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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서 21세기를 돌아보다 - 비평이 목도한 21세기

posted 2020.02.17


문혜진 미술비평


20세기를 관통해 21세기를 살고 있다. 세기말에는 새로운 세기를 반기면서도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기에 불안이 엄습하기도 했다. 이를 떨치고 21세기의 20년 세월이 흘렀다. 이쯤에서 우리가 스무 해 동안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자 한다. 비평이 목도한 21세기를 가늠하며 세기말에 작업을 시작한 작가의 여정을 들어본다. 또한 신세기를 맞은 큐레토리얼 변화를 살펴보며 21세기 미술의 역을 점령한 시장논리의 파워와 내용을 읽어본다. 혹자는 지금을 불확정시대로 정의한다. 그러나 여태 살아온 길을 돌아보면 당시에 앞이 보이지 않았던 이유가 더 궁금해질 정도다. 지금 우리가 걷는 족적이 곧 길을 만든다.


이 글을 위해 비평과 관련된 20여 년 전의 특집들을 다시 읽으며 맨 먼저 든 느낌은 기시감이었다. “누가 ‘뜨는’ 작가인지에만 온통 관심이 몰려 있고, 비록 틀릴지라도 누가 왜 중요한 작가이며 작업인가, 누가 과대평가 되고 있으며 과소평가 되고 있는가에 대하여 실명제로 얘기하지 않는다.” , “리뷰가 나오는 경로로 보아서는 리뷰가 후줄근해지지 않을 수 없다. … 작가에게 물으면 응당 호의적인 사람을 추천하게 되니 참 비평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모두가 맞는 말이고 진단이 이미 내려진 일이 왜 20년 동안 반복되고 있는가? 상황은 또 어떻게 변해왔고 지금은 그때와 무엇이 다른가?


아마 1990년대 비평에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은 큐레이터-필자의 등장과 담론적 주도권 상실일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홍익대 예술학과를 비롯한 주요 대학의 미술 관련 학과에서 미술이론 전공자들이 배출되었고, 비엔날레 시대 개막과 국제전의 증가, 사립미술관 및 화랑의 확대와 맞물려 큐레이터의 시대가 도래한다. 이들 큐레이터-필자들은 비평가가 전담하던 전시 서문 및 리뷰를 나누어 맡으며 과거 문학적이거나 미학적 혹은 이념적 성격이 강했던 비평을 훨씬 현장 중심적으로 바꿔 놓았다. 실질적으로 이 시기 비평은 전통적인 비평가와 미술사가 출신의 필자, 큐레이터 출신의 필자가 삼분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까지 꽤 자주 진지하게 논의되던 비평의 위기는 역설적으로 이 시기가 여전히 비평의 호황기였으며 비평에 기대하는 바가 많음을 드러낸다. 특히 100명의 필자에게 설문조사를 해 등단 연도와 경로, 서문 생산량, 보다 긴 논고의 발표 건수, 수입, 쓰고 싶은 책, 비평적 관심사, 다른 비평가 활동 평가, 향 관계 등을 상세히 기사화한 1997년의 『월간미술』 특집은 한국미술비평의 실체를 파악해 내일을 모색하고 싶은 의지를 드러낸다. 바꿔 말하면 이념의 부재, 중심 상실이라는 화두 속에서도 비평에 대한 존중과 기대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무대뽀』 1, 2권 표지사진. 온라인을 기반으로 각자의 비평적 관점을 공유하다. 사진제공 월간미술

