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 동향

국가와 공공 유산으로서의 소장품 : 프랑스

posted 2020.06.08


정지윤 퍼블릭아트 프랑스 통신원


미술관의 존립 목적이 대중에게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작품을 수집 및 보존, 발굴하는 데 있다면 소장품은 기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척도와 같다. 그리고 소장품을 바탕으로 하는 다양한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은 각 미술관의 성격을 대변한다. 우리는 가장 기본으로 돌아가 미술관의 아이덴티티, 소장품에 관한 기획을 마련했다. 먼저 대표적 문화강국으로 꼽히는 프랑스와 미국에서의 미술관 소장품 의미와 역할을 살펴본다. 귀족과 국가의 수집품을 바탕으로 하는 ‘고전의 대명사’ 프랑스, 시민들의 소장품과 민간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현대미술의 심장’ 미국에서 소장품을 어떻게 인식하고 운영하는지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이어 한국 국공립미술관의 소장품 현황을 짚어본다. 이 특집은 비단 미술 강국들과 견주어 현실을 자각하는 데 그치고자 함이 아니다. 개성이 확연히 다른 두 나라의 시스템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제도가 어떤 것인지 고민하고 그 고민의 끝에 얻어지는 단단함으로 국내 국공립미술관이 더욱 앞으로 나가기를 바라는 기대, 자체이다.


Panorama nef © Musée d’Orsay / Sophie Crépy. 사진제공 퍼블릭아트

Panorama nef © Musée d’Orsay / Sophie Crépy. 사진제공 퍼블릭아트

국립 박물관의 탄생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손꼽히며, 명실 공히 프랑스를 대표하는 루브르 박물관(Musée du Louvre)은 2018년 기준으로 누적 관람객 수 총 1,020만 명을 돌파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 미술관’이라는 신기록을 달성했다. 1793년, ‘중앙미술관’으로 처음 문을 연 루브르 박물관이 두 세기가 넘도록 건재한 이유는 수천 년의 세월을 간직한 고대 유물부터 미술사를 장식한 거장들의 회화와 조각, 현대 작가들이 설치한 공공작품에 이르기까지 62만여 점에 달하는 방대한 컬렉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789년 발발한 프랑스 시민혁명의 여파로 설립된 루브르 박물관은 8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루브르 왕궁(Palais-Royal)의 갤러리를 개조 및 확대한 것으로, 왕족과 귀족, 성직자들의 수집품을 포함해 나폴레옹 집권 시절, 군사 정복으로 획득한 전리품들을 국가의 재산으로 귀속시켜 컬렉션의 기반을 마련했다. 화려했던 왕궁과 특권층이 독점적으로 향유했던 예술품들이 ‘국가와 국민의 소유물’로 전환된 것이다. 그러나 그 절차는 순탄치 않았다. 국립 박물관은 역사상 존재한 적 없는 완전히 새로운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왕궁이 국립 박물관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가장 큰 난제는 국가 유산으로 거둬들인 예술품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였다. 이것들은 인류의 역사가 담긴 소중한 문화유산이지만, 동시에 구체제의 잔재이기도 했다. 순식간에 이 사안은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판단하는 차원을 넘어 혁명의 명분을 묻는 정치적 쟁점으로 번졌고, 치열한 논쟁 끝에 결국 예술품들을 국민이 누려야 할 교육적 자산으로 인정하여 보존하기로 결정한다.


뒤이어 1791년, 예술품을 정부 차원에서 관리·감독하는 최초의 기관으로 창설된 국립조형예술센터(CNAP)는 훼손된 궁과 문화재를 복원하고, 특정 소수의 취향에 맞춰진 수집품들을 재정비하여 학문적 체계를 갖춘 박물관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현재, 고대 그리스·로마, 이집트, 동아시아 유물과 각 시대별 회화, 조각, 공예품 등 여덟 개의 범주로 나누어진 루브르 박물관의 컬렉션 역시 사전 지식을 갖추지 않은 당시 대중들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예술은 더 이상 진귀하고 신비로운 것이 아니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만인의 것이 되었다. 이처럼, 절대왕정에서 민주주의로 향해가는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탄생한 루브르 박물관은 봉건제도에 기반한 구체제의 모순에 반발한 시민들이 혁명으로 일구어낸 성과이자, 프랑스 박물관학의 기원이며 발자취라 할 수 있다. 오늘날까지 프랑스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문화예술계 전반을 관장하는 특유의 정책적 전통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박물관’을 건립한 역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좌 헬레네 세르프벡(Helene Schjerfbeck) 〈회복기 환자(The Convalescent)〉 1888 Finnish National Gallery Ateneum Art Museum Photo: Finnish National Gallery Yehia Eweis 우 Portrait de Lisa Gherardini (1479-1528) épouse de Francesco del Giocondo, dite Monna Lisa, la Gioconda ou la Joconde Léonard de Vinci Datation: vers 1503-1506 © 2007 Musée du Louvre / Angèle Dequier. 사진제공 퍼블릭아트

