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 동향

네덜란드, 벨기에 오리엔테이션 트립 리포트

posted 2015.05.20

2015년 봄, 네덜란드와 벨기에의 미술 현장을 방문했다. 네덜란드의 몬드리안 펀드가 2014년 자국 미술인들의 한국과 일본 미술계 탐방을 지원한데 이어, 이번엔 프로젝트 비아(Project VIA)가 아시아 미술관계자들의 네덜란드, 벨기에 방문에 다리를 놓았다. 미술사 속 플랑드르 지방의 명성을 간직한 유럽의 작지만 친숙한 두 나라. 한일 미술계를 대표하는 8명의 관계자들은 이 지역에 자리한 특색 있는 소규모 아트 스페이스들을 중심으로, 국립 미술관과 레지던시, 작업실, 아카이브 등을 종횡무진하며 국제적 교류와 네트워킹의 물꼬를 텄다.




플랑드르 현대미술의 현장을 가다

지연 출발로 인해 연착한 암스테르담의 첫인상은 우중충한 날씨와 끊임없이 불어대는 차가운 바람이었다. 네덜란드는 유럽의 17세기 문화 예술의 황금기를 주도한 전통의 예술 강국으로 렘브란트, 반 고흐, 몬드리안과 같은 서양미술 대가들을 배출했다. 그러나 20세기의 네덜란드는 디자인과 건축 분야에서 구축한 독자적인 위상과는 달리, 현대미술 분야에서는 프랑스와 영국 그리고 미국 등 거대한 미술시장의 치열한 각축장에서 뚜렷한 위치를 점유하지 못하는 인상이다.


이번 여행은 몬드리안 펀드(Mondriaan Fund)가 유럽지역 큐레이터를 한국, 일본으로 초청했던 2014년 오리엔테이션 트립(Orientation Trip 2014)에 이어 진행된 후속 프로그램으로, 한국의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프로젝트 비아(Project Via)의 협력으로 이루어졌다.1) 이번 여행에서는 2014년 오리엔테이션 트립 시 유럽 큐레이터들이 방문했던 한국과 일본의 다양한 미술 기관에 있는 큐레이터와 관장 등 8명2)이 네덜란드, 벨기에의 미술 현장을 방문하는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왼쪽) 왼쪽부터 캔 콘도, 임혜진(사무소), 샬롯 반 발라레(벨기에 담당자), 이성희, 이추영, 수미토모 후미히코, 신보슬(토탈미술관), 사진: 타로 아마노 오른쪽) 라익스 아카데미(Rijks Academie), 작가 스튜디오, 2015 왼쪽) 왼쪽부터 캔 콘도, 임혜진(사무소), 샬롯 반 발라레(벨기에 담당자), 이성희, 이추영, 수미토모 후미히코, 신보슬(토탈미술관), 사진: 타로 아마노 오른쪽) 라익스 아카데미(Rijks Academie), 작가 스튜디오, 2015

1) (재) 예술경영지원센터의 프로젝트 비아(Project Via)는 시각예술 분야의 국제적인 기획자 양성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2) 한국 측은 신보슬(토탈미술관 큐레이터), 이성희(아트 스페이스 풀 디렉터), 임혜진(사무소 전시팀장), 이추영(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 등 다양한 성격과 규모의 기관 기획자들이 참여한 반면 일본 측은 아키오 세키(Akio Seki, Director, Teien Museum), 후미히코 수미모토(Fumihiko Sumitomo, Director, Arts Maebashi), 캔 콘도(Kenichi Kondo, Curator, Mori Art Museum), 타로 아마노(Taro Amano, Former Chief Curator, Yokohama Museum of Arts) 등 주로 미술관 관장 및 큐레이터가 참여하였다.




