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 동향

중국적 융합과 공존의 상하이 아트신을 찾아

posted 2020.01.07

정필주 예문공 대표, 독립기획자


상하이를 대표하는 양대 아트페어인 웨스트번드 아트페어(WestBund Art&Design, 6회째)와 ART021(7회째)이 열리는 11월 첫째 주부터 둘째 주까지를 상하이 예술주간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 기간 상하이를 찾은 예술 관계자 다수가 새롭게 문을 연 퐁피두센터 웨스트번드 미술관(Centre Pompidou West Bund Museum)을 방문했다. 웨스트번드 아트페어가 열리는 웨스트번드 예술특구의 아트센터 바로 건너편인데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주석이 아트페어 개막 이틀 전인 11월 5일 미술간 개관 선언을 위해 상하이를 찾은 것도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유럽 외의 국가에 세워진 첫 분관이기에, 이번 미술관 개관을 두고 문화외교의 정석이라는 평가가 이어지기도 했다. 전시 연면적 2만 7000㎡에 지하 2층~지상 2층으로 이루어진 미술관에서는 총 100여 점의 퐁피두센터 소장품을 만나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이우환과 자오우키(Zao Wou-ki)의 작업이 함께 배치되어 있거나 피카소의 기타리스트(The Guita Player, 1910)가 포함되어 있는 등 소장품들이 주는 감동과 재미는 분명하다. 다만, 작품 구성 면에서 일종의 미술사 수업을 속성으로 들은 것 같다는 필자의 생각에 동의하는 현지 미술 관계자도 많았다. 게다가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록번드 미술관의 연간 개인회원권이 300위안이며 상하이 버스 요금이 2위안인 점을 고려하면, 주말 기준 175위안, 약 3만원에 달하는 퐁피두 상하이 분관의 통합 입장권 가격은 부담스러울 수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중국 측은 건축비 부담과 공간 무상임대는 물론 운송비/보험료를 제외하고도 약 275만 달러(한화 약 35억 원)을 매년(총 5년 계약, 이후 연장 가능) 퐁피두센터에 지불한다고 한다. 일부에서 제기하는 중국의 국제적 이미지 개선이라는 다소 모호한 목표 외에 또 어떠한 이유가 이렇듯 과감한 예술 투자를 이끌고 있는지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번 퐁피두 상하이 분관을 단지 ‘수입’했다거나, 막대한 자본력과 관 주도의 하향식 시스템을 앞세워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는 식의 평가는 앞으로 이어질 상하이발 아시아 예술 판도를 읽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는 상하이의 컬렉터들이 이끄는 사립미술관들과 갤러리들이 이번 아트위크에 선보인 전시들을 살펴보면 더 분명해진다.


퐁피두 센터 웨스트 번드 미술관(Centre Pompidou×West Bund Museum) 전시 광경 좌측에 자우키의 작업과 우측에 이응노의 작업 사진: 정필주

퐁피두 센터 웨스트 번드 미술관(Centre Pompidou×West Bund Museum) 전시 광경. 좌측에 자우키의 작업과 우측에 이응노의 작업. 사진ⓒ 정필주

퐁피두 분관으로부터 도보 10분 거리에 과거 공항의 연료탱크 5개를 전시 공간으로 개조한 6만㎡ 규모의 탱크 상하이(Tank Shanghai)가 있다. 중국의 컬렉터 차오즈빙(Qiao Zhibing)이 계획하여 올 3월 개관한 미술관으로, 11월 6일에는 마크롱 대통령이 방문하기도 했다. 현재는 프랑스 작가 사이프리엔 갈리야르(Cyprien Galliard)의 2019 베니스비엔날레 참여작인 영상작품 〈Ocean II Ocean〉을 중심으로 한 동명의 전시와 벨기에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전시가 각각 1월 12일까지 진행된다. 차오즈빙은 중국 장언리(Zhang Enli)의 작품을 테이트 모던에 기부한 것과 관련된 인터뷰에서, 기부활동은 “더 넓은 예술세계를 구축해 나가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유명 컬렉터이자, 최근 중국 최초의 공공미술관으로 전환하는 계획, 미국 LA의 미술관인 LACMA와의 공동 재단 설립 등을 발표하며 화제에 오른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부디 텍(Budi Tek)의 유즈미술관(YUZ Museum)도 LACMA 및 카타르 미술관과의 공동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하는 첫 전시 《In Production: Art and the Studio System》을 11월 7일 개막했다. 내년 3월 1일까지 진행될 이번 전시를 시작으로 이미 내년 가을까지의 순회전 계획이 발표된 상황이다. 다니엘 아샴(Daniel Arsham)의 대규모 전시 《Perputual Present》를 아트위크 기간까지 연장하기도 했던 사립미술관 하우 아트 뮤지엄(HOW ART MUSEUM)의 경우 세계 각국 큐레이터들이 상하이에 머물면서 연구할 수 있는 큐레이터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탱크 상하이에서 진행 중인 사이프리엔 갈리야르(Cyprien Gaillard)의 〈OCEAN II OCEAN〉(11.7~2020.1.12) 전시 광경 사진: 정필주

탱크 상하이에서 진행 중인 사이프리엔 갈리야르(Cyprien Gaillard)의 《OCEAN II OCEAN》(11.7~2020.1.12) 전시 광경. 사진ⓒ 정필주

