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은 해외 유명 갤러리들이 한국에 진입한 시점이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당시 단색화가 국제 미술시장에서 활발히 거래되며 ‘단색화 열풍’이 분 시기와 맞물린다고 보았다. 실제 페로탕 갤러리는 파리와 홍콩 등지에서 단색화 주요 작가들의 전시를 열고, 2016년 서울에 분관을 냈다. 초이앤라거 갤러리 역시 같은 시기 서울에 들어왔다. 2017년, 페이스와 리만머핀 갤러리도 한국에 분점을 세우고 약 4년간 규모를 키웠다. 올해 4월 서울에 들어온 쾨닉(KÖNIG)은 지난해 도쿄 분관(2019년 설립)을 철수하고 한국에 들어서 이목을 모았다.
이 중 초이앤라거와 쾨닉은 아시아에서 한국을 유일한 거점으로 삼고 있다. 명망 있는 두 갤러리가 한국 지점을 유지하는 이유와 프리즈의 상륙 전망을 최선희 초이앤라거 갤러리 대표와 최수연 쾨닉 디렉터에게 물었다.
한국에서의 5년, 아시아 진출을 목표하는 유럽 작가들이 초이앤라거를 주목하는 이유
최선희 대표와 야리 라거(Jari Lager)는 유럽에 한국 작가를 알리는 다수의 프로젝트를 꾸준히 기획하면서 2012년 쾰른에 초이앤라거 본점을 세우고, 그곳에 거주하던 최진희 대표를 공동 디렉터로 영입했다. 최선희 대표에 따르면, 초이앤라거의 임무는 유럽에 한국 작가들을 지속적으로 알리고 한국에는 유럽의 전도유망한 작가들을 역으로 소개하는 일이다. 갤러리의 본래 사명과 목표가 한국 현대미술을 알리고자 한 것이었기에, 2016년 한국에 분점을 두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렇다면 초이앤라거 서울은 어떻게 한국에서의 활동을 이어왔을까. 최 대표는 서울 개관에 앞서 키아프나 아트 부산 등에 참여해 한국 미술시장을 먼저 경험했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한국에 해외 유망 작가에 대한 수요는 있지만 실질적으로 유럽의 젊은 작가들이 거의 초대되지 않았다는 점을 파악하고 유럽 작가들의 전시를 열어 시장 수요를 이끌어냈다. 최 대표는, “서울점은 갤러리가 인연을 맺은 한국 작가들과 소통하고 프로젝트를 원활하게 수행하게 하는 지역일 뿐 아니라, 초이앤라거의 행보를 지지해준 소장가 및 관람객과 만나는 장소로서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어, 급부상하는 동향에 휘둘리기보다 개별 작가의 예술세계에 집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해외 갤러리들이 단색화와 같은 한국미술 ‘사조’나 NFT아트 등을 주요 매매 대상으로 결정하면 상대적으로 빠르게 이익을 볼 수 있으나 진정한 “문화적 영향력”은 작가가 드러내는, 그가 속한 사회에 대한 성찰에서 기인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최 대표는 2017년 초이앤라거 갤러리를 포함해 네 개의 해외 갤러리가 ‘연합 갤러리’를 시도했던 ‘스페이스 칸(SPACE KAAN)’을 출범시켰다. 하나의 공간을 공유해 한 달씩 돌아가며 갤러리별로 독립적인 프로젝트를 개최하는 방식으로 2017년 청담동에 문을 연 스페이스 칸은 1년 후 삼청동으로 이전했지만 코로나19의 여파로 세 개 갤러리가 서울에서 철수해, 2021년부터는 초이앤라거만이 공간을 사용하게 되었다. 최 대표는 “쾰른과 한국에서 갤러리가 성장하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기에 우리에게는 단독 운영이 필요한 시점이었다”며, 외부적 변화와 관계없이 작가들이 “전시를 정성스럽게, 그리고 즐겁게” 이어가게 하자는 갤러리의 초심을 다지는 일에 더 몰두했다.
