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송 퍼블릭아트 기자
Denmark, Norway
덴마크, 노르웨이
Installation, Sculpture
설치, 조각
우리에게 무척이나 익숙한 이름 엘름그린 & 드라그셋은 종종 공공미술을 통해 대중과의 소통을 시도해 온 작가 듀오다. 2003년 〈Short Cut〉과 2005년 〈Prada Marfa〉 등이 이들이 꽤 초창기에 선보인 공공미술 작품들이다. 작가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당시는 “인스타그램 이전 시대”였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만이 겨우 감상할 정도였지만, 현재는 소셜미디어의 힘을 빌려 대표 작품 가운데 하나로 우뚝 섰다고 한다.
이들은 독일 정부 공공미술 프로젝트 작가로 선정되어 2008년 베를린 티어가르텐(Tiergarten)에 〈Memorial to the Homosexuals Persecuted During the Nazi Regime〉을 세우기도 했다. 이후 2011년 〈It’s Never Too Late To Say Sorry〉, 2012년 〈Powerless Structures Fig. 101〉, 2016년 〈Van Gogh’s Ear〉와 같은 대형 공공미술로 대중들에게 이름을 각인시켰다. 작품을 선보인 장소들을 살펴보면 사막 한가운데서부터 맨해튼의 중심부, 혹은 덴마크의 아주 작은 바닷가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여, 작업 시 이들이 전혀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엘름그린과 드라그셋은 “각 작품은 그들이 위치한 공간의 맥락 속에서 상호작용한다”고 말한다. 맥락(Context)야말로 이들 작업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그 의미는 여러 겹의 층위와 진입점으로 구성된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순수한 예술적 측면’과 ‘특정 지역 및 커뮤니티가 갖는 개념적 의미’로 나뉠 텐데, 이들은 지역 커뮤니티와의 관계 외에도 동시에 국제적 관람객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려 노력하고 있다.
공공미술을 하나 구현해내는 데 걸리는 시간은 천차만별.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의 협업으로 진행하고 있어, 어떤 작업은 구상에서 설치까지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단다. 작품이 위치할 장소를 몇 번이고 찾아가 주민과 이야기도 나눠보고, 만들어낼 수 있는 스토리를 구상한다. 이후 스튜디오에서 기획한 작품을 3D 렌더링으로 만들어보고, 스케일을 다르게 조절하며 시각적으로 어떻게 보일지 고심하여, 작품의 매체를 선정한다. 컨설턴트의 도움을 받아 안정성과 안전성, 날씨의 영향 등을 고루 체크한 후 작품 설치를 시작한다.
그간 수많은 작업을 선보여 왔던 만큼 작품 설치에 관한 다양한 에피소드도 있다고. 그 가운데 흥미로웠던 일화를 풀어보자면 ‘퍼블릭 아트 펀드’의 일환으로 선정된 〈Van Gogh’s Ear〉를 뉴욕 록펠러 센터에 설치할 때 발생했다. 스케줄 때문에 작품이 아침 일찍 뉴욕 중심부, 5번가(5th Avenue)를 가로질러 운송되었는데, 차가 많이 막혀 늘 몇 시간씩 정차해 있는 것이 일상인 이 도로가 텅 비어있었고, 거대한 조각이 트럭에 매달려 쌩쌩 달리는 모습을 보니 이 듀오는 괴이한 기분까지 들었단다.
미술관 혹은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은 관람자가 직접 방문을 ‘선택’해 감상이 이뤄지는 반면, 공공미술은 훨씬 더 넓은 범위의 관람객 모두에게 공감을 얻어야 하므로 ‘장소성’에 대한 많은 리서치와 고민이 이뤄져야 한다고 이들은 말한다. 결국 예술에 대한 경험이 미술관과 갤러리, 아트페어에 찾아오는 미술에 익숙한 사람들에 한정되면 안된다고 역설하는 엘름그린과 드라그셋. 공공장소에 작품을 선뵈는 일은 큰 도전이지만, 이 듀오는 의도치 않은 반응이 공공미술에 재미를 더한다고 믿는다. 더불어 그 어떤 반응도 작품에 대한, 그리고 장소에 대한 관람객의 관심이라고 덧붙였다.
