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월간미술 편집부
기획·진행 배우리 기자
한국콘텐츠진흥원은 1월 25일 온라인으로 개최한 ‘2021 지원사업 설명회’를 통해 비대면 실감콘텐츠 육성 청사진을 공개했다. 올해 총 지원 예산은 4,842억 원, 지난해보다 544억 원,**12.6%**가량 늘어난 규모다. 2019년 ‘콘텐츠 산업 3대 혁신 전략’과 2020년 ‘디지털 뉴딜 성장전략’을 정책 방향으로 삼아 콘텐츠 산업을 우리나라 주력산업으로 육성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이 기운은 미술계에도 도심 한복판, 그리고 몰입형 전시들을 통해 바로 전해졌다. 디스트릭트의 〈웨이브〉와 〈팀랩: 라이프展〉, 〈빛의 벙커〉 같은 직관적인 작품들이 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미디어아트는 1990년대 이후 일반적인 미술 장르가 되었고 다양한 주체의 지원과 활동도 이어졌지만 그간 다수가 즐기는 예술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증강현실과 가상현실 기술의 발전, 5G 상용화, 급격하게 발전한 비대면 문화 등과 맞물려 생활 속으로 성큼 들어왔다. 전시장 안이 아닌 도시 표면에서 작가를 만난다는 건 미술이 그동안 고민해온 ‘공공성’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꿀 것으로 예상된다. 갑자기 찾아온 것처럼 보이는 세계는 알고 보면 예견돼 있었다. 미디어 아티스트와 관계자들은 이미 다중세계를 예감하고 비물질의 환영으로 중첩된 세상을 투영해왔던 것이다. 그들이 한 땀 한 땀 일군 파티클이 모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하지 않다. 이에 《월간미술》 3월호에서는 미디어 아티스트들과 도심 속 미디어아트를 만나보았다. 우리는 이제, 그들이 열어놓은 직관의 문을 통과하기만 하면 된다. 여러개의 문이 있겠지만 아마도 이 관문을 통해서 들어간 곳은 소비 쓰나미에 휩쓸리지 않는, 스스로 노를 저을 수 있는 세계에 더 가까울 것이다.
움직이는 사람을 위해
기술과 소프트웨어의 발전 속도를 학계의 연구속도가 따라갈 수가 없다. 프로젝션 매핑과 공간성에 관한 박사 논문을 쓰는 3년 동안 미디어아트 실천은 저만치 또 달아났다고 강이연 작가는 말한다. 그래서 미디어아트는 그간 그렇게 잡히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해서 미디어아트가 새로운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작가의 주특기, 프로젝션 매핑은 필름 프로젝션이었을 뿐 1930년대 이미 다 시도했던 것이다. 매체 특성상 협업이 많고 작업을 보여주는 플랫폼이 “미술계”가 아니다 보니 프로젝션 매핑이 동시대미술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오해 아닌 오해도 있다고 작가는 느낀다. 물론 미디어아티스트가 범하는 오류도 있다. 기술 이야기만 하는 것. 작가는 기술을 사용하더라도 그것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웬만해선 설명서가 필요 없는 작품을 만든다. 학식, 성별, 나이 구분 없이 누가 오더라도 쉽게 작가의 작업을 눈치채고 체험할 수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트앤테크 플랫폼에서 보여준 〈드로잉 소셜 버블〉이 그렇다. 관람객은 직관적으로 작품 속을 거닐고, 바닥을 점유하고 다른 이와 부딪치기도 하면서 멀찍이 떨어지라는 명령이 내려진 현재 상황을 문득문득 예감할 수 있다. 이 작업은 파라다이스 시티에서 오는 9월 다시 만날 수 있다. 전시장이 아닌 통로에서.
공간을 통째로 몰입적 가상현실 세계로 변환하는 작가의 재주도 재주지만,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캐스트코트(Cast Courts)에서 선보인 〈Casting〉(2016) 작업의 일화가 흥미롭다. 1873년 오픈한 캐스트코트는 전세계의 조각상과 건물 복제품을 교육 목적으로 모아놓은 곳이다. 원본이 아닌 복제품이라는 이유로 부서질 뻔한 작품들은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사라진 원본을 대신하게 되었다. 이미 실재와 환영 사이를 넘나들던 작가가 이런 곳을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3~4개월 동안 보수적인 박물관 관계자들을 설득한 후 거대한 조각들을 빛으로 다시 떠냈다. 빛, 아니 그림자는 조각에 틈새를 만들고 분해하고 새로 쌓길 반복하며 진짜와 가짜, 표면과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환영의 아우라를 창조했다. 이 작품은 처음 프로젝션 매핑을 한 날, 영구 소장품이 되었다. 진짜 재밌는건 여기부터다. 박물관 큐레이터는 소장품 목록에 새로 프로젝션 매핑 카테고리를 만들면서 디지털렌더링, 디지털 드로잉, 실물 드로잉, 목업들을 모두 아카이빙 하고 자신들이 직접 작품을 설치할 수 있도록 프로젝션 매핑 워크숍까지 열었다. 눈여겨볼 만한 태도이자 환경이다.
