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 동향

국립현대미술관, ‘젊은 역동성’을 찾아라!

posted 2021.09.14


신혜영


40주년을 맞은 <젊은모색>을 재점검한다. 1981년 <청년작가>전으로 시작한 <젊은모색>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신진 작가 발굴 프로그램이다. 20회에 걸쳐 약 400여 명의 젊은 작가를 소개했다. 올해의 주인공은 15명. 강호연, 김산, 김정헌, 남진우, 노기훈, 박아람, 배헤윰, 신정균, 요한한, 우정수, 윤지영, 이윤희, 최윤, 현우민, 현정윤이 참여했다. 회화, 조각, 영상, 설치, 사진, 도예,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고, 지역과 해외에서 활동하는 작가를 포함해 ‘고른 안배’에 중점을 뒀다. 필자는 <젊은모색>이 한국 미술계에서 지니는 상징성을 되짚는다. 신생공간 세대를 담아내는 적극적인 기획의 필요성을 지적하며, 생물학적 젊음이 아니라 젊은 미술의 역동성에 포커스를 맞추기를 권한다.


역대 <젊은모색> 포스터. 1981년 <청년작가>전으로 출발한 <젊은모색>은 국내 국립 미술관에서 가장 오래된 작가 발굴 프로그램이다. 올해까지 20회에 걸쳐 약 400여 명의 신진 작가를 대중에 소개했다. 이미지 아트인컬처 제공.

역대 <젊은모색> 포스터. 1981년 <청년작가>전으로 출발한 <젊은모색>은 국내 국립 미술관에서 가장 오래된 작가 발굴 프로그램이다. 올해까지 20회에 걸쳐 약 400여 명의 신진 작가를 대중에 소개했다. 이미지 아트인컬처 제공.

대안공간에서 신생공간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의 <젊은모색>전이 40주년을 맞았다. 1981년 <청년작가>전으로 시작해 1990년 <젊은모색>으로 명칭을 바꾼 뒤 올해로 스무 번째 개최되었다. 미술에서 ‘젊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대체로 미술계에 새로 들어온 신진들(newcomers)의 활동을 일컫는 것일 테지만, 단순히 생물학적 나이의 젊음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 미술제도에서 인정된 양식 및 실천과는 차별화된 새로운 특징을 보이며 기성의 위치를 넘어서 이전의 것을 과거로 보내는 ‘예술적 나이’가 젊음의 본질인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생산장은 왜 그토록 ‘젊은 예술’에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것일까. 그것은 보다 많은 소비자를 확보한 기성예술의 경제적 안정을 등지고 소규모로 제한된 생산장에서 확실한 보장이 없는 새로운 예술을 시도하는 그들의 실천이, 사실상 예술장 전체를 추인하는 동력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1)


1980년대 중엽 이후 일명 ‘신세대 미술’로 칭해지며 등장한 소그룹 운동은 한국 미술계의 위계질서에 큰 변화를 야기했다.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을 둘러싼 담론의 장이 열리고 1990년대에 이르러 제도가 확충되면서 양식 위주로 구성된 기존의 분파적 움직임보다 개별 작가들의 실천이 강조되었고, 한국 미술계는 ‘젊은 예술’의 유입을 더욱 필요로 하게 되었다.2) 특히 IMF외환위기 이후 국가 주도의 문화 예술정책의 일환으로 등장한 ‘대안공간’과 국공립 ‘창작스튜디오’는 1990년대 후반부터 신진 작가의 창작 및 전시 활동을 지원하여 미술관과 비엔날레 등으로의 진출을 도왔을 뿐만 아니라, 기업의 수상 제도, 상업 화랑의 전속 작가 제도, 아트페어나 경매 등의 시장 제도의 성장에 발판을 놓았다. 그 결과 200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비영리 전시 공간 위주의 ‘젊은 미술’이 동시대미술을 선도하는 것 같은 착시가 일어났다.