Japan
일본
Digital Art
디지털 아트
“우리는 실리콘 밸리가 누군가의 ‘마인드’를 확장할 수 있는 기술을 지향하는 데 집중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현재 개인 컴퓨터(PC)와 스마트폰은 대표적으로 인간의 정신을 확장하고 있고, 트위터는 개인의 입장을 발전시키고 있으며, 사람들은 페이스북에서 다른 이들과의 관계 형성에 영향을 받고 있다. 이러한 디지털 도메인들은 ‘자아(self)’를 원칙 중 하나로 기조를 잡고 있으며, 개인적 차원에서 활용되고 있다.” 팀랩은 디지털 아트를 통해 물리적인 공간 자체의 가치를 높이고자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작품은 어떠한 한 사람이 활용하거나 경험하는 개인적인 공간이 아닌 다수의 사람에게 의미가 있는 공간이다. 공간 자체를 디지털화함으로써, 이들은 사람들 내부의 관계에 간접적으로 개입해 변화를 꾀한다. 따라서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통해 작품이 완성된다. 관람자의 행위는 그 옆의 또 다른 관람자에게 영향을 주기도 하고, 작품 자체에서 영감을 받기도 하는 등 관람객과 관람객 사이, 관람객과 예술 사이의 경계는 흐릿해진다. 다르게 설명하면, 이러한 예술적 작품들은 예술 그 자체와 관람객, 이 두 요소에 의해 비로소 완성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연장 선상에서 생각했을 때 결국 작품은 예술과 관람객의 관계 자체를 뒤흔든다고 팀랩은 강조한다.
자연스럽게 ‘공공’과 ‘경험’은 팀랩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중요한 키워드가 됐다. 처음부터 이들은 ‘디지털 예술’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어떻게 사회의 진보에 공헌할 수 있을지, 그리고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가치 체계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을 지속해왔다. 그 끝에 이들은 ‘장르적인 한계’에 구애받지 않고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는 것에 집중하기로 결단했다. 또한, 협업의 중요성도 간파했다. 이미 ‘팀랩’ 자체가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만큼, 함께 머리를 맞대었을 때 새로운 아이디어를 더 새로운 방식으로 발전할 수 있는 동력이 생기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이들에게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관한 의뢰가 들어왔을 때 이들은 “이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해 함께하는 사람이 우리와 같은 미래를 마음속에 그리는지”에 대해 늘 재고하고 있다고.
2001년 이노코 토시유키(Toshiyuki Inoko)와 여러 예술 작가, 프로그래머, 엔지니어, CG 에니메이터, 건축가, 수학자 등이 모여 ‘실험실(lab)’의 형태로 구성한 이 콜렉티브는 함께 창조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담론을 형성해왔다. 예술, 과학, 기술, 디자인, 그리고 자연생태계까지, 그들이 만들어낸 작품은 이 많은 영역을 한데 합친 집약체와 다름없다. 따라서 팀랩은 가능하면 대형 작업을 미술관, 공공장소, 자연 등 많은 사람이 오가며 경험할 수 있는 장소에 선보이는 데 중점을 맞춘다.
