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미혜 기자
미술관의 존립 목적이 대중에게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작품을 수집 및 보존, 발굴하는 데 있다면 소장품은 기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척도와 같다. 그리고 소장품을 바탕으로 하는 다양한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은 각 미술관의 성격을 대변한다. 우리는 가장 기본으로 돌아가 미술관의 아이덴티티, 소장품에 관한 기획을 마련했다. 먼저 대표적 문화강국으로 꼽히는 프랑스와 미국에서의 미술관 소장품 의미와 역할을 살펴본다. 귀족과 국가의 수집품을 바탕으로 하는 ‘고전의 대명사’ 프랑스, 시민들의 소장품과 민간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현대미술의 심장’ 미국에서 소장품을 어떻게 인식하고 운영하는지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이어 한국 국공립미술관의 소장품 현황을 짚어본다. 이 특집은 비단 미술 강국들과 견주어 현실을 자각하는 데 그치고자 함이 아니다. 개성이 확연히 다른 두 나라의 시스템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제도가 어떤 것인지 고민하고 그 고민의 끝에 얻어지는 단단함으로 국내 국공립미술관이 더욱 앞으로 나가기를 바라는 기대, 자체이다.
주로 귀족이나 왕실 소유의 컬렉션으로 출발한 유럽의 박물관들과 달리 미국은 시민들이 소장품을 기증하거나 그들의 기부금으로 작품을 구매해 설립된 곳이 대부분이다. 즉, 정부에 의해서가 아닌 개인의 기증과 기부를 통해 컬렉션을 형성하고 기관을 운영하고 있는 것. 이는 미국 사회의 오래된 뿌리와 같은 기부문화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개인과 기업의 이익은 사회적 도움과 배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자각과 이에 대한 개인의 책무, 사회공동체적 의식이 기부라는 행동의 동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지난해 6월 ‘Giving USA’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미국인들이 비영리단체 등에 기부한 금액은 4,277억 달러(한화 약 500조 원)에 달한다. 이는 올해 우리나라 예산(512.3조 원)과 비슷한 수준으로 미국 사회 전반에 기부문화가 얼마나 잘 형성되어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미국 기부문화의 발판을 마련한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 철강회사를 설립해 거대한 부를 일궈낸 그는 막대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것 외에도 미국 내 기부문화 정착을 비롯해 교육, 문화발전에 큰 공헌을 한 것으로 더욱 위대한 평가를 받는다. 카네기는 자신의 저서 『부의 복음(Gospel of wealth)』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유하게 죽는 자, 그는 불명예스럽게 죽는 것이다(The man who dies rich, dies disgraced).”
미국 박물관 연합회 AAM
이렇듯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기부문화가 잘 형성되어 있는 미국에는 프랑스의 ‘문화통신부(Ministère de la culture)’, 영국의 ‘디지털 문화 미디어 스포츠부(Department for Digital, Culture, Media and Sport)’와 같은 정부 부처 대신 비영리기관 ‘미국 박물관 연합회(American Alliance of Museums, 이하 AAM)’가 있다. 1906년에 설립된 AAM은 미술관(Art Museum)뿐 아니라 수족관, 식물원, 인류학박물관, 자연과학박물관, 아동박물관 등 다양한 형태의 기관을 아우른다. 이들은 박물관의 표준 기준과 우수 사례 개발 등에 힘을 쏟고, 관련 지식을 기관에 공유하며, 박물관에 대한 여러 가지 이슈와 우려 사항들에 대해 옹호하고 지지하는 역할을 한다. 기관과 문화예술 전문가, 그리고 박물관에 근무하는 비정규직 직원까지 포함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문화예술 조직인 것이다.
AAM은 지난 1981년부터 미국 연방 정부 독립 기관 ‘박물관 도서관 지원기구(Institute of Museum and Library Services)’와 함께 ‘박물관 평가 프로그램(Museum Assessment Program, 이하 MAP)’을 운영하고 있다. MAP는 기관이 스스로 장단점을 평가 및 파악하고 미래 계획을 설정하는 것을 돕기 위해 고안되었으며, 지금까지 미국 전체 박물관 중 약 5,000여 곳 이상이 참여했다. 평가방식은 크게 ‘기관의 전반적 운영(Organizational)’, ‘소장품 관리(Collections Stewardship)’, ‘교육과 설명(Education and Interpretation)’, ‘공동체와 지역사회 협력(Community and Audience Engagement)’, ‘리더십(Board Leadership)’ 5가지로 분류되고 다음과 같이 시행된다. 기관 직원과 관리 당국이 자체 평가를 완료하고 나면 전문인력 1명 이상이 현장을 방문해 박물관을 둘러보고 직원, 정부 관계자, 자원봉사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심사를 맡은 전문인력은 박물관 및 MAP 직원들과 협력해 박물관의 운영을 평가하고 보고하는 문서를 작성한다. 권장 사항을 포함한 자체 평가, 현장 방문, 기관 활동 및 컨설팅 동료 검토 등의 과정을 거치면 박물관은 기관 운영 강화와 미래 계획 수립, 표준 기준 충족 등을 위한 전문가의 다양한 지원과 자료를 받을 수 있다.
