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화랑가에서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거장들의 전시가 연이어 열리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갤러리현대는 개관 50주년을 맞아 《인물, 초상, 그리고 사람 – 한국 근현대인물화》전을 통해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독창성을 발휘한 인물화를 선보였다. 올해는 《현대 HYUNDAI 50》의 막을 열어 1부 전시가 성황리에 진행 중이다. 1부 전시는 총 40여명의 한국 대표작가의 작품 70여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국 구상미술의 전통과 품격을 볼 수 있는 동양화와 서양화가 어우러져있다.
미술사와 대중의 인기를 동시에 사로잡아온 전시
《현대 HYUNDAI 50 PART 1》은 본관과 신관, 총 2곳에서 열린다. 신관에는 한국의 인상주의 화가로 불리는 오지호의 〈수련〉(1957)과 〈항구〉(1972)와 한국 사실주의 아카데미즘의 거장인 도상봉의 정물화와 풍경화로 시작하여 근대기 대표 서양화 및 동양화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국민화가라고 불리는 박수근과 이중섭은 갤러리현대와 특별한 인연을 맺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중섭은 갤러리에서 총 3번의 개인전(1972년, 199년, 2015년)을 열었는데, 이 중 1999년의 전시는 9만여 명의 관람객이 전시장을 찾으며 당시까지 열렸던 국내 화랑 전시 중 최다 관객 수를 기록하였다. 박수근은 1970년 유작 소품전을 시작으로 갤러리현대와 인연을 맺었고, 1985년에 열렸던 《박수근의 20주기 회고전》에서 열화당과 협업하여 출판한 화집은 이후 박수근 연구에 귀한 자료로 남아 있다. 또한 한국 채색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천경자의 작업 또한 눈여겨 볼만하다.
본관에서는 세계무대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대거 출품되어 있다. 1층에는 비디오아트의 선구자 백남준의 대형 조각인 〈마르코 폴로〉(1993)가 관객을 맞이한다. 백남준은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독일 국가관에 참여했을 당시, 위의 작업으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1988년 개인전 《’88 서울 올림픽기념 백남준 판화전》을 시작으로, 갤러리현대에서 백남준의 주요 국내 개인전이 개최되어왔다. 백남준과 오랫동안 협업해온 한국의 화랑답게, 본관 1층은 백남준의 작품으로만 구성되어 갤러리와 작가 사이의 돈독한 관계를 살필 수 있다.
한눈에 살펴보는 추상미술의 계보
2019년 탄생 100주년을 맞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을 개최한 곽인식, 한국의 자연을 절제된 추상으로 표현해낸 유영국 등 한국 추상회화를 개척한 거장들의 작품과 더불어 단색화의 세계화를 선두한 박서보와 이우환, 파이프 작가로 불리는 이승조 등 세계 미술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한국의 모노크롬 회화 작가들의 작업 또한 이번 전시의 관람 포인트이다.
한편, 2019년 11월 홍콩의 크리스티 경매에서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를 기록한 김환기의 〈우주 05-IV-71 #200〉는 경매 낙찰 이후 이번 전시를 통해 최초로 한국에서 선보인다. 2012년 갤러리현대에서 열렸던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김환기》전에도 출품되었던 작품은 김환기의 작품 중 유일한 두 폭으로 이루어졌으며 경지에 이른 김환기 추상회화의 정수로 손꼽힌다. 〈우주 05-IV-71 #200〉 평면 속 점들은 원의 형태로 확장되며, 우주의 공간을 만들어 무한한 공감각을 자아내며 많은 관람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출판 및 온라인 플랫폼 오픈을 통한 프로모션 강화
이번 전시에는 작품과 더불어 갤러리현대에서는 한국 미술사 연구를 위한 아카이브로 그동안 출간해온 출판물 및 이중섭 회고전의 방명록, 한국 미술계의 토양을 다진 주요한 인물들의 사진 등의 자료를 공개했다. 김재석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갤러리가 50년 동안 축적해온 다양한 도록과 함께 1973년 창간한 미술 전문지 『화랑』을 디지털화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한 갤러리현대의 박명자 회장과 도형태 대표이사를 비롯하여 미술사학자(목소현, 김한나), 큐레이터(안소연, 이영철, 김승덕&프랑크 코트로, 정도련, 현시원), 저널리스트(김복기, 이준희), 미술평론가(오광수), 작가(김종학, 이강소)등이 참여한 50주년 기념 출판 프로젝트도 6월에 발간 예정이다.
미술계 활성화를 위해 국내 대표화랑이 야심 차게 준비한 전시는 성공적으로 문을 열었고, 사회적 거리 두기에도 불구하고 해당 전시를 관람하기 위한 줄이 이어지는 등 연이은 화제를 몰고 있다. 이번 전시는 갤러리현대가 50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국 작가 발굴 및 지원에 힘써온 역사를 강조하는 동시에 미술시장 구축에 한 획을 그은 국내 대표 화랑이라는 점을 재차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다.
전시 참여 작가들은 미술시장뿐만 아니라 해외 미술관, 비엔날레 및 학계에서도 주목을 받아왔다. 이처럼 전시-시장-연구의 유기적이고 상호 보완적인 발전이 이들의 성공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시장에서도 인정받은 거장들의 이번 전시를 통해 2020년 한국미술에 대한 관심이 국내를 넘어 세계 무대에서도 지속되길 기대해본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한국미술 글로벌 플랫폼 더아트로를 담당하며 플랫폼 관리와 기사 에디팅을 담당하고 있다. 큐레이터학과 예술학을 전공하고 경기도미술관 및 아트스페이스 풀 등에서 전시 업무에 참여했다. 「‘공동체’와 ‘역사적 참조’를 중심으로 살펴본 양혜규 연구」 , 「현대미술이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에 관하여」 등의 논문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