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 동향

2010년대 한국 미술공간의 확장

posted 2020.12.16


더아트로는 2020년을 마감하며 2010년부터 10년 동안 한국의 미술 현장에서 일어난 다양한 이슈를 재조명하는 기획 기사를 준비했다. 그 첫 번째 글로, 백지홍 비평가의 「2010년대 한국 미술 공간의 확장」을 통해 10년 동안 확장된 한국의 미술 공간의 지형도를 살펴본다. 이 글을 통해 국〮공립 미술관에서부터 사립 미술관, 신생 공간에 이르는 다양한 공간의 생성과 확장의 현황을 살펴보고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다가오고 있는 한국미술의 새로운 10년을 상상해보는 계기를 마련해보고자 한다.


백지홍 (미술비평)


2010년대 한국 미술공간의 확장을 한편의 글로 정리해달라는 임무가 주어졌을 때, 처음 생각한 것은 국공립미술관, 사립기관, 신생공간이라는 큰 분류로 공간들을 묶는 것이었다. 2010년에서 2019년에 달하는 기간 동안 운영된 미술공간들은 그 수가 적지 않고, 성격 또한 각양각색이었기에 최소한의 분류가 없다면 한 편의 글로 담아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각 공간은 운영 주체에 따라 공간의 성격과 지향, 그리고 변화 방식에 큰 차이를 보였기에 본 글이 택한 세 가지 분류는 곧 한국 미술계를 바라보는 세 가지 시선을 만들어냈다. 이는 코로나19로 인해 생겨버린 2019년과 20220년 사이의 뚜렷한 경계를 넘어 2010년대 한국 미술계를 보다 다각도로 살펴볼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국공립기관의 경우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국공립미술관들을 살펴보면서 글을 시작해보자. ‘국공립’이라는 단어가 상징하는 것처럼 이들 기관의 활동은 미술 분야의 정책과 제도로 이어지거나, 반대로 정책과 제도가 가장 먼저 반영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미술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크다. 예를 들어 2010년대 미술계의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였던 ‘아티스트 피(Artist Fee)’를 살펴보면, 제도의 필요성을 주장한 이들의 가장 강력한 근거는 ‘심지어 국공립미술관의 전시에 참여해도 수입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아티스트 피 제도 시행이 가장 먼저 의무화된 곳도 국공립기관이었다. 이들은 기관의 특성상 미학적 논의의 최전선에 있는 경우는 드물지만, 미술 관련 정책이나 제도에 대한 논의에서는 종종 최전선에 서게 된다.


2010년대는 국공립미술관의 확장세가 눈에 띄었다. 이는 보수와 진보진영 할 것 없이 정권을 잡은 대통령은 모두 미술관을 비롯한 문화 공간 확충을 과제로 내세운 결과였고, 그 흐름은 2020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미술시장이 충분히 자리 잡지 않은 한국미술계는 공적 영역의 활동이 개별 예술가들의 활동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만큼 이러한 확장은 기본적으로 환영할만한 일이다.


2013년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쿠사마 야요이 특별전》 사진제공 대구미술관

2013년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쿠사마 야요이 특별전》 사진제공 대구미술관

국공립기관 신설이 가져오는 파급력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2011년 개관한 대구미술관은 2013년 개최한 《쿠사마 야요이 특별전》(7.16~11.3) 전이 33만 관람객을 동원하며 전국적 명성을 얻으며 자연스럽게 지역의 미술 거점으로 자리 잡았고 대구 화단의 역사를 정리하는 역할을 이어오고 있다. 2018년 문을 연 부산현대미술관은 도심과 다소 떨어진 불리한 입지 조건에도 2018년, 2020년 두 차례의 《부산비엔날레》와 《랜덤 인터내셔널: 아웃 오브 컨트롤》(2019.8.15.~2020.1.27) 등의 주목받는 전시를 통해 1998년 문을 연 부산시립미술관과 함께 제2의 도시 부산의 미술 지형을 확장시켰다. 2016년 개관한 청주시립미술관은 2018년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2019년 개관하여 《청주공예비엔날레》 전시장으로 활용된 문화제조창과 함께 인구 80만의 대도시로 거듭난 청주시의 미술 활동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관점을 달리하여 말하자면 배후 인구를 충분히 확보하고 여러 미술인이 활동하는 지역도 거점 역할을 할 공립기관이 운영되기 전에는 지역의 미술 활동들이 시각화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직 공립미술관이 없는 지역에 미술관 신축이 요구되는 이유다. 2021년 초 개관 예정인 전남도립미술관과 연말 개관 예정인 울산시립미술관, 2024년 개관을 목표로 사업이 진행 중인 충남도립미술관 등 국공립미술관의 확장은 2020년대에도 지속될 예정이다.


