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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 연구와 확산의 여러 방법들

posted 2021.01.01


더아트로는 2020년을 마감하며 2010년부터 10년 동안 한국의 미술 현장에서 일어난 다양한 이슈를 재조명하는 기획 기사를 준비했다. 특집 기사의 마지막 기사로, 구정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가 해외의 독자를 위해서 영어로 쓰인 한국미술 출판물을 소개한다. 이번 글에서는 최근에 발행되어 많은 조명을 받았던 한국미술 앤솔로지를 시작으로 전시 도록 및 선집까지 한국 미술의 지형도를 다루는 다양한 출판물을 언급한다. 이 기사를 통해 한국 미술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입문자에서부터 컬렉터, 미술사 연구자에 이르는 다양한 사람들이 한국의 미술 현장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지기를 바란다.


구정연(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


2020년 4월, 한국 현대미술을 다루는 책 한 권이 출간되었다. “1953년 이후의 한국미술: 균열, 혁신 교류”(Korean Art From 1953: Collision, Innovation, Interaction)라는 제목으로 한국 미술사를 소개한 책이다. 이 책은 한국 미술사가, 큐레이터, 평론가들과 함께 해외 연구자들이 공동으로 편집하고 저술한 것이다. 책 편집을 주도했던 정연심 교수는 “뉴욕주립대에서 한국 미술을 가르칠 때 한국 현대미술에 관한 영문 서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언젠가 책을 집필해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간행 계기를 밝혔다.1) 국내에서 이 책은 “한국 현대미술을 해외에 소개하는 최초의 영문 비평서"로 소개되었고, 또 “K아트라는 이름으로, 미술도 한류다”라는 문구로 한국미술의 한류화를 대표하는 영문 서적으로 보도되었다.2) 『뉴욕 타임스』에서는 한류 언급과 더불어 단색화 이후 한국 현대미술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20세기 떠오르는 세계사의 한 챕터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하고 의미 있는 책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3)


왼쪽 Korean Art from 1953: Collision, Innovation, Interaction; Yeon Shim Chung, Sunjung Kim, Kimberly Chung, Keith B. Wagner; Phaidon. 오른쪽 Korean Art from 1953: Collision, Innovation, Interaction; Yeon Shim Chung, Sunjung Kim, Kimberly Chung, Keith B. Wagner; Phaidon; Chapter 2: Historicizing the Avant-Garde Contexts in Post-War Korea: From Experimental Arts to Collective Groups in the 1960s and 1970s (pages 60-61). Image Courtesy Phaidon

왼쪽 『Korean Art from 1953: Collision, Innovation, Interaction』; Yeon Shim Chung, Sunjung Kim, Kimberly Chung, Keith B. Wagner; Phaidon. 오른쪽 Korean Art from 1953: Collision, Innovation, Interaction; Yeon Shim Chung, Sunjung Kim, Kimberly Chung, Keith B. Wagner; Phaidon; Chapter 2: Historicizing the Avant-Garde Contexts in Post-War Korea: From Experimental Arts to Collective Groups in the 1960s and 1970s (pages 60-61). Image Courtesy Phaidon

2020년 한국미술계에서 화제가 된 책은 단연코 파이돈의 『1953년 이후의 한국미술』일 것이다. 동시에 이 책은 200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국미술의 지형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영문 서적을 소개해달라는 지면의 요청에 가장 이상적인 사례이다. 영문 서적의 범주를 한국어와 영어의 기계적인 병기가 아닌 영어 독자를 고려한 영어판 출간물로 한정 짓는다면, 그 수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을 것이다. 해외 출판사가 펴내는 영문 서적의 경우, 기획부터 유통까지 최소 2-3여 년의 시간이 걸릴 정도로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 앞으로 소개할 영문 서적 상당수는 국내 출판사나 미술 기관이 펴낸 한국어·영어 합본이나 영어 분권일 수밖에 없다.


