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 동향

2012 키워드로 보는 한국현대미술(3)

posted 2012.06.22

한 나라의 현대미술을 드러내는 키워드라는 것이 있을까? 미술에 대한 다채로운 스펙트럼과 다양한 씬이 있기에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무(모)한 도전'일지 모른다. 그러나 전지구화나 국제화 시대에 대응해 각 국가나 지역의 미술 정체성이 더욱 강화되고 있는 21세기에 이러한 키워드를 (무모하지만)살펴보는 것 또한 의미있는 작업일 듯싶다. 중국 현대미술의 경우 거대한 스케일과 구상회화의 강세 등으로 얘기할 수 있고, 영국 현대미술 또한 yBa라는 이름으로 독특한 그들만의 마감을 규정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웹진'더 아트로'가 창간을 맞아 국내 현대미술의 키워드를 뽑아보는 '무한도전'을 시도했다. 현재 국내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미술계 인사들과 국내 미술계를 관심있게 지켜본 해외 미술인들에게 한국 현대미술의 키워드 세 개를 뽑아달라고 한 것이다. 11인이 생각하는 한국미술 키워드, 이를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지속적인 발전과 고찰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이제 그 속으로 들어가 본다.




한국미술 키워드 3개

경제성장을 목표로 끊임없이 줄달음쳐온 한국사회는 IMF구제금융이라는 전례없는 거국적 위기로 20세기를 어이없이 마감하는가 싶더니, 새마을 정신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룬 나라답게 다시 한번 똘똘뭉쳐 단기간에 이를 극복해냈다. IMF의 권고를 착실히 수행하여 사회 전반에 걸친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고 G20 회원국으로 세계경제의 주역으로 성장한 한국을 세상은 모범국가로 칭송한다. 불과 십 수년 전까지만 해도 저렴한 가격으로 승부하던 국산 전자제품은 이제 하이테크의 대명사가 되었고, 한국의 운동선수나 아이돌스타들이 유럽에서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소식 또한 예사로울 정도다. 그래서, 이러한 물질적 풍요 속에서 우리는 행복한가? 금욕과 성실로 나라를 일으킨 아버지들은 소위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자녀들에게 사회적 특권을 물려주지 못하는 처지를 미안해하고, 어린 아이들은 이유없는 왕따와 강요된 성적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1970년대 군사독재 시대에나 가능했던 묻지마식 개발사업과 언론탄압이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오늘날의 대한민국. 전반적인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상대적 빈곤과 정신적 피폐가 깊어져가는 우리 사회는 지금 성장통을 겪고 있다. 이는 양적 성장에만 관심을 기울인 나머지 삶의 질에 대해 무심했던 고도성장의 그림자이며, 사회학에서 이야기하는 ‘문화지체현상’인 것이다. 한국 현대미술의 키워드를 제시하라는 방대한 주문에 대해 정답없는 답안을 작성하기 위한 방편으로 글로벌라이제이션과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보편적인 시대 상황과 고도압축성장의 병폐라는 우리 사회의 특수성이 날실과 씨실처럼 교차하는 지점으로 범위를 좁혀보았다. 내밀하고 사적인 차원과 역사와 사회전반을 관통하는 거시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은 다양하지만,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신을 성찰하는 예술적 방식 또는 태도라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기억(collective memory)


지금 미술계의 ‘허리’에 해당하는 1960~70년대 생 작가들의 유년 정서는 국민교육헌장과 새마을운동 그리고 대중문화와 그에 대한 매서운 검열이 지배한다. 그러나,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조국 근대화를 이루기 위한 열망으로 민족의 개념과 역사가 기획되고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권력의 부조리를 눈감아야했던 시대의 상황은 겉모습만 바뀌었을 뿐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배영환의 자개장식을 뒤집어쓴 기타와 깨진 소주병으로 만든 샹들리에는 격동과 혼란 속에서도 낭만을 꿈꾸었던 시절에 대한 우리의 집단기억을 화려한 외피 속에 상처입고 빛바랜 현재의 의식과 연결시켜주며, 1960년대 초창기 록밴드의 활동을 재연한 이기일의 프로젝트는 잊혀질 뻔한 우리사회의 문화사적 단면을 오늘날의 전지구화 과정 속의 문화이식과 혼성이라는 시각을 통해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개입(art as social intervention)


대중을 각성시키고 권력의 부조리에 맞서온 예술가의 예는 이미 반세기 전부터 찾아볼 수 있지만, 개발논리를 앞세운 공권력이 폭력적 양상을 띠며 개인의 일상에 침투하는 최근의 상황 속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이어지고 있다. 4대강 사업의 부당함을 일깨우며 공사 현장 일대의 땅사기 운동을 펼친 리슨투더시티(리슨투더 시티-강이 도시가 되다), 재개발을 위해 강제철거된 옥인아파트에서 인터넷라디오방송을 비롯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권력의 횡포를 다각도로 조명한 옥인콜렉티브(옥인콜렉티브-작전명-까맣고 뜨거운 것을 위하여)등의 활동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라는 새로운 매체적 환경을 통해 다시 태어난 액티비즘이라고 할수 있다.


치유(art as healing)


OECD 리포트가 발표한 자살율 1위, 행복지수 최하위의 기록은 물질적 성장과 정신적 성숙 사이의 균열과 간극이 사회 병리학적 증상으로 나타난 결과일 뿐이다. 여전히 가부장적 정서가 지배하는 가정은 더이상 생산적이지 않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는 약육강식의 정글일 뿐이다. 자신을 괴롭히는 악몽을 정면으로 직시하는 김윤진의 그림과 초월적 경험을 퍼포먼스의 형식으로 제식화한 이윰의 작업은 자기파괴적인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한 절실한 자기구원의 과정으로 이해된다.


11인이 생각하는 한국현대미술 키워드

글로벌리즘과 차이의 문화정치학
관계성 예술을 통한 공동체적 실어증 극복
한국미술 키워드 3개
예술소곡(藝術小哭)
역동적 자생성을 토대로 성장한 한국 현대미술
과감한 방식으로 예술적 본질을 고찰하는 한국 현대미술
한국현대미술 현장과 경쟁력에 대한 소고
현대 '한국적'인 미술이란 무엇인가
모호한 현실 속 정체성의 탐구
한국 현대미술에 맥락화가 필요한가?
한국 미술에 나타난 변용과 개념적 독립

임근혜 / 독립 큐레이터, 레스터대학 박물관 박사과정

임근혜는 1995년 홍익대 예술학과 학부를 졸업하고 1997년 런던대 골드스미스대학에서 큐레이터십 석사를 취득했다. 1999년부터 2002년까지 독립큐레이터로 활동하며 울산대, 추계예대, 계원예대 등에서 현대미술론과 전시기획론을 강의하다가,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서울시립미술관과 경기도립미술관을 거치면서 소위 ‘공무원 큐레이터’로서의 경력을 쌓았다. 미술관을 떠나 첫 책 『창조의 제국-영국현대미술의 센세이션』(지안북스)을 쓰고 나서 다시 유학길에 올라, 현재 영국 레스터대학 박물관학과에서 ‘문화정책과 미술관운영’에 대한 박사논문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