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 동향

2018 비엔날레 리뷰(2) 서울미디어시티, 전남수묵

posted 2018.12.28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8》이 열리는 서울시립미술관에는 아고라가 설치되어 있어 대중과 토론하는 열린 비엔날레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8》이 열리는 서울시립미술관에는 아고라가 설치되어 있어 대중과 토론하는 열린 비엔날레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기획·진행 미술세계 편집부



③ 2018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비엔날레를 실험하기


글쓴이 장서윤 기자
이미지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장서윤 기자


《2018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포스터

《2018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포스터

《2018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포스터


2018 F/W 비엔날레 시즌


지난 9월 5일 개막식을 갖고 본격적으로 비엔날레 시즌을 알린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8》(이하 《서울미디어시티》)을 시작으로 광주와 부산에서도 연일 이어 비엔날레 오프닝과 그에 앞서 기자간담회가 진행되었다. 2년에 한 번 돌아오는 행사이지만, 본격적으로 행사가 개최되기 전부터 비엔날레는 기자들에게 (막대한 양의 기사거리로 인한) 심적인 부담과 (전국을 누벼야 한다는) 신체적 고통을 동반하는, 말 그대로 막중한 행사이다. 광주를 제외하고 서울과 부산의 비엔날레의 기자간담회를 참여한 후 《서울미디어시티》의 기사를 위해 일주일 넘게 서울시립미술관의 전시장을 찾아갔던 필자의 걸음 수는 총 93,882, 하루 평균 11,735만큼을 걸었다(Thanks to 아이폰 건강 앱).


물론, 미술 전문 기자라는 직책을 생각한다면 전국에서 열리고 있는 모든 비엔날레들을 취재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비엔날레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는 상황에서, 더욱이 각 비엔날레 사이의 차별점이 두드러지지 않은 채 비슷한 작가의 비슷한 작품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면, 비엔날레의 취재 결과는 도리어 한국미술계에 대한 회의로 귀결되기도 한다(질적으로는 답보 상태이나 양적으로는 계속 증식해나가는 비엔날레의 문제는 비단 한국만의 것은 아니며, 이미 전 세계적으로 비엔날레에 대한 비판은 지속되고 있다). 이와 같은 결론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비엔날레를 만들고 운영하는 관계자들일까, 아니면 비엔날레를 지자체의 대표적인 문화 행사로 만들어 좀 더 괜찮은 지자체가 되고자 하는 정치 행정의 욕망일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8》 전시 전경, 사진ⓒ서울시립미술관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8》 전시 전경, 사진ⓒ서울시립미술관

언젠가 지역의 대표 행사를 ‘비엔날레’라는 명칭으로 바꿔 수많은 비엔날레 리스트에 한 줄 더 추가했던 비엔날레 관계자에게 굳이 명칭을 바꾼 이유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돌아오는 답변은 그간 ‘진실로’ 그 이유를 궁금해해온 시간이 무색하리만큼 간단했다. ‘비엔날레’여야 예산을 더 끌어올 수 있다는 것. 비엔날레에만 예산을 할당한다는 것인지, 비엔날레가 다른 문화 행사보다 더 많은 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인지 더 자세한 질문은 하지 않았지만, 결국 행정과 돈이 얽힌 정치 게임의 뉘앙스를 지울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비엔날레를 대하는 미술계 내부의 태도 역시 모순적이다. 비엔날레의 피로감을 호소하면서도, 비엔날레 시즌만 되면 대안 없이 타성에 젖어 돌아가는 비엔날레를 봐야 한다는 책무에 시달리며 어김없이 전국의 비엔날레 전시장을 방문한다. 비엔날레의 무용을 논하지만 대안은 내놓지 못하고, 미술계라는 보이지 않는 카르텔 안에서 날 선 언어로 평가를 하는 것도 쉽지 않다(이 지점은 매체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 다시 질문을 해보자. 지금 현재, 한국에서 비엔날레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2년마다 돌아오는 미술계 행사라는 쳇바퀴는 멈추지 않고 계속 돌아가야 할 것인가? 비엔날레는 누구를 위한 행사인가? 지자체에서 중점적으로 내세우는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늘 미술계 내부의 인사들만 관심을 두는 미술 행사인가? 그 미술 행사에서 관람객들의 자리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어디부터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 나가야 하는 것인가? 비판과 질문은 많지만, 뚜렷한 답은 보이지 않는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8》 좋은 삶, ‘아고라’에서 답을 찾다


