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아트로는 해외에서 활용할 수 있는 한국의 시각예술 관련 기금과 지원정보를 소개한다. 한국 시각예술계에서는 적지 않은 수의 주목할 만한 전시와 프로그램들이 공적 기금의 지원 아래 운영되고 있다. 오늘날 한국 현대미술계가 국제화된 만큼 이 중에는 국제교류와 관련된 내용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해외 작가나 전문가들이 직접 지원할 수 있는 레지던시, 전시기회 등의 공개 공모 프로그램 뿐 아니라, 공적 기관이나 미술관에서 기획하는 초청 리서치, 국제 세미나, 출판 지원, 미술상 등 여러 종류의 지원과 기회가 해외를 향해 열려있다. 더아트로는 이렇게 해외를 대상으로 한 한국 공적 기관의 지원 내용을 주제별로 나누어 연재 기사로 준비했다. 두 번째 기사로, 한국의 국제 레지던시 현황을 살펴보는 원고를 싣는다. 대표적인 국공립 레지던시부터 소규모의 특색 있는 사립 레지던시까지, 해외작가와 적극적으로 교류하는 레지던시들을 만나본다.
2013년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표한 「창작스튜디오 현황조사 및 지원방안 연구」에 따르면 국내에는 현재 120개소가 넘는 레지던시가 운영 중이라고 한다. 2017년 1기 작가를 선발한 제주문화예술재단 레지던시를 비롯하여 2018년 제1기 작가를 모집 중인 전주문화재단 팔복예술공장까지 국내 레지던시는 계속해서 증가 추세에 있다. 100여 곳이 넘는 국내 레지던시 모두가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연 해외 시각예술 관계자들은 어디에서 국내 레지던시 프로그램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얻을 수 있을까? 전 세계 70여 개국 600여개 레지던시가 등록되어 있는 가장 큰 국제 레지던시 네트워크 중 하나인 레즈 아티스(Res Artis) 검색 엔진에서 “한국(Korea South)”을 검색해 얻을 수 있는 결과는 총 7개로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 국립현대미술관 창동·고양레지던시(MMCA Residency Changdong&Goyang), 경기문화재단 경기창작센터(Gyeonggi Creation Center)1), 인천문화재단 인천아트플랫폼(Incheon Art Platform), 서울문화재단 금천예술공장(Seoul Art Space Geumcheon), 연희문학창작촌(Seoul Art Space Yeonhui), 서울무용센터(Seoul Dance Center),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SeMA Nanji Residency).
미주지역 중심의 레지던시 네트워크 AAC(Alliance of Artists Communities) 내 레지던시 디렉토리 검색 결과 역시 국립현대미술관 레지던시, 금천예술공장, 인천아트플랫폼 단 3곳으로, 단일화된 플랫폼 없이 매우 제한적이고 산발적인 정보만을 얻을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중국과 홍콩의 레지던시 정보를 제공하는 China Residencies(chinaresidencies.com) 혹은 일본의 AIR_J(en.air-j.info)이나 Move Arts Japan(movearts.jp)과 같이 한국 주요 레지던시 프로그램 정보를 그 위치와 특성에 따라 분류하여 제공하는 영문 온라인 데이터베이스의 존재가 절실한 시점이다. 이처럼 통합 데이터 플랫폼 없이 각 레지던시 SNS 계정을 통해 정보를 수집할 수밖에 없는 현 상황에서, 이 글을 통해 국립 레지던시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의 국제 레지던시의 현황을 대략적으로나마 소개하고자 한다.
1) 경기창작센터는 2016년 이후부터 더 이상 해외 작가를 공모를 통해 선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경기창작센터 출신 작가 중 지원자를 선발하여 해외 레지던시에 파견하고 있다.
<해외작가의 국제레지던시 입주 시 지원 사항>
위에서 언급한 레지던시 목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내 대표적인 레지던시 중에서 운영주체가 국공립미술관이나 지방문화재단인 경우가 많다(앞서 언급한 창작스튜디오 현황조사에 따르면 국내 운영 중인 총 124개소의 레지던시 중 39개소가 국공립인 것으로 조사 되었다). 그만큼 비교적 안정적인 예산을 가지고 정례화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대부분 1년에 한 번 정기 공모를 통해 해외 입주 작가나 연구자를 선발하고 있으며, 입주 기간은 대략 3개월 미만이다. 선발된 작가 혹은 연구자는 기본적으로 별도의 비용 없이 개별 스튜디오(숙소) 및 레지던시 공용 시설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전시 참여시 작품 제작비를 일부 지원 받을 수 있으며(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부산문화재단 홍티아트센터), 왕복 항공료(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금천예술공장, 인천아트플랫폼 등), 왕복 항공료 및 창작지원금 매월 30만 원(대구문화재단 가창창작스튜디오), 항공료 지원 없이 체재비 매월 100만 원(창동레지던시) 등 세부적인 추가 지원 사항은 레지던시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심사는 입주지원 시 제출한 포트폴리오와 이력서, 작업 계획서 등을 검토하는 서류 심사가 주를 이루며, 그동안의 작업 활동과 더불어 지원 동기와 계획의 구체성, 차후에 한국 미술계에 미칠 영향력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된다.