최고화질을 구현하는 LED 모니터도5년 후에는 다른 매체로 바뀔 거라는 예언을 내놓은 작가는 물리적 환경과 매체 환경이 공존하게 될 근미래에 대한 궁금증을 드러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머리만 남아 광고와 영양분을 주입당하기 전까지는 작가가 우리의 능동적 인지능력 재활에 힘써줄 것으로 보인다.
빛으로 잠시 만나는 예감들
인터랙션 디자인을 전공한 손미미와 물리학전공자 엘리엇 우즈는 2009년 ‘김치앤칩스’를 결성해 서울을 기반으로 미디어아트 작업 을하고 있다. 미디어 작업이 일으키는 감흥도 물론 큰 부분이겠지만 김치앤칩스가 진행한 다양한 행사와 연구, 프레젠테이션들이야말로 오랫동안팀을 꾸려올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보인다. ‘미디어아트키친(Media Art Kitchen)’을 개최하여 현대 미디어아트 창작에 대한 대화를 이끌어나가면서 손미미는 서울문화재단에서 주최하는 첫 번째 ‘다빈치 크리에이티브’(2014)를, 엘리엇우즈는 아방가르드 테크노와 일렉트로니카를 위한 ‘UNFOLLOW Festival’(2019, 파주)을 감독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클럽하우스’에서 현대미디어 작품의 예를 모아가며 태평양, 달, 뇌와 공기 같은 주제로 일련의 대화를 주최하고 있다. 대화 후에도 참여자들이 각자의 리서치를 이어갈 수 있도록 라이브 노트를 엮고 출판하고 있다.
빛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실재와 물질적인 것을 질문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LightBarrier〉는 거울에 비친 빛이 허공에 거대한그림을 그리며 물질과 비물질, 실재와 가상, 존재와 부재 등이 만들어내는 혼돈과 모호성을 작품에서 재구성한다. 작품에는 컴퓨터 비전과VR, 프로젝션 매핑, 머신러닝 등이 사용된다. 특히 공기 중에 흐르는 광선을 발견해 지정된 장소로 모아주는 데는 김치앤칩스만의 컴퓨터 비전이 사용된다. 관람객은 이런 기술에 대한 인지 없이도 공간을 새로 구축하는 빛의 향연을 만나볼 수 있다. 더 궁금한 사람이라면 김치앤칩스가 공유한 작업과정과 온라인 오픈소스 플랫폼을 통해 이들이 사용한 기술을 알아볼 수도 있다. 사회적 가치실천에 공헌하고자 하는 이러한 공유는 그들이 거대 자본이 들어가는 야심만만한 작업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현재 이들이 진행하고 있는 작품에는 두 개의 대형 정밀 광학거울이 필요한데 전문 광학 회사는 1,000만 달러의견적을 제시했다고 한다. 작품으로 사용하려는 작가 입장에서는 터무니없는 가격이기에 노선을 바꿔 천체망원경 제작 커뮤니티와 논의하고 연구하며 그들이 필요로 했던 엄격한 허용 오차범위 안의 거울 제작에 몰입 중이다.
올해 6월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는 천체망원경 제작기술을 적용한 작품과 2018년런던에서 선보인 〈Halo〉를 만나볼 수 있다. 〈Halo〉의 99개의 로봇 거울은 물안개 위, 태양을 예감할 수 있는 작은 태양을 불러낸다. 이 작업은 태양과 바람, 기술과 관객의 기다림이 만나는 찰나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마치 어떤 것에도 복속되지 않기 위해 항상 달아나야만 하는 어떤 정신처럼, 김치앤칩스의 시도들처럼.