강호연, <리-레코드 바이올렛>, 혼합재료, 375×615×360cm, 2021. 작가는 시티 팝과 서울 야경 이미지를 이용해 팬데믹 이전 한국 사회의 호황기를 청각적,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이미지 아트인컬처 제공.

강호연, <리-레코드 바이올렛>, 혼합재료, 375×615×360cm, 2021. 작가는 시티 팝과 서울 야경 이미지를 이용해 팬데믹 이전 한국 사회의 호황기를 청각적,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이미지 아트인컬처 제공.

그러나 대안공간으로 대변되는 젊은 미술의 화려한 시대는 십 년이 채 지나지 않아 사그라들었다.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로 시작된 경제 악화로 인해 미술시장이 축소되었고, 전시 및 수상 제도 전반에서 기업 후원과 국가 지원이 크게 줄면서 시장 전체에 극심한 양극화가 일어났다. 대표적 대안공간들 역시 문을 닫거나 성격이 변질되면서 신진 작가의 미술계 진입과 활동 역시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는 작가들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자생적으로 생겨난 1970~80년대 미국의 대안공간과 다르게, 한국의 대안공간은 급작스러운 장의 확대로 젊은 작가를 발굴해야 하는 기존 제도권의 필요에 의해 발생되었음을 반증한다. 대안공간에서 시작해 제도권의 사다리를 충실히 오른 일부 작가들은 중견 작가로 확고한 위치를 정립하여 제한된 생산장에서 획득한 상징 자본을 시장의 경제 자본으로 치환하거나 교육장에서 대학의 전임 교원 지위를 얻을 수 있었지만, 애초부터 현격히 악화된 상황에서 시작한 신진 작가들은 장으로의 진입 자체가 어려워졌고 모든 책임을 스스로 감당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러한 악조건에서 2010년대 신진 작가들이 각자도생하기 위해 만든 곳이 이른바 ‘신생공간’이다. 국가, 기업, 기성 작가, 기획자가 주체가 되어 젊은 작가를 발굴했던 대안공간과 달리 신생공간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한 1980년대 초중반생 작가들이 스스로 설립 주체로 나섰다. 십대 시절 IMF를 겪고 사회에 진출할 무렵 금융 위기를 겪은 세대적 특징을 공유하는 이들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가능한 적은 임대료와 운영 비용으로 전시와 창작을 겸하는 소규모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3)


일각에서는 신생공간 시대가 끝났다거나 포스트-신생공간을 언급하기도 한다.4) 이러한 평가는 한편으로 맞고 다른 한편으로 틀리다. 2010년대에 설립된 신생공간 중 다수가 종료를 고했지만, 그만큼 많은 공간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5) 또한 이전에 신생공간을 운영한 이들 중 일부가 이후 다양한 플랫폼6)과 프로젝트를 기획하거나 또 다른 공간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이전에 비해 공간을 여는 것이 훨씬 가벼운 일이 되었다. 굳이 공간을 따로 열지 않고도 하나의 공간을 여러 사람과 공유하거나 전시가 없는 기존 공간에서 프로젝트성 행사를 여는 등 유연한 공간 활용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신생공간은 단순히 특정 시기에 ‘새로 생긴 공간’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서 ‘공간을 새로 만드는’ 혹은 ‘새로운 공간을 대하는’ 특정한 방식과 태도를 지칭하는 용어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젊은모색 2021〉, 윤지영 섹션 전경. 윤지영은 고립된 팬데믹 상황에서 자의식이 과잉돼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다양한 형태의 조각으로 보여준다. 이미지 아트인컬처 제공.

〈젊은모색 2021〉, 윤지영 섹션 전경. 윤지영은 고립된 팬데믹 상황에서 자의식이 과잉돼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다양한 형태의 조각으로 보여준다. 이미지 아트인컬처 제공.

