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현대미술을 드러내는 키워드라는 것이 있을까? 미술에 대한 다채로운 스펙트럼과 다양한 씬이 있기에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무(모)한 도전'일지 모른다. 그러나 전지구화나 국제화 시대에 대응해 각 국가나 지역의 미술 정체성이 더욱 강화되고 있는 21세기에 이러한 키워드를 (무모하지만)살펴보는 것 또한 의미있는 작업일 듯싶다. 중국 현대미술의 경우 거대한 스케일과 구상회화의 강세 등으로 얘기할 수 있고, 영국 현대미술 또한 yBa라는 이름으로 독특한 그들만의 마감을 규정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웹진'더 아트로'가 창간을 맞아 국내 현대미술의 키워드를 뽑아보는 '무한도전'을 시도했다. 현재 국내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미술계 인사들과 국내 미술계를 관심있게 지켜본 해외 미술인들에게 한국 현대미술의 키워드 세 개를 뽑아달라고 한 것이다. 11인이 생각하는 한국미술 키워드, 이를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지속적인 발전과 고찰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이제 그 속으로 들어가 본다.
이 에세이에서 나는 6개월 동안 서울의 미술계에서 받은 인상을 표현하고자 한다. 2011년 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국제 전문가 연수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 기간 동안, 미술관과 미술 공간을 방문했고, 예술가들과 문화계 종사자들을 만났고, 미술상(에르메스 미술상과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젊은 작가상) 시상식을 목격했으며, 광주디자인비엔날레와 청주공예비엔날레에 참석했다. 따라서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나의 이해는 주로 이를 수용하는 공간과 플랫폼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지난 몇 달간, 내 연구의 초점은 현대미술 공간에서의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것이었다. 간접적으로, 나는 민간기업을 포함한 많은 후원 시스템이 현대미술 프로젝트를 후원하고자 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한편으로 지자체와 정부는 예산을 할당하고 예술가 레지던시를 설치하여 예술가를 지원, 육성하고, 한국의 예술가들을 격려하며 여러 미술관의 교육과 지원 프로젝트를 후원한다. 현대미술의 전파와 수용에 영향을 미치는 이러한 거대한 시스템은 일련의 문화적 어젠다를 진행하는 데에도 동일한 방식을 적용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예를 들어 역사적,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장소에 만들어진 예술가 레지던시가 급속히 늘어났는데, 이는 문화가 한 장소를 재생하고, 그곳의 사람들의 마음에 다시 활기를 불러일으킬 힘이 있다는 견해에서 발전했다. 한국 (그리고 아시아에서의) 최초의 미술 비엔날레가 1980년 전두환의 독재에 항거한 도시인 광주에서 개최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이런 정치적 혼란으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30년 뒤, 과거의 고통으로 괴로워하던 같은 장소는 이제 미래의 '아시아 문화의 허브 도시'가 되고자 한다. 이는 1995년부터 시작된 권위 있는 미술 비엔날레 뿐 아니라, 2014년에 개관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통해 실현될 것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한국에는 현대미술을 담당하는 수많은 기관과 공간, (비엔날레 같은) 플랫폼이 있다. 이 리스트에 현대미술을 위한 국립미술관을 더할 수 있을 것이다. 대규모의 국립현대미술관 세 번째 분관이 2013년에 서울의 중심부에 건립된다. 오늘날, 광주와 부산에서는 주요한 미술 비엔날레가 개최되고,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는 한국과 한국의 미술을 국제무대에 부각시킨다. 국가적, 국제적으로 이렇게 활발하게 (미술 시장을 포함한) 예술과 관련된 시스템에 의해 제시되는 현대미술을 통해, 우리는 한국의 현대미술이 매우 활발하고 뚜렷하게 드러남을 인식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느껴지는가? 전시들이 미술 커뮤니티와 일반 대중에게 영향을 줄만큼 결정적인가? 전시들이 예술을 창조하거나 실험하는 새로운 방식을 강화하는가? 한국이 현대미술을 전시해야 하는 기관과 공간의 숫자만 보면, 나는 이러한 공간에 전시되는 현대미술의 질에 대해 심사숙고하는 충분한 시간과 재능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미술관과 아트센터, 그리고 비엔날레에서의 전시들이 한국 현대미술을 계획적으로 지원하고 성장시킬 계획이라면, 그 목표는 무엇인가? ‘한국적’인 미술의 개념은 무엇인가? 이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작업을 하는 작가들에게만 엄격하게 적용되는 개념인가? 아니면 이 개념은 국적을 바꾸었거나, 세계 다른 곳에 기반을 둔 작가들에게도 적용되는가(백남준의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한국적’이라는 구분이 특정한 집단적 정체성에 부합되는 작품을 제작하도록 작가들을 압박하는가? 그리고 유일하게 '한국적'인 현대라는 개념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방관자의 입장에서 제작된 현대미술의 특징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런 적절한 질문들은 한국의 미술계에 보다 철저하게 노출되어 조사하고, 국제적인 미술 행사(예를 들어 베니스 비엔날레 같은)에 참가하는 작가들의 흐름과 미술 시장, 해외 체류를 고려할 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현대미술계를 들여다본 외부자로서, 나는 이러한 질문들이 예술을 하고, 현대 한국에서 예술가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많은 예술가들이 숙고하는 것 중 일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예술가들은 개인적 정체성, 알려지지 않은 이의 이야기를 다루는 한편, 다른 작가들은 그들이 사는 사회에 영향을 미친 관습과 특정한 역사에 반응한다. 몇몇은 남북을 분단시킨 한국 전쟁이나 후기 식민지로서의 한국을 보는 관점 같은 뿌리깊은 문제를 되돌아보는 정치적인 작업을 하는 경향이 있다. 한편 기술적인 관점에서 보면, 많은 작가들은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거나 넘나들고, 때로는 자신의 예술에 지역적 혹은 전통적 매체와 가치가 스며들게 하는 한편, 외국에서 익힌 다양한 방법들을 의식적으로 통합하려는 시도를 한다. 1980년대 이후 급격히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변화를 거친 이 나라는 전반적으로 세계에 열려 있다. 그리고 많은 질문이 있지만, 현대미술은 선두에서 이러한 변화에 대한 고민을 계속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들을 수용한 바로 그 공간들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11인이 생각하는 한국현대미술 키워드
글로벌리즘과 차이의 문화정치학
관계성 예술을 통한 공동체적 실어증 극복
한국미술 키워드 3개
예술소곡(藝術小哭)
역동적 자생성을 토대로 성장한 한국 현대미술
과감한 방식으로 예술적 본질을 고찰하는 한국 현대미술
한국현대미술 현장과 경쟁력에 대한 소고
현대 '한국적'인 미술이란 무엇인가
모호한 현실 속 정체성의 탐구
한국 현대미술에 맥락화가 필요한가?
한국 미술에 나타난 변용과 개념적 독립
루이즈 앤 마르셀리노는 필리핀 대학 바르가스 미술관의 연구원이다. 그녀는 2007년에 예술학과 최우수 학부 졸업을 했고, 동 대학원에서 미술관학 과정을 밟고 있다. 2011년에 그녀는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국제 전문가 연수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녀의 관심 연구는 미술관 교육뿐 아니라 특정 도시(필리핀 마리키나 시와 케손 시)에서의 재현 시스템과 예술가가 운영하는 공간과 이니셔티브를 아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