헬레네 세르프벡(Helene Schjerfbeck) 〈회복기 환자(The Convalescent)〉 1888 Finnish National Gallery Ateneum Art Museum Photo: Finnish National Gallery Yehia Eweis Portrait de Lisa Gherardini (1479-1528) épouse de Francesco del Giocondo, dite Monna Lisa, la Gioconda ou la Joconde Léonard de Vinci Datation: vers 1503-1506 © 2007 Musée du Louvre / Angèle Dequier. 사진제공 퍼블릭아트

지역분권화와 현대예술장려를 통한 컬렉션 확대


루브르 박물관의 건립으로 본격화된 프랑스의 ‘문화예술 민주화’ 정책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1959년 신설된 문화부를 주축으로 좀 더 체계화된다. 초대장관으로 임명된 앙드레 말로(André Malraux)는 “인류의 예술적 자산이 최대한 많은 프랑스인들에게 개방되고, 문화적 유산을 보호하며, 예술의 창작을 장려하는 것이 국가와 문화부의 소임”이라 밝히며, 보급, 복원, 창작이라는 세 개의 문화예술정책안을 제시했다. 그가 먼저 단행한 조치는 지역문화예술위원회(CRAC)의 개설을 통한 ‘문화예술사업의 지역분권화’이다. 1969년부터 다섯 개의 지역에 선별적으로 시행된 이후, 1977년 문화예술지방국(DRAC)으로 명칭을 변경하며 전국으로 확대된 이 정책은 각 지방에 문화부 산하기관을 두어 지역문화예술사업의 자율성과 형평성을 보장하는 한편, 지역 간의 문화예술 교류를 원활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 결과, 프랑스 전역에는 박물관, 미술관, 극장, 콘서트홀과 같은 다양한 문화예술기관들이 들어섰고, 전국에 뿔뿔이 흩어져 있던 예술품들을 파악하여 기록한 국가문화재 목록이 완성된다. 또한 DRAC은 복원을 담당하는 문화재복원재단(FRAR)과 예술품 구매 및 수장고를 관리하는 소장품관리재단(FRAM)으로 부서를 세분화하여 전문적인 인프라를 구축했다. 이같이 혁명과 전쟁이라는 국가적 재난을 연달아 겪은 이후에도 프랑스에서 미술관과 소장품의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문화부와 각 지방의 DRAC를 연계해 문화예술사업을 ‘정부 지원’이라는 명목 아래 정책화한 덕분이다.


왼쪽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 〈더러운 구석(Dirty Corner)〉 in Chateau de Versailles, Versailles, France 이미지 제공: FLD/Shutterstock.com 오른쪽 Sebastiano Filippi, gen Bastianino 〈Lebendes Kreuz von Ferrara〉 1570 Diplom-Restauratorin Maria Zielke, während der Retusche © Staatliche Museen zu Berlin, Gemäldegalerie / Maria Zielke 사진제공 퍼블릭아트

왼쪽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 〈더러운 구석(Dirty Corner)〉 in Chateau de Versailles, Versailles, France 이미지 제공: FLD/Shutterstock.com 오른쪽 Sebastiano Filippi, gen Bastianino 〈Lebendes Kreuz von Ferrara〉 1570 Diplom-Restauratorin Maria Zielke, während der Retusche © Staatliche Museen zu Berlin, Gemäldegalerie / Maria Zielke 사진제공 퍼블릭아트