작지만 ‘개성 있는’ 암스테르담의 아트센터


이번 여행에서는 몇몇 개성 강한 기관들을 방문할 수 있었다. 암스테르담의 드 아펠(De Appel Arts Center)폼(Foam Photography Museum)은 크지 않은 규모지만 개성적인 프로그램으로 독자적인 위상을 구축한 기관들이다. 드 아펠은 1975년 퍼포먼스 아트에 주목한 아트센터로 개관하여, 크리스 버든(Chris Burden), 비토 아콘치(Vito Acconci),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 등 퍼포먼스 대가들을 소개하였다. 드 아펠의 명성은 디렉터였던 사스키아 보스(Saskia Bos)가 1994년 시작한 큐레이터 프로그램을 통해 더욱 공고해졌다. 전 세계에서 지원한 젊은 큐레이터 지망생들은 대안적 사회 참여와 비판적 형식 실험 중심의 체계적인 트레이닝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역대 참가자로는 “카셀 도큐멘타 14”(2017) 감독 아담 심칙(Adam Szymczyk), 홍콩 엠플러스(M+) 큐레이터 토비아스 베르거(Tobis Berger), 카스코(Casco)3) 디렉터 최빛나, 코너아트스페이스 디렉터 양지윤 등이 있다.


폼은 사진 전문 미술관으로 전시, 출판, 각종 사진 관련 세미나, 강연 프로그램을 기획 하고 있으며, 국제적인 사진 잡지인 [폼 매거진](Foam Magazine)을 발행하고 있다. 권오상 전시(2003)를 선보였으며, 현재 한국작가 개인전을 계획 중이다. 외부 기획자들의 독창적인 전시 제안을 상시 접수 받고 있다.


암스테르담의 라익스 아카데미(Rijksakademie)는 세계적인 작가 레지던시이다. 라익스는 1870년 예술학교로 개교하였으며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카렐 아펠(Karel Appel) 등 네덜란드 거장들이 수학했다. 1985년 작가 레지던시로 전환한 후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2년제 프로그램과 60여 개의 스튜디오, 5개의 프로젝트 룸, 38,000권의 장서와 75종의 매거진, 1,600개의 미디어 자료를 갖춘 도서관 등 예술대학 못지않은 시설을 갖추고 있다. 아카데미에 상주하는 전문 테크니션들은 각각의 공방에서 아이디어 실현을 조력하며, 네덜란드 및 유럽지역 미술 관계자와의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은 향후 작업 활동의 연결고리를 제공하고 있다.4) 현장의 아카데미 관계자들은 세계 최고의 작가 레지던시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있는 듯 보였다.


왼쪽) 라익스 미술관 전경, 2015 오른쪽) 라익스 미술관 컬렉션 전시실, 2015 왼쪽) 라익스 미술관 전경, 2015
오른쪽) 라익스 미술관 컬렉션 전시실, 2015

3) 유트레흐트(Utrecht)에 위치한 카스코는 1990년 오픈한 대안공간이다. 예술과 사회 정치적 환경과의 연관성에 주목하며 다양한 비평적 관점의 프로그램을 개발해왔다. 지역과 연계된 다양한 형태의 전시, 출판, 워크숍과 심포지엄 등을 통해 이론과 실제의 결합을 추구하고 있다.
4)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는 2006년부터 프로그램을 후원하며, 매년 한국작가 1명을 보내고 있다.




‘여전히 매력적인’ 네덜란드 회화 전통


암스테르담 뮤지움플레인(Museumplein) 지구에 위치한 라익스 미술관(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Rijksmuseum)스테델릭 미술관(stedelijk)은 웅장하고 아름다운 외관으로 관광객의 시선을 붙잡는다. 1800년 헤이그에서 개관한 후 암스테르담으로 옮겨온 라익스 미술관은 10여 년의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2013년 화려하게 재개관하였다. 라익스 미술관은 17세기 네덜란드 회화 컬렉션 등 총 1백 만 점의 컬렉션을 자랑하며, 렘브란트의 ‘야간순찰’(1606)과 베르메르의 ‘우유를 따르는 여인’(1658~60) 등 명품 컬렉션으로 유명하다. 재개관과 함께 웹사이트를 전면 개편하여 20만 점에 이르는 고해상도 소장품 이미지를 라익스 스튜디오(Rijksstudio)를 통해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스테델릭 미술관은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근현대미술관으로 1895년 개관하였다. 총 10만 점이 넘는 20세기 서양 근현대미술 컬렉션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스테델릭 미술관은 2005년 8천만 유로라는 천문학적인 리노베이션 비용을 투입하여 2012년 재개관하면서 야심찬 도약을 예고하고 있다. 현재 대형 블록버스터 전시인 “더 오아시스 오브 마티스(De Oase de Matisse)”와 떠오르는 영국 미디어 작가 애드 아트킨(Ed Atkins)의 전시가 개최 중이었으며, 컬렉션 전시실에서 진행된 티노 세갈(Tino Sehgal)의 퍼포먼스 리허설을 볼 수 있었다.


