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현대미술을 드러내는 키워드라는 것이 있을까? 미술에 대한 다채로운 스펙트럼과 다양한 씬이 있기에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무(모)한 도전'일지 모른다. 그러나 전지구화나 국제화 시대에 대응해 각 국가나 지역의 미술 정체성이 더욱 강화되고 있는 21세기에 이러한 키워드를 (무모하지만)살펴보는 것 또한 의미있는 작업일 듯싶다. 중국 현대미술의 경우 거대한 스케일과 구상회화의 강세 등으로 얘기할 수 있고, 영국 현대미술 또한 yBa라는 이름으로 독특한 그들만의 마감을 규정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웹진'더 아트로'가 창간을 맞아 국내 현대미술의 키워드를 뽑아보는 '무한도전'을 시도했다. 현재 국내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미술계 인사들과 국내 미술계를 관심있게 지켜본 해외 미술인들에게 한국 현대미술의 키워드 세 개를 뽑아달라고 한 것이다. 11인이 생각하는 한국미술 키워드, 이를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지속적인 발전과 고찰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이제 그 속으로 들어가 본다.
동시대 한국미술의 현재를 조망하기 위해 필자가 생각하는 한국미술의 특성 또는 키워드를 제시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한국 현대미술의 현재라 하면, 이것이 어떤 특정 시공간에서 발생된 것으로 오인될 여지가 있기에 섣부른 제안, 특히 키워드를 제시하는 일은 지양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의견들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이러한 시도가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한국 컨템포러리(contemporary) 미술계의 긍정적 진화를 위해 다양한 시각이 필요하고, 그 사유의 형식자체를 통해 공유·공감될만한 것이 있을 것이다. 필자는 한국미술계에서 그동안 진행되었던 예술적 실천과 사건들, 사유를 벗어난 행위들이 발생하게 된 사회적 상황과 구조, 진실을 마주하게 하는 생산자-수용자 간 심리적 관계 속에서 한 단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한국미술계에서의 예술 실천은 굴곡진 시대적·사회적 상황과 맞물려왔다. 실천에 대한 자기성찰이 없었기에 미술계 내부의 실제적인 사회적 변혁을 이룰 수도 없었다. 국가라는 믿음의 모호한 대상을 거세당한 1920~30년대, 한국이라는 공간에서는 일제강점기를 통해 이중으로 타자화된 서구미술의 전용과정이 있었고, 이로 인해 근대적 한국미술계의 태동기와 같은 상황이 존재했다. 1950년대 한국전쟁과 국토의 분단과 같이 윤리적 · 물리적 가치가 상실되는 사건은 한국미술계가 반성할 기회를 박탈하고 스스로에게 더욱 집착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미술사적으로는 앵포르멜(imformel), 단색회화(monochrome)와 민중미술 실천들이 다양한 논란과 문제제기를 야기했다. 논란은 당연히 즉자적 사건 위주로 초점이 맞춰져 전개되었고, 여기에는 분파주의적 이데올로기가 환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1980~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경쟁체제를 앞세운 포스트-콜로니얼적(post-colonial) 상황들이 한국미술계를 뒤덮었다. 서구의 미술계가 일구어 놓은 시스템에 한국미술계를 대입하여 뒤처지지 않아야한다는 ‘서구화’의 조급함과, 독자적 가치를 세워 제3세계 콤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어야한다는 ‘탈서구화’ 주장이 항상 한 벌로 따라다니는 논의의 대상이었고, 이는 현재까지 글로벌화라는 기치 아래 지속적으로 도전받고 있는 과제가 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도전들은 규모의 경제로 귀결되었다.
