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의 하반기로 접어든 현재, 올 한 해는 많은 계획들이 연기되기도 하고 취소되기도 하며 예측할 수 없는 해로 우리에게 자리매김했다.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비엔날레라는 행사는 오랜 기간동안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호흡을 맞추며 준비해야 하는 대규모 행사이지만, 팬데믹으로 인하여 국가 간 이동이 한동한, 혹은 기약할 수 없는 오랜 기간동안 자유롭지 않게 된 지금 이 시대에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고민거리를 던져 주었다. 일일이 언급할 수 없는 여러 어려움들을 극복하며 준비해온 2020 부산비엔날레가 개막을 앞두고 있다.
이번 부산 비엔날레는 덴마크 출신의 전시 감독인 야콥 파브리시우스(Jacob Fabricius)의 기획으로 '열 장의 이야기와 다섯 편의 시'라는 서사적인 제목으로 오픈한다. 비엔날레라는 행사가 시각 예술을 기반으로 하며 타 장르와 자유롭게 협업해오는 종합 예술의 장이지만, 특히 이번 부산비엔날레는 시각 예술과 문학, 음악이 어느 때보다 서로 조화롭게 상호작용하며 전시의 축을 이루고 있다.
더아트로는 2020 부산비엔날레의 프리뷰로, 전시 감독인 야콥 파브리시우스와 2020 부산비엔날레 큐레토리얼 어드바이저인 김성우, 전시팀장 이설희의 대담을 준비했다. 김성우의 진행으로 야콥 파브리시우스 감독의 흥미로운 전시 방법론, 그가 생각하는 부산의 지역성과 지금 시대의 비엔날레의 동시대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리적으로 부산에 올 수 없는 독자들이 이번 프리뷰를 통해 부산 비엔날레에 대하여 한 층 더 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대담 진행 및 정리 김성우(2020 부산비엔날레 큐레토리얼 어드바이저)
대담 참여자 야콥 파브리시우스(2020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 이설희(2020 부산비엔날레 전시팀장)
김성우 : 오늘 대담의 큰 흐름은 이번 부산비엔날레와 함께 야콥 파브리시우스 감독의 큐레이토리얼을 살펴보는 것에서 시작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것과 연결 지을 수 있는 감독의 과거 주요 큐레이팅 경험을 나누고, 더 나아가 코로나로 인한 오늘날 큐레이팅의 한계, 혹은 대안에 관한 얘기를 하고자 한다. 또한, 마지막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 우리가 마주하는 오늘날의 주요한, 또는 주요할 이슈를 큐레이터의 입장에서 묻고자 한다.
첫 번째 얘기는 이번 부산비엔날레의 구조에서부터 시작했으면 한다. 일반적으로 비엔날레는 하나의 단단한 키워드와 같은 주제를 만들고 그것에 수렴하는 방향으로 내용을 구축하는데, 이번 비엔날레는 11명의 저자에게 글을 부탁하여 도시와 부산, 삶에 접근하는 다양한 경로를 만들고, 그것을 다시 참여작가들의 작업과 매칭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방식들은 미디어에서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부산에 관한 이야기와는 다르다. 어쩌면 이제는 조금은 익숙한 역사 다시 쓰기의 방식과도 닮아 있으며, 공식적이고 고정된 역사적 관점과는 다른 차원에서 미시사를 동원해 삶의 다양한 층위를 끌어내는 방식과도 같다. 미디어를 통해 묘사된 고정된 관념보다는 여러 편의 문학이 갖는 다양한 장르와 시점을 바탕으로 다양한 서사를 생성하는 접근법이 새로운 관점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접근법, 그리고 본인의 큐레이토리얼 방법론(methodology)을 바탕으로 이번 부산비엔날레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야콥 : 말씀해주신 게 맞다. 거기에 더해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기존의 전시와는 정반대의 접근방식을 적용해 봤다. 이번에는 문필가들을 먼저 초청함으로 전체적인 전시의 구조와 방식이 바뀌었다. 통상적으로 문필가들은 전시가 만들어지고 난 후 마지막 단계에서 도록에 글을 쓰기 위해 초청되는데, 이 순서를 바꿔서 문필가들이 작가들의 작품 제작을 위한 기초, 토대를 잡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만약 전시를 인체에 비유할 수 있다면 문필가들이 뼈대 역할을 해주고, 작가들과 뮤지션들이 장기, 조직, 근육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필가 자체의 선정도 다양한 장르의 문필가를 초청했다. 그리고 어떤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 쓸 것인지 짐작했다. 문필가 선정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부산의 다양한 시각들을 대변할 수 있는 이들로 선정하고자 했다.
