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배우리 기자
“퀘스트(Quest)는 롤플레잉 게임에서 주인공이 NPC(Non-Player Character)로부터 하달받는 일종의 임무를 뜻하는 것으로 게임 속에서 이용자가 수행해야 하는 임무나 특정 행동을 지칭한다.” VR기기 이름이자, 이미 VR기기 산업에서 크게 성장한 게임에서 자주 쓰는 용어 ‘퀘스트’를 프로젝트 이름으로 가져왔다. 〈QU-E-ST 구-애-스트: 구애하는 예술가〉는 현실과 가상을 잇고자 하는 동시대 미디어 아티스트들의 VR미술탐험이다. 신기운 하석준 김현정 김희선 노치욱 이태수 임도원 한지연 작가는 VR의 VR에 의한 VR을 위한 작품을 만들었다. 2020년 12월 29일부터 1월 4일까지 관람객들에게 임무를 하달하려고 했던, 물질 공간에서의 전시는 역시나 코로나19로 제대로 선보이지 못했다. 그리하여 2월 21일에 진행된 아티스트 토크는 아예 가상공간에서 진행되었다. 월간미술은 가상공간을 한창 꾸미고 있는 하석준, 신기운 작가를 만났다.
도시와 미디어파사드
〈퀘스트〉의 시작이 궁금하다.
신기운 작가와 기획자들이 세운상가에 모여 열게 된 스페이스바(SpaceBA)라는 공간이 있다. 프로젝트가 있을 때마다 품앗이하듯 모이고 전시도 했다. 그러다가 하석준을 통해 VR을 접하게 됐고 서울문화재단 온라인 미디어 예술 활동 지원을 받아 스페이스바 멤버들과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미술계에서 VR을 사용하는 방법으로 기존 전시공간을 그대로 옮긴 것이 많았는데 진짜 공간을 경험한 입장에서 아쉬운 점이 많았다. 더구나 코로나19로 전시장에서 사람을 기다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VR 특성에 맞춰서 움직이고 체험할 수 있는 작업을 하게 되었다.
기술을 익히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신기운 대부분 미디어 관련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미디어작업에 감수성이 좋았다. 하석준과 그의 제자 박동준의 도움이 컸다. 시간이 제한되어 있어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초보 단계는 뗐다.
작품 내용은 무엇인가.
신기운 들어가는 공간부터 작가 여섯 명의 공간까지 7개의 공간이 있다. 각 작가는 자신의 과거와 연결하는 작업을 했다. 지난 작업에서 연결되는 작업도 있고, 어린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한 것도 있다. 각 공간에는 미션이 있다. 일반 미디어작업과 게임의 중간 정도라고 볼 수 있다.
게임을 접목한 이유는.
하석준 VR시장 안에서 게임 산업은 이미 크게 성장했고 수익구조도 확실하다. 작가들의 미적 기법과 게임기술을 접목한 창작물을 온라인 마켓플레이스에 업로드 해서 새로운 수익모델이 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기획하게 되었다.
VR기기로 작업한 소감을 말해준다면.
김희선(Spatial로 인터뷰 참여) 일반적으로 일상적 공간에서 체험하지 못하는 것을 체험하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아직은 기술적으로 약간의 제약이 있지만 VR이 내가 원하는 작업의 체험이나 공간감 같은 것을 전달할 수 있는
매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미지의 공간이나 세계를 탐험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자 한다.
신기운 가상공간이 또 하나의 물질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찾은 것 같다. 2, 3, 4차원이 아닌 완전한 가상공간에서 뭔가를 보고 전달받는다는 건 새로운 일이다.
김희선 작가는 이미 20~25년 전부터 미디어작업을 해왔다. 그때와 지금 미디어 작업을 하는 데 달라진 점이 있는지.
김희선 그때 이미 최첨단 기기를 사용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들어와 보니 미디어아트 진행이 느렸다. 작업은 혼자서 개발한다고 되는게 아니고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환경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그런 여건이 조금씩 갖춰지고 있다. VR 기술이 시간이 지나면서 발전해 기술적으로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 지금 당장 모두 VR헤드셋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앞으로 몇 년 안에 모두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 콘텐츠는 아직 부족한 상황이라 제대로 만들어서 관객들과 제대로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석준 며칠 전에 한 통신사에서 정식 발매한 VR헤드셋 오큘러스 퀘스트2는 3일 만에 1차 물량이 완판됐다. 가격도 많이 저렴해졌고 성능 좋은 컴퓨터 없이도 구동한다.
신기운 VR기기는 앞으로 1~2년 안에 더 가볍고 더 좋아질 거다. 전체는 아니지만 전시의 일부는 이걸로 대신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기기가 휴대전화처럼 보급되기 전에 전시를 기기에 담아서 보내주는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 사람이 전시를 보러 오는 게 아니라 전시가 관객에게 가는 방식으로.
현재 VR기기로 할 수 있는 것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려 달라.
하석준 오큘러스 앱 중에 ‘빅스크린’이라는 앱이 있다. 거기 가면 가상 극장에서 시간에 맞춰 작품을 상영한다. 팝콘도 먹을 수 있다. 다음 세대는 훨씬 더 가볍고 몰입감 있는 하이퍼리얼리즘으로 갈 것이다. 지금도
알렉스라는 게임은 굉장히 리얼하다. 만약에 이런게 일반화된다면 시각예술 작가들이 할 게 되게 많아질 거다. 미술계가 아니더라도 상업미술 순수미술 디자인 쪽이 혼재될 거다. 툴도 쉬워지기 때문에 아이디어만 있으면 쉽게 만들 수 있다. 어느 시점이 되면 모르는 사람도 VR기기를 사야한다. 아이폰 따라 사던 시절이 있었던 것처럼 “아싸”가 안 되기 위해서 다 해야 한다.
