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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수장고에서 외출한 소장품 1 - 《신소장품전》에 대한 단상

posted 2019.06.25


류지연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자료관리과장


봄을 맞아 전국 국공사립미술관의 신소장품전과 소장품전이 줄지어 열렸다. 소장품 전시는 그간 보고전의 형식을 띠어 관람객의 미적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의례적인 전시로 여겨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소장품은 미술관의 수장고에 들어가면 언제 다시 보게 될지 모르는 운명을 타고났기에 활용이라는 측면과 미적 성취도를 높이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현안 앞에 서게 된다. 소장품전에 대한 고민의 깊이를 더해야 하는 이유를 살펴본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리는 《신소장품 2017~2018전》(3.21~9.1) 전시 전경. 한스 하케, 이응노 등 70여 작가의 160여 점을 선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리는 《신소장품 2017~2018전》(2019.3.21~9.1) 전시 전경. 한스 하케, 이응노 등 70여 작가의 160여 점을 선보인다.

《신소장품전》에 대한 단상


전국의 국공립미술관은 매해 직전 1~3년 동안 수집한 소장품을 관람객에게 선보이는 신소장품전 혹은 기증 작품전을 개최한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미술관으로서 의무처럼 개최되는 이러한 전시는 대개 미술관의 정체성과 더불어 전시가 개최되는 시기의 주요 경향을 파악하는 데 유익하다.


미술관의 설립 목적은 미술에 대한 이해와 향유를 통하여 인간의 삶의 가치를 증진하는 데 있으며 소장품 수집은 이러한 목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유형적 자료를 수집하고 보존하는 가시적인 행위다. 1969년 소장품이 전무한 상태에서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은 1972년 《한국근대미술 60년전》을 계기로 하여 소장품 수집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국립현대미술관 수집 정책의 기본적인 전제는 한국근현대미술의 흐름을 총괄하여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컬렉션을 구축하는 데 있다. 연구직이 전무하던 시기에 소장품 수집 업무는 외부 전문가의 자문에 의한 행정절차를 거쳐 진행되었다. 그러다가 2000년대 중반 이후 관내 연구직 인원이 증가하면서 소장품 수집 업무는 외부자문위원의 협의에 따라 결정되던 방식에서 점차 내부 연구직의 연구조사를 기반으로 한 제안에 따르는 방식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가치평가와 가격평가, 나아가 진위 감정에 외부 전문가와의 교류가 수반되었으며 최근에는 내부 연구직 인원의 제안뿐만 아니라 외부전문가 풀에 의해서도 제안을 받고 있다.


미술관의 수집 역사는 미술관이 속한 사회, 지역, 사람들에 기반을 두어 그 성과를 계승하고 확인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미술관 컬렉션은 단시간에 구축될 수 없으며 작가, 평론가, 미술사가, 관련 인사들이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장기간에 걸쳐 구축되는 것이므로 수집의 지속성과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신소장품전은 그러한 단계의 필요충분요건을 갖추기 위한 출발점이자 결과를 가늠하는 종착점인 것이다.


2000년대 이후 전국에 여러 공립미술관이 설립되고, 외국 미술관들이 대외 확장 정책을 펴면서 국립현대미술관의 수집 업무 정책에도 많은 변화가 일었다. 첫 번째 변화는 한국근현대미술사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해석의 수용이다. 어떠한 정석을 설정하고 소장품을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미술사에 대한 보편적인 시각을 가지되 한국근현대미술사를 형성하는 다양한 시각과 지층을 수용하고, 새로운 미술사적 성과를 반영하고자 한다. 따라서 최근에는 디아스포라 작가, 동시대 아시아 작가들의 작품 수집을 대폭 강화하여 한국근현대미술에 대한 범위와 해석의 지평을 넓히고자 한다. 여기에는 광주, 대구, 부산 등에서 개최되는 연례적인 비엔날레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두 번째 변화는 시의적절한 현장의 반영이다. 미술관은 기본적으로 작품을 바라보는 데 있어 다소 보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으므로 동시대 미술을 즉각적으로 수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융복합 예술, 신매체, 퍼포먼스, 개념미술 등 동시대 미술 경향을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작가들의 현장성을 컬렉션에 반영하고자 한다.