단독, 공동 혹은 학제 간 연구


파이돈의 『1953년 이후의 한국미술』은 국내 연구자들이 발의한 프로젝트였지만, 기획이나 편집에서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한다. 대다수 한국미술을 다룬 영문 서적이 국내 출판사나 기관 발행의 한국어판 번역본에 해당된다면, 이 책은 국내외 미술 전문가들이 공동 기획했고, 무엇보다 해외 독자를 겨냥해서 일부 원고는 영어로 처음부터 집필된 것이다. 또한 출간에 앞서 한국미술에 관한 해외 심포지엄을 개최하여 한국미술에 관한 공동 연구 및 논의의 장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연구의 성과가 하나의 책에 담기는 과정은 지난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기존 연구서들보다 훨씬 더 역동적인 결과물로 보인다. 책이란 오랜 시간 누적된 연구의 종착점이지만, 이를 출간되는 시점에 다시금 연구 결과가 지면 밖에서 활성화되는 과정은 으레 필요하다.


Korean Art from the 19th Century to the Present; Charlotte Horlyck; Reatkin Books. Image Courtesy Reatkin Books.Resonance of Dansaekhwa; Yeon Shim CHUNG, Joan Kee, Alexandra Munroe, So Jinsu, Yun Jin Sup;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KAMS)

왼쪽 『Korean Art from the 19th Century to the Present』; Charlotte Horlyck; Reatkin Books. Image Courtesy Reatkin Books. 오른쪽 『Resonance of Dansaekhwa』; Yeon Shim CHUNG, Joan Kee, Alexandra Munroe, So Jinsu, Yun Jin Sup;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KAMS)

이전까지 나왔던 한국미술 이론서는 대부분이 단독 연구 저작물로서 출간되었다. 자주 언급되는 대표적인 책들로 해외 미술사가 이남희의 저서 『The Making of Minjung: Democracy and Politics of Representation in South Korea』(코넬대학교 출판사, 2007)과 조앤기(Joan Kee)의 저서 『Contemporary Korean Art: Tansaekhwa and the Urgency of Method』(미네소타대학 출판부, 2013), 샤를로트 홀릭(Charlotte Horlyck)의 『Korean Art: From the 19th Century to the Present』(리악티온 북스, 2017) 등이 있다.


샤를로트의 책은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한 권에 담았는데, 19세기 말경부터 21세기 초반까지 사회적·정치적·경제적 조건 및 환경과 맞물려 변화무쌍하게 형성돼온 한국미술을 다루고 있다. 1990년대~2000년대 마지막 챕터에서 저자는 1990년대를 주로 1960년대 출생한 작가들에 의해 주도되었고, 이 격변의 시기가 이후 새로운 예술가 세대들에게 길을 터줌으로써 한국 미술계 자체가 좀 더 다원적인 특성으로 지니게 됐다고 서술한다.


반면,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UCLA) 문리대 아시아학 부교수 이남희와, 미시건대학 미술사 교수 조앤기의 책은 각각 특정 시기에 발흥했던 한국 현대미술 경향과 현장에 초점을 둔다. 이남희의 책은 1970-80년대 ‘민중미술’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사용되었고, 또 민중미술 운동을 당대 지식인에 의해 어떻게 실천되었는가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2015년, “민중 만들기: 한국의 민중화운동과 재현의 정치학”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한국어판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조앤기의 책은 1960년대 중반에 태동한 단색화 운동(모노크롬)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권영우, 윤형근, 하종현, 박서보 등 단색화 주요 작가들을 기술하고 다수의 작품들을 수록한 이 책은, 국제 화단에 단색화를 널리 알리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6년, 조앤기의 연구 성과에 힘입어 예술경영지원센터는 한국미술의 우수성을 알리고자 국내외 미술사가들이 참여한 영문판 『Resonance of Dansaekhwa』(단색화의 공명)을 출간했다.4) 단색화에 관한 국제 시장의 주목이나 관심에 비해 이를 뒷받침하는 학술적 연구나 문헌이 미흡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선집 형식으로 출간된 이 책에는 조앤기를 비롯한 미술 평론가 윤진섭, 미술사학자 정연심, 경제학자 서진수, 구겐하임 미술관 큐레이터 알렉산드라 먼로 등이 필진으로 참여하여, 단색화의 의미를 다층적인 관점에서 분석했다. 이 무렵, 한국미술 국제화 및 담론 활성화를 위한 국내외 미술사가, 연구자들 간의 협업과 교류, 그리고 그 결과물에 대한 지원 역시 눈에 띄기 시작했다.


