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 동향

21세기에서 21세기를 돌아보다 – 시장의 시대를 맞은 21세기 미술

posted 2020.02.21


서진수 강남대 교수


20세기를 관통해 21세기를 살고 있다. 세기말에는 새로운 세기를 반기면서도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기에 불안이 엄습하기도 했다. 이를 떨치고 21세기의 20년 세월이 흘렀다. 이쯤에서 우리가 스무 해 동안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자 한다. 비평이 목도한 21세기를 가늠하며 세기말에 작업을 시작한 작가의 여정을 들어본다. 또한 신세기를 맞은 큐레토리얼 변화를 살펴보며 21세기 미술의 영역을 점령한 시장논리의 파워와 내용을 읽어본다. 혹자는 지금을 불확정시대로 정의한다. 그러나 여태 살아온 길을 돌아보면 당시에 앞이 보이지 않았던 이유가 더 궁금해질 정도다. 지금 우리가 걷는 족적이 곧 길을 만든다.


2019년 11월 23일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132억원에 낙찰된 김환기의 〈우주〉. 한국미술품 최고가를 경신했다. 사진제공 월간미술

2019년 11월 23일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132억원에 낙찰된 김환기의 〈우주〉. 한국미술품 최고가를 경신했다. 사진제공 월간미술

21세기 20년간 개인, 가족, 직장, 사회, 국가, 세계가 겪은 세월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다사다난’이 가장 적합할 것이다. 한국 미술계와 미술시장의 역사 역시 주도 집단과 선도 주자의 변화, 그리고 긍정적 부정적 스타들의 탄생으로 요약할 수 있다. 시기를 구분해보면 화랑 주도의 시대→ 경매 주도의 시대→ 아트페어 주도의 시대로 흘러갔다. 20세기와 2000년대 초를 주도한 화랑시장의 대표는 화랑의 ‘관장’, 골동품 상인 그리고 중간상인의 일본식 명칭인 ‘나카마’다. 그리고 2002년 국내 대표 국제 아트페어인 KIAF가 출범하고 2005년 말 이후 대형 경매회사가 과점체제에 돌입하면서 미술시장 자체가 다변화되고 확대됐으며 갤러리-화랑 대표, 경매회사 대표이사, 아트페어 대표이사 등의 비즈니스 용어가 도입된 점도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은 세계인이 한국을 주목하고 한국이 세계로 통하기 시작한 전환점이었다. 미술시장에서도 2001~2005년 대형 갤러리에서 백남준, 유영국, 이우환, 장욱진, 임옥상, 황재형, 사석원 등의 국내 작가와 루이스 부르주아, 안젤름 키퍼, 아니쉬 카푸어, 빌 비올라 등 해외 작가의 명품 전시가 줄을 지었다. 그즈음 인사동, 사간동, 평창동, 강남의 화랑가를 돌아보려면 하루가 모자랄 정도였다.


박수근 〈빨래터〉. 2007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당시 국내 최고가인 45억 2000만원에 낙찰되어 화제를 낳았지만 위작 시비에 엮이는 등 우여곡절도 겪었다. 사진제공 월간미술

박수근 〈빨래터〉. 2007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당시 국내 최고가인 45억 2000만원에 낙찰되어 화제를 낳았지만 위작 시비에 엮이는 등 우여곡절도 겪었다. 사진제공 월간미술

경매시장에서는 2002년과 2003년 뉴욕 소더비와 크리스티에서 박수근의 작품 3점이 국내 최고가던 5억5000만 원을 모두 넘으며 세인들의 입에 ‘박수근 그림값=강남 아파트 한 채 값’이라는 얘기가 돌고 부동산 시장의 투자자들이 미술품 경매장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2002년 부산에서 처음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가 다음 해 서울로 옮겨오면서부터는 코엑스가 새로운 미술시장인 아트페어의 메카로 인식되었다.


이때에 명화 기증, 공공미술 의무화와 건축법 강화, 해외 미술품 구입, 미술시장 전문잡지 『아트프라이스』 창간, 정부의 미술은행 제도 도입 등 미술시장 관련 뉴스도 양산되었다. 그러나 2005년 3월 이중섭 유족이 경매에 내놓은 작품에 진위 시비가 일고, 유족의 기자회견에도 사태는 박수근, 안견의 작품 진위 문제로까지 번지며 미술시장이 온통 위작 수사 뉴스로 도배되었고, 미술계에 안목감정과 함께 과학감정이란 단어가 회자되었다.