한국미술계에 기형적으로 빠르게 자리한 자본시스템, 그리고 여기에 생산자와 수용자의 소통 구조가 형성되었다. 이미 단기 경제학 논리로 고속성장의 맛을 본 한국사회 전반에서는 명분과 의미화 과정이 누락되었다. 신자유시장의 경쟁과 가치 상실로 인해 개별적 주체들은 성공을 향한 자기도취적 환상에 사로잡히고, 이로 인해 타인을 통한 자기성찰의 기회 또한 박탈되었다. 욕망만하는 한국사회, 게다가 잉여의 논리는 아주 매력적인 것으로 일상에 개입하여, 삶을 해체하고 분리하였다. 잉여의 논리는 한국미술계에도 매력적인 미학적 입장을 제안했고, 유럽에서의 탄생 배경이 ‘합리적 주체’에 대한 반성작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논리로 귀찰 되는 상황에 어김없이 등장하여 상황논리를 지지해주는 밑거름이 되었다. 무한경쟁 자본의 환상이 정신 · 정서적 가치마저 지배하게 되었다.
동시대 한국미술계는 자본에 의해 잠식당했다고 봐야할 것이고, 가속도가 붙은 자본의 논리는 미술계 전반을 불편한 상태에 놓이게 만들었다. 시장에 의해 반복 생산되는 이미지들, 대안을 표방했던 기관들이 더 이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복합문화공간을 표방한 문화역서울 284의 경우는 정부의 자금으로 공동의 기억을 가진 물리적 건축물을 보전하면서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전용하려는 실천적 움직임의 사례이다. 현재 이러한 유휴공간에 대한 재생성격의 공공사업들은 자본의 투입과 함께 그 추진을 기다리는 중이다. 기억마저 자본화되는 꼴이다.
또한 예민한 생산자와 성급한 소비자 간 소통은 지속적으로 어긋나고 있다. 자본은 환영의 재생산을 가속화하면서 동시에 장르를 넘어 직접적 행위(생산자)-경험(수용자)의 짜릿한 감각소통을 부추긴다. 이러한 상황에서 초단기간 내 준비되어 개최되는 전시운영들과 근시안적 제도, 정신적, 정서적 가치를 논하는 분야에서마저도 정성적 평가보다는 정량적 평가만이 인정되는 사회에서 단기인력시장에 내놓여진 전문가들, 이러한 상황들은 뼈아픈 미술계의 개별적 실천가들이 자기반성을 하게 만들고 있다. 개별자의 윤리와 잠재력을 깨우는 과학기술, 또는 SNS와 같은 매체가 미래에 대한 막연한 희망을 주고만 있을 뿐이다. 이러한 단기 경제적 논리로 접근한 예술 실천과정을 통해 한국미술계는 지속가능한 성장과 함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이러한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도록 장르를 막론한 일군의 실천가들이 있어 그나마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하겠다.
옛 아방가르드(avant-garde) 예술가들은 일상에서 분리된 예술을 반성하고, 주체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오랫동안 지속해왔다. 그리고 커다란 동시대적으로 커다란 사회적 변혁을 일구어내었다. 동시대 한국현대미술은 현재 지속 가능한 예술 써클(art circle)을 유지할 수 있을까, 또는 사회적 자기반성을 주도할 수 있는가에 대해 문제제기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결연한 자기 성찰이 필요한 때이다.
11인이 생각하는 한국현대미술 키워드
글로벌리즘과 차이의 문화정치학
관계성 예술을 통한 공동체적 실어증 극복
한국미술 키워드 3개
예술소곡(藝術小哭)
역동적 자생성을 토대로 성장한 한국 현대미술
과감한 방식으로 예술적 본질을 고찰하는 한국 현대미술
한국현대미술 현장과 경쟁력에 대한 소고
현대 '한국적'인 미술이란 무엇인가
모호한 현실 속 정체성의 탐구
한국 현대미술에 맥락화가 필요한가?
한국 미술에 나타난 변용과 개념적 독립
오세원은 현재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공예디자인진흥과장으로 재직 중이며, 구서울역사 복합문화공간인 문화역서울 284를 개관 및 운영을 담당하였다. 2009~2011까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을 역임하면서 《황인기》전을 포함 다수의 전시를 기획하였으며, 신진작가 및 독립큐레이터 성장프로그램을 기획 · 운영하였다. 그 외 청록파 대표로서 문화기획 및 다수의 전시를 진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