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애론 시저, 피터 바이벨, 야콥 파브리시우스, 데프네 아야스 & 나타샤 진발라
Hans Ulrich Obrist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포스트 코로나(post COVID-19)’의 개념은 아직 유동적이라고 생각한다. 언제 종식될지 아무도 모르지 않는가? 큐레이터로서 이번 위기가 닥치기 훨씬 전부터 인류가 직면한 생태학적 위기를 돌아보았다. 전시공간으로서, 예술가와 아이디어를 위한 공간으로서, 아카이브이자 촉매제로써 미술관의 역할을 되짚어왔고, 새로운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취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에 관해 몇 가지 프로젝트를 예로 들어 설명하려 한다.
팬데믹 상황에서 서펜타인 갤러리(Serpentine Galleries)를 임시 휴관하는 등의 대처는 당연했고 디지털 전시는 필수적인 것이었다. 이번 위기로 특히 영향을 많이 받은 동아시아 작가들의 전시 〈카오 페이: 청사진(Cao Fei: Blueprints)〉과 〈포마판타스마: 캄비오(Formafantasma: Cambio)〉를 디지털 파트너나우니스(Nowness), 이플럭스(e-flux)와 서로 다른 형태로 온라인에서 개최했다. 그리고 향후 3달간 필름, 비디오, 애니메이션 작품 등을 통해 새로운 플랫폼 형식으로 유기적 변화를 선보일 예정이다.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기존의 전시공간을 넘어서려는 기획을 시도해왔다. 디지털 커미션부터 장기적 전시기획으로 환경에 대한 고찰, 지역사회에 들어가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작가들을 지원하고 마라톤(Marathon) 및 라이브 프로그램을 기획해 다양한 플랫폼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슬로우 프로그래밍(Slow Programming)’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전시를 탈피한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프로젝트다. 서펜타인 갤러리 50주년 특별 기획 〈백 투 어스(Back to Earth)〉는 세계적인 작가, 음악가, 건축가, 시인, 영화 제작자, 과학자, 사상가, 디자이너 등에 기후 위기에 대한 행동을 촉진하는 작품과 프로젝트를 선보이기를 제안한다. 수자원과 독극물 오염, 수산업, 농업 등 우리 세계가 직면한 자연의 자원 소진을 주제로 다루고, 나아가 토착민의 토지권과 법인, 치유의 개념을 한 단계 깊이 탐구하며 기존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시도를 한다. 〈백 투 어스〉의 일환인 〈크리에이트 아트 포 어스(Create Art for Earth) 〉에는 주디 시카고(Judy Chicago), 스운(Swoon), 제인 폰다(Jane Fonda)가 참여한다. 환경문제의 원인에 가시적인 반기를 들 수 있는 작품을 공개 모집하는 형태로, 지구를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플랫폼이다. 우리는 또한 처음으로 〈파빌리온(Pavilion)〉 프로그램 2년 이상에 걸쳐 연장한다. 연장된 기간 동안 커미션한 카운터스페이스(Counterspace)의 훌륭한 건축가들과의 더욱 긴밀한 왕래가 있기를, 런던의 지역사회는 물론 국경을 넘어서 국제무대로 확장하길 기대한다.
〈두 잇(do it)〉은 1993년 크리스티앙 볼탕스키(Christian Boltanski), 베르트랑 라비에(Bertrand Lavier)와 함께 시작해 지금까지 진행하고 있는 전시 프로젝트다. 작가를 초대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안내 사항이나 지침, 음악, 조리법 등을 부탁하고 일반적으로 예술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 배치한다. 몇 주 전,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두 잇〉을 재방문하는 관람객이 증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대에 따라 변하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 생각한다. 초기에 작가들이 건넸던 지침은 어떠한 행동주의나 실용적인 요소가 두드러졌다. 예로, 에일린 마일스(Eileen Myles)는 대통령 출마 가이드를 선보인 바 있다. 이번에는 우리가 함께 처한 상황에서 서로를 도울 방법에 대한 지침을 만들어달라고 작가들에게 부탁했고 새로운 장을 넘기게 되었다. 프로젝트 파트너들이 세계 곳곳에 있다. 뉴욕의 ICI와 호주의 칼도르(Kaldor) 프로젝트가 있고, 구글 아트 앤 컬처(Google Arts & Culture)도 참여해 〈두 잇〉의 과거 아카이브 자료와 신규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세계 어디서나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의 구정아 등 국경을 넘어 활동하는 훌륭한 작가들을 만나볼 수 있는 아카이브다. 앞서 언급했지만, 오프라인 활동도 중요한 시기다. 〈두 잇〉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오픈 소스 미술 프로젝트인 만큼 이를 반영해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만들고 즐길 수 있다.