왼쪽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전 《자이트가이스트》(2013) 오른쪽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서 개관특별전 《별헤는날》(2018) 사진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왼쪽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전 《자이트가이스트》(2013) 오른쪽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서 개관특별전 《별헤는날》(2018) 사진제공 국립현대미술관

한국 유일의 국립 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의 2010년대는 서울관과 청주관의 개관이라는 대규모 양적 확장이 일어난 시기였다. 경복궁 옆 구 기무사 터에 2013년 문을 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은 1986년 국립현대미술관이 과천 어린이대공원 내부로 이전한 이래 최대 문제점이라 지적받아온 접근성 문제를 시원하게 해결했고, 2018년 문을 연 청주관은 수장과 보존 전문 미술관으로서 특색을 선보였다. 쾌적한 감상을 가능케 하는 최신 시설과 함께 다양한 기획전은 관람객을 불러 모으는데 성공했다. 특히 이불, 안규철, 김수자, 임흥순, 최정화, 박찬경, 양혜규 등 유명 중견작가가 작품세계를 펼칠 무대를 열어주는 ‘현대차 시리즈’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을 대표하는 전시가 되었고, 대기업과 미술관의 성공적 협력 사례로서 여러 논점을 제공하고 있다. 세계적 규모의 미술관으로서 시선을 넓혀 아시아 지역의 미술 활동들을 담아내는 ‘아시아 집중 프로젝트’가 2018년과 2020년 진행되여 각 지역에서 활동 중인 미술인들을 네트워킹했고, ‘다원예술 프로젝트’와 영사시설을 적극 활용한 프로그램들도 현대미술관으로서 다양성을 담아냈다.


그 영향력 면에서 국립현대미술관에 비견할 유일한 미술관일, 수도 서울에 자리한 서울시립미술관 역시 2010년대 대대적 확장 행보를 이어왔다. 2002년 개관한 서소문본관을 중심으로 2004년 남서울미술관, 2006년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를 개관·운영해오던 서울시립미술관은 2013년 북서울미술관을 개관하며 3관 시대를 맞이하였다. 또한, 2016년 SeMA창고, 2017년 백남준기념관과 SeMA벙커라는 전시공간을 추가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더해 현재 개관을 위한 사전 작업이 진행 중인 아카이브 전문공간과 사진 전문 미술관에 대한 논의도 2010년대에 시작되었으니 그야말로 전방위적 확산이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신진작가 지원프로그램을 통해 미술관 외부에서 개최되는 전시들을 지원하며 서울의 청년 미술 씬(scene)의 후원자 역할을 했으니, 2010년대 서울시립미술관의 영역은 서울 미술 씬 전체로 확장되어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울바벨》(2016) 전시 전경. 사진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서울바벨》(2016) 전시 전경. 사진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내용을 살펴보면 시의성을 포착하는 면에 두드러졌다. 2013년 원로작가 김구림을 초대한 《SeMA Green 김구림 : 잘 알지도 못하면서》(7.16.~10.13)는 국립현대미술관이 2014년 개최한 한국현대미술작가시리즈 《달팽이걸음_이건용》(6.24.~12.14), 2016년 부산비엔날레에서 선보인 《Project1. an/other avant-garde china-japan-korea》(9.3.~11.30) 등 2010년대 아방가르드 미술 재조명의 출발을 알렸다. 이외에도 서소문관에서 개최된 《서울 바벨》(2016.1.29~4.5)은 동시대 청년 미술인들의 대안적 움직임을, 북서울미술관에서 개최된 《사회 속 미술-행복의 나라》(2016.5.10.~7.6)는 2016년 민중미술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흐름을 빠르게 포착했다. 또한 외주 운영되던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를 2014년부터 직접 운영하면서 주목 받기도 했다.