최초에 컨셉을 구상할 땐, 기존에 있었던 텍스트를 가지고 작업을 하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무엇을 시작점이나 토대로 삼고 이후 무엇을 추가하며 나아갈지 파악하는데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저자들에게 부산에 와보고 신작을 쓰도록 의뢰하였다. 그렇게 이야기와 네러티브를 새롭게 구상하고 그것을 소설로 옮기길 의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떤 면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며, 굉장히 와일드한 상상 속에서만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게 작년에 전시 감독으로 선임이 된 후, 부산에 처음 와서 지금까지 일 년 남짓한 기간 동안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와 관점을 생성하고, 거기에서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문학에 관해서도 열심히 조사하고 있었다. 전시에는 한국어를 알고, 부산이란 도시를 알며, 주변 동네를 알고, 한반도의 역사를 아는 한국 문필가들이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이들이 대부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교보문고도 가봤는데 그곳엔 몇 천 권의 책이 있었지만, 영어로 번역된 책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작년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근처에서 영어로 번역된 책을을 모아높은 작은 공간을 발견하였다. 이 작은 지하 공간에서 한국문학번역원의 후원을 받아 번역된 다양한 젊은 현대 작가들, 주로 20~40대의 작가들의 단편을 접할 수 있었다.
김성우 : 이번 부산비엔날레는 이 문필가들의 작업, 즉 뼈대가 굉장히 중요한 전시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문필가들을 선택한 기준, 그것이 본인의 기호나 관심사, 정치적 성향 등 다양한 것일 수 있을 텐데, 무엇을 기준으로 그들을 선택하였는가?
야콥 : 전시를 기획할 때 나는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한다. 전시를 하는 과정은 커다란 퍼즐을 맞춰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필가를 선정할 때도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하여 균형점을 맞춰가는데, 예를 들어 성별(젠더), 장르, 나이, 표현, 주제 등 다양한 조각들을 맞추려고 했다.
처음에는 부산과 연관된 작가를 찾으려고 했다. 박솔뫼 작가의 경우 번역된 것이 하나도 없어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저 그가 젊은 작가이며, 부산에 대한 2개의 단편을 썼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의 번호를 받았고, 금요일 밤에 문자를 보냈는데 그가 부산에 그 다음 날에 올 계획이란 것을 알았다. 바로 만났고, 커피를 마시며 그가 가진 관점에 관해 얘기를 나누었다.
박솔뫼 작가처럼 글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실제로 만나서 대화를 나누며 어떤 이야기를 추구하는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 관점에 초점을 맞추었다. 다른 방식으로는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내가 가진 아이디어와 계획에 부합하는지를 상상하는 것이었다.
외국의 문필가 같은 경우 내가 부산을 방문하면서 흥미로웠던 것들을 전했다. 그들은 부산에 와보지 못했지만, 나는 그들에게 “나에겐 영도와 거기에 있는 커다란 선박, 기계 장비들이 흥미롭다. 당신도 한 번 와서 경험해보고 무엇에 끌리는지 느껴보라”고 말하곤 했다.