세 번째 변화는 미술관 업무의 유기적인 연계이다. 소장품의 수집과 해석에 있어 전시, 연구, 교육 등 미술관의 여러 기능과 연계함으로써 미술관의 여러 업무가 독립적인 성격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상호 연관되어 개별 작품 너머 미술관의 총합적인 정체성을 형성하며 이를 관람객에게 전달하려는 필요성이 새롭게 대두되었다.


네 번째 변화는 소장품의 적극적인 활용이다. 이전에는 소장품으로 등록되는 순간부터 그 작품은 보존, 관리해야 할 중요한 가치를 지닌 대상으로서 수장고에서 보관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 1999년 덕수궁, 2013년 서울, 2018년 청주 등 분관 설립 이후 전시와 교육업무가 증가했고, 전국 공사립미술관 역시 증가함으로써 대여를 통한 외부 공개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공공서비스가 강조되는 책임운영기관 평가에서 대외기관과의 교류가 중요하게 여겨지면서 외부 기관으로의 대여 횟수 역시 증가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미술관 소장품과 관련된 가치가 보존관리 측면에서 활용 측면으로 전환되는 계기를 낳았다.


그런데 미술관의 수집 업무를 저해하는 요소는 여러 양상으로 존재한다. 일회적인 전시이니만큼 가시적인 효과가 크게 드러나지 않으므로 소장품의 중요성이 간과되어 국립현대미술관 설립 초창기에서 보듯이 소장품이 미미한 상태에서 시작하는 미술관이 있기도 하다. 또한 수집 업무 자체 예산이 삭감되거나 인력이 배치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실무자와 관장의 태도, 수집 일정 및 절차, 절차적 공정성에 대한 요구, 심사위원의 구성 역시 수집 업무에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미친다.


또 다른 변수는 미술 자체의 내재적인 요인이다. 중요 작가라 하더라도 작품의 현존 여부, 작품의 상태, 가격, 소장가의 성격 등에 따라서 작품의 소장 여부가 결정되기도 한다. 수집 업무가 시작되어 절차가 진행되는 시기의 미술계 경향, 나아가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 역시 소장품을 결정하는 보이지 않는 요인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작품의 수준, 역사적 중요성, 기회, 사전 연구, 지속성, 성별, 세대, 매체, 장르 간의 균형 등 여러 개념이 적용되는데,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엮어져서 작동되지만 단순히 설명하기 힘들기 때문에 소장품 결정의 당락이 그저 작품의 운명에 의한 것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미술과 관련된 외부 환경 역시 소장품 수집 정책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실제로 저작권법, 세법을 비롯한 법률, 사회적 가치 등 외부적 상황이 지속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수집 정책도 자연적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다. 실례를 들자면, 세법상 미술작품은 부가가치세 면제나 감면 대상이나 그 범위는 매우 한정적이다. 부가가치세법 시행규칙 제43조 14항 ‘예술품, 수집품, 골동품’에 따르면 ① 회화, 데생, 파스텔(손으로 직접 그린 것으로 한정하며, 관세율표 제4906호의 도안과 손으로 그렸거나 장식한 가공품은 제외한다), ② 오리지널 판화, 인쇄화, 석판화, ③ 오리지널 조각과 조상(어떠한 재료라도 가능하다), ④ 골동품 등으로 그 대상을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기계적 방법이나 대량생산, 혹은 복제된 작품(미디어 영상작품 포함) 등은 미술작품이 아니므로 과세 대상이 되는 비현실적인 상황에 처해있다. 따라서 미술관은 세금과 관련된 문제를 피해가기 위해서 편법을 도모하거나 과세 대상 작품의 구입을 꺼리는 현상이 빚어지기도 한다.