기관출판과 연구 플랫폼으로서 전시 도록


전시 도록이나 기관지, 혹은 비엔날레 도록 역시 한국 현대미술의 지형을 특정 주제나 시기, 인물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 책들이다. 2000년대 중반 한국미술을 해외에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전시들이 열렸는데, 이러한 역할을 수행했던 기관 가운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과 인사미술공간이 있었다. 특히 인사미술공간은 여타 예술기관이나 전시 공간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있었는데, 바로 아카이브와 아카이브 기반의 프로그램 개발, 그리고 출판기획 활동이었다. 인사미술공간은 전시 외에 출판물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는데, 그 대표적인 결과물이 바로 저널 『볼』이었다. 2005년 첫 호 “공황 Panic”에서 시작하여 2008년 10호를 마지막으로 완간되었다. 저널 『볼』은 기관지임에도 불구하고 동인지 성격을 띠었고, 매 호마다 편집위원이 선정한 주제 중심으로 필자에게 글쓰기를 제안했다.5) 저널 『볼』은 때로는 주제 중심의 연구서이기도 했고, 때로는 전시나 행사를 기록하는 매체로서 역할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5호 “헐벗은 삶”은 카셀 도큐멘타의 행사와 연계하여 기획한 특별호였고, 마지막 호였던“8008 팔공공팔”은 광주비엔날레의 부대학술행사를 기록했다. 학술행사는 “2008년 한국현대미술의 ‘발언의 현실’을 점검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고, 현실과 발언의 그룹을 회고하기보다는 이들이 현실을 언어화하는 방법과 이들이 제기한 문제의식들을 다시금 평가하기 위한 자리였다.6) 한국어와 영어로 집필되거나 번역된 원고 외에 원고의 오리지널 언어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간혹 일본어나 중국어 글이 실리기도 했다. 당시 아마존 판매를 시도했을 정도로 해외 유통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1980년대 민중미술의 역사와 그 이후의 전개를 주제로 한 전시들이 열렸는데, 그 가운데 『시각의 전쟁』(The Battle of Visions)은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문화 행사들 가운데 하나로 쿤스트할레 다름슈타트와 서울 인사미술공간이 공동 주최했고, 백지숙, 페터 요흐가 공동 기획했다. 전시와 연계된 출판물에는 각 기획자의 글을 비롯한 한국의 비판적 미술을 해석하는 다섯 편의 에세이 등을 수록했다. 당시 인사미술공간 프로젝트 디렉터였던 백지숙은 “민중미술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한국의 현대미술은 얼마나 가난하고 심심하며 무기력했을 것인가”7)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글의 말미에 이 전시를 “1980년대 민중미술을 기점으로 변화해온 분단 한국의 정치적 미술이, 현실과 경쟁하면서 혹은 현실의 재현과 경쟁하면서, 만들어온 역동적인 ‘지도의 콜라주’ 정도로 볼” 것을 요구한다. 1979년부터 2000년까지 민중미술에 관한 연표는 한국 현대미술의 주요 지표들을 한눈에 살펴보게 한다.


왼쪽 『시각의 전쟁』(The Battle of Visions), 백지숙, 김희진 기획. 페터 요흐, 알렌 데수자, 최민, 서동진, 백지숙 공저. 서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05. 오른쪽 『Activating Korea: Tides of Collectives』, Govett-Brewster Art Gallery and Insa Art Space of the Art Council Korea, 2008.

왼쪽 『Battel of Visions』, 페터 요흐, 알렌 데수자, 최민, 서동진, 백지숙 공저, 서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05. 오른쪽 『Activating Korea: Tides of Collectives』, Govett-Brewster Art Gallery and Insa Art Space of the Art Council Korea, 2008. 사진제공 아르코 미술관 아카이브

2년 후 2007년 뉴질랜드에서 열린 동명의 전시와 연계된 책 『Activating Korea: Tides of Collectives』 역시 1980년대 민중미술이 이후 미술세대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다룬다. 전시 자체는 뉴질랜드 뉴플리머스의 고벳 브루스터 갤러리와 서울 인사미술공간이 공동 기획했고, 박찬경, 배영환, 최정화, 임민욱, 오형근 등이 전시에 참여했다. 공동 기획자였던 백지숙은 2007년 미군에 저항하는 촛불집회나 시위, 그리고 2002년 월드컵 국가대표 선수단의 공식 컬러인 빨간 색과 그 티셔츠를 입은 응원단 등 당시의 모습에서 1980년대의 투쟁의 모습을 떠올리며” 2005년의 연장선 안에서 민중미술의 전후를 연결하고, 특히 2000년대 현재와의 접점 가능한 지표들을 설정한다.