현대 도시에서 우리는 ‘나’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이 콜렉티브는 사람 사이의 관계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만약 도시 전체가 자신들의 작업으로 뒤덮여 있다면, 작품이 만들어내는 대화(interaction)를 통해 서로를 더 긍정적으로 인지할 것이라고 팀랩은 기대한다. 이들의 바람대로 올 한 해도 덴마크, 중국, 일본 등 세계 곳곳에 인터렉션 작품들이 설치된다. 시각적 화려함도 우리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하지만, 이 모든 작품에 이들의 철학이 고르게 담겨있으니, 앞으로도 이들이 작가로서, 콜렉티브로서 ‘대중(public)’ 사이에 어떠한 담론을 환기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Switzerland
스위스
Installation, Sculpture
설치, 조각
우르스 피셔는 2011년 ‘제50회 베니스 비엔날레(the 50th Venice Biennale)’에서 17세기 조각가 잠볼로냐(Giambologna)의 조각을 같은 사이즈의 양초로 만든 작품을 선보이며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는 현대미술에 대한 여러 가지 담론을 만들어내며 사람들 사이에 뜨거운 논쟁거리를 안기는 작품들로 유명하다. 특히 ‘취향(taste)’에 대한 재정의, 테크닉의 발전과 미와의 연결고리, 신고전주의와 무형의 미에 대한 고찰, 고전과 모던의 비교, 시간성과 모양이 없는 작품들의 차이점을 살피는 등 설치와 조각, 회화 등 예술의 다양한 장르를 통해 ‘예술’ 그 자체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펼치고 있다.
그의 예술적 철학은 작업 전반에 고루 드러나는데, 이는 ‘공공미술’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근 피렌체 피아자 델라 시그노리아(Piazza della Signoria)에 선보인 〈Big Clay #4 and 2 Tuscan Men〉을 살펴보자. 29번째로 열린 ‘피렌체 국제 고전 미술 비엔날레(Biennale Internazionale d’Antiquariato di Firenze)’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피셔는 약 12m 높이의 메탈 조각을 선뵀다. 압도적인 크기에 반해 이 작품은 원시적이고 아이 같으며 토템적, 건축적 요소를 갖는다. 첫 인상은 ‘기념비적(monumental)’이지만, 실제로는 사람 몸짓에 담긴 원시적 느낌을 반영한 것이다. 가까이 살펴보면, 작품의 표면은 작가의 지문이 찍힌 알루미늄 패널로 만들어졌다. 작가는 베키오궁의 아렌가리오(Arengario)에 미켈란젤로(Michelangelo)의 〈David〉와 도나텔로(Donatello)의 〈Judith and Holofernes〉 사이에 프란체스코 보나미(Francesco Bonami)와 파브리치오 모레티(Fabrizio Moretti)를 ‘양초’로 복제해 배치했고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조각들은 서서히 녹아내렸다. 피셔는 이를 통해 인생무상과 지속하는 예술의 가치를 대비해 보여준다. 이렇게 그가 선보인 총 세 점의 공공미술은 창조적인 대화를 형성한다. “작품은 관광객처럼 여기에 왔다가 떠난다”고 피셔는 말한다. “예술은 당신이 무엇을 보는가에 따라 그 모습이 결정된다."