『무대뽀』 1, 2권 표지사진. 온라인을 기반으로 각자의 비평적 관점을 공유하다. 사진제공 월간미술

그런 면에서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반짝 활기를 띠다 사그라진 온라인 게시판은 ‘미술에 대해 말하고 쓰기’가 유례없이 활성화되었던 시대 특정적 징후다. ‘포럼 A’, ‘무대뽀’, ‘미술인 회의’, ‘미술과 담론’ 등의 사이트에서 관객들은 그간 구두로만 지인들끼리 나누던 생각들을 서로 교환하며 과거 비평가와 작가, 비평가와 비평가끼리 행하던 논쟁에 직접 참여하기 시작했다. 특히 작가 중심 토론회로 출발한 ‘포럼 A’는 대표적인 담론 생산장으로 가장 첨예한 논쟁의 장이었다. 이런 점은 끼리끼리 의견을 주고받는 트위터나 덕담만 주고받는 페이스북 같은 지금의 SNS 문화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일차적으로는 계의 규모 자체가 비할 바 없이 작아 대부분의 미술인이 주요 전시를 공유할 수 있었고, 1980년대 이념 논쟁과 1990년대 PC통신 토론문화에 힘입어 논쟁이라는 방식이 익숙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000년대 첫 10년의 비평은 2002~2003년경에 데뷔한 반이정, 강수미, 임근준의 삼두체제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이들 이후 비평가의 데뷔 경로가 일간지의 신춘문예에서 잡지사로 방점이 옮겨졌다. 잡지사의 평론상을 수상하거나(반이정), 잡지사 기고를 통해 등단(강수미, 임근준)하는 것이 보다 일반적인 방식이 되었던 것이다. 2002년 창설된 『아트인컬처』의 ‘뉴비전 평론상’, 2008년 창설된 인천문화재단의 ‘플랫폼 문화비평상’ 등이 이 시기 대표적인 평론상으로 10여 년 지속되며 신진 비평가의 등단 통로가 되었다. 또한, 이들의 은 과거 세대보다 이론적 도가 탄탄하고 분석적이었으며 자신만의 시각을 갖추고 있었기에 과거 세대보다 과학적인 쓰기로 환받으며 관념적 비평을 어냈다. 2000년대는 1990년대에 이어 제도와 작가, 전시의 모든 면에서 급격한 팽창이 이루어지던 시기기에 텍스트 수요가 높았다. 대안공간 및 레지던시, 국공립 기금이 성장하면서 이들 신진 비평가들은 큐레이터--필자 (대표적으로 김장언, 김현진을 꼽을 수 있다)들과 함께 늘어난 텍스트 수요를 감당하며 빠르게 자리 잡게 된다. 이들은 서구 미술이론의 수혜를 충분히 입은 첫 세대로서 이론적 비평이 자리 잡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지만, 객관적인 논평보다 우호선린의 관계가 우선시되고 비합리적이며 열악한 비평의 생산 구조를 개선하지는 못했다.


2011년 창간한 『아티클』 표지사진. 한국미술 시장이 정점에 이르던 2007년 이후 비평이 쟁점을 찾지 못하고 침체의 위기를 맞았던 때 발간했다. 현재 폐간. 사진제공 월간미술

2011년 창간한 『아티클』 표지사진. 한국미술 시장이 정점에 이르던 2007년 이후 비평이 쟁점을 찾지 못하고 침체의 위기를 맞았던 때 발간했다. 현재 폐간. 사진제공 월간미술

2008년 미술시장 폭락 이후 2013~2015년경 신생공간 붐과 맞물려 새로운 필진이 등장할 때까지 비평은 쟁점 부재의 장기 침체 상태를 유지한다. 물론 평론상 등을 통해 새로운 인물들이 지속적으로 유입되어 활동했고(안소연, 구나연 등), 『컨템포러리아트저널』 (2010년 창간), 『아티클》 (2011년 창간) 등 비평지들이 이어지긴 했지만 조류를 바꿀 만큼 큰 움직임은 없었던 듯하다. 이후 크리틱-칼(2013~), 집단오찬(2013~), 두쪽, 미팅룸(2013~) 등의 웹진이 등장하면서 홍태림, 권시우 등의 신진 필자가 대두되었다. 그밖에 윤원화, 안진국, 윤율리, 유지원, 이양헌, 이한범 등이 2015년 이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 시기 비평에서 가장 큰 사건은 2015년 신설된‘SeMA하나 평론상’이다. 격년으로 시상하는 이 상은 큰 규모의 상금과 시립미술관이라는 권위를 업고 신설되자마자 가장 주목받는 신진 필자의 데뷔 루트로 부상했다. 이 상을 통해 곽영빈, 김정현, 남웅, 문정현, 이진실, 장지한이 등단 혹은 약진하게 된다.


2015년 제정된 ‘SeMA-하나 평론상’은 최초의 국공립미술관 평론상으로 미술계에 신진비평가가 데뷔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사진은 2019년 수상자인 장지한(왼쪽), 이진실. 사진제공 월간미술

2015년 제정된 ‘SeMA-하나 평론상’은 최초의 국공립미술관 평론상으로 미술계에 신진비평가가 데뷔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사진은 2019년 수상자인 장지한(왼쪽), 이진실. 사진제공 월간미술