이처럼 전시 도록 겸 연구 출판물로서 기능하는 책들은 한국어·영어 합본으로, 혹은 영어판만 별도로 출간되었다. 2012년 포럼에이와 현실문화연구가 함께 펴낸 책『Being Political Popular: South Korean Art at the Intersection of Popular Culture and Democracy, 1980-2010 』(마지막 혁명은 없다—1980년 이후, 그 정치적 상상력의 예술)은 평론가이자 큐레이터 이솔이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 대학 미술관에서 기획한 동명의 전시 도록이자 전시 일부로 제작된 출판물이다. 한국어판과 별개로 영어판은 전시와 동일한 제목으로 따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민중문화 생산과 대중문화의 관계, 1990년대 중반 이후 작가들의 생산방식에서 시각예술과 대중적인 문화의 관계 등을 다루며, 역사·문화·미술사학적인 맥락을 제공하는 성완경, 이남희, 김창남 교수의 원고와 함께 일차 자료로서 임민욱, 오형근, 김상돈 등 작가 글과 선언문을 수록했다.


미술관이 연구를 전제로 한 책을 구상할 경우, 대다수가 선집 형식으로 제작된다. 개인전이나 기획전과 연계된 책에서도 원고 편수가 5~6편, 많게는 8~10편 정도로 다양한 필자의 원고가 포함된 걸 볼 수 있다. 이때 출판물은 전시의 외연을 확장하고, 또 인접 학문과 연결하고, 전시 주제의 전후 맥락과 주요 지표들을 보여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기관출판 가운데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 도록 상당수가 선집 형식으로 제작되는데,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2018년 『Awakenings: Art in Society in Asia, 1960s–1990s』(세상에 눈뜨다: 아시아 미술과 사회 1960s–1990s) 전시 도록은 아시아 리얼리즘 실천을 일본, 싱가포르, 한국의 각 지역적인 맥락 안에서 해석하고 풀어내면서 동시 이들이 어떻게 교차하고 어떤 시간성을 공유하는지 각 지역의 필자를 통해서 풀어낸다. 전시 자체가 도쿄, 싱가포르, 한국의 미술관이 공동 기획했기에 수록되는 내용 역시 공통의 현상과 주제에 대한 세 기관의 미술사적인 관점과 해석을 풍부하게 드러낸다. 한편, 국립현대미술관 50주년 기념전의 책 『The Square: Art and Society in Korea 1900-2019』(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는 15편가량의 원고와 함께 서울, 과천, 덕수궁의 세 개관 전시 내용을 한 권으로 엮어서 한국의 근현대미술사를 전체적으로 그리고 입체적으로 소개한다.


선집이라는 형식


『Climatization: Field Notes from the Short 10 Years (2000-2010) of Art and Making Things Public in Korea』, Binna Choi, Charles Esche, Beck Jee-sook, Youngchul Lee, Bo-Seon Shim, Sung Won Kim, Haegue Yang, Eungie Joo. Seoul: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KAMS)

『Climatization: Field Notes from the Short 10 Years (2000-2010) of Art and Making Things Public in Korea』, Binna Choi, Charles Esche, Beck Jee-sook, Youngchul Lee, Bo-Seon Shim, Sung Won Kim, Haegue Yang, Eungie Joo. Seoul: Korea Arts Management Service(KAMS)

새로운 필진에게 신작 원고를 청탁해 연구서나 이론서를 만드는 것만큼 이상적인 작업은 없다. 여기에 한국어·영어 합본이 아닌 분권으로 출간할 경우, 최소 1년 반이라는 시간이 할애된다. 그럴 때는 오히려 기존에 출간된 원고를 하나의 주제 아래에서 선별하여 묶어내는 작업 역시 요긴하다. MIT 프레스와 화이트채플의 공동 발간물 “도큐먼츠”(Documents) 시리즈가 그러하다. 과거 원고가 어떤 주제와 맥락에 놓이느냐에 따라 또 읽히고 이해되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국내 사례로, 2018년 4월 출간된 『Access to Contemporary Korean Art 1980–2010』(접근: 동시대 한국미술 1980-20108)이 있다. 한국 현대미술 비평문 가운데 주요한 문헌을 선정하고, 선정 이유 및 비평문의 의의, 중요성을 담아 책을 펴냈다. 이렇게 선정된 원고는 총 13편으로 김지하, 김윤수, 심광현, 박찬경, 박모(박이소), 박신의 이영욱, 이영철, 김장언, 서동진, 신학철의 비평문이 있었다. 이 책의 편집위원들이 밝혔듯이 이 책은 당대 비평문 기록을 통해 동시대적인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다각적인 관점으로 한국미술을 확장시켜 보여준다.