한국 시장을 미리 경험한 해외 갤러리의 대표로서, 그는〈프리즈 서울〉과 한국 미술계에 대한 초이앤라거의 관점을 간략히 말했다. “현재 서양 미술계는 한국을 문화적 매력을 지닌 나라로 주시하고 있다. 몇 년 전에 비해 국가 이미지도 한층 상승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크고 작은 미술관과 갤러리 덕에 다이내믹한 현대미술 신이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술을 향유하려는 대중과 미술품 소비 주체인 컬렉터들의 열정이 매우 강하다. 지금은 프리즈라는 글로벌 예술행사 유치에 적절한 시기이자, 한국이 아시아의 문화 허브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프리즈가 성공적으로 유치되면 미술시장이 한층 커지면서 한국 작품을 찾는 외국 미술 애호가와 컬렉터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나의 아트페어는 그 장소뿐만 아니라 페어의 장 외부까지 상업적이고 문화적인 확장을 가능케 한다. 따라서 아트페어 기간에는 미술관들도 좋은 전시와 이벤트로 참여해야 한다. 런던 프리즈의 성공은 테이트 모던이나 서펜타인 갤러리 등이 적극 참여하고, 공공 기금으로 작품을 구입하는 공적 영역의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에서는 프리즈와 키아프의 공동 개최만이 아닌, 외부적인 성공 요인을 먼저 연구해야 한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 시장에 처음 작가들을 알리는 지대
한편 2021년 서울에서 움직이기 시작한 쾨닉은 현재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 분점을 두고 있다. 최수연 디렉터는, “한국은 미술품에 관세와 부가세가 부과되지 않아 거래가 용이하다. 이는 무역 조건이 까다로운 중국이나 일본에 비하면 매우 큰 장점으로 작용하기에 서울이 아시아 미술시장의 허브로 발돋움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꾸준히 형성되어온 한국 컬렉터층과 수준 높은 개인 컬렉션을 바탕으로, 확대되고 있는 신규 고객층의 바람에 힘입어 한국 미술시장의 성장을 기대했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쾨닉 서울이 전시와 판매로서 드러내고자 하는 세계 및 지역미술의 특성은 무엇일까. 쾨닉 소속 작가들은 국제 비엔날레나 세계 유수 기관의 전시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지만, 한국 시장에는 대부분 처음 알려지고 있다. 최 디렉터는 이렇게 설명했다. “베를린에서는 공간 특성을 백분 활용해 작가의 비전을 실현하는 전시를 지원하고, 서울에서는 작가의 주요 작업을 통해 작가별 작업 특성을 전달하고, 국내 환경에 맞춘 기획으로 한국 시장의 반응을 엿보고자 한다. 약 40명의 소속작가를 고루 소개하고자 서울 개관전에서 작가 30명의 작업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대부분이 30~40대로, 경쟁력 있는 가격대의 작품을 선보인다. 시장의 선호가 특정 작가에게 편향되지 않고, 골고루 분포하도록 여러 작가를 계속 홍보할 계획이다.”
쾨닉 서울 역시 프리즈 아트페어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쾨닉은 프리즈와 오랫동안 함께 해왔기에 쾨닉 서울과 가까운 거리에 프리즈가 들어온다는 소식은 너무나도 반갑다. 국제적인 아트페어의 진출로 한국 미술시장이 한층 성숙해지기를 기대한다. 개인적으로는 부스비가 좀 낮아지면 좋겠다!” 최 디렉터의 유쾌한 답변이다.
한국 미술시장처럼 팬데믹으로 인해 오히려 반사이익을 본 쾨닉은 여타 유럽 갤러리 다수가 록다운으로 고전하는 가운데, 자체적으로 아트 마켓 〈Messe In St. Agnes〉를 열고 메타버스를 포함한 여러 디지털 콘텐츠를 내놓아 대응했다. 환경에 빠르게 적응해온 만큼, 쾨닉은 이미 5년 전 한국에 입성한 여타 해외 갤러리들과의 입지 차이를 좁힐 것이라 예상된다.
‘해외 갤러리들의 독주’를 우려하던 2017년과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 한국에 입성한 해외 갤러리들은 홍콩이 정치적 상황과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흔들리는 지금, 한국을 아시아 시장의 다음 구심점으로 삼겠다는 확신을 이미 내비쳤다. 해외 유명 갤러리들이 서울에 발판을 굳히고 있는 이상, 이제는 ‘이들이 왜 한국에 왔을까’ 하며 우왕좌왕할 시간이 없다. 우리는 바로 내년, 국제적인 미술 현장으로서 더 많은 해외 화랑들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하기에.
한국은 아시아 미술시장의 허브가 될 수 있을까 - (1) 프리즈 한국에 밀려오는 오색빛깔 파도(Frieze, a colorful waves rush to Korea)
월간미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