어느덧 10회를 맞이한 서울시립미술관(이하 SeMA)의 대표 행사인 《서울미디어시티》도 비엔날레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며, 10회라는 역사성 안에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는 부담감 또한 지녔을 것이다. 《서울미디어시티》가 기존의 1인 감독 체제를 벗어나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디렉토리얼 콜렉티브로 전환한 것도 바로 이러한 변화의 요구에 대한 응답이었을 테다. 《2018 광주비엔날레》 또한 11명의 큐레이터 체제로 변모하며 비엔날레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지만, 광주의 경우 이미 국내외 미술씬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며 익숙한 큐레이터/이론가들로 구성되었다면, 서울은 김남수 무용평론가, 김장언 독립큐레이터, 임경용 더북소사이어티 대표, 홍기빈 글로벌 정치경제연구소장을 비엔날레의 장(場) 안으로 들여와 차이점을 드러냈다.1) 《서울미디어시티》의 방향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 보여준다. 즉, 미술계 내부의 행사로, 미술의 이야기만을 다루지 않겠다는 것. 정치, 경제, 사회, 예술의 다양한 분야에서 모인 디렉토리얼 콜렉티브는 《서울미디어시티》의 주제를 ‘좋은 삶(Eu Zén)’으로 설정하고, 예술을 넘어 삶을 마주하는 태도로 ‘좋은 삶’이 무엇인지 대중과 함께 토론하는 자리로서 비엔날레를 마련한 것이다.


1)《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8》의 디렉토리얼 콜렉티브는 초기 최효준 서울시립미술관 관장과 장다울 그린피스 기후에너지팀장을 포함해 6인으로 구성되었으나, 지난 7월 최효준 관장이 직위해제되고 장다울 기후에너지팀장은 개인 사정으로 콜렉티브를 떠남에 따라 최종 4인의 콜렉티브로 비엔날레를 오픈했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8》 전시 전경, 사진ⓒ서울시립미술관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8》 전시 전경, 사진ⓒ서울시립미술관

사실, ‘좋은 삶’이란 주제 자체는 방대하고 막연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광주의 ‘상상된 경계들’이나 부산의 ‘비로 떨어져 있어도’ 역시 지엽적인 주제는 아니지만 적어도 ‘경계’, ‘분단’이라는 중심적인 키워드가 있는 반면, ‘좋은 삶’을 주제적으로 지탱하는 준거점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이 아무것도 없음은 (긍정적으로 보자면) 역으로 무엇도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서울미디어시티》는 후자의 가능성을 본 것이 아닐까 싶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발생하는 자연 환경의 변화는 물론 4차 산업혁명으로 그동안 인류가 유지해왔던 물질적, 정신적 가치들 또한 변화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인류의 위험, 한계 상황을 논하지만, 동시에 세계는 인종, 종교, 영토 분쟁이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으며 차별과 배제는 일상에 내재되어 있다. 자본주의가 더 넓고 깊어질수록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간극은 점점 더 벌어지고, 경제적인 가치가 우선하게 되는 사회에서 개인의 인간성은 소외, 더 심하게는 실종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전 지구적 위기 속에서 《서울미디어시티》가 택한 것은 정치, 경제, 사회, 환경, 과학, 예술 전 분야에 걸쳐 전문가와 대중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대화와 토론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전시장 1층에 실제 ‘아고라’를 설치하여 이와 같은 비엔날레의 의도를 상징적•실질적으로 구현했다. 바닷가의 작은 마을이었던 아테네가 지중해 연안을 지배하는 제국으로 변모하면서 순박했던 사람들이 돈과 권력에 눈이 멀어 전쟁과 대량 학살을 서슴지 않게 자행하고 전통과 법률이 무너져 내리는 상황에서 ‘좋은 삶’을 찾아가기 위해 아고라에 모였던 것처럼, 수천 년의 시공간을 가로지른 현재, 그리고 다가올 미래까지도 ‘좋은 삶’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다면 이번 비엔날레에서 미디어‘적’인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그려진다. 바로 미디엄으로서의 아고라이다. 그동안 9번의 비엔날레가 초기 동시대 기술의 발달과 미디어 테크놀로지에 주목하던 것에서 환경이자 삶의 태도로서 미디어로 그 개념을 확장해왔다면, 이번 《서울미디어시티》는 대화와 토론의 장(場)으로 작동하는 미디어로서 ‘아고라’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실제로 이번 비엔날레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도 바로 이 아고라다. 올해 비엔날레에는 국내외 16개국에서 68명/팀이 참여했는데, 전시장에 설치된 작품 이외에도 비엔날레 전 기간에 걸쳐 강연 및 토론회 11건, 공연 6 건, 전시 연계 프로그램 32건이 각각 ‘아고라-사는 법’, ‘아고라 - 행하는 법’, ‘아고라 - 노는 법’이라는 명칭으로 진행된다. 일반적인 비엔날레에서 심포지엄이나 아티스트 토크 등이 부대 행사로 돌아가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으며, 이는 《서울미디어시티》를 가장 특징 지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미술관에서 울려 퍼지는 낯선 이들의 목소리