자기 조직화와 공유 개념


두 가지 측면에서 신생공간은 단순히 한때 일어난 한국 미술계의 특이 현상이 아니라 사회 구조의 변화에 따라 전 세계 문화예술 영역에서 논의되는 쟁점과 관련이 있다. 하나는 ‘자기 조직화’이고 다른 하나는 ‘공유’ 개념이다. 먼저 2000년대 중엽부터 문화예술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자기 조직화 개념은 자유 시장 이데올로기의 확대에서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전략으로 예술가들이 추구하는 다양한 자립적 예술실천을 가리킨다.


이에 관한 몇 가지 논점에서 신생공간의 실천을 떠올릴 수 있다. 우선적으로 자기 조직화를 추구하는 예술가들은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국가가 원하는 경제 발전의 구성원으로서가 아니라 ‘비물질 노동’의 주체로서 스스로의 개인적 동기와 주체적 실천을 강조한다. 또한 개인, 콜렉티브, 집단 등 참여 인원과 무관하게 어떤 경우에든 각 주체간의 ‘관계성’을 중시한다. 특히 구성원 간의 위계를 없애고자 하며 의사 결정에서 개방적인 참여 모델을 택하고 협력과 연대를 중시한다. 무엇보다 자기 조직화는 기존의 제도를 무조건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의존성을 줄이는 것이 관건이다. 예를 들어 공적 자금에 전적으로 의존한 공간들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던 전례를 고려하여 공적 자금을 포함하되 공간 운영의 다각화 측면에서 자기 조직화의 실천을 논의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한편 신생공간의 실천은 신자유주의 체제 이후 기존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개념으로 강조되기 시작한 ‘공유 사회’와 관련이 깊다. ‘공유’는 사실상 매우 오래된 인류의 생존 전략이다. 봉건 사회에서 영주의 수탈에 대비해 농민들이 자원을 공동으로 관리하는 것에서 시작해, 근대 산업혁명 이후 공장주가 영주의 자리를 대신하면서 노동자들이 공유 자원을 함께 이용하고자 세운 다양한 종류의 비영리 부문의 제도를 그 뿌리에 두고 있다.7)
현재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재화와 서비스를 빌리고 나눠 쓰는 공유 경제의 관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인간 생활의 모든 측면을 시장에서 교환 가능한 상품, 즉 소유물로 만드는 것에서 비롯된 자본주의의 한계를 각자의 필요에 따른 네트워크로 여러 자원을 공유하여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리프킨은 “자본주의 시장이 완전히 사라질 것 같지는 않지만 (…) 점점 저 많은 경제 생활이 협력적 공유 사회를 토대로 이루어질 것”이라 말한다.8)


이러한 신생공간은 수평적 관계에서 소유권보다 ‘접근권’을 우선시한다는 점에서 ‘공유’되는 특성을 지닌다. 공간을 빌리거나 내어주고, 그곳에서 여러 사람이 관계를 맺도록 하며 그로부터 가치가 창출되는 예술을 실천한다. 그 플랫폼은 제도권의 발탁에 따른 위계 관계가 아니라 미술계로의 진입을 원하는 예술가와의 수평적 관계와 거기서 발생하는 이익을 나눠 갖는 공생 방식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공유의 실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소셜 미디어를 적극 활용한다. 홍보는 물론, 전시와 작품 소개, 판매 등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신생공간의 이러한 특징은 개방된 플랫폼에 사용자가 정보를 직접 생산하여 공유하는 ‘웹 2.0’과 관련한다.


요한한, <공명동작-대화편>, 5채널 비디오, 15분, 2021. 북을 이용한 오브제, 퍼포먼스 등 다매체 작업으로 촉각의 다양한 형태를 재현했다. 이미지 아트인컬처 제공.

요한한, <공명동작-대화편>, 5채널 비디오, 15분, 2021. 북을 이용한 오브제, 퍼포먼스 등 다매체 작업으로 촉각의 다양한 형태를 재현했다. 이미지 아트인컬처 제공.