그런데, 2010년대 진행된 국공립미술관 물리적 확장이 내용적인 측면을 충분히 채워나가면서 진행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다소간 아쉬움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적지 않은 기관이 시설을 채울 콘텐츠와 이를 운영한 인력의 부족과 행정적 어려움을 호소했다. 국립현대미술관도 2010년대 어려움을 겪은 기관이다. 서울관 시대를 시작한 정형민 관장이 인사 문제로 직위 해제되면서 국립현대미술관의 관장 자리가 공석인 상황이 1년 2개월간 이어졌고, 최초의 외국인 관장인 바르토메우 마리(Bartomeu Mari Ribas) 전 바르셀로나미술관 관장이 공석을 채웠다. 그러나 취임 이전부터 적합성과 관련하여 ‘국립현대미술관장 선임에 즈음한 미술인들의 모임’ 등의 비판을 받은 바 있는 그는 한국 미술계와의 적극적 교류 등의 측면에서 한국에 연고가 없는 외국인 관장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며 연임에 실패했고, 이 과정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은 전시에 참여한 작가의 명성이나 전시의 기술적 완성도와 별개로 기관의 명확한 방향성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2019년 취임한 윤범모 관장은 한국미술사 정리라는 비전을 선보였다. 이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영어 이름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에서 알 수 있는 ‘근현대’미술관이란 측면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시대를 보는 눈: 한국근현대미술》(2020.7.21.~2022.7.31.)은 그 일환으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개최된 미술사 전시들이 호평을 받아온 만큼, 이러한 행보가 상대적으로 빈약한 근대미술사 전시의 확장으로 이어질지 지켜볼 일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의 경우도 2012년부터 2017년까지 근무한 김홍희 관장 이후 임기를 시작한 최효준 관장이 직무 정지 상태로 임기를 마치면서 잠시 혼란이 찾아왔으나, 2019년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전시감독으로 서울시립미술관과 인연을 쌓았던 백지숙 큐레이터가 관장 임기를 시작하면서 다시 안정화되는 모양새다.


사립미술관의 경우


사립미술관들에게 2010년대는 기관별로 온도 차가 확연했던 시기다. 국보급 작품들을 소장한 삼성미술관 리움은 2017년 3월 홍라희 관장이 퇴임하면서, 4월 개최 예정이었던 국민작가 김환기의 대규모 회고전을 비롯해 기획 전시들이 중단된 상황이다. 그동안 미술사와 동시대 미술, 양 분야에서 수준 높은 전시를 선보여온 리움의 기획전 중단은 역시 삼성문화재단이 운영하던 현대미술 중심의 전시 공간 삼성미술관 플라토의 운영 중단과 함께 한국 미술계에 큰 공백을 만들어냈다. 2021년 재개관을 통해 2010년대 하반기의 공백을 채울 수 있을지 지켜볼 부분이다.


광화문 사거리에 자리한 일민미술관도 다소 아쉬운 상황이다. 탁월한 입지 조건을 바탕으로 현대미술 전시를 선보여온 일민미술관은 2010년대 중반 《언리미티드 에디션》, 《PERFORM》 등 젊은 예술인들의 활동에 민첩하게 호응하며 한국미술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특히 대안적 신생공간 커먼센터의 디렉터 함영준을 일민미술관의 책임큐레이터로 파격 발탁하며 청년 미술 담론을 이끌어가는 공간으로서 입지를 다지는 듯했으나, 함영준 큐레이터가 성추문으로 물러나면서 의미가 퇴색되어 버렸다. 현재도 다양한 미술인들과 협업하여 전시를 이어오고 있으나 청년미술 씬의 중심지라는 과거의 명성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왼쪽 아모레퍼시픽미술관 《BABARA KRUGER: FOREVER》(2019) 전시 전경. 사진제공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사진 정희승 오른쪽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삼일운동 100주년 간송특별전, 대한콜렉션》(2019) 사진제공 서울디자인재단

왼쪽 아모레퍼시픽미술관 《BABARA KRUGER: FOREVER》(2019) 전시 전경. 사진제공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사진 정희승 오른쪽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삼일운동 100주년 간송특별전, 대한콜렉션》(2019) 사진제공 서울디자인재단

2010년대 서울에 건설된 대형 건축물 중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용산 아모레퍼시픽 신사옥 지하에 2018년 문을 연 아모레퍼시픽미술관도 날개를 충분히 펼치지 못하고 있다. 1번 국도와 KTX 정차역을 곁에 둔 탁월한 입지와 최신 시설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용산 이전 이후 미술사와 현대미술을 아우르는 전시를 개최함으로써, 리움의 공백을 채울만한 사립미술관으로써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개관 이듬해인 2019년 세계적 미술가 바바라 크루거의 작품을 전시한 《BABARA KRUGER: FOREVER》(6.27~12.29)로 기대에 부응하는 듯 했으나, 미술관 활동에 박차를 가해야 할 2020년 코로나19사태를 맞이하면서 주춤하는 모양새다.