그렇다면 아고라에는 어떤 사람들이 모일까? 언뜻 불필요해 보이지만, 이 질문은 이번 《서울미디어시티》의 방향성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 잘 보여준다. 즉,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였던 폴리스(polis)의 광장이었던 아고라는 시민 생활의 중심으로 기능하였던 만큼, 아고라를 전시장으로 불러들인 이번 비엔날레가 자리를 내어준 것 역시 시민, 즉 일반 대중 관람객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보다 ‘대중적인 전시’를 선보이겠다는 것이다. 비엔날레 측은 “대중의 문화예술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도록 시민들을 위한 열린 전시를 목표하며 이를 통해 사회의 새로운 전환적 계기를 만들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애초에 대중을 목표로 한 비엔날레였기에 작품의 미학적이고 예술적인 차원보다 관람객과의 소통과 이해, 그리고 공감을 비엔날레의 우선순위로 두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일까. 《서울미디어시티》에는 조금은 다른 목소리들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난민, 장애, 페미니즘, AI, 4차 산업혁명, 환경, 청년, 복지 등 현재 한국 사회에서 시급한 이슈로 다뤄지고 있는, 삶과 밀접하게 맞닿은 주제들 말이다. 먼저, 미술관 앞마당에서 헤드폰을 끼고 지정된 장소에 접근하게 되면 비나 천둥소리, 벌떼소리처럼 자연의 소리가 흘러나오다가 어느덧 예멘 난민들이 낯선 언어로 부르는 노래 소리가 흘러나온다(권병준, 〈오묘한 진리의 숲2〉).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낯선 것은 아니다. 동두천에서 아프리카 난민 커뮤니티를 이끌고 있는 난민활동가나 제주에서 예멘 난민들의 일자리를 연결해주는 활동가들의 언어는 한국어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전하는 상황은 결코 익숙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미술관 전면에 붙어 있는 ‘좋은 삶’ 포스터를 바라보며 잔잔하게 흐르는 목소리들을 들을 때, 난민의 문제가 우리 사회 그리고 나의 삶과 동떨어진 문제가 아님을 환기하게 된다. 2006년부터 마석가구단지의 이주민 공동체와 협업을 통해 한국 사회 내부의 다양한 목소리들에 주목해온 믹스라이스는 1998년도 마석의 방글라데시 공동체 500여 명이 모여 만든 첫 축제에서 단돈 10만 원으로 게임을 했던 즐거운 시간을 사진과 만화적인 드로잉의 병합으로 풀어낸 영상 〈오백 명의 남자들과 게임 그리고 경품: 면봉 한 봉지, 냅킨 한 봉지, 볼펜 한 자루, 설탕 1kg짜리 한 봉지, 액자, 소금 1kg 한 봉지, 감자 한 봉지〉를 선보였다. 바나나 빨리 먹기, 1분 안에 풍선 빨리 불어 터뜨리기, 종이 접기, 나사 빨리 빼기 등 일상적이고 존재감 없는 사물들이 즐거움을 주는 가치로 전환되는 경험은 관람객들에게 ‘좋은 삶’이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듯하다.


리슨투더시티,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 영상, 2018. 30분, 사진ⓒ서울시립미술관

리슨투더시티,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 영상, 2018. 30분, 사진ⓒ서울시립미술관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 허리’ 모습, 사진ⓒ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 허리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 허리’ 모습, 사진ⓒ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 허리

다른 국적을 지닌 난민, 외국인 노동자들만이 낯선 것은 아니다.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 허리’의 영상작품 〈불화不和〉와 리슨투더시티의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는 1층 전시장에서 서로 공명하며 장애에 대한 인식과 시선을 미술관 내부로 적극 불러왔다. ‘춤추는 허리’는 장애여성의 삶과 인권을 예술로 표현해온 극단으로, 〈불화不和〉에서는 이들이 자신들만의 몸짓과 언어로 사회적 사건이 발생하던 장소에 개입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지하철 리프트 사고를 계기로 사회적 약자들이 스스로 힘을 모아 지하철을 점거했던 장면, 세월호가 발생한 장소를 직접 찾아가 선보인 퍼포먼스, 클럽에서 비장애인들과 섞여 즐겁게 춤추는 모습은 각기 다른 상황과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레 정상과 비정상성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게 한다. 리슨투더시티의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는 지난 2017년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 당시 장애를 지닌 사회적 약자들이 재난에 어떻게 노출되어 있는지 여실히 드러낸다. 지진이라는 생존의 위기에서 스스로 대피할 수 없었던 장애인들에게 더 큰 위기는 지진 그 자체보다 장애인을 위한 재난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당시를 회고하며 위기에서 자신들을 구해준 것은 결국 이웃들이라는 그들의 발언에서 ‘좋은 삶’을 위한 일말의 가능성을 살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성의 문제 또한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춤추는 허리’ 또한 장애여성 극단이라는 점에서 ‘여성’의 문제를 환기하고 있지만, 고연옥&잣 프로젝트 작품 〈우린 적당히 말했다〉는 페미니즘 이슈를 보다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전시 기간 동안 아고라에서 연극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작품은 문화예술계 내 ‘미투 운동’에 대한 고찰에서 시작된 것으로, “당신의 고향은 서울입니까”, “당신은 정상인입니까? 비정상인입니까?”, “예쁜 옷을 입어주세요.”, “우리라는 이름으로 어떤 폭력을 답습하는가?” 등 사회에 무의식적으로 내재된 폭력의 질문들을 몸짓으로 풀어낸다. 배우들의 반복적이고 파편적인 움직임은 이러한 질문들로 인한 상처인 동시에 그 상처를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처럼 보인다. “어떻게 걸어갈 것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퇴장하는 퍼포머들의 발걸음은 사회로부터 차별 받는 약자들이 스스로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가는 첫 걸음이기도 하다.