2015년 신진 필자의 등장 이후 비평계가 바뀌었는가? 물론 새 피가 유입되었고 분위기는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비평의 일차적 플랫폼이라 할 수 있는 잡지의 생산 구조는 크게 변한 바가 없다. 고료나 청탁 방식, 광고 의존도 등은 기존과 대동소이하며 도리어 재정 압박에 따라 기획기사나 외부 필자가 축소되는 경향이 강화되었다. 원고 분량을 줄이고 화보 지면을 늘리거나, 외부 필자 대신 내부 기자가 을 쓰거나, 설문조사나 추천, 과거 자료 재발굴을 통해 콘텐츠를 아웃소싱하는 방식이 더 늘었다. 또한 시대를 읽거나 시류를 진단하는 야심 찬 대형 기획이 줄고 해당 시기 열리는 주요 행사나 전시를 평이하게 소개하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온라인 웹진 역시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고 있지만 전시 폭증으로 인해 넘쳐나는 온라인상의 정보량에 묻혀 응집력을 발휘하지는 못하는 상태다. 결과적으로 2019년 현재 비평의 실체는 제도의 양적 확장에 따라 가장 거대한 시장을 지니고 있는 ‘작가론’이 아닐까 싶다. 이슈 몰이의 피로감, 인간관계나 친분으로 얽힌 업계 상황, 규정이 불가능한 동시대 미술의 거대함과 다양성, 새로운 생각을 하고 공부할 여유를 주지 않는 한국미술계의 속도 등이 어우러져, 시대를 냉철히 진단하거나 공동의 지반에 대해 논의하지 못하고 시류에 편승해 보신에 바쁘거나 주어진 일이나 잘하자는 회피주의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최근 원고료 현실화와 담론 활성화를 위해 예술경지원센터가 론칭한 ‘시각예술비평가-매체 매칭 지원사업’도 결국 일회성 지원에 그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미팅룸’(사진 앞)과 ‘크리틱-칼’ 홈페이지 캡쳐사진. 온라인을 플랫폼으로 하여 웹진 형태로 발간된다. 사진제공 월간미술

미팅룸’(사진 앞)과 ‘크리틱-칼’ 홈페이지 캡쳐사진. 온라인을 플랫폼으로 하여 웹진 형태로 발간된다. 사진제공 월간미술

개인의 자성이나 담론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관성화된 제언 대신 제대로 된 작가론 쓰기마저 위협하는 최근의 실질적인 구조적 문제를 짚으며 을 마무리할까 한다. 첫째는 시장 논리가 창작, 전시, 유통의 모든 분야에 적용되면서 전시나, 작업의 생산보다 부대행사(작가와의 대화, 워크숍, 연계 콘퍼런스)에 에너지를 너무 많이 뺏긴다는 점이다. 소위 ‘참석의 경제(economy of presence)’라 일컬어지는 이런 현상은 전시나 의 내실을 기하기보다 이름이 알려진 자를 참석시키는 것이 홍보나 담론적 권위 면에서 쉽고도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생산자는 한정되고 행사는 많다 보니 갈수록 양적 풍요 속 질적 빈곤이 심화된다는 점이다. 참석하느라 바빠서 이제 아무도 내용의 질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둘째는 전시 오픈에 맞춰 도록을 내는 관행의 확대다. 소위 선도록이라 부르는 이 관행은 거의 전적으로 행정 편의에 따른 것이다. 필자에게 글을 미리 받아 보도자료 및 홍보에 활용하고, 전시 오픈 때 손님들에게 배포해 우편료 및 발송 노동을 줄이며, 기관장의 위신을 세우고, 판매할 경우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하지만 창작 주체 누구에게도 이런 방식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필자의 경우 설치된 실물을 보지 못하고 글을 써야 하는 위험을 짊어져야 하고, 큐레이터는 가장 바쁜 개막일 직전에 두 배의 노동에 시달려야 하며, 작가는 설치된 사진을 넣지 못하거나 도록을 천천히 감수할 시간을 빼앗긴다. 이런 상황은 필연적으로 결과물의 질을 저하시킨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이런 문제들은 결국 들어가는 노동에 비해 보여줄 거리가 많지 않은 이라는 매체가 오늘날의 뉴 스펙터클 사회에서 시장 논리에 밀려 더욱 갈 곳을 잃고 있음을 대변한다. “날로 바닥이 드러나는 얇은 지식을 비상한 순발력으로 메우면서 기존의 관행에 흡수/평준화되든가, 자기 회의에 시달리다 비평 현장에서 탈락, 도태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젊은 비평가의 현실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양질의 생산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 이 원고는 월간미술 2020년 1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월간미술과 콘텐츠 협약을 맺고 게재하는 글입니다.

문혜진

미술비평가, 번역가, 미술사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