대부분 비영리 공공법인 형태인 미국 내 박물관들은 소장품 취득의 80%와 운영에 해당하는 비용 등을 기부에 의존하고 있어 대외적 이미지와 영향력, 후원 등의 이유로 MAP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미국 사회를 반영하듯 문화예술 전반에도 자율성, 주체성을 토대로 한 방침이 시행되고 있으며, 이는 자칫 어려울 수 있는 소장품 정보 파악과 관리를 가능하게 만든다.
대중과 공유하는 소장품 관리 기준
미국 박물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소장품 관리 기준과 정책에 관한 내용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기본적인 정보를 나타내는 ‘About’란의 ‘문서와 정책(Documents and Policies)’ 혹은 ‘정책과 문서(Policies and Documents)’를 클릭하면 ‘소장품 관리 정책(Collection Management Policy)’에 대한 내용이 약 10페이지 정도로 명시되어 있다. 세부사항은 각 기관의 성격, 구조, 예산 및 기타 고유 상황에 따라 다르겠으나 공통적으로는 AAM이 ‘박물관 핵심 표준(Core Standards for Museums)’에서 제시하는 기준을 따르고 있다. “소장품은 알맞은 물리적 보관 방법에 따라 관리되어야 하고 법적, 사회적, 윤리적 의무를 수반하는 지적 통제가 제공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는 MAP의 ‘소장품 관리’ 영역에서 중요한 평가 지표로 활용된다.
일례로 미국의 대표적 현대미술관MoMA(The Museum of Modern Art)의 소장품 관리 정책을 살펴보면, “현대미술의 흐름과 생명력, 복잡성을 반영하는 높은 수준의 소장품을 설립 및 보존, 문서화함으로써 대중에게 헌신을 표명한다”는 미션 아래 ‘위원회’, ‘구입’, ‘매각’, ‘출처(취득 방법)’, ‘대여’, ‘보증’, ‘보관’, ‘기록’ 등의 영역으로 문서는 분류된다. 소장품 연구와 관리는 기관의 큐레이터가 담당하고 있으며, 이들은 미션, 정책, 절차, 문서를 기반으로 정기적으로 소장품을 검토하고 장단점을 분석해 지속 가능성, 기관과의 관련성 등을 평가한다.
소장품 구입은 구매와 기증, 유증 혹은 교환의 형태로 이루어지며, 구입하고자 하는 모든 작품은 큐레이터의 추천과 관장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기증의 경우, 수석 큐레이터가 관장과 협의하여 어떤 작품을 수락하도록 추천하고 거절해야 하는지 결정할 수 있다. 기증자는 기증하기 전, 미술관의 ‘소장품 관리 정책’ 사본을 보유해야 하고, 뉴욕시의 ‘Abandoned Property’ 법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작품 구매의 경우, 담당 큐레이터가 해당 작품을 구입해야 하는 타당한 이유, 작품의 역사적 중요성, 이미 소장되어있는 동일 또는 관련 예술가의 다른 작품과의 관계, 그리고 미술관의 소장 및 미션에 대한 특별한 기여도 등 설득력 있는 이유를 동료 및 이사진에게 제시해야 한다. 가능할 경우 위원 회의에서 작품이 전시되어야 하며 구입을 위해 위원회 구성원 과반수의 넘는 동의가 필요하다. 소장품 매각 과정은 더욱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이루어진다. 매각한 작품으로부터 취득한 자금은 다른 작품을 구입하는 데 한해 사용되어야 한다. 또한 현존 작가의 작품은(가능한 작가의 동의를 얻고) 동일 작가의 더 좋은 작품을 소장하기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 매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항목은 다음이다. “이사회의 구성원, 미술관 직원 또는 작품을 구입하는 데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이는 누구든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작품 매각에 관여할 수 없으며 절대 미술관 소장품의 판매나 거래를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없다.”