아고라에서 펼쳐진 고연옥&잣 프로젝트의 〈우린 적당히 말했다〉

아고라에서 펼쳐진 고연옥&잣 프로젝트의 〈우린 적당히 말했다〉

민세희, 〈모두의 인공지능, A.I, entirely on us〉 프로젝트, 2018. 참여작가 13인 공동 작업

민세희, 〈모두의 인공지능, A.I, entirely on us〉 프로젝트, 2018. 참여작가 13인 공동 작업

페미니즘과 이슈와 연관하여 이번 비엔날레에서 가장 흥미로운 사건은 다름 아닌 전시장 1층에 구현된 민세희의 〈모두의 인공지능, A.I, entirely on us〉(이하 〈모두의 인공지능〉)에서 나왔다.


오늘날 사회적으로 가장 이슈가 되는 화두 중 하나가 A.I.이며, 4차 산업혁명을 앞둔 현재 A.I.가 인류에 미치는 영향은 비엔날레에서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주제일 것이다. 〈모두의 인공지능〉은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들과 연구자들이 사전에 인공지능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이를 텍스트로 시각화하여 전시장에 설치한 작업이다. 관람객들은 구현된 장치를 통해 “창작자로서, 아티스트로서 ‘다양성’과 ‘공정함’을 정의한다면”, “인공지능과 기계학습 환경에서 특정 인종, 문화, 계급 중심이 아닌 다양한 지역과 문화권을 포함하려면 어떻게 풀어야 할까” 등의 질문을 검색하고 이에 대한 참여자들의 답변을 검토할 수 있다. ‘모두의 인공지능’이라는 작업의 제목과 각 질문에서도 느껴지다시피 다양성과 공정함은 인공지능 환경에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A.I.로 구현된 환경은 차별과 배제가 없을 것 같지만, 실상은 늘 이상과는 다르게 흘러가기 마련이다. 모두의 인공지능에서 ‘모두’는 과연 누구를 지칭하는가? 누구의 배제도 없는 모두의 인공지능은 가능한 것인가? 실제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들이 모두 남성인 걸 발견한 참가자들은 이에 이의를 제기하고, 콜렉티브와 상의 끝에 자신들의 사례비를 덜어 2명의 여성 작가들을 추가적으로 참여하게 했다고 한다. A.I.에서 시작된 질문이 현실의 여성 이슈와 연결 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전 지구적으로 발생하는 환경 문제 또한 이번 《서울미디어시티》에서 중요한 화두로 다뤄지고 있었다. 3층의 크리티컬 아트 앙상블은 〈환경 트리아제: 민주주의와 죽음의 정치 내에서의 실험〉에서 한강 수역의 오염 정도를 조사한 후 어디서부터 개선해야 하는지 관람객들이 투표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했는데, 이후 아고라 프로그램에서는 참여한 관람객과 함께 작품에서부터 4대강 이슈까지 대화를 이어가며 생산적인 논의의 장(場)을 만들었다. 팩토리 콜렉티브의 〈발밑의 미래〉는 프로젝트 형식으로 진행되는 작업으로, 1층 전시장 한쪽에 버섯 배양실을 설치하는 한편 아고라에서는 〈마이리아곤 1: 낱말의 여러 세계〉, 〈다종의 균과 함께 먹기, 살기〉 등을 진행함으로서 박테리아, 바이러스, 곰팡이, 균 등의 미생물들 또한 결국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요소임을 좀 더 감각적이고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아고라에서 진행된 팩토리 콜렉티브의 〈마이리아곤 1: 낱말의 여러 세계〉