1982년 이래, DRAC는 매년 복원 사업, 소장품 구매, 전시 및 예술창작지원을 위한 재정산정과 기금 혜택을 받기 위해 심의위원회를 개최하며, 여기에는 문화부 소속 대표단과 지역에서 선발한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이 참여해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심의회의 주요 평가항목인 연간 예술품 현황보고를 통해 지역 문화재의 관리실태와 DRAC의 자체 감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앙드레 말로가 지휘한 1960-1970년대가 문화예술 인프라의 구축을 통해 소장품을 확대하는 시기였다면, 1980년대 이후 프랑스 정부에서 주력하는 부문은 현대예술의 장려정책이다. 그 중심에는 ‘예술의 다양화’를 위해 자크 랑(Jack Lang) 전 문화부 장관이 출범시킨 현대미술지방재단(FRAC)이 있다. 그는 TV, 컴퓨터와 같은 새로운 매체의 등장과 상업성에 치중된 예술의 생산·소비구조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 현상들에 대응해 기존의 예술 범주에 속하지 않았던 새로운 장르, 예술시장 밖에 있는 비주류 예술을 포옹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동시대성’에 방점을 둔 FRAC을 각 지방에 설치한다. 현재 활동 중인 예술가들을 지원하여, 현대예술의 추세를 즉각적으로 읽고 폭넓게 반영하겠다는 취지다. 총 23개의 지역에서 운영되고 있는 FRAC은 회화, 조각, 설치 외에도 레코드, 비디오, 영화, 디지털 매체 작품을 적극 수용하고 있으며, 주류 예술계에서 밀려난 실험적 요소가 강한 작품들을 대중화하는데 힘쓰고 있다. 특히 FRAC은 잘 알려지지 않은 신인 작가들에게 창작기금을 대폭 지원하는 대신 작품을 공동 소유하거나 혹은 매매 금액을 절감하는 형태로 소장품을 확충하고 있다. 각 FRAC의 소장품 구입 평균예산이 연간 약 15만 3,000유로로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인데 비해, 30여 년간 현대작가 5,700명의 작품, 3만 2,600점을 보유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FRAC 총연합대표 베르나르 드 몽페랑(Bernard de Montferrand)이 “소장품의 55-60%가 프랑스에 거점을 두고 활동하는 신인 작가들의 작품이며, 이는 우리가 투기적 매수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다. 우리는 공동창작이 가능한 예술생태계를 조성했다”라 밝혔듯, FRAC은 정부와 지자체가 직접 뛰어들어 세계예술시장의 불균형 속에서 자국 내 예술가들의 창작환경을 보호하고, 컬렉션을 안정적으로 확충한 성공모델로 꼽힌다.


국가의 개입과 현대예술 장려를 필두로 한 프랑스의 소장품 구매전략은 1951년부터 시행된 ‘공공주문법’과 공공건축물을 세울 때 총 비용의 1%를 미술품에 할애하는 ‘1% artistique’ 법이 계승된 결과로도 해석된다. 루브르 박물관의 앙리 2세 방 천장에 푸른 하늘을 펼쳐놓은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의 〈새들(Les Oiseaux)〉, 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이 화려한 색채로 물들인 오페라 가르니에(Opéra Garnier)의 천장화, 앙드레 마송(André Masson)이 태양의 신, 아폴론을 모티브 삼아 재탄생시킨 오데옹 국립극장(Odéon-Théâtre)의 천장화, 다니엘 뷔랑(Daniel Buren)이 루브르 왕궁의 안뜰에 흑백 줄무늬 기둥 260개를 세워 조성한 〈두 개의 고원(Les Deux Plateaux)〉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동시대 예술가를 대상으로 한 공공주문과 ‘1% artistique’ 법령이 없었다면, 이 기념비적인 작품들은 결코 프랑스에서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좌 Marc Chagall’s frescoes, painted on the ceiling of the Opéra Garnier, Paris, France 이미지 제공: globetrekimages/Flickr.com 우 〈사모트라케의 니케(Victoire de Samothrace)〉 © 2014 Musée du Louvre / Philippe Fuzeau. 사진제공 퍼블릭아트

Marc Chagall’s frescoes, painted on the ceiling of the Opéra Garnier, Paris, France 이미지 제공: globetrekimages/Flickr.com 〈사모트라케의 니케(Victoire de Samothrace)〉 © 2014 Musée du Louvre / Philippe Fuzeau. 사진제공 퍼블릭아트

Musée de France


지역분권화와 현대예술장려를 통해 소장품 관리를 직접 관장하는 것 외에도 프랑스 정부는 개인과 사립문화예술기관에 조세지원책도 펼치고 있다. 민간 혹은 기업에서 설립한 미술재단, 박물관이 문화재 복원, 예술품의 증여, 메세나 활동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대규모 조세감면혜택을 부여하는 것이 골자이다. 예컨대 사립미술관에서 대중에게 공개할 목적으로 작품을 구입하는 경우 5년 간 작품 구매가의 20% 공제, 문화재 복원과 예술품 증여, 메세나의 경우 66%의 세금감면을 받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정부는 문화예술 재정을 충당하고, 개인과 기업의 메세나 활동을 독려하는 것인데, 2019년에는 같은 해 4월에 화재로 불탄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Paris)의 복원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세제율 75%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기도 했다. 프랑스가 예술을 앞세운 조세회피처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유독 예술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오랜 국가적 전통과 국민정서가 맞물려 세제혜택은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여기에는 사립기관의 소장품들 역시 공공의 유산이라는 사회의 인식도 깔려있다.