국보급 문화재를 소유한 또 다른 사립기관 간송미술관은 확장적 행보를 이어갔다. 1년에 단 두 차례만 소장품을 공개했던 간송미술관은 2014년부터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 소장 작품들을 전시하며 보다 많은 이들과 만나기 시작했으며, 2021년 현대적 전시시설을 갖춘 대구 간송미술관을 대구미술관 인근에 개관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2018년 이전 재개관한사비나 미술관, 2017년 개관한 세화미술관, 2013년 문을 연 서울미술관 등의 활동이 이어졌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사태로 직접적인 피해를 보고 있는 이들 기관이 2020년대 이들이 어떤 행보를 이어갈지 주목이 필요하다. 코로나바이러스를 극복해내고 새로운 공간들이 문을 열 1년 후, 사립미술관들의 판도는 지금과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


신생공간의 경우


2010년대 한국에서 운영된 여러 미술공간들의 움직임 중에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역시 ‘신생공간’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여러 대안적 공간들의 활동들이다. 미술계에 뛰어든 신진작가들이 활로를 개척하기 위한 움직임은 그리 길지 않은 기간 동안 한국 미술계에 많은 흔적을 남겼다.


신생공간에 대한 이야기는 2008년 금융위기에서 시작한다. 전 세계적 경기 침체는 문화계 전반에 큰 타격을 입혔지만, 한국 미술계는 그 여파가 더욱 컸다.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한국미술시장은 건국 이래 최대 호황이라 할 정도로 거품이 끼면서 불황으로 인한 낙차가 배가 됐기 때문이다. 한국 최대 아트페어인 《KIAF ART SEOUL》의 판매 총액은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매해 두 배씩 성장할 정도였다. 이시기 시장에서는 유명 작가의 작품뿐만 아니라 대학을 갓 졸업한 작가들의 작품들까지 저가에 구입하여 고가에 팔 수 있는 투자가치가 높은 ‘상품’으로서 판매했다. 그러나 불과 1년 만에 찾아온 금융위기는 신진작가들의 작품 가격을 폭락시켰고, 미술시장은 환금성이 높은 유명 작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신진작가를 지원하는 갤러리의 활동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고, 덩달아 2000년대 젊은 작가들을 발굴해온 대안공간들의 영향력 역시 축소되었다. 쌈지스페이스는 문을 닫았고, 대안공간 루프, 아트스페이스풀 등의 영향력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작가의 꿈을 품고 미술대학에서 공부한 뒤 작업을 이어간다 한들 작품을 선보일 곳이 없는 상황이 2010년대 청년 미술인들이 마주한 현실이었다. 그들이 선택한 것은 작품을 전시할 공간을 직접 운영하는 것. 1980년대 생들이 주축이 되어 서울 곳곳에 문을 연 작가운영공간들에서는 창작과 기획, 전시, 세미나 등 미술인들이 필요로 했던 거의 모든 활동이 일어났다. 각 공간의 활동은 어느새 ‘신생공간’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지기 시작했으며, 관련한 논의에는 자연스럽게 세대론이 가미되었다. 신생공간에서 활동한 이들 중에는 이러한 접근이 각기 다른 성격의 공간과 사람 그리고 작업들을 납작하게 묶게 되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물론 이는 정당한 비판이었지만, 이름의 힘은 생각보다 강했다.