디지털 인터페이스에서 잠시 벗어나 세상을 바라보고 경험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공원이나 녹지에 갈 수 있다면 가는 것이 좋다. 하지만 자연 세계와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일례로 제이콥 스틴슨(Jakob Kudsk Steensen)과 함께한 증강현실 건축물 프로젝트 ‘더 딥 리스너(The Deep Listener)’는 서펜타인 갤러리가 위치한 런던의 아름다운 켄싱턴 가든(Kensington Gardens)의 방문객이 공원에 서식하는 생물체를 만나고 경험할 수 있다. 기존에 볼 수 없었던 방식으로 자연 세계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작품으로 아름다움과 낙관적인 태도가 돋보인다. K-POP그룹 방탄소년단과 함께한 〈카타르시스(Catharsis)〉는 실제 야생의 숲속 풍경을 스캔해 재구성한 작품으로 게임 플랫폼 트위치에서 시공간의 제약 없이 관람 가능하며 서페타인 갤러리 외부 정원에 설치된 거대한 스크린을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다.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포털과도 같은 이 전시는 물리적 경험이자 온라인 전시이며, 현실도 2차원도 아닌 어딘가의 장소다.
우리는 변혁의 시대를 살고 있다. 지금까지 경험한 적 없는 ‘뉴노멀’에 적응해야 할 뿐만 아니라 매일의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고, 삶을 공유하는 중요한 것들을 포기하고 있다. 하지만 포기하고 미루는 것들 중 하나가 예술이 되어서는 안 되고 그렇기에 접근성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상황이 나아지면 미술관 문을 열고 프로그램을 재개하게 되겠지만, 평소에 미술계로부터 소외된 지역사회를 찾아가는 것이 핵심이다. 위기와 재기의 시기에 미술‘관’은 장소의 물리적, 개념적 공간을 벗어나 대중에게 다가갈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해야 한다. ‘관’의 매체가 때로는 ‘관용(Generosity)’이어야 할 때가 있다. 우리 모두의 공감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더 귀중한 시기다.
Aaron Cezar
애론 시저
큐레이터는 대중에게 작품이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생각하는 일에 항상 성실해야 한다고 믿는다. 코로나19 타격으로 모든 미술관이 온라인에 작품과 전시를 선보이는 일을 급선무로 해야 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작품이 관람객과 더 가깝게 만나고 친밀한 상호작용을 하는 긍정적 효과를 낳기도 했다. 아티스트 필름이나 대개의 새로운 미디어 작품은 온라인에 적합한 형태다. 종종 대형 페어나 비엔날레에서 시간에 쫓기듯 미디어를 감상하고 지나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은 (이제 집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작품을 경험하는 시간을 스스로 조절하고 관리할 수 있다.
델피나 재단 역시 다양한 판로를 모색하고 있다. 우리는 송은 문화재단을 비롯해 많은 기관과 국제적인 관계를 맺고 있고 레지던시, 파트너십, 공공 프로그래밍 등을 통해 예술적 교류를 촉진하고 창조적 실천을 개발하는 데에 전념한다. 한동안 국가 간의 이동 제한이 계속될 수 있는 점을 감안해 가상의 레지던시를 포함한 다른 비상 계획을 논의하고 있으며, 다양한 실무자들과도 협력하고 있다. 우리의 주된 목표는 전 세계 공통 관심사를 공유한 실무자들이 서로 연결되는 이상적인 틀을 제공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오는 가을 〈과학_기술_사회(science_technology_society)〉를 주제로 한 웹 세미나를 재개최할 예정이다. 오늘날의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주제가 될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레지던시 결과도 온라인으로 공유했다. 5주 동안 매주 우리는 《오픈 스튜디오 시리즈:미래 의식들(OPEN STUDIOS SERIES: FUTURE RITUALS)》를 통해 작가들이 창작한 작품을 선보였다. 가상 레지던시는 물리적으로 체류하는 경험을 대체할 수 있고 미래의 레지던시에 대한 흥미로운 보완 요소가 될 수 있다.