이번 여행 중에 네덜란드 여러 도시의 주요 미술관들을 방문하였다. 로테르담(Rotterdam)의 보이만 미술관(Museum Boijmans Van Beuningen)과 암스테르담 서쪽에 위치한 역사적인 도시 하를렘의 근현대미술관(De Hallen Haarlem), 스키담 시립미술관(Stedelijk Museum Schiedam) 등은 역사적 전통과 함께 다양한 방식으로 현대미술의 소통을 시도하며, 각 미술관마다의 독자적인 위상을 보여주고 있었다.5)


왼쪽) 스테델릭 미술관, 애드 에트킨 전시, 2015 오른쪽) 스테델릭 미술관, 컬렉션 전시실, 티노 세갈 작품 리허설, 2015 왼쪽) 스테델릭 미술관, 애드 에트킨 전시, 2015
오른쪽) 스테델릭 미술관, 컬렉션 전시실, 티노 세갈 작품 리허설, 2015

5) 하를렘 미술관은 사진과 비디오 아트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핀란드 작가 에르카 니시넨(Erkka Nissinen)의 개인전을 개최 중이었다. 엉성한 컴퓨터 그래픽, 퍼포머들의 과장되고 코믹한 연기는 정치, 사회적 이슈를 비튼 블랙 유머처럼 보인다. 카렐 아펠, 야스거 요른 등 표현주의 전위그룹인 코브라 컬렉션으로 유명한 스키담 시립미술관은 젊은 작가 수상전(Volkskrant Art Prize)을 개최중이며, 큐레이터 콜린 휘징(Colin huizing)은 올해 베니스 네덜란드관 작가 허만 드 브리스(Herman de vries)의 전시를 준비 중이었다.




앤트워프, 브뤼셀! 벨기에 현대미술의 핫 플레이스


벨기에는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북쪽지역(Flemish Community)과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남쪽 지역(French Community)으로 구분된다. 벨기에 지역 프로그램을 진행한 플랑드르 아트 인스티튜트(FAI, Flanders Arts Institute)는 플라망어 공동체(Flemish Community)가 운영하는 기관으로 매년 20명의 큐레이터들을 초청하고 있다. 벨기에의 현대미술에 무지했던 필자에게 이번 여행은 벨기에 현대미술계와 매력적인 벨기에 작가들을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은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가 동시에 사용되는 이중 언어 지역으로 최근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핫 플레이스로 주목을 받고 있다.


왕립예술학교로 유명한 패션과 예술의 도시 앤트워프(Antwerp)에 위치한 엠카(앤트워프 현대미술관, M HKA)은 1987년 개관한 플라망어 공동체의 대표적인 미술관으로 건물 옆쪽에 붙은 거대한 원통형 사일로(Silo)가 특징적이다. 엠카는 고든 마타 클락(Gordon Matta-Clark 1943~1978)이 앤트워프의 5층짜리 건물을 절단했던 ‘오피스 바로크(Office Baroque)’ 관련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쿠바 출신 벨기에 작가로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에 초청된 리카드로 브레이(Ricardo Brey, 1955~)의 대규모 개인전(2. 6~5. 10, 2015)이 개최 중이었다. 자연과 문화, 문화와 종교의 상호 작용, 문화적 정체성 등을 핵심 이슈로 삼고 있는 작가의 파워풀한 작품들이 인상적인 전시였다.


앤트워프의 대안 공간 엑스트라 시티(Extra City Kunsthal)오브젝티스 엑시비션즈(OBJECTIF EXHIBITIONS)를 방문하여 한일 큐레이터들의 프레젠테이션 및 벨기에 작가, 미술계 관계자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경제적 문제를 가지고 전시 기회를 찾는 젊은 작가들의 고민은 한국과 유사했다. 네덜란드 프레젠테이션과 함께 진행된 두 번의 프레젠테이션은 예상외로 많았던 참가자들로 인해 굉장히 흥미로웠다. 다양한 미술계 인사들과 함께 각국의 미술계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눌 수 있었고, 한국의 레지던시와 전시에 참여했던 몇몇 작가들도 만날 수 있었다.