아고라에서 진행된 팩토리 콜렉티브의 〈마이리아곤 1: 낱말의 여러 세계〉

아고라는 비단 정치, 경제, 사회, 환경과 같은 문제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지엽적이고 특수한 분야처럼 보이지만, 예술에서도 아고라는 필요하다. 윤원화, 윤지원은 전시장 3층에 〈부드러운 지점들〉을 설치하여 젊은 미술가들을 토대를 투고 있는 사회의 환경과 그 조건들을 응시한다. 지난 십여 년간 서울은 ‘신생공간’, ‘굿즈’ 등을 중심으로 이합집산을 반복했다. 미술계의 불안정하고 미래가 불투명한 지형을 역시나 통과해야 했던 윤원화와 윤지원은 자신들이 목격한 이 ‘부드러운 지점들’ 내부에서 반복되고 교차되는 목소리들을 수집하여 이를 시각화했다. ‘미술과 사회’라는 제목으로 수많은 텍스트가 다이어그램처럼 구성된 벽면에서 발견한 “우리가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어떻게 지속적으로 자생할 수 있을까”, “예술인의 직업적 지위와 권리를 법으로 보호” 등의 문구들은 예술에서도 ‘좋은 삶’이 필요한 것임을 드러낸다. 그 옆에 자리하고 있는 씨위드의 〈SEAWEED〉와 미팅룸의 〈Open Research Station〉 역시 한국 미술계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예술적 실천을 지속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부드러운 지점들〉과 느슨하게 연대하고 있었다.


모두의 모두를 위한 비엔날레는 가능할까


이처럼 《서울미디어시티》는 정치, 경제, 사회, 환경, 과학, 예술 등 다양한 문제들을 전시장 안으로 가져온, 그야말로 다학제적인 비엔날레라 할 수 있다. 이런 주제들은 여타 비엔날레에서도 심심치 않게 언급되는 것이지만, 문제를 발화하는 주체가 미술 작가 외에 다양한 분야의 활동가, 연구자, 기획자 등 새로운 행위자들의 작업을 소환함으로써 미술의 자장을 좀 더 넓혔다는 의의가 있다.


콜렉티브 4인 각각이 어떤 작가들과 작업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것 또한 사적이고 공적인 다양한 의견들이 공론의 장에서 부딪히며 일으키는 시너지를 중시한 것과 관련이 있을 테다.


물론, 전문적인 미술 작가가 아닌 경우 미학적인 부분에서 디테일이 떨어질 수는 있으며, 전체적인 산만함은 콜렉티브 체제가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이기도 하다. 김상돈은 전시장 1층 로비에 빽빽한 글자가 적힌 돛을 달고 마치 상여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종이꽃과 형형색색의 술, 그리고 빈 냄비로 카트를 요란하게 치장한 작품 〈바다도 없이〉를 덩그러니 가져다 놓았다. 바다도 없이 ‘산’으로 가는, 비엔날레라는 빈 수레를 상징하는 것일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8》뿐만 아니라 시간에 쫓겨 비엔날레를 포장하기에 급급한 국내 모든 비엔날레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태도가 사뭇 날카롭게 느껴진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8》 전시 전경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8》 전시 전경

윤원화, 윤지원, 〈부드러운 지점들〉, 2018. 말과 이미지가 일시적으로 점유하는 공간, 가변크기

윤원화, 윤지원, 〈부드러운 지점들〉, 2018. 말과 이미지가 일시적으로 점유하는 공간, 가변크기

하지만, 이런 질문도 가능하다. 비엔날레는 꼭 미학적으로 아름다워야 하는가? 그 미학의 기준은 누구를 위한, 누구에 의한 것인가? 그리고 산만하지 않은 비엔날레가 어디 있던가? 비엔날레 감독 선정이 늦어져서이든, 참여 작가들 사이의 조율이 늦어져서이든, 행정 상의 문제이든 비엔날레를 실질적으로 준비하는 기간은 늘 급박하게 돌아간다. 콜렉티브 사이의 연결고리를 좀 더 시간과 공을 들여 촘촘하게 만들었다면 훨씬 유기적이고도 실험적인, 이들이 직접 말하는 “정체된 예술의 장(場)을 환기”할 수 있는 결과물이 나왔겠지만, 첫 번째 실험에서 100%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기대할 수는 없다. 또한 비엔날레가 미술계 내부의 행사로만 존재하는 것도 되짚어봐야 할 문제라는 점에서, 이번 《서울미디어시티》 가 시사하는 바는 그리 미약하지 않다.


