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현대미술을 드러내는 키워드라는 것이 있을까? 미술에 대한 다채로운 스펙트럼과 다양한 씬이 있기에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무(모)한 도전'일지 모른다. 그러나 전지구화나 국제화 시대에 대응해 각 국가나 지역의 미술 정체성이 더욱 강화되고 있는 21세기에 이러한 키워드를 (무모하지만)살펴보는 것 또한 의미있는 작업일 듯싶다. 중국 현대미술의 경우 거대한 스케일과 구상회화의 강세 등으로 얘기할 수 있고, 영국 현대미술 또한 yBa라는 이름으로 독특한 그들만의 마감을 규정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웹진'더 아트로'가 창간을 맞아 국내 현대미술의 키워드를 뽑아보는 '무한도전'을 시도했다. 현재 국내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미술계 인사들과 국내 미술계를 관심있게 지켜본 해외 미술인들에게 한국 현대미술의 키워드 세 개를 뽑아달라고 한 것이다. 11인이 생각하는 한국미술 키워드, 이를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지속적인 발전과 고찰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이제 그 속으로 들어가 본다.
한국의 동시대예술은 급격한 산업화·근대화 과정에서 상실된 과거 전통에 대한 끝없는 복원을 고민하고 있다. 무용평론가 김남수는 이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원령공주”에 등장하는 사슴에 비유하였는데, 머리가 잘린 사슴이 몸에서 자라나는 식물과 꽃들로 머리를 만들어 내려고 노력하는 광경과 닮아 있다. 과연 목이 잘린 사슴은 자신의 몸에서 머리를 만들어 내는 데에 성공할 것인가? 아니면 선형적이고 지속적이라고 상상하고 있는 역사성의 사고방식에서부터 단절을 선언할 것인가? 미궁에 빠진 테세우스(Theseus)가 괴물 미노타우르스(Minotauros)를 죽이고 아리아드네(Ariadne)의 실을 찾아 미궁에서 빠져나오는 일은 그리 쉬워 보이지 않는다. 미술평론가 최민은 이와 같은 한국사회의 민족주의적 태도에 대해서 ‘전형적으로 신화적 영역에 속하는 내러티브‘라고 본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항상 기원(Origin)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불가능한 시도가 반복된다. 기원은 신성하고 오염되거나 변질되지 않은 순수한 원형이 존재한다는 미신적 상상의 귀결점이다”고 말하면서 “자기중심주의가 확대된 것이 자민족 중심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 한국의 동시대 예술의 자기 복원에 관한 무의식은 비엔날레와 국제적인 미술행사, 아트페어와 아카데미에 이르기 까지 편만해 있다.
한국 동시대예술에서 정부주도의 공공미술 정책의 주요 방향은 예술가들의 사회적 기여를 확대하는 것이다. 유물론적 천민자본주의를 구축하기 위해 매진했던 지난 수 십 년간 한국정부의 정책은 예술의 화용론으로 제도화하고 있다. 이러한 공공미술의 확대에 앞서 우리는 몇 가지 문제들에 대해 진단해야 한다. 첫째, 예술의 사회적 의미를 묻지 않은 대중화는 일방적인 예술정책으로 실패하기 쉽다. 서구적 아방가르드의 이식과정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없이 이른바, 동시대예술이 사회적 위치를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두 번째로 이를 위해서 작가 스스로 한국적 특수성에 입각한 동시대성을 예술을 고민해야 한다. 그것은 예술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의 문제이다. 예술을 수용하게 되는 수용자의 적극적 소비와 동참이 없이 예술은 사회적으로 승인되지 못한다. 한국사회의 공동체적 실어증은 사고와 의식의 변화가 따르기 이전에 물리적인 환경의 급격한 변화와 연관이 있다. 한국 동시대예술에서 관계성의 예술은 이 공동체적 실어증을 극복하는 일이다. 셋째로 이 공동체적 승인과정의 구축에 관한 제도적인 고민이 필요한데, 이 새로운 예술을 어떻게 제도화 혹은 예술적 승인과정으로 인도해 낼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 예술이 시도하고 있는 관계성은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으로 확대되기도 하고 지역적이거나 때로는 문화인류학적인 연구 활동들과 만난다. 예술은 이미 학문적인 연구 활동과 구분하기 힘들어졌다. 이러한 활동들은 예술이 하나의 형식을 넘어 타 인접학문들과 관계를 확대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지구상에 남아 있는 최후의 분단국가의 예술가들이 살아오며 겪었던 냉전의 역사는 이 체제를 각인시키기 위한 이데올로기의 훈육과 학습으로 점철된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예술가들의 무의식을 결정짓는 또 다른 특징 중에 하나이다. 이 냉전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예술가들의 사회적 실천은 무엇이고 이 체제의 심리적 반영은 무엇인가? 단일민족의 신화는 20세기 지구전체를 대립하게 했던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어떻게 붕괴되고 변화하고 있는가? 냉전체제는 아직도 한국사회의 지성을 위협하는 예외조건이다. 시민사회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이룩해낸 지난 20년의 성과가 최근 천안함 사건 등의 안보 이데올로기의 작동으로 총체적 유예상태에 직면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냉전체제는 때로는 계엄으로 때로는 전시체제로 자기모습을 탈바꿈하며 수시로 시민사회의 숭고한 가치들의 주권을 박탈한다. 냉전은 단순히 군사적 대치상황에서의 무력충돌에 관한 공포를 제공하는 것 뿐 아니라, 사회. 문화적인 상상력에도 확장되고 있다. 공동경비구역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냉전체제를 다룬 영화들은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며, 문학과 연극 등 다양한 영역에서 냉전국가로서의 한국사회의 현상을 담은 예술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11인이 생각하는 한국현대미술 키워드
글로벌리즘과 차이의 문화정치학
관계성 예술을 통한 공동체적 실어증 극복
한국미술 키워드 3개
예술소곡(藝術小哭)
역동적 자생성을 토대로 성장한 한국 현대미술
과감한 방식으로 예술적 본질을 고찰하는 한국 현대미술
한국현대미술 현장과 경쟁력에 대한 소고
현대 '한국적'인 미술이란 무엇인가
모호한 현실 속 정체성의 탐구
한국 현대미술에 맥락화가 필요한가?
한국 미술에 나타난 변용과 개념적 독립
1969년 강원도 평창 봉평에서 태어나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미디어 예술을 전공하였다. 2006년 광주 의재창작스튜디오 디렉터를 거쳐, 2007년 안산 원곡동에서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의 디렉터를 역임하였다. 2009년 경기창작센터 개관부터 학예팀장으로 일하다 2011년부터 2012년까지 경기도미술관 학예팀장을 지냈다. 최근 경기문화재단의 문예지원팀 수석학예사로서 문예지원사업, 섬머아카데미 등 교육사업도 기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