포스트-인터넷아트의 주체


인터넷은 신생공간 운영과 관객 유치에도 기여하지만 그들의 예술창작에 있어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1980년대 후반 이후 출생한 예술가는 성장기부터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일상에서 사용해온 ‘디지털 네이티브’다. 그 결과 예술창작에 있어서도 인터넷, 컴퓨터 기기 및 각종 프로그램을 보편적으로 사용한다. 그 점에서 이들은 ‘포스트-인터넷’ 세대로 통칭된다. ‘포스트-인터넷’은 1990년대 후반 월드 와이드 웹(www)의 등장과 함께 인터넷의 하이퍼링크를 타고 가상 공간에서 예술창작과 감상을 시도한 인터넷아트와의 차별점을 강조한 명칭이다. 인터넷을 하나의 미디어로 이용하는 것을 넘어 웹 서핑으로 이미지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성하고, 이것을 여러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변용해 전통 매체와 결합하여 실제 전시장에 선보이는 것이 이들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따라서 포스트-인터넷아트는 온라인의 가상 공간과 오프라인의 현실 공간을 가로지르며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인터넷의 범용을 강조하는 명칭인 ‘포스트-인터넷’ 외에 ‘포스트-포토그래피’, ‘포스트-시네마’, ‘메타 회화’, ‘메타 조각’ 같이 차용과 전유의 방식을 디지털 기술과 결합해 전통 매체의 고유한 형식을 뛰어넘고자 하는 ‘포스트-미디엄’의 경향이 오늘날 현대미술의 새로운 아방가르드로 자리 잡고 있다.


포스트-인터넷 세대에게 컴퓨터나 인터넷은 구체적인 매체나 방법론일 뿐 아니라 그들이 속한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구성한다. 이들 대다수는 3차원의 전시 공간에 펼칠 작품을 2차원의 모니터에서 먼저 구상한다. 매끈한 화면에서 줄곧 보았던 이미지를 어떠한 물질로 어떻게 뽑아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가운데, 그 격차가 실제 작품 형식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나타난다. 작품의 소재와 내용 역시 오랜 시간 그들의 일상을 지배해온 게임, 애니메이션, 대중 음악, 패션, 소셜 미디어 등 온라인 서브컬처가 일정 부분을 차지한다. 그것은 또한 기존의 고화질 영상작업과 달리 컴퓨터에서 변형된 저해상도 이미지를 스크린에 프로젝션하거나 프린트하는 과정에서 고유한 형식적 특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히토 슈타이얼이 말한 스크린에서 추방된 ‘가난한 이미지’가 포스트-인터넷아트로 되살아나는 셈이다.


무엇보다 그들이 일상과 작업에서 사용하는 인터넷은 사회적 인프라로 구축된 이후, 자유롭게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도록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대표적인 수평적 네트워크 체계다. 또한 스마트 기기의 등장으로 인해 인터넷 기반의 네트워크 활동을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게 되어 가상 공간과 현실 공간의 중첩 범위는 보다 확대되었다. 인터넷은 신생공간을 만들고 관객들을 불러들이는 데에도 기여했지만 이렇듯 그들의 예술창작 방식과 양상에 있어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 점에서 신생공간의 주체들과 겹쳐지는 포스트-인터넷아트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최윤, <마음이 가는 길>, 싱글채널 비디오, 사운드, 30분 30초, 2021. 최윤은 <막다른 길 걷기>와 <마음이 가는 길> 두 작업을 공개했다. 텅 빈 전시장에서 발생한 일을 담은 영상으로 ‘길’의 의미를 묻는다. 이미지 아트인컬처 제공.

최윤, <마음이 가는 길>, 싱글채널 비디오, 사운드, 30분 30초, 2021. 최윤은 <막다른 길 걷기>와 <마음이 가는 길> 두 작업을 공개했다. 텅 빈 전시장에서 발생한 일을 담은 영상으로 ‘길’의 의미를 묻는다. 이미지 아트인컬처 제공.

젊은 예술, 미술관의 역할은?