그렇다면 모두의 비엔날레는 정말 가능할까? 애초에 이 질문은 무용하다. 〈모두의 인공지능〉에서 던진 질문처럼 모두는 이미 모두가 아니다. 중요한 건 배제되고 타자화되는 누군가가 우리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발생되고 있다는 것이며, 그동안 미술계 또한 누군가를 타자화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비엔날레에 선보인 작품들보다도 실제 아고라에서 오고 간 에너지가 더 흥미롭고 의미 있게 다가왔다는 점은 《서울미디어시티》 를 조금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들었다. 그래서 필자는, 앞으로도 비엔날레 기간 중 진행되는 아고라를 계속 방문해볼 생각이다(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그린피스 동아시아 서울사무소, 박형준, 리처드 윌킨슨 등이 참여하는 메인 아고라 프로그램 ‘아고라-사는 법(강연)’은 글을 쓰고 있는 현재도 시작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동안 듣지 못했던, 보지 못했던, 말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직접 ‘전시장’ 안에서 만나 미술의 언어에 그들의 언어 또한 덧대어볼 생각이다. 11,735 걸음이 20,000 걸음으로 될지언정 말이다.


《2018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국제레지던시로 사용된 목포 원도심 신안수협

《2018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국제레지던시로 사용된 목포 원도심 신안수협

④ 2018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수묵의 백과사전을 열다


글쓴이 이주희 객원기자
이미지 제공 이주희 객원기자


《2018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포스터

《2018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포스터


제1회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 2017년의 《수묵프레비엔날레》의 뒤를 이은 이번 전시는 목포시와 진도군을 중심으로 목포문화예술회관, 노적봉예술공원미술관, 목포연안여객터미널갤러리, 운림산방, 남도전통미술관, 금봉미술관, 옥산미술관, 신안국제레지던시에서 그 방대한 내막을 펼쳐 보인다. 전국적으로 범람하고 있는 비엔날레를 생각한다면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특질과 명맥이 확실한 ‘수묵(SUMUK)’을 주제로 예향(藝鄕)을 자처한 전라남도의 6개 전시관과 1개의 국제레지던시에서 펼쳐진 15개국 271명 작가의 작품은 ‘오늘의 수묵’을 목격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제1회, 수묵의 백과사전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는 그 첫 발을 떼면서 ‘수묵화’라는 이름을 대신해 ‘수묵’을 공식 명칭으로 채택하고 영문 표기를 ‘SUMUK’으로 확정했다. 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은 김상철은 수묵이 단순히 재료적 특성에 따라 구분해놓은 회화의 형식이 아니라 특유의 정신성, 사상성을 내재하고 있는 조형 방식임을 밝히고 수묵의 외연을 확대해 그 다양한 성과를 수렴하고자 수묵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수묵은 한국화, 동양화, 수묵화, 먹-회화 등으로 호칭의 방법에 따라 이름과 범위를 달리해온 장르이기에 이 같은 호칭의 정리는 첫걸음을 딛는 국제행사에 명증성을 보태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전시 도록에 실린 “기획의 글”은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의 지향점을 잘 보여준다.


“격변의 시대를 거치며 영욕의 세월을 감내하며 오늘에 이르게 된 수묵은 동양 회화의 적자이자 전통의 실체로서 응당 지녀야 할 본연의 위상과는 사뭇 차이가 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여하히 수묵의 가치를 확인하고 그 위상을 제고하여 건강한 현대미술로서 거듭나게 할 것인가가 바로 이번 수묵비엔날레가 열리게 된 근본적인 이유일 것이다. 수묵의 역사성, 정통성은 당연히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수묵의 전통성만을 강조한다면 그것은 단지 낡고 오래된 유물적 존재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들에게 주어진 소임은 수묵이 오늘에 있어서도 여전히 건강한 가치와 의미를 지닌 것임을 발견하고 확인하는 것이 바로 수묵비엔날레의 당위성과 필연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내용일 것이다.”


첫 번째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의 주제는 ‘오늘의 수묵-어제에 묻고 내일에 답하다’이다. 국내 비엔날레 중에서는 역대 최대 규모인 271명 작가가 참여했으며,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는 수묵의 행보를 보여주는 밀도 높은 작품들을 선보여 수묵의 백과사전과도 같은 인상을 준다. 작가군 역시 신진부터 원로까지 다양한 분포를 보이는데, 백과사전의 분류와 목차에 해당할 전시의 소주제들을 이들의 작품이 촘촘히 채우고 있다. 소주제는 ‘자연의 서정을 재현하다’, ‘수묵 표현의 진폭’, ‘기운의 가시화’, ‘동양 3국의 수묵 해석’, ‘서체적인 수묵 추상화’, ‘수묵의 여러 표정들’, ‘종가의 향기’, ‘산수’, ‘화합과 교류의 장’ 등으로 세분화되어 있었고, ‘국제레지던시결과보고전’도 함께 진행되어 7개 관에 달하는 전시장 각각의 개성을 살리려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국제레지던시프로그램 ‘국제적수묵수다방’에 참여한 쿠르드 난민 출신 바크타야르 카프탄 작가의 전시 전경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국제레지던시프로그램 ‘국제적수묵수다방’에 참여한 쿠르드 난민 출신 바크타야르 카프탄 작가의 전시 전경