또 부산에 거주하며 부산에 관한 미스터리 소설을 쓴 콜롬비아 작가가 있다는 것을 들었다. 안드레스 솔라노(Andrés Felipe SOLANO)라는 작가인데 한국에 산 지 8년이 되었다고 한다. 한국어를 알지 못하는 콜롬비아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한국의 시스템, 문학 시스템에서 활동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콜롬비아의 작법이라는 것은 한국이나 덴마크에서 구사하는 작법과는 다르다. 그리고 남미의 뿌리를 가진 그가 한국어를 알지는 못하지만, 타국의 코드와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구조적 측면에서 보면 문필가는 4명, 6명, 혹은 몇 명이든 섭외할 수 있었다. 여기서 개념적으로 러시아의 작곡가인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Modest Mussorgsky)를 참조했다. 무소르그스키는 빅토르 하트만(Viktor Hartmann)의 유작 전시회로부터 영감을 받아 10개의 피아노곡을 작곡했다. 그리고 그는 〈프롬나드(산책)〉라고 하는 곡 사이를 연결하는 간주를 만들었다. 이는 산책을 한다는 의미인데, 10개의 피아노 소곡들을 연결해주는 접착제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래서 10곡의 소곡이 있고, 5개의 간주곡이 있다. 나 역시 개념적 측면에서 10개의 이야기와 5개의 시를 구상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김성우 : 큐레이터로서 비엔날레와 같이 타지에서 전시를 기획하게 될 경우 그 지역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무엇을 바라보고, 어떠한 이해와 맥락을 구축할 수 있을지는 중요한 문제인데, 그러한 부분들을 문필가들의 관점을 통해, 문학적 방식을 통해 잘 풀어낸 것 같다.
과거의 부산비엔날레를 떠올렸을 때, 비엔날레라는 형식이 담보하는 동시대적 글로벌 담론에만 초점을 맞추거나, 혹은 부산이라는 지역을 다루더라도 그 지역성과 삶에 깊게 도달하지 못한, 피상적 차원의 것이 많았던 것 같다. 이와 비교했을 때 이번 전시는 단순히 명문화된 텍스트적 차원에서 부산을 기술하는 것이 아닌, 문학과 시각 중심의 전시, 그리고 청각 중심의 사운드를 번역의 방식으로 넘나들며, 부산의 역사와 도시의 생성, 근대성과 삶의 양상 등을 다채롭게 살필 수 있게 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야콥 : 무소르그스키에 얽힌 흥미로운 사실은 많은데, 특히 그를 둘러싼 음악과 글, 그리고 건축의 연결이 흥미로웠다. 그는 알코올중독자로 유명했고, 연락이 두절되기도 하는 인물이었다. 그에 관해 알려진 바가 많지는 않으며, 일종의 전설이나 가설을 통해 알 뿐이다. 그가 어떻게 작곡을 했는지 등 많은 것이 알려지지 않았다. 여름의 6~8주 동안 작곡을 했다고 알려졌지만, 그것도 확실하진 않다. 그저 편지나 친구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알 수 있을 뿐이다.
이를테면 친구들의 편지를 통해서 무소르그스키가 자신의 친구인 빅토르 하트만이 죽은 후 그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전람회의 그림〉을 작곡했을 때의 상태를 짐작할 수는 있다. 무소르그스키가 실제로 하트만의 유작 전시회를 보러 갔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하트만의 부고를 그가 직접 썼다고 한다.
또,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이 그의 피아노 소곡을 오케스트라로 편곡을 해서 유명하게끔 만들었고, 이것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버전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피아노 소곡을 오케스트라로 만든 것부터가 하나의 번역이다. 피아노 작품을 기보법1) 을 통해 표기하고, 이를 오케스트라로 만드는 일종의 번역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언어학적 측면에서 번역에 대한 이론이 많이 있다. 많은 사람이 완벽한 번역은 없다고 이야기를 한다. 번역을 하는 과정은 꽤 복잡하기 때문이다. 종종 번역의 두 가지 방식을 이야기하곤 하는데, 하나는 직역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감정을 파악하여 번역하는 것이다.