2002년부터 2015년까지 창동레지던시를 거쳐 간 약 300명의 작가 중 한국 작가 146명을 제외한 입주 작가 대륙별 통계를 보면 유럽과 아시아 출신 작가가 각 68명과 47명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다른 레지던시 사정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 외 나머지는 오세아니아 출신 12명, 북아메리카 출신 10명, 남아메리카 출신 6명, 중 동 출신 6명, 아프리카 출신 4명으로 각 4%, 3%, 2%, 2%, 1%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특정 권역 집중 현상을 해소하고 국제교류 범위를 확대하기 위해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에서는 유수 예술 기관 및 관계자의 추천을 통해 2016년 남미, 2017년 중동, 2018년 아프리카의 역량 있는 작가를 초청하여 월 200만 원, 총 600만 원의 체재비(항공료 및 제작비 포함)와 함께 한국에서의 레지던시 기회를 제공하는 펠로우쉽 프로그램(International Artists Fellowship Program)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주요 국공립 레지던시에서는 그동안 레지던시를 거쳐 갔거나 당해 년도에 입주한 작가들을 대상으로 국제교환s입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먼저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는 2018년 기준 에어_프랑크푸르트(AIR_Frankfurt), 바우하우스 데자우(Bauhaus Dessau), 쿤스틀러하우스 슐로스 발모랄(Künstlerhaus Schloß Balmoral)(이상 독일), 달링 폰드리(Darling Foundry, 캐나다 퀘백), 타이페이 아티스트 빌리지(Taipei Artist Village, 대만), 토카스(Tokyo Arts and Space, 일본) 등 6개 기관과 교환 입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선발된 작가에게는 월 200만 원, 총 600만 원을 지원하며 본 프로그램을 통해 고양레지던시에 입주하게 되는 상대 기관의 작가 역시 이에 준하는 지원금을 받고 입주하게 된다.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는 HIAP(핀란드), 빌바오 아르테(Bilbao Arte, 스페인), 더니든 예술학교(Dunedin School of Art Artist in Residence and Artists Adjunct, 뉴질랜드)와 교환입주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서울문화재단 금천예술공장은 관두미술관(Kuandu Museum of Find Arts, 대만), 에이펙스아트(Apexart, 미국), 앙가아트센터(Hanger Art Center, 스페인), 인천아트플랫폼은 뱅크아트1929(BankART1929, 일본 요코하마), 산스크리티 재단(Sanskriti Foundation, 인도 뉴델리)과 교환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며 각 기관의 세부 지원 내용은 아래와 같다.
<레지던시 별 국내작가의 국제교환입주 프로그램 지원 사항>
위에서 소개한 국공립 레지던시들은 대부분 2000년대 도심 혹은 외곽의 유휴공간을 활용하여 설립되었기 때문에, 작업장이 따로 없거나 목공·철공 작업장만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다.2) 만약 특정 매체에 집중하여 그에 따른 작업장이 필요한 경우에는 다른 레지던시들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김해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세라믹창작센터는 국내 유일의 도자 전문 레지던시로 2미터 이상의 대형작품을 한 번에 소성할 수 있는 4루베 가스가마와 2루베 가스가마, 3종의 전기가마가 갖추고 있으며, 도자 전문 기술자들로부터 기술적 조언을 얻을 수 있다. 부산에 위치한 예술지구 P는 드로잉(모든 장르의 에스키스, 텍스트, 기호, 모형까지 포함)을 주제로 국내외 입주 작가를 선발하는데, 대형 이마콘 필름 스캐너, 엡손 디지털 출력 시스템, 사진 스튜디오 사용 및 출력을 지원한다.
이밖에 특정 지역이나 주제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프로젝트 기반 레지던시로 DMZ 양지리 레지던시가 있다. 남북 분단이라는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배경으로 비무장지대(DMZ) 인근 강원도 철원군 양지리의 빈집을 개조하여 국내외 작가들과 연구자들로 하여금 DMZ의 장소성과 역사성, 인문사회학적 연구를 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한다. 2014년부터 운영되기 시작하였으며 2016년부터 매년 오픈콜을 통해 작가/팀을 선발하여 스튜디오 및 지원금 약 160만 원(10주), 멘토링 프로그램 등을 지원하고 있다.