김선두, 〈To show the star_ A day dream〉 2018. 종이에 수묵, 채색, 227×180cm. 사진ⓒ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김선두, 〈To show the star_A day dream〉 2018. 종이에 수묵, 채색, 227×180cm. 사진ⓒ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수묵은 당나라 때 발현해 동양 3국(한국•중국•일본)과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오랜 기간에 거쳐 동시적 발전을 이루어 왔다. 천년이 넘는 기간동안 문명의 흥망성쇠를 함께한 수묵은 전통적인 회화 세계이자 정신의 매개로 자리 잡았다. 예술의 양식으로서 유미적인 소비재가 아니라 인류의 삶과 정서에 근간을 둔 표현형식으로 유•무형적 가치의 진의에 다가가고자 추구되어 온 것이 수묵이다. 이번 전시에서도 《자연의 서정을 재현하다》, 《기운의 가시화》, 《요산요수》, 《산산수수》 섹션 등을 통해 현재까지 수묵이 자연을 어떻게 헤아려왔으며 작가들은 어떠한 아름다움을 흑과 백의 운영으로 옮겨내고자 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기운’과 ‘서정’, ‘진폭’ 등의 개념을 전시의 소주제로 삼은 것은 수묵이라는 특수한 영역을 보다 친절히 해석하고 그것을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로 알리기 위해서이다. 수묵은 물질의 개발로서 물리적 개척에 천착해왔다기보다 비물질적 영역에 도전해왔으며, 인간 내면의 확장을 바탕으로 한 외현에 공력을 쏟아왔다. 때문에 외현의 다양한 방법론과 사조적 정리보다 각각의 깊이와 성찰, 나아가 정신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영역의 수양을 중요히 여겼다.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이러한 면모를 지닌 전통 수묵뿐만 아니라 흑백과 채색, 평면과 설치, 인터랙티브 미디어 등 수묵을 기반으로 확장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이와 같은 기회를 제공하고 무형의 가치들을 보편적 가치로 구체화해 격상시키는 것은 이번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의 핵심적인 기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기존의 가치들이 도태되지 않도록 심화해나가면서도 인간의 보편적 정서에 기여하는 예술의 형식을 지속적으로 보이는 것은 수묵이라는 장르가 가진 가장 큰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갤러리의 3관에서는 ‘종가의 향기’라는 주제로 전남의 종가를 조명했다. 전남의 전통문화자산인 남도 종가를 작가들이 방문해 수묵•사진•판화 등의 결과물로 남겼다. 대를 이어 내려온 종갓집과 집안 곳곳의 모습, 그리고 주변 풍경을 볼 수 있는 3관은 그곳의 안주인인 종부들을 포착한 작품을 더해 그들의 삶과 품격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기획에서 찾을 수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은 수묵의 주요 영역 중 하나인 ‘사생’의 현재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수묵의 영역에서 사생이 중요시되어 왔던 것은 산천초목을 직접 보고 경험해 기운과 정신을 고양시켜 사의(寫意)를 드러나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 같은 관점의 연장에서 사생의 현재를 본다는 것은 동시대 작가들의 사의를 살피는 일이며 그들의 사의로 담아낸 종가의 삶과 품격은 예술이 환유할 수 있는 시대의 ‘격’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수묵이 단지 형상과 사실만을 취하는 형사(形似)의 정도가 아니라 역사와 전통, 애환을 드러내는 데 있어 탁월한 매개인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며 계승되어 새로운 발견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수묵의 본고장 전라남도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에는 예향남도의 위상을 회복해 ‘남도문예르네상스’의 선도사업으로 삼겠다는 전라남도의 포부가 담겨 있다. 특히 올해는 1018년 고려 현종 때 전주와 나주의 첫 글자를 따서 전라도라고 명명한 지 1천 년이 되는 해이다. 수묵의 역사와도 그 명맥을 함께하는 전라도는 대한민국 남종화의 화맥이 시작된 곳이자 수묵화의 전통을 곧게 이어가고 있는 고장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목포와 진도라는 지역적 특성은 전시와 전시 관람 환경에 개성을 더하고 있다. 목포는 자체적으로 암산과 바다를 곁에 두고 있어 다양한 산수와 식생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며, 전라남도 남단의 평야와 진도대교를 지나야 만날 수 있는 진도 역시 뭍과는 다른 산세와 풍광을 가지고 있다. 전남은 공재 윤두서(1668~1715), 소치 허련(1807~1892), 남농 허건(1907~1987) 등 수묵의 대가를 배출한 곳이며 김환기(1913~1974)와 오지호(1905~1982) 등 서양화 거장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목포를 지나 진도로 오는 첫 번째 관문인 울돌목은 충무공 이순신의 3대 해전 중 하나인 명량대첩지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전시가 열리고 있는 운림산방은 조선시대 남종화의 소치 허련이 말년에 거처하며 여생을 보냈던 곳으로 이후도 허씨 일가에 의해 사용됐던 곳이다.