동시대 동양화
사람들은 자신의 이해에 따라 짓궂을 때가 많은데 동양화를 전공하고 미디어 작업을 하게 된 이예승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동양화에서 어떻게 미디어 작업으로 간 건지, 붓으로 그리면 되지 왜 컴퓨터로 그러고 앉아있는지 다들 궁금해했다. 동양화와 미디어 작업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스스로 납득할 때까지 답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점 투시. 동양화 전공자는 구도를 잘 못 잡고 납작하게 그린다는 몰이해가 있기는 했지만 다시점에 익숙하다는 건 X, Y뿐아니라 ‘Z축’에서 자유롭다는 뜻이었다. 새로운 매체로 넘어가기 전, 작가는 이미 중첩된 화면을 구축하고 여러 시점에서 볼 수 있는 프레임을 짜고, 사다리가 필요할 만큼 큰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동양화가 가진 시점과 반투명한 화면의 겹침, 두루마리 그림의 운동성 등에 얼리어댑터 기질이 더해져 스크린이라는 도구로 흘러왔을 뿐이다. 어느덧, 그녀가 꾸리는 공간은 마치 기명절지나 산수풍경이 공간에 그대로 옮겨진 것 같은 형상을 띠었고, 관람자는 다양한 지점, 다양한 시점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미디어아트에도 숙성의 시간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현란한 기술을 보여주던 미디어아트의 시대는 진즉에 갔다. 실제로 작가는 2014년보안여관에서 전시를 선보이면서 그 전까지의 미디어 작업은 학습 기간의 것이라고 느꼈다. 미디어 작업도 정확한 계산으로 다 되는 것 같지만 붓질처럼 반복적으로 수행하듯 해야 한다. 일정 기간이 지나자 자신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순환하는 원형 스크린이나 서로 스미고 겹치는 레이어에 동양철학을 담는 데 더 담대해졌다. 최근 선보인 〈변수풍경〉에는 반고 신화를 가져와서 전구, 스피커, 스크린과 오브제 등이 서로 연결된 듯 작동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다양한 시점은 작품이 지배하는 공간 속 어떤 지점에 자리하는지, 어떤 매체를 통해 감각하는지에 따라서 달라진다. 선형의 내러티브가 없는 혼재된 경험은 세상을 파편적으로 인식하는 경험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우리 몸이 기계와 함께 세상을 감각하고 있음도 작가가 차려놓은 사물 사이를 거니는 사이 알 수 있게 된다.
작가는 부재와 현존을 동시에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증강현실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QR코드로 없던 이미지를 잠시 불러내 조우하는 이 사건은 예술 향유가 더 쉬워질 것도 예감하게 한다. 지금은 미디어아트의 호황기가 맞다. 광고 전광판이 반짝반짝 눈을 현혹시키는 시대, 문제는 ‘어떻게 예술로 남을 것인가’다. 작가는 공간 관찰과 사유를 차곡차곡 쌓으며 작품을 차별화하고 있다. 코엑스 전광판에서도 일부러 옛 기물을 느릿느릿 움직이게 했다.
유행과 동시에 식상함이 찾아오겠지만 그러는 와중에 미디어작품에 대한 이해는 폭넓어질 것이고 아마도 눈물을 쏙 빼줄 아우라가 있는 미디어작품이 나올 거라고 작가는 믿는다.
빛으로 빛을 기리기
“이이남”은 일종의 브랜드가 되었다. 너무 깊숙이 우리 일상에 들어와 있어서, 혹은 ‘바라봄 ’그 자체만을 요구하는 작가의 아주 작은 소망 탓에 동시대 미술 담론과는 떨어진 경향이 없지 않지만, 그의 작품은 언제 어디서든 우리를 관조와 침잠의 길목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동양화든, 미디어아트든 다양한 부문의 기획전에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거니와, 각종 국제대회 개막식, 길거리, 국립중앙도서관 등 일상 공간에서도 목격할 수 있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하지 않는 미디어아트의 특장점 덕분에 행인은 (광주 톨게이트 같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그의 작품을 마주하는 관람객이 된다.
동서양 거장들과의 내밀한 대화를 통해 발전한 작품은 작품이 설치될 지역의 장소성, 역사성과 맞물려 다시금 진화하고 있다. 〈박연폭포〉는 포스코센터에서 기업시민헌장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2020년, 재탄생했다. 작가는 철강 주조에서 영감을 얻어 붉은빛과 하얀빛을 띠는 폭포수에 〈철의 사계〉라는 이름을 붙였다. 외부와의 협업은 지난한 과정을 동반하지만, 작가는 상생과 공존의 키워드를 녹일 수 있는 곳이라면 그 과정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번 3월말, 중국 허난성에서는 그곳 유산인 〈천리강산도〉, 〈청명상하도〉를 기반으로 한 영상을 너비325m, 높이 16m 규모 미디어파사드로 선보일 예정이다. 밤이 되면 거대한 밀밭과 연결된 관람석에서 중첩된 프로젝션의 6만 안시 화면을 감상하게 된다. 작가가 반복적으로 제시하는 고전의 이미지와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일련의켜는 각기 다른 시간과 장소를 연결하고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아준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영원한가치”라는 다소 멀게 느껴지는 이상도 잡아 끌어오고 있다. 마구잡이로 차용된 고전 명화이미지 속에서 그의 작업들이 더 빛을 발하는 이유다.