이보다 2년 앞서, 『Resonance of Dansaekhwa (단색화의 공명)』 출간에 이어 두 번째로 예술경영지원센터가 펴낸 영문 서적 『Climatization: Field Notes from the Short 10 Years (2000-2010) of Art and Making Things Public in Korea』는 2000년대 동시대 한국미술 현장을 가늠하는데 몇 가지 키워드를 선정하고 이와 관련된 기존 원고를 골라내고 다시 감수하여 출간한 것이다.9) 이 책은 2000-2010년대 동시대 미술과 민중, 대중, 공공과 관련한 실천들을 살피고, 이런 실천을 연결하는 장치로서 공공미술프로젝트나 비엔날레, 대안공간 등을 다룬다. 위트레흐트 카스코 아트 인스티튜트의 디렉터 최빛나가 책임 편집으로 참여했고, 수록 원고로는 찰스 에셔의 광주비엔날레 2002 전시 도록 글, 백지숙의 『시각의 전쟁』 (2005) 전시 도록 글, 이영철의 2005 안양공공미술프로젝트(APAP) 관련 글, 대안공간에 관한 심보선의 글, 에르메스 재단 10주년 미술상 전시 도록에 수록된 김성원의 글, 그리고 2009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양혜규의 전시 도록에 수록된 주은지와 대화가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출판한 『Toward a Poetics of Opacity and Hauntology』(빨강 파랑 노랑), 『Red Asia Complex』(레드 아시아 콤플렉스). 사진제공 구정연

MMCA 작가연구 총서 『Im Heung-soon: Toward a Poetics of Opacity and Hauntology』, 『Park: Red Asia Complex』. 사진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앞서 언급된 책들이 기출간 원고를 다시 엮어 펴낸 것이라면, 신작을 의뢰하여 제작된 연구 책자로는 MMCA 작가연구 총서가 있다. 이 시리즈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국현대미술 작가 연구와 비평적 글쓰기를 활성화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평론가 오광수, 서성록은 『우리 미술 100년』 발간 서문에 “흔히 미술사는 미술의 이야기가 아니라 미술가의 이야기란 말이 있다. 곧 미술사의 중심에 미술가가 있다는 말이다.”라고 썼다.10) 말 그대로 미술사가 미술가의 활동을 담은 역사라면, 한국미술 연구의 또 다른 갈래로서 작가에 관한 공동 혹은 학제간 연구가 가능하다. 이런 의도 아래 작가연구 시리즈는 영어판 분권으로 발간되고, 해외 미술사가와 평론가에게 연구 기회를 제공한다. 2018년 임흥순의 『Toward a Poetics of Opacity and Hauntology』을 시작으로 2019년 박찬경의 『Red Asia Complex』가 나왔다. 두 책 모두 국내외 연구자들의 원고를 수록한 선집 형식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나, 작가의 작품을 보여주는 방식에서 약간 다르게 편집되었다. 첫 번째 책은 작품 연표를 통해 작가의 주요 작품들을 충실히 보여주는 지면을 마련했고, 두 번째 책은 원고 도판을 제외한 작품 이미지가 수록되지 않았다. 대신 박찬경 작가가 집필한 주요한 원고를 일종의 작가적 실천으로서 포함해 수록했다.