2) 농협 하나로마트 창고 자리에 건립한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2002), 경기도 고양의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2004), 난지도 침출수 처리장을 개조한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2006), 우록분교 폐교를 개조한 대구문화재단 가창창작스튜디오(2007), 일제 강점기 부랑청소년을 수용했던 선감원 자리에 들어선 경기창작센터(2009), 서울시의 ‘컬처노믹스 정책’의 일환으로 구로공단 내 옛 인쇄공장을 개조한 서울문화재단 금천예술공장(2009), 문래동 철공소 거리 옛 철재 상가에 세운 문래예술공장(2010), 인천광역시가 구도심 재생사업의 일환으로 개항기 근대 건축물과 인근 건물을 매입해 조성한 인천아트플랫폼(2009) 등.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낯선 땅에 도착한 해외 작가 및 연구자들은 휴대전화 개통과 식사와 같은 일상생활은 물론, 리서치 및 작품 재료 구입에서 제작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현지 적응에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홍콩의 미디어 아트 전문 기관 비디오타지(Videotage)처럼 현지 작가를 멘토로 해외 작가와 1:1로 짝지어 주거나, 대만 타이페이 아티스트 빌리지(Taipei Artist Village)처럼 작가마다 어시스턴트 혹은 코디네이터를 배정하는 것은 레지던시 당 상근 인력이 평균 3.2명인 한국의 현실을 감안할 때 너무 이상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또한 국내 작가를 대상으로 1년 내외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반면, 해외 작가의 경우에는 3개월 미만의 프로그램이 많은 관계로, 결과보고 전시에는 해당 시기에 입주한 해외작가만 참여하는 등 프로그램 진행에 있어서 해외 작가가 국내 작가와 분리되는 경우가 많다. 거의 모든 레지던시들이 국제 네트워크 형성의 플랫폼을 자처하고 있는데, 국내 미술계가 한국에서 활동하는 해외 작가들을 얼마나 수용하고 있는지 자문해 본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 몬드리안 재단(Mondriaan Fund)의 경우, 국적에 상관없이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는 작가에게 창동레지던시를 포함하여 영국 런던 델피나 파운데이션(Delfina Foundation), 미국 뉴욕 ISCP 등 16개국 20개국 레지던시에서 4개월간의 레지던시 기회를 제공하고, 8천 유로의 지원금(2018년 기준)을 작가에게 직접 지급하고 있다. ‘국내 작가’와 ‘해외 작가’라는 이분법을 뛰어넘을 수 있는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함께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레지던시 기간 동안 운이 좋게도 국내외 크고 작은 전시에 참여하게 되는 경우는 많다. 가시적이고 수치화 할 수 있는 이러한 ‘성과’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레지던시 이후에도 작업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네트워크 형성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지난 4월에서 7월까지 네덜란드 창조산업기금(Creative Industries Fund)의 지원으로 창동레지던시에 입주했던 그래픽 디자인 듀오 Team Thursday는 입주 기간 동안 크고 작은 프로젝트와 워크숍 등에 참여하고 고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자신들이 수집한 한국 디자이너 21명의 포스터 42종을 로테르담에 위치한 자신들의 스튜디오에서 소개하는 작은 전시회를 열었다. 2016년 창동레지던시에서 만난 크세니아 갈리아에바(Ksenia Galiaeva)와 진달래&박우혁은 레지던시 이후에도 ‘자기커뮤니케이션(autocommunication)’에 대한 관심사를 공유하며 계속해서 이에 대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2017년 『NOLEMON NOMELON』(Tique, Netherlands)이란 제목의 출판물을 발표하기도 했다. 독일의 레지던시 아카데미 슐로스 솔리튀드(Akademie Schloss Solitude)의 디렉터 장-밥티스트 졸리(Jean-Baptiste Joly)는 지난 10월 덴마크에서 열린 레즈 아티스 미팅 기조연설에서 “레지던시 이후에야말로 무언가가 진짜 시작된다(The time after the residency, when things really begin.)”고 말한 바 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레지던시 기간. 그의 말처럼 진짜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국립현대미술관(MMCA)에서 운영하는 창동레지던시 매니저인 박희정은 alles bewegt sich (Kulturpalast Wedding International, Berlin, 2017), <폐허에서> (주상하이한국문화원, 상하이, 2015), AS_Pedia Project (갤러리퍼플, 남양주, 2015)(공동기획)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