또한 델피나는 런던에서 2주마다 ‘패밀리 런치(Family Lunch)’를 주최한다. 레지던시 내의 작가들, 스태프들, 갤러리스트 등 예술계 관계자들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친밀한 자리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행사 개최가 불가능했고 우리는 온라인으로 형식을 조정했다. ‘패밀리 런치: 홈 딜리버리(Family Lunch: Home Delivery)’는 내가 직접 작성한 서문 글과 우리의 동료 요리사 혹은 예술가 중 한 명의 레시피, 그리고 전직 거주자의 짧은 온라인 프레젠테이션을 포함한다. 직접적이고 살아있는 경험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제 패밀리 런치의 일부 요소를 런던의 30명 정도가 아닌 전 세계와 함께 공유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분명 존재한다. 모든 작품이 모니터 안에서 완벽하게 재현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가령 비디오가 특정 조건(화면 크기나 음향, 조명 수준과 같은)을 전제로 제작되는 경우 온라인에서 보여지는 영상은 실제로 구현됐을 때의 느낌을 자아내지 못할 수 있다. 이는 온라인 전시의 가장 큰 한계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큐레이터로서 나의 관심 분야이자 가장 큰 도전은 ‘퍼포먼스 예술’에 관한 것이다. 향후 1-2년 동안 무대에 오르기가 특히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라이브(Live)’ 경험이 어렵게 된다. 지금은 임시방편을 검토 중이지만, 일하는 방식 전체를 재구상하는 것을 고려중이다.
전 세계 예술 기관이 자신들이 지지하는 바를 언급하고, 강조하며 사회 속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강화해나가야 한다. 우리는 지역적으로, 그리고 세계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고립감이 아닌 연대감을 느끼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글로벌 담론 내에서 예술과 사회에 대한 더 넓은 이해와 공통의 주제를 바탕으로 한 탐구의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졌다.
Peter Weibel
피터 바이벨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폐쇄사회는 우리의 시스템이 얼마나 취약한지 깨닫게 해준다. 대규모 물질적 이동은 끝나가고 있고, 세계화 분위기는 소모되고 있으며, 온라인 사회가 현실화되고 있다. 집에만 머무르는 것, 즉 ‘분리된다’는 것은 사회로부터 떨어져 가장자리에 놓여지고, 외부에 머무르며, 차단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집에 머물며 공공생활과 사회에서 소외되는 것은 얼마나 역설적인 현상인가. 마치 사후의 세계처럼 통행금지령 아래 우리는 폐쇄사회에 갇혀 있다.
그러나 미디어 이론을 근본적으로 생각해보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할 수 있다. 윌리엄 S. 버로스(William S. Burroughs)부터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까지 미디어 이론가들은 수년 전 바이러스에 빗대어 매스미디어의 파급력을 탐구했다. 버로스는 심지어 “언어는 우주공간에서 온 바이러스(Language is a virus from outer space)”라고 했는데, 최초의 통신 매개인 언어가 바이러스와 같다는 것이다. 또한 보드리야르는 바이럴리티(virality, 이미지 혹은 비디오가 빠르게 유포되는 상황)에 대한 수많은 에세이에서 바이러스성 매스미디어에 대한 경고와 전염성이 있는 정보의 확산에 대한 영향력을 강조했다. 바이러스가 번개처럼 확산되는 동안 감염되거나 사망한 사람들에 대한 정보도 그만큼 빠르게 퍼져나갔다. 만약 코로나19처럼 모든 독감성 질병에 대해 우리가 이와 같은 방식으로 보도한다면, 바이러스 자체만큼이나 위험한 공황상태가 일어날 것이다. (매년 전 세계적 5억 명의 사람들이 독감으로 고통받고 있고 이중 29-65만 명이 독감으로 인해 사망한다.)