나가며


어느 때보다 한국미술을 다루는 영문 서적 출간이 활기차다. 얼마 전, 국립현대미술관은 『소장품 선집 300』의 영어판을 출간했고, 한국미술연구사업의 일환으로 한국어·영어판 발간을 위한 한국 근현대미술사 개론서를 준비 중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를 위한 인프라 작업도 한창이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마련한 다국어 용어 사전은 한영 번역에 주요한 참조가 되었고, 또 한국미술 해외 출판 지원에 시각예술 전시도록·자료 번역 지원까지 영문 서적의 제작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책의 출간 과정만큼 중요한 것은 출간 이후이며, 여전히 책의 유통은 개인과 기관 모두가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다. 책의 본격적인 여정은 인쇄소에서 나오는 순간 시작된다. 나오자마자 사장되거나 금세 잊힌 출판물이 되지 않으려면, 그 책이 기록한 역사와 내용을 다시금 말과 대화로 확장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한국미술을 전파하는 방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2016년 예술경영지원센터가 펴낸 『Resonance of Dansaekhwa』과 『Climatization』 은 종이책보다는 일종의 공공 데이터로서 누구나 무료로 쉽게 PDF 파일을 공유, 활용할 수 있게끔 제작된 책들이었다. 당시 PDF 파일 유통을 선택한 것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한국미술의 정보 접근성을 높이려는 전략이었다. 2020년 3월 코로나19 발발 이후, 전 세계 미술관이 일제히 잠정 휴관되었고, 상당수 미술관은 하나의 대안이자 자구책으로 온라인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전시 관람 중단에 해당 전시 도록을 온라인에 개방하여 무료 다운로드 서비스를 제공한 사례도 있었다. 코로나19 사태는 미술관 전시 환경, 관람 문화, 교육 및 출판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한다. 특히 한국미술 연구와 확산을 위해 종이책 일변도에서 벗어나 한국미술 콘텐츠를 다양한 플랫폼으로 확장하려는 새로운 전략 마련이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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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최초의 영문비평서」, 『아트인컬처』, 2020년 8월 18일자, http://www.artinculture.kr/online/3237
2)「책 한 권이 ‘일’냈다... 미술도 한류다」, 『서울경제』, 2020년 7월 9일자, https://www.sedaily.com/NewsVIew/1Z58HNPOYR
3) “A Full View, at Last, of Modern Art in South Korea”, The New York Times (June 25, 2020), https://www.nytimes.com/2020/06/25/arts/design/korean-modern-art-book.html
4) 이 책은 비매품으로 기획되었다. 해당 파일은 예술경영지원센터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 https://www.theartro.kr:440/eng/archive/publication_view.asp?idx=22&b_code=52
5) 2019년 아르코미술관 주제기획전 《미디어펑크: 믿음 소망 사랑》 연계 행사 <기록과 담론 사이: 출판과 그 기억들>, 서울: 아르코미술관, 2019년 10월 12일. 길예경, 구정연, 박재용, 백지홍이 패널로 참여했다.
6) 학술행사의 공식 명칭은 <2008 광주비엔날레 국제학술행사-서울 8008 한국현대미술의 ‘현실’과 ‘발언’, 그 비평적 가능성의 모색>(2008.10.25.-10.26.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이다. 저널 『볼』 010 8008 (서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08), 3쪽.
7) 백지숙, 「2005년의 민중미술 또는 민중미술의 2005년」, 『The Battle of Visions』(백지숙, 김희진 기획). 이 책의 주요 필진으로는 알렌 데스자, 최민, 서동진, 백지숙이 있다.
8) 이 책의 편집위원으로 안소현, 최빛나 & 현시원, 김종길, 김희진, 김현진이 참여했다.
9) 이 책 역시 비매품으로 기획되어,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무료로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 https://www.theartro.kr:440/eng/archive/publication_view.asp?idx=779&b_code=52
10) 오광수‧서성록, 「우리 미술 100년의 길」, 『우리 미술 100년』(서울: 현암사, 2001), 9쪽.


구정연

불문학과 미술이론을 공부했다. 제로원디자인센터에서 디자인 전시 큐레이터를 거쳐, 미디어버스와 더북소사이어티를 공동 운영했다. 《예술가의 문서들: 예술, 타이포그래피 그리고 협업》(2016) 전시를 공동 기획했고, 『래디컬 뮤지엄: 동시대 미술관에서 무엇이 '동시대적'인가?』(현실문화, 2016)을 공역했다. MMCA 작가연구 총서 및 『국립현대미술관 연구 2019: 초국가적 미술관』, 아카이브 연구 포럼 <부재하는 아카이브: 디자인, 건축, 시각문화>(2019)를 기획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