2002년 제정된 ‘프랑스의 박물관(Musée de France)’ 법령이 그 배경이라 할 수 있는데, 정부가 관리하는 국공립 미술관, 유적지와 사립문화예술기관을 총 망라하여 프랑스 박물관들의 연합체를 창설한 것이다. 프랑스의 박물관으로 등록되기 위해서는 검증된 컬렉션을 보유하고, 소장품 확대, 복원 활동을 통해 공공재화를 창출해야 한다. 평가가 까다로운 편이나, 일단 승인되면 정부와 지방의 DRAC과 연계하여 재정 지원, 전문가 자문, 예술품 대여 등의 다양한 혜택들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사립기관의 비율은 2020년 3월 말 기준, 1,219개의 박물관이 등록된 가운데 13%에 머무는 수준으로 아직 미비한 편이다. 소장품 대조확인과 신고의 의무가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게다가 이 소장품 목록은 대중에게 완전히 개방된 상태다. 문화부 공식사이트에서 운영하는 뮤제오필(Museofile)과 조콩드(Joconde), 두 개의 데이터베이스는 무려 1억 점이 넘는 소장품 정보를 가지고 있다. 도서관과 박물관을 직접 가지 않아도, 누구나 어디서든 실시간 작품의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예술품을 공공의 지적재산으로 간주, 그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디지털 아키이브를 통해 대중 접근성을 넓힌다는 점에서 ‘21세기형 박물관’의 청사진으로 평가받고 있다. 분명 개인과 사립기관의 입장에서 불편한 부분은 있으나, 예술을 공공의 가치로 보존해온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프랑스의 박물관 규모는 점점 더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구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 〈대패질하는 사람들(Raboteurs de parquet)〉 1875 Huile sur toile 102×146cm Paris, Musée d'Orsay © RMN - Grand Palais (Musée d’Orsay) / Hervé Lewandowsk. 사진제공 퍼블릭아트

구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 〈대패질하는 사람들(Raboteurs de parquet)〉 1875 Huile sur toile 102×146cm Paris, Musée d'Orsay © RMN - Grand Palais (Musée d’Orsay) / Hervé Lewandowsk. 사진제공 퍼블릭아트

프랑스는 무엇이 다른가. 두 세기 전 성난 국민들이 쳐들어간 루브르 왕궁 앞에 말 많고 탈 많았던 이오 밍 페이(I. M. Pei)의 유리 피라미드가 세워진지도 30년이 지났고, 금빛으로 치장된 베르사이유 궁(Château de Versailles)에는 2008년 제프 쿤스(Jeff Koons)를 시작으로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 히로시 스기모토(Hiroshi Sugimoto)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대거 입성했다. 긴 세월 속에 빛을 잃어버린 벽화와 천장화들이 후대의 예술가들의 붓질로 되살아나듯, 과거의 유산 위로 현재가 겹겹이 포개어지고 있다. 돌이켜보면, 지금 프랑스에서 명작이라 불리는 작품들, 이제는 너무 익숙해진 공공예술의 대부분이 과거에는 큰 사회적 질타를 받은 것들이다. 훼손된 옛 그림을 덮은 현대회화들은 낙서에 비유되기도 했고, 뷔랑의 기둥은 큰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현재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예술품 한 점을 둘러싸고, 여전히 온 나라가 들썩인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고, 세계적인 거장들의 족적들이 프랑스에 즐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이 열띤 논쟁에 있을 것이다. 대중의 관심이 전제될 때, 국가와 공공의 유산으로서, 더 나아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통로로서 예술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예술은 곧 미래의 세대들이 전승할 과거의 유산이다. 우리도 그들처럼 무엇을 남길지 치열하게 고민할 때다.


Installation view of 〈Les Deux Plateaux〉 Palais Royal, Paris, France 이미지 제공: jmbf/Shutterstock.com 사진제공 퍼블릭아트

Installation view of 〈Les Deux Plateaux〉 Palais Royal, Paris, France 이미지 제공: jmbf/Shutterstock.com 사진제공 퍼블릭아트

글쓴이 정지윤은 프랑스 파리 8대학 조형예술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현대미술과 뉴미디어학과에서 「기계시대의 해체미학」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동 대학원 이미지예술과 현대미술 연구소에서 뉴미디어아트를 중심으로 예술과 기술의 상호관계 분석에 관한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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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원고는 퍼블릭아트 2020년 5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퍼블릭아트와 콘텐츠 협약을 맺고 게재하는 글입니다.

정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