바이러스의 가르침 중 하나는 이제 우리 모두가 디지털시대로 진입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만지지 마세요! 거리를 두세요! 가까이 가지 마세요!”라는 끊임없는 외침은 접촉사회의 종말을 의미하며 사회의 모든 형태가 바이러스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뜻한다. “더 가까이 오지 마세요!”는 원격사회(tele-society)로 향하는 입구를 상징한다. 1980년대 개인용 컴퓨터 개발과 1990년대 인터넷 발전으로 우리는 가상의 온라인 세계에서 삶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상품 주문부터 건강 검진까지 모든 온라인 서비스는 이미 신체 접촉을 피해 제공되고 있다. 더이상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갈 필요가 없으며 집에서 영화를 스트리밍할 수 있다. 책을 사러 서점에 가지 않아도 집으로 책을 배달받는다. 작품을 보러 미술관에 가지 않아도 컴퓨터 화면을 통해 관람할 수 있다. 전자상거래(e-commerce)와 인터넷 뱅킹, 모든 것이 가상의 세계 속 비대면으로 이루어진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우리는 세계화 현상의 분위기가 어떻게 소멸되고 있는지 경험하고 있다. 여전히 모든 것이 정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고요함과 정적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200년 동안 많은 양의 소음이나 환경오염 물질을 생산해 온 우리의 행동에 작별을 고하게 한다. 실제 물리적 공간에 국한된 사람들은 비지역적이고 흩어지고 분산되어 있지만, 가상 테크놀로지 공간 안의 개인들은 오히려 공동체를 이루고 흡인력을 발휘한다. 과도한 물질적 이동성은 무형의 가상의 이동성으로 전환된다. 이제 문화는 온라인의 낙원이 될 것이다. 바이러스는 문화를 가상세계로 옮겨가도록 만들었다.
팬데믹의 추가적인 상황은 확실히 예측하기 어렵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이 가장 나쁜 것인지, 앞으로 더 나빠질지, 덜 나빠질지 알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위기 이후의 시간을 잘 보내야만 한다. 경제, 사회, 문화 시스템의 근본적인 개혁을 위한 과제가 주어졌고 이전에는 불가능해 보였던 것들을 이제는 불가피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우리의 세계는 달라질 것이다.
Jacob Fabricius
야콥 파브리시우스
코로나19로 격리를 하면서도 ‘부산비엔날레’를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회의나 소통 방법이 많이 바뀌어 전시팀장과 매일 스카이프로 회의를 하고, 전시를 준비하기 위해 페이스타임(Facetime), 줌(Zoom), 왓츠앱(WhatsApp) 등 다양한 채팅방을 전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작가들이나 조직위원회와 대화할 때도 대면 접촉 없이 소통하는 방법을 활용 중이다. 코로나로 닥친 이러한 변화들은 전시 형태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한다. 그 생각 중 하나로 지금 시대의 미술이 하나로 모이는 2차원의 스크린은 이상적이지 않고, 다른 전시 형태의 보충제로만 활용되어야 한다고 여긴다. 또한 대면 없는 개인 간의 우편이나 열린 야외에서의 전시는 빌보드 전광판이나 광고와 함께 상상되는 측면도 있다. 다양한 포맷과 디스플레이의 가능성에 대하여 생각하며 일하는 것은 언제나 영감을 준다.