《굿-즈》, 세종문화회관, 2015. 사진제공 돈선필

《굿-즈》, 세종문화회관, 2015. 사진제공 굿-즈 기획팀

서울 각지에서 산발적으로 선보이던 움직임은 신생공간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순간 동시대 한국 미술계의 가장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고, 변방의 움직임이 2014-2016년 구간 한국 미술 논의의 중심에 자리하게 되었다. 신생공간 활동의 열기가 가장 뜨거웠던 2015년 말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된 《굿-즈 2015》(10.14~10.18)는 16개 공간이 참여하고 기획단만 36인에 참여 작가는 80명/팀에 달한 전시였다. 일종의 신생공간 연합 아트페어라 할 수 있었던 《굿-즈 2015》는 신생공간을 통해 작품을 만들고 전시를 기획하여 선보인 이들이 필연적으로 마주해야 했던 작품 유통의 문제를 실험한 자리였다. 전시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아이돌이나 애니메이션, 게임 등 타 문화 장르의 마니아들이 소비하는 ‘굿즈’의 속성을 각자의 방식대로 응용하였고, 약 1억 원(참여 예술인에게 충분한 보상이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뭔가 가능성을 찾아볼 만한)의 판매액을 남겼다.


이듬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된 《서울 바벨》은 제도권 외부에서 자생적으로 시작된 움직임을 서울시립미술관 본관으로 초대한 기념비적인 행사였다. 그러나 2016년은 2013-2014년경 2년 임대 계약으로 운영을 시작했던 다수의 신생공간이 문을 닫는 시기였다는 점이나, 전시가 다소 급하게 기획된 것처럼 보였다는 점, 그리고 제도권 공간에 대한 반발 등으로 인해 참여 작가나 기획자들 사이에서는 신생공간의 확장을 의미하기보다는 신생공간 활동의 종료를 상징적으로 알리는 전시로 여기는 자조적 분위기가 보였다. 어떤 이는 운영이 종료되는 신생공간들을 보며 2010년대 중반 진행된 활동들이 ‘휘발’되어 버렸다고 표현하기도 했을 정도다.


시청각. 사진제공 시청각

왼쪽 《no mountain high enough》 전시 전경 2013 @시청각, 촬영 김상태 오른쪽 정서영 개인전 《정서영전》 전시 전경, 2016 @시청각, 촬영 정민구. 사진제공 시청각

그러나 신생공간은 휘발되지 않았다. 그곳에서 활동했던 기획자들과 작가들은 2020년 현재 동 세대를 대표하는 미술인으로 주요 미술관, 갤러리, 비엔날레에서 왕성히 활동하고 있고, 공간 사일삼, 아카이브 봄, 우정국, 합정지구와 같은 공간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다. 2009년 문을 연 공간사일삼의 경우 개관 10주년을 맞이한 2019년 《LATENCY》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자체적으로 2010년대 한국 미술을 돌아보는 의미 있는 기획을 진행하기도 했다. 2016년 이후에도 취미가, 온수공간 등의 새롭게 문을 열기도 했으며, 신생공간 안팎에서 활동했던 이들 중 일부는 물리적 공간 운영의 부담에서 벗어나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콜렉티브’ 형태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일회성 행사로 끝난 것처럼 보였던 《굿-즈 2015》의 성취는 작가 미술장터 사업으로 이어져 비물질(퍼포먼스) 예술의 유통을 실험한 《PERFORM》, 디지털 이미지가 일상화된 시기 사진의 유통방식을 탐구한 《더 스크랩》, 작품 운반, 보관, 전시, 유통의 프로세스 전반을 고민하여 사각 틀 안에 담은 《PACK》과 같은 행사로 이어졌다. 제도권 공간 외부의 경험들로부터 시작된 이 모든 성과는 한국미술계의 확장이라 할만한 것이다.


자본도, 경험도, 참고할 지점(사실 신생공간과 유사한 대안공간, 작가운영공간의 사례는 미술계에 반복해서 등장해왔다. 문제는 앞선 경험이 뒤따르는 이들에게 계승되지 못했다는 점이다.)도 없었던 이들이 어떻게 이러한 성과를 냈는지 살펴보자. 신생공간 운동의 기반에는 크게 세 가지 요소가 존재했다.


그 첫째는 노후화되기 시작한 도시 서울이라는 물리적 측면이다. 현재 서울은 주거용 아파트 부족이라는 부동산 대란을 맞이했지만, 사람이 찾지 않는 노후화된 공간들의 임대료는 미술인들이 부담할 수 있을 만한 것이었고, 그들은 기존의 문화공간들과는 거리가 먼 공장 옆, 상가 2층, 주택가에 전시공간을 열었다. 두 번째 요소는 2010년 확대 운영된 문화기금들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경영지원센터, 서울문화재단 등을 통해 지원되는 기금은 작가들이 공간을 운영할 경제적 발판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포스트 인터넷 환경이다. 스마트폰의 보급과 무선인터넷 환경의 구축이 없었다면 공간과 기금이 있다 하더라도 신생공간의 운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도 앱의 존재는 관람객이 예상치 못한 곳에 자리한 신생공간으로 찾아갈 수 있도록 해주었으며, SNS의 활용은 기존의 홍보 방식으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하고 파급력이 높은 홍보를 가능케 했다. 신생공간 전성기 가장 왕성하게 이용된 SNS인 트위터를 중심으로 공간의 개성과 전시 개최 사실이 전파되었으며, 전시에 대한 피드백도 SNS에서 이뤄졌다.