체코의 구조주의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Roman Jakobson)은 언어 기호를 비언어적 체계의 기호로 변환(transmutation)하는 것에 역시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번역이란 마치 셰익스피어의 희곡으로 만화를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만화는 셰익스피어의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지 않나. 이처럼 완전히 유턴하여 새로운 언어로 번역을 하는 것이 무소르그스키가 한 것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서 내가 시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는 미술 작가들이 문필가들이 쓴 에세이나 단편을 읽고 일대일의 직역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는 불가능할 뿐 더러 흥미롭지도 않으리라 생각한다. 여기서 문필가들의 글은 영감의 원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김성우 : 이번에는 전시를 구성하는 장소에 관해서 얘기해보자. 이번에는 과거 부산 비엔날레와는 조금 다른 장소들을 사용하기도 했으며, 원도심과 영도, 부산현대미술관에 이르기까지 마치 다양한 챕터가 펼쳐지듯 구성되어있다. 전시적으로 어떠한 맵핑을 상상했는지?
야콥 : 나의 목표는 부산비엔날레의 역사와 부산의 역사를 연결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나는 원도심을 부산근대역사관과 함께 도시의 진앙지로 보았다. 부산근대역사관은 일제강점기의 건물이자 과거 미문화원이었다. 또 80년대엔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연결하여 볼 수 있는 상징적 장소이다. 여기 부산의 항구도 마찬가지다. 1896년 일본의 첫 식민지 진입이 항구로부터 시작한다. 일본인들에게 항구는 한국의 본토로 가는 다리였고, 전 세계와 닿을 수 있는 세계적 흐름을 열어주는 곳이었다.
처음부터 전시 장소 선정을 위한 많은 대화를 하였으며, 협상의 과정은 늘 있는 부분이다. 다수의 전시 장소를 활용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리고 처음의 3개월 동안 천천히 문필가들과 작업을 진행하였다. 사실 그동안 전시 장소로 확정된 곳은 이곳, 부산현대미술관밖에 없었다. 큐레이토리얼의 측면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스토리에 맞춰서 전시를 만드는 것이었다. 다만, 장소와 완전히 매치될 수는 없었다. 이를테면, 마크 본 슐레겔(Mark von SCHLEGELL)의 소설은 부산의 특정한 호텔을 배경으로 일어난 사건에 대한 것이다. 이럴 경우 해당 호텔 전체를 빌려서 전시를 할 수는 없다. 일부 문필가들의 작업에는 특정 장소와 위치가 구체적으로 언급되며, 또 다른 일부는 유동적으로 부산 전체를 아우르기도 한다. 김언수 작가의 소설은 항구와 부두가 주는 느낌을 담아내고 있다. 반면 박솔뫼 작가의 작업에서는 구시가지(원도심)가 중요한 배경이다.
내가 부산의 길거리를 걸으며 역사를 느꼈던 것처럼, 부산에 처음 오는 사람들도 부산의 곳곳을 걸으며 내가 느꼈던 감각을 경험할 수 있으면 한다. 예를 들어 내가 부산에 인터뷰하러 일 년 전에 왔을 때, 영도 다리를 걸어서 건넜다. 그리고 그때 본 동네의 모습과 기계 장비들에 매료됐었다. 인스타그램에 나올법한 관광지는 아니지만, 내가 그곳에서 느꼈던 향취와 촉각이 좋았다.
김성우 : 이번 전시에 관해 이야기할 때, 도시를 걸으며, 스스로 방향을 찾아가며 마주하는 감각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탐정의 관점(detective perspective)’에 관해 언급하곤 했었다. 이는 큐레이터로서 전시를 마주하는 관객에게 요구하는 일종의 경험적인 차원에서 발생하는 정서적, 감각적 모드와도 연결되는 듯하다. 이에 대한 얘기를 들려달라.