왼쪽) 앤트워프 현대미술관(M HKA), 전경, 사진 출처: ensembles.mhka.be 오른쪽) 앤트워프 현대미술관(M HKA), 리카드로 브레이 전시 설명, 2015 왼쪽) 앤트워프 현대미술관(M HKA), 전경, 사진 출처: ensembles.mhka.be
오른쪽) 앤트워프 현대미술관(M HKA), 리카드로 브레이 전시 설명, 2015

브뤼셀의 첫 번째 방문지는 유명 맥주 회사였던 윌스(Wielman Ceuppen’s beer)의 건물을 개조한 윌스 현대미술센터(WIELS, Contemporary Art Centre)였다. 로비의 커다란 맥주 저장탱크가 건물의 역사를 보여준다. 소장품 없는 전시 전용 미술관으로 9명의 작가를 초청할 수 있는 레지던시를 보유하고 있다. 벨기에의 전설적인 안무가 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Anne Teresa De Keersmaeker)의 전시와 아프리카 여성작가들의 그룹전을 개최 중이었다. 컬렉션 없는 아트센터의 특징을 잘 살려 다양한 실험적인 전시에 집중하는 전략을 보여주고 있었다.


브뤼셀에 본부를 둔 다국적 금융그룹 ING가 운영하는 ING 아트센터(ING Art Center)는 2,000여 점의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다. 현재 개최 중인 “울림(ECHOES)”전은 2013년 Young Belgian Art Prize 수상자 헬무트 스탈레르트(Helmut Stallaerts)가 게스트 큐레이터로 참여하여, 피에트 몬드리안, 솔 르윗 등의 ING 컬렉션과 자신의 작품을 뒤섞은 감각적인 전시였다. 컬렉션 전시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다양한 시도는 세계 미술관들의 공통된 관심사로 보인다. 스테델릭의 티노 세갈 전시와 함께 젊은 작가의 감각으로 재해석한 컬렉션 전시는 관객들의 흥미를 끌며 외형적으로는 성공적인 프로젝트로 보였다.


브뤼셀에 위치한 필름, 미디어 아트 전문 센터인 아르고스(Argos-Center for Art and Media)는 1989년 설립되어 독자적인 위상과 자부심을 지닌 전문적인 기관의 성격을 구축했다. 전시장과 미디어 라이브러리를 통해 총 4,500여 점의 필름과 비디오 아트 컬렉션을 감상할 수 있으며, 작품 대여 및 전시를 통해 국제적으로 활발한 교류를 보여주고 있다.


브뤼셀에서 방문했던 벨기에 작가 필립 반덴베르그(Philippe Vandenberg, 1952~2009)의 스튜디오는 작가의 작품 세계 전반을 조망할 수 있는 전시장이자 아카이브 센터였다. 기존의 것을 모두 파괴해야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는 철저한 작품관으로 작품 제작에만 전념했던 작가는 수 천 점의 회화와 드로잉 작품을 남겼다. 모든 유작들은 세 자녀의 헌신적인 노력을 통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왼쪽) 윌스(WIELS) 아트센터 로비, 2015 오른쪽) 필립 반덴베르그의 작업실, 2015 키오스크(KIOSK) 기념 전시 전경, 2015 왼쪽) 윌스(WIELS) 아트센터 로비, 2015
오른쪽) 필립 반덴베르그의 작업실, 2015 키오스크(KIOSK) 기념 전시 전경, 2015