사실상 1980년대 이후 우리의 제한된 미술생산장에서 오랜 시간 주류를 차지한 것은 민중미술에서 출발한 사회 비판적 경향의 예술이었다.9) 현재로썬 포스트-인터넷아트가 그 자리를 대신할 강력한 후보로 주목받고 있다. 사회적 예술에서 포스트-인터넷아트로 넘어가는 아방가르드의 이행에 신생공간 세대의 실천이 중요하다. 2000년대 후반 청년 세대 담론과 함께 제기된 문화 예술영역의 주요 쟁점의 중심에 그들이 있었다.10) 관련 문제를 작업 소재나 내용으로 다룬 기존의 소극적인 사회적 예술과 다르게 이들은 자신들이 당면한 현안을 실생활로 받아들여 행동으로 나아갔다. 그것은 세상의 변혁을 목표로 하는 대의적 예술운동이 아니라 척박한 미술계에서 본인들의 자리를 스스로 만들어 버텨보겠다는 작은 의지의 실천이었다.


〈젊은모색 2021〉 ,배헤윰 섹션 전경. 배헤윰은 순수한 경험과 사유를 색면추상의 기본 단위로 삼아 회화의 본질에 접근해왔다. 이미지 아트인컬처 제공.

〈젊은모색 2021〉 ,배헤윰 섹션 전경. 배헤윰은 순수한 경험과 사유를 색면추상의 기본 단위로 삼아 회화의 본질에 접근해왔다. 이미지 아트인컬처 제공.

그렇게 시작된 신생공간의 개별적 움직임이 가시화되면서 점차 기존 미술제도 역시 이들을 주목했다. 초반의 관심은 그들의 세대적 특징과 낙후된 지역에 예술가가 만든 새로운 소규모 공간에 있었다. 그러나 조건과 필요에 따른 자율적 생성과 구성원의 자발적 협력 관계가 핵심인 이들의 본성을 기성 제도가 온전히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2014년 말 평론가 임근준이 주도한 국립현대미술관에 ‘청년관’을 신설하자는 예술행동이 불발로 끝난 것처럼, 합판과 비계를 이용한 디스플레이로 신생공간의 외양만을 재현한 <서울 바벨>전 (서울시립미술관 2016)11)은 의도와 무관하게 신생공간의 생명을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실상 신생공간의 주체들이 제도에 진입한 것은 주요 미술기관이 이들의 포스트-인터넷 경향 작업에 주목하면서부터다. <뉴-스킨>(일민미술관 2015)을 시작으로 지난 몇 년간 주요 미술관에서 유사한 성향으로 묶일 만한 기획전이 열렸고,12) 관련 작업을 하는 여러 신생공간 주체들이 해당 전시에 참여했으며 주요 미술상을 받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얻기도 했다.13) 미술전문지의 관심도 이 시기부터 꾸준히 이어졌다.14) 미술관 중에는 2000년대 초반부터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를 열어온 서울시립미술관이 SeMA창고에서 젊은 작가의 전시를 열고,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관련 전시를 다수 개최하는 등15) 포스트-인터넷아트 경향의 젊은 예술을 다양한 관점으로 제도권에 안착시켜왔다. 본관 개관 30주년 기념전으로 최근 국내의 디지털 미디어 경향 작가를 대거 포함한 <디지털 프롬나드>(서울시립미술관 2018)를 개최하고 그 일환으로 단행본16)을 발간한 것에서 젊은 예술에 대한 서울시립미술관의 관심과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


노기훈, <노랑머리>, 피그먼트 프린트, 80×100cm, 2015. 이미지 아트인컬처 제공.

노기훈, <노랑머리>, 피그먼트 프린트, 80×100cm, 2015. 이미지 아트인컬처 제공.

지속 가능한 예술을 위해


국립현대미술관이 서울시립미술관에 비해 젊은 작가에게 전시할 기회를 잘 주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근래에 사진과 비디오아트의 행적을 정리하는 전시가 일부 있었지만,17) 서울관 건립에도 불구하고 젊은 경향을 볼 수 있는 기획 전시는 여전히 찾아보기 어렵다.18) 그중 거의 유일하게 <젊은모색 2019>가 있었다. ‘액체, 유리, 바다’라는 부제 아래 신진 작가 9명19) 중 다수가 게임, 브이로그,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소셜 미디어 등을 작품의 소재와 형식으로 취한 다양한 매체의 작품들을 선보였다. 이 전시는 제목처럼 투명한 액정 화면 너머 가상의 바다를 헤매는 유동적 이미지를 떠올리게 할 만큼 유기적인 통일감을 가지고 있었다.