당신이 꽃을 본다면, 그 작품은 꽃이다. 무엇인가를 보고 이상하다 느끼면, 그건 이상한 것이다.” 그의 작품은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서 모든 것이 결정된다. 하지만 애초에 ‘외형’은 그에게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닌 듯싶다. 우리 눈에 이미 익은 고전주의시대 조각 작품과 외형이 같은 한 그의 작업은 과거와 현재의 융합을 꾀하고 있고, 유무형의 존재를 하나로 합쳐 보여주고 있다. 또한, 피셔는 관람객에게 현대미술의 ‘오리지널리티’로의 회귀를 역설하는 동시에 오늘날의 예술이 꼭 미니멀리스틱(minimalistic)한 것들을 추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 작품 전반에 걸쳐 ‘현대미술에 있어서 아방가르드(avant-garde)와 전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결코 현대미술은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미술사에서 해방돼 그만의 진보적인 방향성을 찾아 나가선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우르스 피셔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때부터 이 확고한 기조를 꾸준히 이어왔다. 비록 현재 정신없이 바쁜 시기라 정식 인터뷰는 고사했지만, 편집부는 언젠가 그의 작품 세계 전반을 되짚어 볼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France
프랑스
Installation, Sculpture
설치, 조각
지난 4월 개최된 ‘FIAC’에서 라파엘 자르카는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거대한 스케이트 램프를 선보였다. 〈The Cycloid Ramp〉라고 명명된 이 작품에서 사실 ‘스케이트보드’라는 다소 오락적인 측면이 부각되었지만, 작가는 ‘갈릴레이의 낙하 운동 법칙과 중력’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작업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아, 물론 그는 스케이트보드 문화에 깊이 매료되어 지속적인 리서치를 진행해왔다. 하지만 이번 작업에서 그는 16세기 갈릴레이(Galileo Galilei)가 진행했던 낙하운동에 관한 실험, 즉 직접 고안한 나무 모델에 홈을 파고, 그 사이로 구슬들을 흘려보낸 실험을 현대적으로 차용했다. 하지만 자르카는 ‘구슬’ 대신에 스케이터, 즉 진짜 사람의 몸을 이용한 실험을 선보인 것이다. 이 작업은 2015년 그가 프랑스 국립조형예술센터(Centre National des arts plastiques)에 의뢰를 받아 제작한 〈Process-Based〉 시리즈 작업 가운데 하나이다.
자르카는 기하학적 구조를 가지고 어떤 특정한 포뮬레이션이 시간과 공간을 유영하며 어떻게 변화하는지 연구하는 작가다. 같은 모양의 사물일지라도 그 기하학적 구조에 따라 만들어지는 다른 맥락을 짚어낸다. 여기서 그가 또 하나 주목하는 것은 바로 ‘움직임(motion)’이다. 2001년 길에서 마주한 26면을 가진 다면체를 발견하면서 처음, 이 기하학적 모양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괴상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 ‘마름모육팔면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 구조를 작품에 많이 차용하게 되었다.
이렇게 ‘기하학적 구조’, ‘공간’, ‘움직임’ 등과 같은 키워드를 중심으로 작업하기 때문에,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작가에게 매우 중요한 하나의 예술 장르이다. 그의 작업은 어떠한 형태로든 전부 연결되어 있다. 그의 작업은 이후 진행하는 또 다른 프로젝트에 영향을 주기도 하면서 서로 대화(dialogue)를 만든다. 그에게 공공미술 프로젝트 역시 대화의 한 부분이다. 그가 맨 처음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선뵌 〈Evento〉란 작업을 살펴보자. 프랑스 보르도에서 열린 비엔날레 일환으로 기획된 이 작품은 이 도시의 다섯 군데에 분포된 건축물을 차용한 작품 시리즈 가운데 하나로 만들어졌다. 앞으로 그가 선보이고 싶은 공공미술 프로젝트 역시 이전 작업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Cycloid Ramp〉와 같은 작업을 다시 한번 발전시켜 갈릴레오의 법칙을 역동적이게 풀어나갈 예정이며, 〈Corten Steel〉이라는 작업을 플라자와 같이 탁 트이고 잘 정돈된 공간에 배치해 작품과 사람들의 케미스트리를 확인해 보고 싶단다.
이처럼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대해 논의할 때, 그가 가장 눈여겨 살펴보는 것은 바로 공간과 사람 그 자체이다. 이곳에서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는 그만의 공간적 특성에 달려 있기 때문에, 공간에서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과감히 포기한다고 한다. 스케이트보드와 같이 매우 대중적인 문화에도 관심을 갖는 그는 공공미술이 결코 예술의 하위 개념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공공미술을 논하기 전, 공공장소에 대한 담론을 먼저 활성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런 공간은 사람들에 의해 끊임없이 변이하는 개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속해서 이 공공장소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는 데 공공미술은 중대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자르카는 믿는다. 언젠가 서로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고, 공공 공간이 더는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없을 때 다시 이를 부흥시킬 수 있는 건 예술 작품뿐이라나!
노블레스 피처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