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현대미술을 드러내는 키워드라는 것이 있을까? 미술에 대한 다채로운 스펙트럼과 다양한 씬이 있기에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무(모)한 도전'일지 모른다. 그러나 전지구화나 국제화 시대에 대응해 각 국가나 지역의 미술 정체성이 더욱 강화되고 있는 21세기에 이러한 키워드를 (무모하지만)살펴보는 것 또한 의미있는 작업일 듯싶다. 중국 현대미술의 경우 거대한 스케일과 구상회화의 강세 등으로 얘기할 수 있고, 영국 현대미술 또한 yBa라는 이름으로 독특한 그들만의 마감을 규정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웹진'더 아트로'가 창간을 맞아 국내 현대미술의 키워드를 뽑아보는 '무한도전'을 시도했다. 현재 국내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미술계 인사들과 국내 미술계를 관심있게 지켜본 해외 미술인들에게 한국 현대미술의 키워드 세 개를 뽑아달라고 한 것이다. 11인이 생각하는 한국미술 키워드, 이를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지속적인 발전과 고찰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이제 그 속으로 들어가 본다.
한국의 현대미술을 세 개의 키워드로 정리해보고자 하는 편집진의 요구에 따라 필자는 1990년대 이후 한국 현대미술의 특징을 ‘한국 현대미술과 문화경쟁력’, ‘세계화의 과제-새로운 지역성’, ‘차이의 문화정치학’이라고 하는 이른바 신자유주의 시대의 문화논리로 풀어보고자 한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비단 한국현대미술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화와 더불어 오늘날 예술계의 현실이 문화산업이나 자본, 정책이나 전략적 방법론에 의해 크게 좌우되고 있기에 이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되돌아 보는데 의미가 있을 것이다.
1990년 대 이후 한국 현대미술은 문화인프라 측면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듭하였다. 여러 지방도시에서 국제 비엔날레 뿐만 아니라 공공미술관의 건립이 꾸준히 이어졌으며, 창작지원제도 및 레지던시 공간, 화랑이나 옥션과 같은 미술시장 역시 꾸준히 성장하였다. 특히 한국사회의 국제비엔날레 개최 붐은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지방자치제도의 실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광주비엔날레가 성공적으로 열리자 여러 지방자치단체는 도시마케팅의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이러한 문화산업에 동참하기 시작한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보여주고 있는 한국미술계의 이러한 역동성은 세계경제 20위권에 진입한 한국경제의 급속한 성장과 무관하지 않다. 이웃 일본의 장기적인 경제 불황이 문화의 전반적인 침체로 이어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른바 무한경쟁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예술에 있어서도 무엇보다 생존 전략이 중요하다. 한국 현대미술이 보여주는 빠른 속도와 오늘날의 활력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사업의 중복에 대해 제도적인 점검을 하면서 집중과 선택을 통해 문화적 경쟁력을 더욱 강화시켜 나아가야 한다.
한국 현대미술은 1990년 대 이후 특히 많은 성장을 거듭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광주비엔날레를 비롯하여 국내에서 개최되는 대형 국제비엔날레는 한국미술의 세계화를 견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십 수년의 국제화에 대한 노력은 작가 및 큐레이터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축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한국현대미술은 동시대 세계미술과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게 되었다. 세계적인 비엔날레 붐 현상과 함께 일부 현대미술 작가들은 국제무대에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전지구적인 교류가 가능해지면서 문화적 혼성과 차이에 대해 많은 작가, 큐레이터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 광주비엔날레 (양혜규,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개인적 한계에 대한 고민) 와 부산비엔날레 (딘큐레_농부와 헬리콥터) 혹은 서울미디어아트 비엔날레 등 한국에서 개최되는 수많은 국제비엔날레 역시 이 점에서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이들 비엔날레가 과연 여타의 국제비엔날레와 어떻게 차별화되고 문화적 위상을 확보하고 있는지 의문의 여지는 많다. 전지구화와 함께 세계의 도시들은 갈수록 차별성을 잃고, 도시의 정체성도 희박해지고 있다. 새로운 지역성에 대한 자각과 함께 그 대안으로서 문화지리학(cultural geography)과 장소특정성(site specificity)에 대한 반성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에치코 추마리 트리엔날레처럼 지역사회와 장소특정성을 고려한 작업들에 대한 고민이 더욱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K-Pop의 국제적인 성공과 함께 미술 분야에서도 문화한류에 대한 관심이 전반적으로 고조되고 있다. 한국미술 뿐만 아니라 아시아 현대미술은 오랫동안 서구화의 영향을 받아왔다. 그러나 21세기 이후 전지구화의 과정에서 이제 중심과 주변, 동양과 서양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문화적 다양성과 차이와 관련한 담론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다수의 국제비엔날레 개최 및 다양한 문화인프라를 기반으로 한국 현대미술이 보다 적극적으로 국제사회에 자리매김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차별화된 콘텐츠 개발이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세계문화는 점점 동질화되어 가고 있지만 각 지역의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관습이나 전통, 민족적 정서는 여전히 중요한 정신적 토양으로 자리잡고 있다. 글로벌리즘과 로컬리즘의 문제는 결국 문화적 다양성과 차이를 어떻게 드러내는가 하는 문제이다. 한국현대미술 작가 혹은 큐레이터들이 국제사회 속에서 의미 있는 담론을 만들어내는 것은 이러한 문맥에서 가능할 것으로 본다.
11인이 생각하는 한국현대미술 키워드
글로벌리즘과 차이의 문화정치학
관계성 예술을 통한 공동체적 실어증 극복
한국미술 키워드 3개
예술소곡(藝術小哭)
역동적 자생성을 토대로 성장한 한국 현대미술
과감한 방식으로 예술적 본질을 고찰하는 한국 현대미술
한국현대미술 현장과 경쟁력에 대한 소고
현대 '한국적'인 미술이란 무엇인가
모호한 현실 속 정체성의 탐구
한국 현대미술에 맥락화가 필요한가?
한국 미술에 나타난 변용과 개념적 독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