불과 2년이 지난 올해의 <젊은모색 2021>은 이전과 다소 차이가 있다. 전시는 별도의 제목이나 주제 없이 다양한 신진 작가의 작업을 모아 놓은 것에 가까워 보인다. 또한 회화, 조각, 도예, 사진, 영상, 설치, 퍼포먼스 등 현대미술의 여러 매체를 고루 보여주려 하거나 해외 및 지역을 안배해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전시 작품 대부분이 중앙 홀의 40주년 기념 아카이브의 전시와 겹쳐 보일 만큼 익숙한 기시감을 준다.


〈젊은모색 2021〉, 40주년 기념 아카이브 전시 전경. 연도별 도록, 기사, 주요 출품작 2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는 AR 프로그램, 큐레이터와 작가의 인터뷰 영상 등으로 구성됐다.v 이미지 아트인컬처 제공.

〈젊은모색 2021〉, 40주년 기념 아카이브 전시 전경. 연도별 도록, 기사, 주요 출품작 2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는 AR 프로그램, 큐레이터와 작가의 인터뷰 영상 등으로 구성됐다.v 이미지 아트인컬처 제공.

시티 팝과 레코드 숍, 자연과 토템, 영웅과 괴물, 이주사와 개인사, 산업화 지역의 현재, 특정 지방의 역사적 풍경 등의 소재나 내용은 물론, 여러 장르의 결합, 공예의 현대화 등 이미 모더니즘 이후 현대미술로 자리 잡은 형식적 특징이 별다른 새로움 없이 다가온다. ‘레트로’가 주제라면 보다 명확히 기획 의도를 설정했어야 할 것이다. 선정된 15명 작가20) 모두 분명 1980~90년대생 신진 작가이며 이들 중 다수가 포스트-인터넷아트를 포함해 최근의 주요 기획전에 참여한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이 전시에서는 그들의 생물학적 나이에서 비롯된 젊음만이 느껴진다. 또한 작가마다 공간을 분리하여 동그란 간판에 작가명과 작품 설명을 적어놓은 전시 디자인은 이들을 올해의 선정 작가로 ‘호명’하는 듯한 인상을 강화할 뿐이다.