메트로폴리탄이 쏘아 올린 작은 공
미국 박물관들이 이토록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소장품 관리 기준과 법규를 마련하고 이를 대중과 함께 공유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중심에는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ropolitan Museum)의 막스 베크만(Max Beckmann) 작품 매각 사건이 있다. 표현주의, 입체주의, 신즉물주의 등 다양한 양식을 넘나들며 독일 미술계를 이끈 작가 베크만. 그는 히틀러가 통치하던 나치 시대에 ‘퇴폐 미술가’로 낙인찍히면서 작품을 몰수당했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거쳐 제2차 세계대전 종식 후 미국으로 망명해 뉴욕에서 생을 마감했다. 1950년 베크만은 전시를 위해 메트로폴리탄으로 향하던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그 후 21년이 지난 1971년 공교롭게도 베크만으로 인해 메트로폴리탄에는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베크만의 작품 〈담배가 있는 자화상(Self-Portrait with Cigarette)〉은 1971년까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소장품이었다. 소장품 구입과 매각에 대한 공식적인 지침이나 규제가 마련되어있지 않았던 당시, 메트로폴리탄 관장 토마스 호빙(Thomas Hoving)과 20세기 미술부 수장 헨리 겔트잘러(Henry Geldzahler)는 1967년 하트포드(Hartford) 선박회사 상속녀 아델레이드 밀턴 드 그로트(Adelaide Milton de Groot)가 사망 후 메트로폴리탄에 기증한 작품 중 상당 부분을 매각하는 과정 중에 있었다. 여기에는 〈담배가 있는 자화상〉을 비롯해 베크만의 작품 3점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는 데이비드 스미스(David Smith)의 작품 〈베카(Becca)〉 (1965)를 구입하기 위해 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는 메트로폴리탄 소장품 인수 위원회를 주재하던 프랑스 출신 금융가 안드레 메이어(André Mayer)의 엄중한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메이어는 소장품 판매에 대한 큐레이터의 가치 평가 방법에 의문을 제기하며 작품 가치에 대한 상세한 견적과 외부 평가를 요청했다. 이에 겔트잘러는 베크만의 한 작품 당 약 2만 5,000달러가 넘지 않는다는 수치와 자료를 메이어에게 제시했다.
이후 베크만의 세 작품은 입찰식 경매, 소위 ‘침묵의 경매(silent auction)’를 통해 비엔나 태생의 아트 딜러 세르주 사바스키(Serge Sabarsky)에게 9만 5,000달러에 판매됐다. 겔트잘러가 메이어에게 수치로 제시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가 나타났고 여기에서 논란이 시작됐다. 호빙은(공식적으로는, 어쨌든)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했지만 드 그로트의 소장품 매각을 둘러싼 논쟁은 결국 공청회로 향하게 되었고 수많은 신문의 주요 사설에서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게 된다. 그 결과 1973년 6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개관 이래 처음으로 소장품 매각에 대한 지침을 마련해 4페이지 분량의 소책자를 출판했다. 이사회는 책자에서 “미술관 직원 혹은 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이는 누구든지 미술관의 소장품 구입과 매각에 관여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규정했다.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의 영향으로 1981년 출범한 레이건(Ronald Reagan) 정부는 소장품 매각과 관련된, 비영리기관 예술 공공자금지원 및 국립예술 인문기금위원회 공공기금 등의 예산을 극단적으로 삭감하는 조치를 시행했다. 정부의 지원금이 부족해지자 기관들은 변화된 상황에 적응할 방법 모색에 나섰고, 여기에 1980년대 후반 미술시장 호황이 더해지면서 각 기관은 소장품 매각에 대한 구체적인 규율과 규칙을 마련해야만 했다.
1984년부터 AAM 역시 박물관을 승인하고 평가하는 데 체계적으로 문서화된 소장품 관리 정책을 기관에 요구하기 시작했고, 1991년에는 박물관 디렉터 협회(Association of Art Museum Directors)와 함께 메트로폴리탄 소책자의 내용을 기반으로 한 소장품 관리 정책을 제정했다. 이로써 미국의 박물관들은 기본적으로, 그리고 자율적이지만 의무적으로 다음과 같은 가치를 함께 공유하게 된다. “판매, 무역, 또는 연구 활동을 위한 소장품 처리는 전적으로 기관의 미션을 증진시키기 위함이어야 한다. 소장품 매각을 통한 자금은 박물관 규율의 확립된 기준에 따라 사용하되, 어떤 경우에도 소장품 취득이나 보존관리 이외의 용도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지금, 소장품
경제적으로는 부흥했으나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문화적 전통이 없었던 미국. 이들은 유럽과는 다른 형식으로, 민간 부문 시스템을 활성화하고 재원을 확보해 자신들만의 문화를 만들어나갔다. 그리고 이는 박물관마다 존재하는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된 이사회가 기관의 후원과 기부를 높이는 전략적 계획을 세우고 촘촘히 짜인 그물망 시스템을 구축했기에 가능했다. 박물관이 운영과 교육에 집중해 대중에게 봉사할 수 있도록 보호하고 지지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어쩌면 불투명한 영역으로 남아있을 수 있었던 소장품도 ‘베크만 사건’ 당시 이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며 체계적이고 문서화된 지침이 마련될 수 있었고 그 기준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개인의 취향과 개성, 자율을 존중하는 사회와 뿌리 깊은 기부문화, 변화의 바람을 일으킨 일련의 사건들, 각 기관의 파수꾼과 같은 이사회 등의 요소들이 합쳐지며 미국을 대표적 현대미술 성지로 발돋움하게 만들었다. 기업이나 시민의 후원, 기부로 설립되었다는 점에서 우리와 출발선이 다르지만, 미국 박물관이 서로 같은 기준을 공유하고 이를 대중에게 공개해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인 것에서 소장품이 어떤 의미와 역할로써 자리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든다. 우리의 소장품은 지금 어떤 기준과 정책으로 관리되고 활용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때다.
정지윤, 「국가와 공공 유산으로서의 소장품 : 프랑스」, 퍼블릭아트 2020년 5월호##### 관련 기사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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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블릭아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