각 기관이 코로나 이후의 삶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는 방법들을 사고하지만, 아트 디렉터로 일하고 있는 쿤스트할 오르후스(Kunsthal Aarhus)에서는 코로나19 전부터 몇 년째 ‘벽 없는 미술관(A Museum without Walls)’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미 기관 외부의 공공장소에서 프로젝트와 전시를 많이 해왔고, 계속해서 그런 방향으로 프로젝트를 발전시켜 나갈 생각이다. 사실 이는 내가 큐레이팅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추구해왔던 방향성과 맞닿아 있다. 나의 첫 전시는 덴마크 섬 미델그룬스포르텟(Middelgrundsfortet)에서 열렸던 《레스터 출신의 남자, 스웨덴 소녀, 가족 아버지와 게이 커플이 덴마크와 스웨덴 사이의 무인도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What is a guy from Leicester, a Swedish girl, a family father and a gay couple doing on a deserted island between Denmark and Sweden?)》인데, 이는 관람객들이 화이트큐브 바깥의 각각 다른 장소에서 어떻게 미술을 보고 경험하는지에 도전해왔던 결과물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다른 공공장소들을 발견할 것이고 그런 것들이 기관의 가능성을 확장시켜 줄 것이라고 전망한다. 또한 최근 유틀란드 미술 대학(Jutland Art Academy) 학생들의 졸업전시(MFA degree show)도 개최했는데, 학생들 역시 작업을 보여줄 새로운 방법과 형식을 찾고 싶어 한다. 벽 바깥의 공원이나 창문을 활용하는가 하면 미술관 홈페이지를 활용하고, 선물을 만들고, 지역 신문에 특집호를 내는 등의 방식을 통해서 말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더욱더 글로벌하게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해야 할 것이다. 많이 읽고 적게 여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비대면의 관계는 코로나19로 확장되었지만, 그 대신 우리는 정보를 얻는 새로운 방식을 발견하고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지역적인 리서치와 방문을 원하는 외국 아티스트들은 그들이 필요한 것을 얻는 대안적인 수단을 발견해내기도 한다. 그들은 비대면으로 지시를 보내고 ‘고용된’ 지역 조사단과 봉사자들로부터 필요한 자료를 얻곤 한다. 최종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긍정적인 길을 발견해내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올해 ‘부산비엔날레’ 전시 제목인 《열 장의 이야기와 다섯 편의 시》에 큰 자부심을 가진다. 이 전시는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시 콘셉트는 처음에 저마다 다른 예술가들의 배경을 녹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사람들은 집에서 비엔날레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경험할 것이다. 기차 안에서나 혹은 물리적으로 다양한 전시 장소 중 하나에서 말이다. 올해에는 국제적인 관람객이나 여행자가 많지는 않겠지만, 주된 목표는 지역 방문객들이라고 생각한다. 비엔날레 감독으로서 한국 관람객들에게 미술, 문학, 음악과 문화적인 비타민을 주입하길 희망한다.
Defne Ayas & Natasha Ginwala
데프네 아야스 & 나타샤 진발라
현재 우리는 한국, 독일, 스리랑카, 홍콩, 인도네시아,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흩어져 있는 전시팀과 함께 2021년에 열릴 ‘광주비엔날레’를 준비하고 있다. 팬데믹에 대한 한국 상황이 긍정적으로 흘러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 운송이나 국제적인 교류에 있어서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사실이다. 지금은 오히려 이 시기의 예술적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즉, 취약성, 외로움, 서술적 구축, 상상적 도약들이 현재 삶을 구속과 슬픔 속에서 어떻게 재편하고 있는지를 관찰하는 것 말이다.
팬데믹의 폭발적 확산을 통해 온라인 콘텐츠가 급증했지만, 이는 동시에 가족과의 대화, 홈 오피스에서 일과 가사노동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가상 전시는 AI 미디어 피드로는 대체할 수 없는 감각, 사회적 분석, 신체적 미학을 이끌어낸다. 이에 우리는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의 큐레토리얼 전제를 확장하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 활동을 연결하고자 한다. 우리는 비대면 전시의 가능성을 확장하기 위해 영어와 한국어, 두 가지 언어로 제공되는 온라인 저널 <떠오르는 마음>을 5월부터 공개했다. 이 저널은 이번 비엔날레의 모든 리서치 과정과 결과를 아우르면서 학제 간 콘텐츠와 아이디어들을 다룬다. ‘확장된 마음’으로 기능하면서 격월간으로 출판되는 이 저널은 비엔날레의 지적·예술적 토대를 마련하고 에세이, 시, 비디오, 실시간 라이브 프로그래밍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보여줄 예정이다. 사실 우리는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전부터 이런 방식을 일종의 확장 전략으로 기획해왔다. 첫 번째 특집은 광주 여성들의 역사부터 토착 고고학, 컴퓨터 기술, 인터넷 알고리즘적 젠더 폭력을 주제로 다룬다.