<젊은모색>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젊은 예술을 비추는 그야말로 ‘귀한’ 전시다. 그렇기에 선정된 신진 작가에게 부여되는 상징 자본 역시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것은 수상 제도가 아니다. 상금도 없을뿐더러. 또한 미술관 학예연구사의 추천과 외부 전문가의 자문으로 작가를 선정했다는 언급 외에 심사 위원 명단이나 심사 과정을 구체적으로 밝히지도 않는다. 15명에게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하는 기획전 이외의 보상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작가의 이름을 호명하는 전시보다는 현재 젊은 예술의 경향이 무엇인지 기획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는 주제 전시가 오히려 이들의 작업을 더욱 돋보이게 할 것이다. 주제전이 특정 경향에 편중될 우려가 있다면 규모를 다소 줄이고 전시 횟수를 늘리는 대안을 고려해볼 수도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일정 수준에 오른 예술작품을 전시하는 일로 예술가에게 상징 자본을 부여하고 역사를 수립하며 관객에게 보다 양질의 전시를 제공하는 미술제도의 중심에 있다. 동시에 현장에서 두드러지는 경향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 역시 외면해서는 안 된다. 젊은 예술에 단지 권위만을 부여할 것이 아니라 특정한 경향에 다양한 맥락을 설정하고 세부적 논의를 발전시킬 책무가 있다. 자립적 실천과 수평적 네트워크에 익숙한 포스트-인터넷 세대 작가들 역시 미술관의 단순한 ‘호명’을 기대하기보다 지속적인 예술활동을 위한 하나의 ‘기회’를 원할 것이다. 어쩌면 이를 위해 미술관은 수년간 논의를 거듭해오는 미술인 보수지급제도를 다른 어떤 기관보다 먼저 확실하게 실천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젊은 예술의 지속 가능성이 곧 미술계 전체에 힘을 실어 이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1)Pierre Bourdieu, The Rules of Art: Genesis and Structure of the Literary Field , trans. Susan Emanuel (Polity Press, 1996), pp.148~154.
2)경제 자본과 상징 자본을 대변하는 상업 화랑과 국립 미술관으로 양분화되었던 미술계에 기업 주도의 여러 사립 미술관이 등장했고 정부의 세계화 정책 및 지방 자치제와 맞물려 광주비엔날레를 비롯한 국제적 비엔날레의 유치가 크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3)신생공간과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논문 「스스로 ‘움직이는’ 미술가들: 자립적 미술 신생공간 주체들의 생활 경험과 예술 실천 연구」, 『한국언론정보학보』(제76집 2호, 2016), pp.183~219 참고.
4)신생공간 논의에서 당사자로 활약한 강정석은 <유령팔>(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018) 전시에 맞춰 발간한 책자에서 ‘포스트-굿즈’와 ‘포스트-신생공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는 신생공간 주체들이 기획한 <굿-즈>(세종문화회관 2015) 이후 주체와 방식에서 유사한 여러 플랫폼을 포스트-굿즈로 칭하고, 그들 이후 “아직 오지 않은 시간”으로서 이후 세대가 주체가 될 포스트-신생공간이라는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지적한다. 강정석, 「LOG 2: 두 플레이어가 벌이는 최소극대화의 게임」, 『MAGAZINE beta 1』(서울시립미술관, 2018), pp.33~43.
5)서울의 비영리 공간 중 절반 가까이가 신생공간 논의가 비교적 잦아든 2016년 이후에 새로 생겼다는 사실은 특기할 만하다. 1999~2018년 사이 서울에서 문을 연 비영리 공간 중 53개가 2007년 이후에, 38개가 2014년 이후에, 26개가 2016년 이후에 개관하였다. 『비영리 전시공간 실태조사 및 현황분석 연구』(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9), p.84.
6)신생공간 현상을 수면 위로 끌어내고 관련 담론을 이끌어내었던 2015년의 <굿-즈>를 기점으로 <더스크랩>, <퍼폼>, <취미관>, 등 전시와 판매를 겸하는 행사들이 몇 해 동안 잇따라 열렸다. 이들은 정해진 상시 공간이 없이 유휴 공간을 이용해 최선의 시스템을 만들고 소셜 미디어로 보다 많은 관객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경제, 상징 자본이 다수에게 고르게 돌아가도록 하는 일종의 플랫폼 성격을 지닌다.