야콥 : 만약 당신이 외국인이고, 그 지역의 언어도 모른다면 호기심이 많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호기심이 많으며,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가끔 예상치 못한 곳에 도달하기도 한다. 예전에 부산에 왔을 때, 시간은 늦은 일요일 밤이었고, 시차 문제로 힘들어서 맥주가 너무 간절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 찾기 시작했고, 한국말을 모르다 보니 단란주점에 들어가 버렸다. 언어와 문화를 모르고, 그리고 지역에 대한 이해가 없으니 이런 터무니없는 곳에 잘못 도달하게도 되지만, 이러한 것 역시 도시를 발견하는 하나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또 하나 예를 들자면, 나는 8년 전 비엔날레를 보기 위해 처음으로 부산에 방문했다. 구글에서 부산의 호텔을 검색했고, 가장 먼저 뜬 검색 결과는 해운대 앞의 호텔이었다. 그것이 내가 처음 경험한 부산의 이미지였으며, 그때의 부산 해운대의 경험, 그리고 지금 원도심을 걸으며 느끼는 감각과 감정은 너무나도 다르다.
김성우 : 이번 부산비엔날레와의 연결선상에서 과거 직접 기획했던 프로젝트에 관한 얘기를 해보도록 하자. 《Contour 2013 - 6th Biennial of Moving Image : Leisure, Discipline and Punishment》에서는 기존의 화이트 큐브를 벗어나 감옥, 축구장, 교회와 같은 공간을 사용했다. 그리고 이러한 특수한 물리적 공간의 사용을 넘어 《Polis Polis Potatismos (Police Police Potato Mash)》와 같은 전시에서는 범죄 소설의 서사를 배경으로 전시의 이야기를 구축하기도 하였다. 실제 존재하는 공간의 물리적 특성을 다루는 것에서 시작하여, 책과 그것에 담긴 서사의 비물리적 공간성과 그것을 활용한 전시의 서사에 이르기까지 얘기해보자.
야콥 : 나는 픽션 소설과 책을 좋아하며, 아마 다른 작가들도 이에 영감을 받고 그들의 사고방식에 적용하리라 생각한다. 약 5년간 스웨덴 말뫼 콘스트할(Malmö Konsthall)에서 감독으로 재직했다. 그곳에서 매년 다양한 방식으로 공공의 영역과 장소를 활용한 전시를 했었다. 2010년에는 스웨덴의 유명한 범죄소설 작가인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 (Maj Sjöwall and Per Wahlöö)가 공동으로 썼던 소설을 바탕으로 전시를 기획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범죄 소설 시리즈를 위해 경찰관 마르틴 베크(Martin Beck)란 인물을 만들어냈다. 이들의 소설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도 만들어졌으며, 70년대에 유년 시절을 보낸 나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들의 소설은 특정 계층 중심이 아닌 스웨덴의 전체 사회, 그러니까 노동자계층부터 중산층과 상류층을 모두 다루어냈다. 그전까지의 범죄 추리소설, 예를 들면 아가사 크리스티(Agatha Christie)의 소설은 상류층들만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반면 이들은 스웨덴 전체 사회를 담으려 했고, 특히 경찰과 정부를 풍자하곤 했다. 난 그렇게 작품에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아내는 것이 특히 좋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시리즈는 스웨덴의 각각 다른 장소를 배경으로 하는데, 그중 한 이야기가 내가 감독으로 있었던 말뫼를 배경으로 한다. 그 책의 제목이 『Polis Polis Potatismos (Police Police Potato Mash)』인데, 여기서 작가는 경찰을 풍자한다. 소설에서 한 자전거를 탄 소년이 등장하는데 지나가던 경찰을 보고 “폴리스 폴리스 포테이토매쉬”라고 한 것이다. 사실 이는 아무 의미가 없는 말인데 경찰은 그것이 욕인 줄 알고 아이를 멈춰 세우고, 덕분에 살인자를 놓치게 된다는 이야기다.