그리고 이러한 가상공간과 실재 공간의 밀접한 연관은 공간 운영에서뿐만 아니라 신생공간에서 활동한 미술인들의 작업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신생공간에서 활동한 이들 대부분이 디지털 기기의 발전과 성장기를 함께하여 디지털 환경이 너무도 익숙한 세대이거나, 또는 이미 발전된 디지털 환경에서 성장한 디지털 네이티브 1세대로 불리는 이들이었기에, 포스트 인터넷은 2010년대 제작된 작품들을 둘러싼 환경이자 주요 주제로 떠올랐다. 신생공간은 제도적, 경제적 문제를 맞이한 미술인들이 개척한 활로이자, 시대의 변화를 빠르게 인식한 세대의 시각을 가장 앞장서 선보이며 미술의 영역을 확장해간 한국미술의 최전선이었다.


2020년을 맞이하며


2010년대는 식민 지배와 내전, 그리고 절대적 빈곤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는 한국인들에게 한국이 경제적, 문화적으로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음을 체감하는 시기였다. (물론 2020년 현재도 한국을 개발도상국으로 인지하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게 존재한다. 100년 만에 왕조-제국주의식민지-전쟁과 이어진 냉전-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압축해서 겪으며 따라오는 부작용이라 하겠다.) 한국인들이 자신들이 이룩한 경제 성장에 채 익숙해지기 전에, 문화 영향력의 급속한 증가가 뒤따랐다. BTS와 블랙핑크 등이 활약하는 K-POP, 〈기생충〉으로 2019년 세계 영화계를 사로잡은 한국 영화, ‘한류’ 현상의 시발점이 된 드라마까지. 불과 20년 전 전까지만 해도 다양한 문화의 수입국이었던 한국의 위상은 문화수출국으로 변화했다.


안타깝게도 미술은 이러한 변화와 함께하지 못했다. 아직 자립할만한 시장이 형성되지 못했고, 여전히 국가 지원이 미술계에 차지하는 측면이 크다. 거기에 더해 성희롱/폭행이나 계파 갈등 등으로 인한 논란까지 이어지면서 미술계에서 활동하는 이 중 적지 않은 이가 2010년대를 ‘공회전’하는 것 같다는 어려움을 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 걸음 떨어져서 보면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더 많은 미술공간이 우리 곁으로 찾아왔고, 미술인들에게 요구되는 윤리적 기준은 더욱 엄격해졌다. 그동안 미술계에서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지하더라도 쉬쉬했던 문제들이 표면 위로 드러났다는 것도 한국미술의 공론장이 확장된 결과다. 미술계로 찾아온 ‘굿즈’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대중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는 다양한 시도들도 성과를 내고 있다. 2010년대의 다양한 노력들의 성과를 2020년에는 누릴 수 있을까.


질병의 이름이 상징하듯,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우리의 2020년은 한 해가 저물어가는 지금도 시작되지 않은 것만 같고, 2019년이 끊임없이 연장되는 듯한 감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직격탄을 맞은 것은 아마 이 글을 읽을 독자의 상당수를 차지할 문화계 종사자들이다. 한국 미술계의 공간들은 국공립기관, 사립기관, 대안 공간 가릴 것 없이 우리를 뒤덮은 재앙이 지나가기를 숨죽여 기다리고 있다. 백신과 치료제와 관련된 긍정적 소식이 들리는 지금, 2020년대 한국미술은 어디로 확장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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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홍

백지홍은 예술학과 미학을 전공하고 미술전문월간지 『미술세계』에서 2013년부터 기자로, 2016년부터 편집장으로 근무했다. 문화와 예술의 창작만큼이나 그것이 어떻게 유통되고 소비되는지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기획과 비평을 통해 미술에서부터 대중문화까지 아우르고자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