7)제러미 리프킨, (안진환 역), 『한계비용 제로 사회: 사물인터넷과 공유경제의 부상』(민음사, 2014), pp.34~35.
8)제러미 리프킨, 앞의 책, p.43.
9)1980년대 후반 비평 담론의 상징 투쟁 과정에서 민중미술 계열의 이론가들이 새로운 아방가르드로서 우위를 점하게 된 후, 1990~2000년대 관련 작가들이 일부 대안공간의 기획자와 이론가의 조력으로 주류 미술제도에 안착한 과정은 필자의 논문 「한국 미술생산장의 구조 변동 연구」, 『현대미술사연구』(43호, 2018), pp.89~111.
10)신생공간의 흐름은 도시 재개발과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에서 예술의 역할을 보여준 두리반 사건(2009), 세계적인 점거 운동의 여파로 일어난 노동절 총파업 참여(2012)와 이후 작가 사례비 등의 현안에 목소리를 낸 미술생산자모임(2013) 등에서 시작되었다.
11)기획자가 선택한 15개 신생공간 중 다수가 초창기 신생공간의 움직임을 주도한 주체와 거리가 있었다. 단적으로 15개 신생공간이 참여한 <굿-즈>와 중복되는 곳은 아카이브봄, 지금여기, 합정지구 단 세 곳뿐이다.
12)<푸쉬, 풀, 드래그>(플랫폼-엘컨템포러리아트센터 2016), <파이널 판타지>(하이트컬렉션 2017), <유령팔>(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018), <밤이 낮으로 변할 때>(아트선재센터 2019), <유어서치, 내 손 안의 리서치 서비스>(두산갤러리 2019) 등이 대표적이다.
13)강정석(2015), 김희천(2016), 권하윤(2017), 김주원(2019), 김경태(2020) 등이 두산연강 예술상을, 류성실(2021)이 에르메스재단 미술상을 받았고, 김희천(2019)과 돈선필(2020)이 아트선재센터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14)특히 『아트인컬처』는 「포스트인터넷아트, 과연 끝나는가?」(2016년 11월호), 「인터넷 세대가 펼치는 내일의 미술」(2018년 3월호), 「회화, 변하고 있는가?」(2020년 12월호), 「뉴커머즈 77」(2021년 2월호) 등의 특집 기사로 관련 담론을 다뤄왔다.
15)<유령팔>(2018), <멋진 신세계>(2018), <뉴스, 리플리에게>(2018), <오픈 유어 스토리지: 역사, 순환, 담론>(2019), <웹-레트로>(2019),〈SF2021: 판타지 오디세이〉(2021) 등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은 <굿-즈>가 열린 2015년에 일민미술관에서 개최되어 미술계에서 큰 관심을 받았던 독립 출판 및 디자인 판매 행사 <언리미티드 에디션>(2019)을 개최하기도 했다.
16)『평행한 세계들을 껴안기: 수천 개의 작은 미래들로 본 예술의 조건』(서울시립미술관, 현실문화연구, 2018)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책에는 국내 이론가 이현진, 김지훈, 김남시 외에 유시 파리카, 에드워드 A. 샹컨, 데이비드 조슬릿의 글이 실려 있다.
17)사진에서는 한국 현대사진사를 개괄한 <아주 공적인 아주 사적인 : 1989년 이후, 한국현대미술과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16)과 대표적 국내외 현대사진을 총망라한 <문명: 지금 우리가 사는 방법>(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18), 비디오아트에서는 1970~90년대 한국 비디오아트사를 정리한 <한국 비디오 아트 7090: 시간 이미지 장치>(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19)나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싱글채널 영상작품을 디지털 아카이브화하여 감상하게 한 <떠도는 영상들의 연대기>(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19)를 꼽을 수 있겠다.
18)국내 작가 김실비, 김웅현을 포함한 국내외 디지털 미디어작업을 소개한 전시 <불온한 데이터>(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19) 정도가 예외적이다.
19)김지영(1987), 송민정(1985), 안성석(1985), 윤두현(1986), 이은새(1987), 장서영(1983), 정희민(1987), 최하늘(1991), 황수연(1981)으로 대부분 1980년대 중반생이다.
20)올해 참여 작가는 강호연(1985), 김정헌(1991), 김산(1989), 남진우(1985), 노기훈(1985), 박아람(1986), 배헤윰(1987), 신정균(1986), 요한한(1983), 우정수(1986), 윤지영(1984), 이윤희(1986), 최윤(1989), 현우민(1985), 현정윤(1990)으로 지난 <젊은모색 2019> 참여 작가와 비슷한 연령대를 보인다.


이 원고는 아트인컬처 2021년 8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아트인컬처와 콘텐츠 협약을 맺고 게재하는 글입니다.

신혜영 / 미술비평

사진을 비롯한 동시대 미술 전반에 관한 비평과 강의를 하고 있다. 미학 석사와 영상학 박사를 받았고, 미술잡지 기자와 갤러리 큐레이터로 일했다. 박사논문 '한국 미술생산장의 구조 변동과 행위자 전략 연구'(2017)를 비롯해 지속적으로 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