나는 우리 스태프들에게 이 책을 사서 읽으며 도시에 나오는 각각의 장소들, 밥 먹는 습관, 전통, 그리고 인물들을 연구하라고 했다. 그렇게 책에 나온 14곳의 장소를 선정했고, 이를 바탕으로 지도를 만들고 14명의 예술가에게 이곳에서 작품을 만들도록 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흩어진 각각의 장소를 찾고, 이것이 도시 안에서 사회경제적으로 연결되는 지점을 그려내고자 했다. 전시회는 고작 10일이었는데, 이는 소설 속의 시간과 일치한다. 이 전시는 다양한 장소를 사용하고 전시의 서사로 맥락화한 적확한 예시이다.
이전 프로젝트와 이번 부산비엔날레가 다른 점은, 이전에는 이미 존재하는 책을 바탕으로 전시를 만들었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과거의 전시에서는 이미 기존의 글을 바탕으로 하기에 무엇을 할지가 선명하게 그려지곤 했다. 그러나 이번엔 11명의 저자라는 것 외에는 그저 빈 원고지와 같았다. 작가들에게 아무런 지시를 내리지 않았기에 무엇이 나올지 몰랐고, 예측할 수도 없었다. 결과적으로는 11개의 다양하고 즐거운 글이 생산됐지만, 솔직히 어느 시점에선 걱정도 되고 초조하기도 했다.
1) 편집자 주 : 기보법이란 음악을 기록하는 방법으로 음악의 높고 낮음, 장단을 표시하는 것이다.
2020 부산비엔날레 프리뷰 :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과의 대담 (2)
김성우는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큐레이터로서 주로 전시기획과 글을 쓴다. 전시라는 시공을 바탕으로 질문지를 생산하는 방법론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개인의 주체적 삶의 모습과 형태를 담아내는 전시의 가능성을 고민 중에 있다. 아마도예술공간의 책임큐레이터로 2015년부터 2019년 초까지 공간의 기획 및 운영을 총괄했다. 큐레이토리얼 콜렉티브로 2018년도 광주비엔날레 〈상상된 경계들〉을 공동 기획했으며, 2020년 부산비엔날레의 큐레이토리얼 어드바이저를 역임했다. 현재는 독립적인 큐레이터 활동에 더불어 성북동에 위치한 기획자 플랫폼 WESS에 공동운영자로 참여하고 있으며, 부암동에 위치한 프로젝트 스페이스 Primary Practice를 설립하였다.
기획한 전시 및 프로젝트로는 〈몸짓하는 표면들〉 (피비갤러리, 2022), 박선민 〈A Walk into You〉(원앤제이 갤러리, 2022), 안정주 〈kick, clap, hat〉(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2021), 〈궤도공명 Welcome Back〉 (배은아 공동기획, 스페이스 이수, 2020), 이혜인 〈어느날, 날씨를 밟으며〉 (갤러리기체, 2020), 전명은 〈글라이더〉 (갤러리2, 2020), 〈아나모르포즈 : 그릴수록 흐려지고, 멀어질수록 선명해지는〉 (WESS, 2020), 〈MINUS HOURS〉 (우민아트센터, 2019), 출판형식의 프로젝트 〈기억은 뒷면과 앞면을 가지고 있다〉 (헤적프레스, 2019), 〈검은 밤, 비디오나이트〉 (2018, d/p), 〈Different Kinds of White〉 (P21, 2018), 〈2018 광주비엔날레 상상된 경계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주비엔날레관, 2018), 로와정 〈sunday is monday, monday is sunday〉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2018), 이정우 〈공포탄〉 (아트선재센터 프로젝트 스페이스, 2017), 〈누구의 것도 아닌 공간〉 (아마도예술공간, 2016), 〈platform B〉, (아마도예술공간, 2015) 등이 있다. 또한, 책이라는 매체를 하나의 전시적 시공으로 상정하여 『기계 속의 유령』 (2022, 오르간 프레스, 국립현대미술관 후원), 『전명은: Glider』 (2020, 프레스룸), 『정희승: 기억은 뒷 면과 앞 면을 가지고 있다』(2019, 해적프레스) 등을 기획/출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