이재훈, 〈초원의 결투를 위해(For a fight on the green field)〉, 2017. 수묵, 혼합재료, 90×90×460cm. 사진ⓒ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이재훈, 〈초원의 결투를 위해(For a fight on the green field)〉, 2017. 수묵, 혼합재료, 90×90×460cm. 사진ⓒ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2관(노적봉예술공원미술관)에서 이루어진 《수묵의 숲》 전시 전경(왼쪽부터 임택, 이세정, 이창희)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2관(노적봉예술공원미술관)에서 이루어진 《수묵의 숲》 전시 전경(왼쪽부터 임택, 이세정, 이창희)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지형적인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수묵 자체가 가지고 있었던 폭넓은 지형에 대한 기록과 해석 때문이다. 실제로 전시장을 따라 목포와 진도, 전라남도권을 둘러보며 오지호의 항구와 김환기의 푸른 빛이 낯설어 보이지 않았던 것은 그들의 작품에 남아있는 향토적 은유를 주변 풍광에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더불어 이번 비엔날레에 출품된 다수의 작품이 남도의 산수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고 나아가 대한민국을 담고 있기에 관람객과의 즉각적인 공감대 형성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은 수묵이 가진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수묵은 태생의 순간부터 자연을 받아들이고자 하였으며, 수묵화는 주변을 해석하고 기록해 남기는 것으로 삶을 이끌어나갔다. 수묵이 인간의 삶•정서와 밀접하고 나아가 인간의 성찰과 정신을 담고 있는 이유 역시 수묵이 현실의 생리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흑과 백으로 일으킨 정신이자 태도를 정체성으로 받아들여온 것이 남도화단이다. 수묵과 같은 문화유산이 지역단체의 주도로 지역의 정체성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그 의미에 대한 일차원적인 접근 외에도 폭넓은 방안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아직 시작 단계이긴 하지만 31명의 국내외 작가가 참여했던 국제레지던시는 예술가들에게 현재의 전남과 수묵을 소개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목포 원도심의 유휴공간을 활용해 ‘국제 적수묵수다방’이라는 주제로 운영된 국제레지던시는 전시적인 면에 있어서도 수묵에서 흔하게 시도되지 않았던 정서에 대한 집중과 표현적 기법의 실험을 선보이며 수묵의 다양한 활용을 제시했다. 전시 1관인 목포문화예술회관 일원에서 진행된 《깃발미술제》는 수묵화를 전공한 학생들의 수묵깃발이 전시되고, 《수묵아트월》은 신생작가들의 작품을 담벽 형식으로 전시해 참여자와 관람객 모두에게 높은 지지를 받았다. 전통과 역사에 근간을 두고 있는 수묵이지만 새로운 세대가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시도되어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것은 비엔날레의 또 다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전라남도가 수묵의 본고장으로서 발돋움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한 것이다.


《깃발미술제》 전시 전경, 2018.

《깃발미술제》 전시 전경, 2018.

《수묵아트월》 전시 전경, 2018.

《수묵아트월》 전시 전경, 2018.

풍성한 시작, 지속을 위한 준비


첫 회, 백과사전 식 전시로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의 지형도를 그렸다면 다음은 형질을 만들어가야 할 차례이다. 지속되어온 전국의 비엔날레 덕분에 비엔날레의 허점들은 공공연히 공유되고 있다.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는 《수묵프레비엔날레》를 거쳐 신중한 시작을 보인 국제행사인 만큼 타 행사들의 문제를 답습하지 않기 위한 사전의 준비 역시 필요하다. 수묵이라는 콘텐츠는 세계 어느 비엔날레와 견주어도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동양과 한국이라는 지역적 정체성을 깊게 담고 있는 행사인 만큼 역량 있는 전문가의 계획 아래 전문 인력을 지속적으로 유치하는 것은 필수 과제일 것이다. 덧붙여 남북관계의 변화에 따라 북한 예술의 소개를 발 빠르게 준비하는 것은 수묵의 저변 확대에 도움이 될 듯하다. 다양한 주제의 학술적 논의 역시 지속적으로 해나갈 수 있다면 회가 거듭되어감에 따른 비엔날레 담론의 빈곤화를 대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수묵이라는 장르의 특성 상 평면 작품들이 대다수를 이루는 전시의 형식은 작가와 전시기획자, 이론가, 관람객 등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다. 수묵이 회화의 방편이 아닌 하나의 태도이자 현대적인 정신을 세우고 건강한 현대미술로 발돋움하기 위해선 현 시점부터의 논의가 더없이 중요할 것이다.



※ 이 글은 미술세계 2018년 10월호(407호)에 수록되었으며,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미술세계와 콘텐츠 협약을 맺고 게재하는 글입니다.

미술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