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현대미술을 드러내는 키워드라는 것이 있을까? 미술에 대한 다채로운 스펙트럼과 다양한 씬이 있기에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무(모)한 도전'일지 모른다. 그러나 전지구화나 국제화 시대에 대응해 각 국가나 지역의 미술 정체성이 더욱 강화되고 있는 21세기에 이러한 키워드를 (무모하지만)살펴보는 것 또한 의미있는 작업일 듯싶다. 중국 현대미술의 경우 거대한 스케일과 구상회화의 강세 등으로 얘기할 수 있고, 영국 현대미술 또한 yBa라는 이름으로 독특한 그들만의 마감을 규정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웹진'더 아트로'가 창간을 맞아 국내 현대미술의 키워드를 뽑아보는 '무한도전'을 시도했다. 현재 국내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미술계 인사들과 국내 미술계를 관심있게 지켜본 해외 미술인들에게 한국 현대미술의 키워드 세 개를 뽑아달라고 한 것이다. 11인이 생각하는 한국미술 키워드, 이를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지속적인 발전과 고찰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이제 그 속으로 들어가 본다.
한국의 현대미술을 살펴보면, 한국 현대미술의 맥락화와 관련된 두 가지 의견이 나타난다. 하나는 한국의 현대미술을 국제 무대에 드러내기 위해 문화적 정체성의 필요성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 미술의 규정하기 힘든 성격을 확인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한국의 세계화와 민주화와 연관된다. 이러한 견해는 1) 민주화 운동을 등장시켰고, 민중미술을 형성하게 한 1987년의 정치적 충돌, 2) 한국을 국제 무대에 등장시키고 도시 발전의 인프라스트럭처를 세운 1988년의 서울올림픽, 3) 정부의 허가 없이도 해외 여행을 할 권리와 1998년의 일본 대중문화 금지 철폐 같은 1990년 이후의 자유화, 4) 1990년대 이후 인터넷을 통한 보다 많은 정보에의 접근과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변화, 5) 백남준이 독일 파빌리온에서 한스 학케(Hans Haacke)와 함께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1993년의 베니스 비엔날레 같은 한국 사회 속 결정적인 역사적 사건과 변화에 주로 기반을 둔다. 백남준을 한국인 미술가로 보는 것은 언제나 논의거리가 되지만, 이 사건은 1995년에 한국 파빌리온을 세우기 이전에 한국의 현대미술가가 국제 무대에서 거둔 최초의 성공으로 여겨지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루어야 할 목표로 남아있다.
‘동시대성’의 다양한 개념이 작가 세대 내에서 반드시 맥락화될 필요는 없다. 이는 현대 한국 작가들의 저항 방식과 태도로 맥락화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이 개념은 작가들이 작업을 통해 무엇에 저항하고 있는가를 살펴봄으로써 규정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용백과 이동기, 전준호 등의 작가들은 한국의 단일한 문화적 재현에 저항한다. 이용백(이용백_피에타 자기죽음) 은 자신이 서양 미술의 코드를 사용하는 데에 흥미를 가진 적이 결코 없다고 했고, 현대인의 정신분열적인 정체성을 야기하는 현대 사회의 현실과 모순을 단언한다. 이동기는 의도적으로 클리셰적인 키치를 이용하여 자신의 회화에서 한국적인 것을 제거하는데, 이는 ‘한국적인 것의 부재가 한국 현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의 작품에는 한국적 문화적 재현에 반하는 것이 처음부터 아예 없다. 전준호(전준호_웰컴) 는 한국의 사회 시스템과, 각종 이즘과 이데올로기, 국내 정치 시스템에 의해 지배되는 폐쇄적인 한국 미술계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는 포스트-민중 미술가에 대한 특징적인 묘사에 대한 저항의 형태로, 그의 예술이 사회에서 ‘유용’하게 되길 바란다. 동정이 아닌 공감에 기반을 두고, 소속감을 동시대성의 조건으로 보며,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개인적 감각을 긍정하는 작가들이 있는가 하면, 집단적이고 유교적인 한국 사회에 저항하는 이들도 있다. 동시대성의 정의는 우리가 이 사회를 어떻게 정의하는 가에 달려 있다. 이러한 방식과 태도는 임민욱(임민욱_포터블 키퍼) 과 정연두, 최우람(최우람_우나 루미노) 등의 작가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일견, 이들의 개인주의에 기반한 국제적이고 보편적인 예술 언어 사용 선호가 이들 세대에 생겨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들보다 약간 연배가 있는 오인환 또한 집단적인 그룹 정서보다는 개성을 창조하고 존중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말한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사회가 문화적, 교육적 전제상 충분히 현대적이지 못하기에 한국 미술에는 아직 ‘현대’가 도래하지 않았다. 오인환은 "한국이 자유국가인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나라의 시스템은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고, 나는 그 자유가 어디에서 오는지 물어야 한다"라고 말하며 한국이 보다 문화적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한다. 이불(이불_모든 새로운 그늘) 도 "한국 사회는 기본적으로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변화에 대한 의지와, 바꾸고 개선하고자하는 과정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변화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것과 자유로운 것이 다르듯이 말이다"라고 한다. 그녀는 "문화는 역사이고, 형성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예를 들어, 오늘날 크게 인기 있는 K-pop은 소비되는 상품이고, 따라서 프로파간다와 비슷하다. 하지만, 이러한 한국의 조건이 나를 형성했다, 좋든 싫든 말이다"라고 계속해 말한다. 이것이 왜 이불이 실패한 유토피아라는 아이디어에 흥미를 갖고, 자신의 작업을 개인적이고 포괄적인 관점에서 근대화의 문제에 연결하며 무엇이 한국의 현대미술인가에 대해 질문한 까닭이다.
한국 현대미술에는 맥락화가 필요한가? 한국 현대미술과 그것의 파편화된 역사의 다면적인 현실을 이해하고 존중하기 위한 맥락을 만들어야 하는가? 아니면 불확실성에 가치를 부여하기에 그것의 규정하기 어려운 성격을 인정해야 하는가? 나는 맥락이 여전히 필요하지만, 다원적이어야 하고 끊임없이 검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역의 현대미술을 논의하기 위한 다원적 맥락은 문화적 국가주의와 고립을 피하고, 다른 것들과의 차이를 인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 나라가 그들이 가진 것을 다른 나라에 과시하기만 한다면 국제적인 문화 교류는 결코 실현될 수 없을 것이다.
참고: 본문 속의 작가들의 코멘트는 2011년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인용했다
(최우람 11월 8일, 전준호 11월 7일, 정연두 11월 1일, 이불 9월 21일, 이동기 10월 25일, 이용백 11월 7일,
임민욱 11월 17일, 오인환 10월 28일).
11인이 생각하는 한국현대미술 키워드
글로벌리즘과 차이의 문화정치학
관계성 예술을 통한 공동체적 실어증 극복
한국미술 키워드 3개
예술소곡(藝術小哭)
역동적 자생성을 토대로 성장한 한국 현대미술
과감한 방식으로 예술적 본질을 고찰하는 한국 현대미술
한국현대미술 현장과 경쟁력에 대한 소고
현대 '한국적'인 미술이란 무엇인가
모호한 현실 속 정체성의 탐구
한국 현대미술에 맥락화가 필요한가?
한국 미술에 나타난 변용과 개념적 독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