아티스크 토크 형식이 새롭다.
신기운 2020년 12월 29일부터 1월 4일까지 전시를 열 계획이었지만 세운홀 개방이 불가능해져서 스페이스바에서 작게 전시를 열었다. 그때 생각한 것이 가상공간 아티스트 토크다.
공간 설명을 더 해준다면.
하석준 ‘Spatial’이라는 가상회의용 애플리케이션 공간이다. 여기 모여 회의를 해봤는데 줌이랑 다르게 옆에 있는 것 같았다. 존재감이 확실히 느껴진다. 그래서 회의용 공간을 전시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이게 오픈 공간이라 누구나 할 수 있는데 VR기기가 없으면 개념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2월 21일 관객들이 모바일기기로 접속하게 해서 전시장을 돌아다니며 프레젠테이션을 하려고 한다. VR헤드셋이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모바일 기기를 통해 접속해서 둘러볼 수 있다.
신기운 이곳은 실시간으로 여럿이 볼 수 있는 전시공간이다. 이렇게 활용하는 건 아직 우리밖에 없을 거다. 웹 VR전시장은 혼자 들어가서 아무도 없는 전시공간을 보지만 여기서는 이야기하면서 소통할 수 있다. 소리도 다 들리고 메모도 되고 공간에 그림을 걸 수도 있다.
VR을 활용한 작품의 의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신기운 다른 문화 쪽에서는 비대면에 대한 대비가 상당히 돼 있었다. 극장이 위기긴 하지만 넷플릭스가 대성공을 했다. 교육도 금방 비대면에 적응했고, 프리미어 리그도 관중 없이 경기하고 있지만 우리는 효과음을 다 넣은 영상을 보고 있다. 사진이나 미술에서는 고작 웹 VR전시장을 보여주는데 그게 대비가 된 것이었냐고 반문하게 된다. 이 작업은 그 대비를 위한 준비였다.
하석준 게임은 이미 기술적으로 엄청 발전했고, 그런 기술을 영화계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로케이션 촬영이 안 되니 가상공간을 촬영하는데 촬영 후 합성이 아니라 아예 공간을 만들어놓고 촬영을 한다. 디즈니 〈만달로리안〉이 그렇다. 미술이나 공연계에서도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공연 쪽에서 이 앱을 이용해서 공연했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문화 쪽에서 사용할 수 있는 좀 더 특화된 플랫폼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가상공간에 마켓플레이스가 형성되면 사람들이 다 몰릴 거다. 돈을 벌 수 있으니까. 그렇게 되면 가지 말라고 해도 다 모인다. 현금이 오고가는 시점이 곧 올 텐데 작가들이 거기서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먼저 와서 보고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작가들을 모아놓고 교육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장비 자체가 적응하는 데 시간도 걸리고 물질과 비물질 사이 갈등도 생기고 한참 쓰고 있다가 벗으면 존재에 대한 가벼움도 느끼는 부작용도 있지만 다음 세대는 금방 적응할 거라고 본다.
이전 개인 작업과 어떻게 연계되는지 궁금하다.
하석준 사실 나는 플랫폼에 대한 관심이 많다. 처음 작업한 것도 내 몸 자체가 플랫폼이었다. 모니터를 메고 다니면서 그 자체를 작품이 아닌 하나의 플랫폼으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 VR에 대해서는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연구했는데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나. 그때는 보관이 어려운 작업을 해체하고 이전하는 일을 했다. 지금은 팬데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주해야 하는 상황이다. 아예 이주는 아니고 여기와 같이 가는 걸 모색해야 한다.
적정 기술 공유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하석준 미디어아트 하는 사람들의 관심사다. 엔지니어는 아니기 때문에 적정 기술을 찾아서 응용하는 게 관건이다. 사회와 기술을 잇는 것이 미디어 아티스트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탈리아 예술학교에서 개발한 아두이노가 점차 알려지고 사용된 것처럼 말이다.
아직 가상세계가 와닿지 않는 면도 있다.
하석준 피할 수 있는 길은 없다. 빨리 갈아타든지 연구해야 한다. 아직 가상세계를 꺼려 하는 사람이 있는데 특히 활용할 수 있는 물질 공간을 갖고 있는 사람은 꺼릴 게 아니라 들어와서 이게 뭔지 보고 가상과 물질세계를 어떻게 연결할 건지 고민해야 한다. 기존의 미술관이나 잡지도 마찬가지다. 빨리 연구해서 기존의 매체와 어떻게
연계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앞으로의 연계활동이 궁금하다.
신기운 앞으로도 작가들의 VR 등 신기술에 대한 접근 가능성을 높여나가며 다양한 대안적 전시모델 창작을 꾸준히 할 예정이다.
하석준 플랫폼 만드는 일은 산업을 만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에 작가들 힘만으로는 할 수 없다. 펀드를 가진 사람, 베뉴 오너, 랜드로더, 국공립미술관장, 정책 연구하는 분들 도움도 필요하다. 이 프로젝트를 파일럿으로 지원할 수 있는 기금도 찾는 중이다.
나는 그것을 바라보지 않는다. 나는 그것의 일부이다.
미디어아트, 다중세계로 가는 문 : 미디어 아티스트
스크린 이후의 스크린, 중첩세계에 대한 증강표면 미디어파사드(Media Façade)
월간미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