그는 더 가까이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2020년 11월 광주 양림동에 새로 개관한스튜디오에 카페 겸 갤러리를 마련했다. 건물 외벽 미디어파사드와 전시장까지 완성되고 나면 공간전체 안을 흐르면서 혹은 머무르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비대면 시대의 초입이면서 대면시대의 막바지에, 천천히 움직이는 몰입의 영상을 제공하는 이 카페는 낡아보이지만 여전히 유효한행위인 ‘명상’의 공간으로 변해갈지도 모르겠다.
이이남은 MR. MEDIA LAB 인공지능 팀과3년째 협업 중이다. 인공지능을 단순히 기술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이며 동양적 사고로 보는 시각들에 대해 연구 중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기자가 집요하게 파고든, “도대체 넘쳐나는 디지털재생산 이미지들과 어떻게 대결할 것이냐”라는 질문의 답은 자연과 우주의 섭리를 다층적이고 직관적으로 경험하게 해줄 작품으로 들려주지 않을까.
서리서리 그리고 구비구비
미디어아트를 하게 된 건 지하철역 스크린에서 전시를 하는 클래스 하나 보고 들어간 학교 덕분이다. 당시 작가가 미디어아트에서 읽은 매력은 ‘확장성’이었다. 미디어파사드는 도심에서 커다란 규모로 진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작가는 운 좋게도 처음 베를린에 와서 미디어파사드를 하리라고 점찍은 건물, 훔볼트포럼에 10년 만에 〈음양수화(陰陽水火)〉를 쏘았다. 작년에 ‘서울로미디어캔버스’에는 작정하고 지원했다.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 건설에 대한 토론회에서 장애를 가진 특수아동 부모들이 무릎을 꿇는 다소 충격적인 장면을 서울 금싸라기땅 한복판에서 크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 장소가 적격이었다. 누가 봤는지는 몰라도 파사드 작업은 딱딱한 땅에 낭창하게 침투하기 좋은 매체인 것은 확실하다. 작가는 말하고자 하는 걸 허리춤에 서리서리 넣었다가 적정 장소가 나타나면 굽이굽이 펴서 ‘쑝’ 하고 보여준다. 작품은 각 전시장소에 맞는 방법으로 변신한다. 〈블랙 에어〉도2019년 제3회 VH어워드 후보에 올라 현대차 마북캠퍼스에 위치한 ‘비전홀’에서 첫선을 보이고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의 스크린으로 갔다가 베를린에서는 2채널 설치로, 최근에는 작은 모니터로까지 이주했다.
최찬숙은 민간인통제선 북쪽 마을 양지리에서 느낀 땅의 감각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안착되고 평온한 방식이 아니라 그 반대다. 땅이라는 존재가교감과 공존의 대상이 아닌 소유의 대상으로 전락했기 때문. 이주여성이라는 소재에서 촉발된 타자성은 자연스럽게 땅이 이어받게 된다. 〈블랙에어〉에서 보여주는, 구리 채굴로 깎여나가며 기상관측을 위한 다국적 전파망원경들이 들어선 황량하고 거대한 붉은 땅은 유동하며 흩어지고, 결국에는 검고 텅 빈 우주공간으로 이동하게 된다. 작가는 대상화되지 않고 붙잡을 수도 없는 땅을 보여준다.
땅. 인간이 경계를 가르고 소유한 지 얼마되지 않았다. 이 소유 개념은 최근 가상세계로그대로 옮겨가고 있다. 비물질인 가상세계에서 소유가 더 뚜렷해진다는 것, 그러니까 이미 지구 이곳저곳으로 이 화면에서 저 화면으로 이주하는 것이 생활화된 작가가 지금 이 시점에서 다루고자 하는 “웃긴” 소재다. 손에 잡히지 않는 땅에 대한내용은 비물질 데이터로 이주하면서 다양한스크린에 이식된다. 가상이 겹치는 땅 위에, 솟아나는 도시 표면 위에 작가는 그림자를 중첩해 새로운 지형, 혹은 지역을 제시한다. 아무 장소도 점령하지 않는 방식으로.
나는 그것을 바라보지 않는다. 나는 그것의 일부이다.
스크린 이후의 스크린, 중첩세계에 대한 증강표면 미디어파사드(Media Façade)
미디어아트, 다중세계로 가는 문 - QU-E-ST 구-애스트 : 구애하는 예술가
월간미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