이 필요하고, 이러한 공간의 부재에 항상 갈증을 느끼고 있다.
작업 활동을 지속하면서 공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이번 작업 역시 공간 부족에 대한 갈증, 여러 가지 포화한 감정과 사물들에 관한 이야기다.
추가로 소비에 대한 고민, 즉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버려지고, 항상 새로운 것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문화, 오래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철거되거나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은 〈히말라야〉 저변에 깔려 있다. – 작가노트
월간미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