벨기에의 작은 도시 겐트와 루벤


2006년 개관한 키오스크(KIOSK)는 겐트(Ghent) 대학 내에 위치한 비영리 전시공간으로 2010년 겐트 의대 해부학 교실로 쓰이던 현재의 공간으로 옮겨왔다. 네오고딕 양식의 아담한 전시장은 독특한 다각형 구조와 창문의 배열이 돋보였다. 키오스크는 예술대학과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젊은 작가들과 다양한 기획전시를 개최하며 지역 주민들과도 활발히 소통하고 있었다. 소장품 상설 전시 공간과 형식적인 졸전을 위한 소극적인 공간으로 운영되며, 지역 주민들에게 다소 폐쇄적인 많은 수의 한국의 대학 박물관, 미술관들도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겐트의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스막(겐트 시립미술관, S.M.A.K.)은 1975년 개관 후 초대관장 얀 후트(Jan Hoet)가 2003년까지 28년 동안 재임하면서 미술관의 토대와 국제적인 위상을 구축했다. 큐레이터 앤 호스테(Ann Hoste)에 따르면 스막은 벨기에와 다양한 국제 작가들의 개인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한다. 개인전 위주의 전시 정책의 경우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온전히, 심도 있게 조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작가 중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브뤼셀 동쪽으로 약 30km 떨어진 작은 도시 루벤(Leuven)의 루벤 시립미술관(M-Museum LEUVEN)은 18세기에 문을 연 역사적인 미술관으로 2009년 리노베이션을 통해 기존의 건물과 신축건물을 통합하여 연결한 후 새롭게 개관하였다. 네오 클래식 스타일의 기둥이 아름다운 입구와 신구건물이 조화롭게 연결된 전시공간이 독특하다. 현재 벨기에 작가 페터 부겐후트(Peter Buggenhout)의 개인전이 개최 중이었다. 소의 핑크빛 위장을 뒤집어씌운 비정형적인 형태의 조각들과 산업 폐자재를 이용하여 건축적인 구축 과정을 통해 완성된 대형 조각 설치는 압도적인 규모와 함께 화이트 큐브와 대비를 이루면서 극도의 기괴함과 혐오, 매혹과 끌림이 뒤섞인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왼쪽) 겐트시립미술관 스막(S.M.A.K.), 2015 오른쪽) 루벤 미술관, 페터 보겐후트 전시전경, 2015 왼쪽) 겐트시립미술관 스막(S.M.A.K.), 2015
오른쪽) 루벤 미술관, 페터 보겐후트 전시전경, 2015

한국미술, 해외 큐레이터와 교류하라


네덜란드와 벨기에의 주요 도시에는 다양한 형태의 미술관과 아트센터, 대안공간과 갤러리, 예술가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방문한 수십 곳의 미술 기관과 관계자들의 정보는 향후 각 국가와 기관, 개인 간에 이루어질 다양하고 풍성한 문화교류를 위한 가장 기초적인 자료가 될 것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 첨단 방식의 교류수단이 발달한 현재에도 여전히 직접적인 만남과 소통은 상호 교류를 위한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국제적인 현대미술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자국 현대미술과 작가를 알리기 위한 치열한 각축전이 펼쳐지고 있다. 다양한 국제 전시를 통해 자국 작가를 선보이기 위해 치열한 물밑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베니스 비엔날레에 국가관이 존재하며, 마치 올림픽에 출전한 대표선수처럼 경쟁하는 작가들의 모습이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베니스 비엔날레가 개최될 때마다 한국작가들의 본 전시 참여가 이슈가 된다.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본 전시에 3명의 한국작가가 초청받은 것은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라는 지한파 디렉터의 역할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현대미술의 최전선에서 다양한 전시를 조직하는 기획자들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몬드리안 펀드의 초청 프로그램은 자국 현대미술과 작가를 프로모션하기 위한 분명한 목적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자국 미술의 프로모션이 단순히 작가들의 해외기관 전시를 후원하는 표피적인 방식보다는, 다국적 기획자들에 의한 자발적인 기획과 작가 초청이 훨씬 효과적이며 장기적으로 유익한 방식이라는 점을 깨달은 듯 보였다.


그간 한국현대미술의 프로모션 방식은 주로 국내 작가와 기획자의 해외 진출에 초점을 맞추어왔다.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한국 기획자 못지않게, 한국미술에 정통한 국제적인 기획자들을 양성할 수 있는 계획이 필요하다. 한국현대미술을 소개하는 다국적 큐레이터 초청프로그램과 국제 큐레이터 양성 프로그램을 만들면 어떨까?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단발성 해외 전시 예산으로 수 십 명의 해외 큐레이터들을 초청하여 한국현대미술계를 구석구석 소개하면 어떨까? 몬드리안 펀드의 프로그램은 한국미술계가 심각하게 숙고해볼만한 여러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추영 /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홍익대학교 회화과와 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수료했다. 1999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재직 중이다. 주요 기획 전시로 “코리안 뷰티: 두 개의 자연”(2014), “Who is Alice?”(베니스, 2013), “윤명로: 정신의 흔적”(2013), “몽유: 마술적 현실”(2012), “비밀의 숲”(2011), “젊은 모색 三十”(2010), “젊은 모색: I am an artist”(200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