2006~2007년의 21세기 첫 미술시장 호황은 2004년부터 시작된 세계 미술시장의 호황 랠리와 국내 미술시장의 동반 상승에 따른 현상이었다. 박수근, 이중섭이 주도하고 도상봉, 장욱진, 오지호, 김종학, 김창열 등이 제2그룹을 형성하였으며, 생존작가인 오치균의 인기가 급상승한 가운데 이우환과 김환기가 신시장의 확고한 축을 형성함으로써 1차 호황이 발생하다. 아트펀드 설명회 개최, 서구 미술시장에서 사용하는 작가별 투자 판단기준인 ‘Buy, Hold, Sell’의 등장, 그리고 한때 2만 명의 회원을 둔 네이버 커뮤니티 ‘미술품 투자클럽(매니저=‘인상파’)’의 등장, 서울옥션의 서양화가 15명 가격지수 발표 등이 이어졌다.


2007년 미술시장 호황의 하이라이트는 3월 K옥션 경매에서 박수근의 〈시장의 사람들〉이 25억 원에 낙찰된 데 이어 5월에 서울옥션 경매에서 박수근의 〈빨래터〉가 45억2000만 원에 낙찰된 일이었다. 빨래터의 낙찰은 투자, 투기, 열기, 거품, 과열, 그리고 ‘이제 투자는 그림이다’는 메시지를 우리 사회에 전달했으며, 빨래터라는 단어를 일반화시켰다. 2006~2007년 한국 미술시장에서는 가능한 모든 일이 일어났다. 화랑 전시에서는 ‘솔드 아웃’이란 단어가 유행했고, 앞서가는 화랑들은 베이징과 상하이, 홍콩 등에 해외지점을 설립하여 화랑 사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비치기도 했다. 경매시장에서는 옥션쇼, 기획 경매가 등장하고, 아트페어 역시 화랑, 작가, 소그룹, 지역, 지자체 등 다양한 주체의 페어가 허용되었다.


그러나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세계 경제와 미술시장이 침체된 가운데 ‘신정아’ 파문, 삼성그룹 비자금 600억 원이 해외미술품 구입에 쓰다는 폭로와 연루된 비운의 작품 ‘행복한 눈물’이 구설에 올랐다. 신간잡지 『아트레이드』가 박수근 〈빨래터〉 위작 의혹을 제기했고 이 보도 이후 논쟁이 오래 이어졌다. 그리고 전두환 재산 압류 작품 경매, 이우환 작품 진위 공방, 조영남 대작 파문이 뒤를 이었고 천경자 타계와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선임 잡음 등 악재가 끊이지 않았다. 2015년 단색화 붐이 일기 시작해 2016~2017년 시장이 ‘단색화’얘기로 뒤덮일 때까지 미술시장은 오랫동안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렸던 《한국의 단색화전》 전시광경. 사진제공 월간미술 (오른쪽) 2017년 홍콩 크리스티에서 열린 박서보 작품 프리뷰 광경. 사진제공 월간미술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렸던 《한국의 단색화전》 전시광경. 사진제공 월간미술 (오른쪽) 2017년 홍콩 크리스티에서 열린 박서보 작품 프리뷰 광경. 사진제공 월간미술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이 《한국의 단색화전》을 통해 1970년대 추상화 작가들을 재조명하고 3~4년 후 경매시장과 화랑에서 박서보, 정상화, 윤형근, 하종현, 정창섭 등의 전시와 경매가 이어졌다. 미술관 전시와 미술시장이 연결되는 선례를 만든 또 하나의 성과다. 단색화 붐은 단색화 작가의 스승 세대이며 한국 추상화의 선구자인 김환기, 포스트 단색화와 퍼포먼스 아트에 대한 재평가와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거대한 부가가치를 더해주었다.


21세기에 들어 국내 미술계가 미술시장 붐을 조성하고 시장의 핵심인 거래와 투자, 수익, 신투자의 순환고리가 만들어진 2006~2007년 1차 호황기와 2015~2017년의 2차 호황기 때 10년 이상 앞서서 미술에 관심과 애정, 안목을 가지고 작품을 구입한 장기 투자자들이 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한편으로 높은 수익이 기대되는 대가와 원로, 인기 작가에만 관심이 쏠리고, 시장의 허리 구실을 하는 중견작가와 수익이 낮은 청년작가의 전시는 실종되고 있다. 또한 자본시장, 부동산시장, 기타 투자 시장 관계자와 미술시장의 발 빠른 사람들이 자본 동원력이 약하고, 변화도 없는 유통관계자를 제치고 온라인, 블록체인, 공유경제, 파티&멤버십 문화 등으로 미술시장을 재편시키고 있다. 지난 20년간 미술시장 관계자들은 시장의 다각화, 무한경쟁, 세계화라는 큰 변화를 경험하다. 이제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여 작가, 유통관계자 모두 또 다른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인식과 대비를 미리 해야 살아남는다.


※ 이 원고는 월간미술 2020년 1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월간미술과 콘텐츠 협약을 맺고 게재하는 글입니다.

서진수

강남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