공간과 방문의 개념이 바뀐 시점에서 이전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큐레이터이자 감독, 자문으로 일하는 건 언제나 제한적인 조건 속에서 더 다원화되고 상상력이 풍부한 대처를 요구해왔다. 세계에서 가장 큰 비엔날레 중 하나인 ‘광주비엔날레’에서도 불가피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따라서 이때 감독의 경험은 팀 구성, 편집 지식, 지역 커뮤니티에 대한 깊은 관심 등 예술적인 통찰 이상의 것을 포함해야 한다. 베를린의 그로피우스 바우(Gropius Bau)에서 맡은 역할 외에도, 현재 스리랑카의 비영리 예술 축제인 콜롬보스코프(Colomboscope)를 이끌고 있다. 스리랑카의 사회정치적 혼란과 전후의 사회는 동시대 문화 담론을 풍부한 자원으로 활용해 작업해야 한다는 중요한 교훈을 준다.
또한 지난 2015년 ‘모스크바 비엔날레(Moscow Biennale)’에서 큐레이터들과 함께 오늘날의 전시를 비싸게 만드는 모든 것, 이를테면 비행수단, 보험, 과도한 생산 같은 것을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2012년 ‘발트 트리엔날레(Baltic Triennale)’에서는 갤러리나 화이트 큐브 대신 최소화된 하나의 개인, 즉 예술가들에게 기부하는 방식을 선택하기도 했다. 이런 시도들이 나에게는 미술 범주를 확장시키는 일이고, 전시의 개념이 바뀐 요즘에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장거리 근무 중 매일 진행되는 운영 회의와 한국의 제도적 관료주의에 적응하는 것이 과제로 남아있다. 또한 현재 시점에는 광주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예술가들이 제주에서 진행하기로 예정되어 있는 신작들의 현장 조사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큐레이터로서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비엔날레가 불안정하고 문제가 많다는 것을 이해하고 인정하지만, 여전히 새로운 정신을 가진 포괄적인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다. 애도, 죽음, 출생, 갱신의 과정과 함께 이런 것들을 해나가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미술은 또 다른 키워드를 가진다. 이와 함께 우리의 전시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은 지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지식의 위계는 권력과 맞물려 공동체적인 생각을 강요해왔다. 토착 문화와 샤먼적인 실행들, 모계적 사회의 모델로부터 배울 필요가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우리는 시민 사회 모델이 어떤 종류로 코로나 이후 사태에 부상할지 고민하고 우려하고 있기도 하다.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수의 생명을 잃으면서, 고립과 집단적인 움직임, 인간과 전 지구적인 비대칭성 속에서 공공 문화를 유지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 위원회는 내면과 외면, 법률과 불법, 남성과 여성의 이중적 갈등을 넘어 확장적인 생각을 가진 예술가들과 함께 일하며 나아가고 있다.
비엔날레는 세계 공동체가 동시대 문화에 함께 참여하도록 제안하는 공간이다. 우리는 상파울루, 리버풀, 베를린, 코치 등의 비엔날레 동료들과 이런 난국을 통해 무엇이 실행 가능하고 타당한지에 대한 대화를 해 왔다. 21세기와 발맞춘 시스템, 제도, 프로토콜을 재설계하기 위해 이 글로벌 경험을 이용할 수 있을까 스스로 질문하면서, 동시에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또한 우리는 5·18민주화운동이 세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오늘날 연대운동이 던지는 질문을 이해하기 위한 프리즘으로 보고 있다.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은 이를 통해 코로나19에 의해 방해받은 전 세계의 사회 정의 운동을 기리고자 한다. 그들의 정신은 여전히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