록번드 미술관(Rockbund Art Museum)에서 내년 1월 5일까지 만나볼 수 있으며, 2013년에 시작된 이래 올해 4회째로 중국 및 동남아시아 작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휴고 보스 아시아 아트 어워드의 선정작가전 또한 단순히 중국 중심의 국내 잔치가 아닌, 아시아적 관점을 국제적인 문법으로 잘 전달하고 있는 작가들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심사위원장이기도 한 록번드 미술관 관장 레리스 프로지에(Larys Frogier)는 “우리는 국가나 지역적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동기를 끊임없이 강조해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선정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한 올해, 우승자는 현대무용가이기도 한 필리핀의 아이사 족슨(Eisa Jocson)이다. 그녀의 미디어아트(Corponomy)나 중국의 하오징반(Hao Jingban)의 작업(Forsaken Landscapes 2019)등은 언어 장벽은 물론 아시아 지역에 드리워진 국가주의나 갈등 양상까지 넘어서는 감흥을 전달하는, ‘아시아 아트 어워드’라는 이름에 걸맞은 작품들이었다.


매일 밤 수많은 사람을 홀리는 상하이 야경의 심장에 해당하는 동방명주 타워가 창밖으로 또렷하게 보이는 상하이 갤러리 오브 아트(Shanghai Gallery of Art)에서 개막하여 내년 1월 8일까지 진행될 전시 《Aftermath》또한 단순히 중국미술을 국제무대에 알리겠다거나, 국제적 작가들을 ‘소개’하겠다는 식의 관점을 넘어선 일종의 융합적 ‘공존’을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펄 램 갤러리(Pearl Lam Galleries)의 아시아 지역 대표를 지낸 조지프 NG(Josef NG)는 필자에게 “상하이는 이질적인 것들의 컨버전스가 있는 곳”이라며, “상하이의 전시공간들은 중국작가나 서양미술만 전시하는 것이 아니다. 아시아 전반을 다 포괄한다. 이런 포괄하려는 경향은 전시공간뿐 아니라 컬렉터, 갤러리, 미술관 등 도처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라고 말했다. 참여 작가 중, 한국계 미국인인 마이클 주(Michael Joo)도 “최근에 작업실을 상하이에 얻었다. 상하이는 역사적으로 식민지 시기도 있지만 지금은 컨템포러리다. 그 두 가지가 공존한다. 나는 상하이의 그런 점에 끌렸다. 나는 상하이를 잘 모르기 때문에 상하이 아트에 대해 말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굳이 얘기하자면, 상하이는 메가 시티이다. 동시에 매우 로컬하다. 이 두 지점이 공존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상하이 갤러리 오브 아트(Shanghai Gallery of Art (SGA))에서 진행 중인 마이클 주(Michael Joo)와 가오 웨이강(Gao Weigang)의 《Aftermath》(11.8~2020.1.8) 전시 광경 사진: 정필주

상하이 갤러리 오브 아트(Shanghai Gallery of Art (SGA))에서 진행 중인 마이클 주(Michael Joo)와 가오 웨이강(Gao Weigang)의 《Aftermath》(11.8~2020.1.8) 전시 광경. 사진ⓒ 정필주

다만, 총 5점의 작품이 중국 당국의 검열로 전시되지 못한 퐁피두 분관의 개막전 《The Shape of Time》처럼, 정치문제에 쉽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은 상하이 예술계의 미래를 외부에서 읽어내기 어렵게 한다. 영국의 『가디언』과 『더 아트 뉴스페이퍼』의 보도에 따르면, 퐁피두센터의 관장 세르주 라스비뉴(Serge Lasvignes)는 “거의 모든 작품이 통과되었으며, (중국에서) 이와 같이 오랜 기간 외국 미술관과 대규모 파트너십을 맺는 것이 처음”이라면서, “대화가 어려울 수도 있지만 상호신뢰관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통과된 작품들 또한 중국 검열당국으로부터 다양한 이유로 교체 요구를 받았으며 그에 대한 퐁피두 측의 소명을 바탕으로 협의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라스비뉴 관장은 보도자료를 통해, “중국 법률을 준수하기에, 전시 콘텐츠들은 문화 업무를 담당하는 중국 당국으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한다.”며, “중국 법률이 유럽의(문화관련) 법률과는 분명히 다르다”고 밝히기도 했다. 앞에서 언급된 보다 넓은 예술계의 구축이라는 내용 또한 중국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하이의 적극적 국제교류 노력과 아시아를 아우르는 포괄적 융합 노력은 한국 미술계에서의 그것을 규모/질적 측면에서 이미 넘어선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한국의 메가 아트시티인 서울은 과연 ‘로컬’한가? 아시아 각국을 알고자 하고, 국제무대에서 공존하려 하는가? 이런 질문들을 던지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 이 원고는 월간미술 2019년 12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월간미술과 콘텐츠 협약을 맺고 게재하는 글입니다.

정필주 / 예술사회학

정필주는 예술사회학을 기반으로 전시기획, 평론활동을 한다. ‘다이얼로그 프로젝트’(일년만미슬관), ’시각난장 234‘(장안평 중고자동차매매단지) 등을 기획했다. 도시재생과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서울시 문화예술 불공정상담센터 코디네이터로도 일하며, 1인 예술기획사 예문공 대표이다. 예술인복지/여성미술/문화예술 디지털화에 관한 다수의 논문과 기고글이 있다.https://artkoreablog.word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