(왼쪽) 대전시립미술관, 《2018 신소장품: 형형색색전》 (1.15-4.14) 전시 전경. (오른쪽)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2019 소장품 기획전 《재-분류: 밤은 밤으로 이어진다》 (4.2-12.15) 전시 전경.


(왼쪽) 대전시립미술관, 《2018 신소장품: 형형색색전》 (2019.1.15-4.14) 전시 전경. (오른쪽)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2019 소장품 기획전 《재-분류: 밤은 밤으로 이어진다》 (2019.4.2-12.15) 전시 전경.

반면 소장품 수집 업무에 새로운 기회도 많이 열리고 있다. 첫 번째로 다양성과 개방성이 끊임없이 요구되고 있다. 미술사 연구와 정보가 축적됨에 따라 기존 소장품에 대한 강점과 취약점을 파악하고 분석해 다양한 관심 영역을 포괄하는 소장품과 업무 자체의 개방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여기에는 한국전통, 근대미술, 현대미술, 근대와 현대의 연결고리, 시대 간 유사점과 차이점 등에 대한 시각적 가설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러한 근거에 따라 시대, 장르, 지역 등 서로 영향관계를 보여주는 경향과 작가 계보에 따른 작품도 수집해야 할 것이다. 또한 사회, 정치, 문화사적으로 중요도를 지닌 작품 역시 적극적으로 수집해 미술관의 사회적 기여를 직접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한편 미술관의 최전선에서 일하고 있는 내부 연구직이 그 기관의 소장품 성격을 잘 파악하여 정체성을 수립할 수 있기는 하지만 외부 전문가들의 제안 수용 역시 소장품의 개방성과 현장성을 유지하는 대안이 되기도 한다.


두 번째로 수집 방법의 다변화이다. 수집과 관련된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구입, 기증 외에도 관련기관 간의 관리 전환 등을 꼽을 수 있다. 구입이 미술관 내부의 전문성 발휘에 좌우된다면 기증, 관리 전환은 미술관의 대외적 영향력과 네트워크, 인지도와 신뢰도에 따라 좌우된다. 특히 기증은 전통적으로 소장가의 헌신과 명예를 기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나 최근에는 실질적인 세제혜택을 고려해 기증 의사를 표명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실상 기증 방식은 소장가의 선의가 끝까지 훼손되지 않도록 미술관이 지속적으로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많다. 현재 국내 미술관의 기증 방식은 ‘박물관 및 미술관진흥법(법률 제15817호)'에 의한 기증 절차를 따르도록 규정되어 있으나 이는 이동이 용이하고, 감정이 수반되는 근대미술 이전 시기의 작품들을 고려한 절차이다. 작품을 심사기관으로 가지고 와서 수증심의위원회를 개최한다는 항목은 공간 전체를 차지하는 대형 설치작품이나 장시간 상영되는 영상 작품의 성격과 맞지 않으므로 현대미술작품 소장가들이 간혹 기증 의사를 철회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미술관 소장품 수집과 활용은 소장품 수집과 동시에 새로운 업무를 시작하는 차원이라는 점에서 미술관 업무의 정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소장품 수집과 활용 업무는 관장 이하 담당직원의 직무 태도 역시 정체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는 개선 의지를 지니고서 진행되어야 한다.


빙산의 일각처럼 일부분만 드러나는 신소장품전은 장기간에 걸친 미술관 업무를 극히 단시간에 보여주는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그 이면에 수많은 작가, 큐레이터, 미술관 직원들의 노고가 담겨 있다. 이제 그 결정체를 잘 닦고 감상하는 일은 관람객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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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수장고에서 외출한 소장품 ② - 김주원, 「미술관 컬렉션, 소장품의 비관적? 희망적? 운명」, 월간미술, 2019년 6월호


노형석, 「박물관, ‘금단의 공간’ 수장고를 활짝 열다」, 한겨레신문, 2019년 6월 16일


※ 이 원고는 월간미술 2019년 6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월간미술과 콘텐츠 협약을 맺고 게재하는 글입니다.

류지연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자료관리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