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의 시간적 과정을 중시하는 퍼포먼스 아트는 동시대 예술을 가장 자유롭게 표현하는 매체로 그 중요성 또한 날로 커지고 있다. 2019년 경기도미술관이 국내 최초로 퍼포먼스의 ‘개념’을 작품으로 수집, 소장한 것에 이어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 국공립 기관들도 그 소장의 기회를 넓히고 있다. 이렇듯 퍼포먼스 아트의 미술사적 가치는 물론 시장성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는 이에 관해 좀 더 심도 깊게 살피는 기획을 마련한다. 먼저 퍼포먼스의 국내외 현황을 아우르며 동시대 미술에서 퍼포먼스가 차지하는 위상과 문화적 파급력, 융합적 성격이 무엇인지 개괄적으로 살펴본다. 이어 미국 사례를 중심으로 1960년대 주요 퍼포먼스 역사 이전, 혹은 언저리에서 벌어진 사례를 통해 공연예술에 한정된 경계 허물기 현상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다원 예술 등으로 확장된 이론적 계보를 되짚는다. 끝으로 팬데믹 상황으로 변화한 매체의 플랫폼과 지각변동을 살펴봄으로써 퍼포먼스 아트의 현재와 미래의 지형도를 그려본다. 이 특집은 기획자이자 작가, 평론가로 한국 퍼포먼스 역사의 한 축을 지탱하고 있는 윤진섭 선생과 함께 만들었다.
글 문재선 판아시아-퍼포먼스 아트 네트워크 아시아 예술감독
플랫폼의 변신
퍼포먼스 아트(Performance Art), 라이브 아트(Live Art)1)의 현장은 대체적으로 직접적인 대면 예술 활동에 주안점을 두고 지속해왔다. 직접 방문을 통한 교환예술 활동을 주로 해왔기 때문에, 현재 코로나 현황으로 인하여 국제예술 교류의 현장들이 대부분 멈춰 서있는 상태다. 관객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기저로 발생하는 라이브의 작품 발표 성향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국가 간 예술교류 현장의 빈도는 매우 높았고, 대륙별 국가 간 예술교류의 친밀도는 매우 가까웠다. 마치 국내 타 도시를 오가듯 서울에서 뉴욕, 파리, 베를린, 홍콩, 양곤 등 여러 도시를 자주 왕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공기 국제선은 대부분 운항을 중단하고 있어 국제 퍼포먼스 아트 현장을 일구는 기관들은 대부분 무기한 연기를 할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라이브의 현장들이 10% 미만으로 줄어들게 된 것이다.
팬데믹 상황에서의 미디어 매체를 활용한 퍼포먼스 발표 방안의 대안이 있는지, 비대면 상황에서의 퍼포먼스 발표 방안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서 대륙별 예술 현장의 기수들이 긴급 회동을 하기도 했다. 온라인 국제세미나를 개최해 몇 주 동안 토론을 벌인다든지, 온라인 생방송을 통해 작품 발표를 지속함으로써 국제예술 플랫폼을 이어나가기도 했다. 필자는 지난 5월에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그레이스 익스히비션 스페이스(Grace Exhibition Space)가 주최한 ‘온라인 라이브: 퍼포먼스 아트 인 뉴욕시티(ONLINE LIVE: Performance Art in New York City)’ 프로그램에서 ‘한국의 라이브 퍼포먼스 아트(Live Performance Art from South Korea)’를 공동 기획하기도 했다. 이는 뉴욕-서울 도시를 서로 직접 왕래해야 했던 지난 2020년 전시계획의 대안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크나큰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마찬가지로 남미 지역의 칠레 산티아고 ‘국제 퍼포먼스 트리엔날레 대포름(Trienal Internacional de Performance DEFORMES)’에서도 당초 계획과는 다르게 퍼포먼스 영상기록 전시에 참여하기도 했다. 판아시아(퍼포먼스 아트 네트워크 아시아)2)를 주최해오고 있어, 원래는 공동주최라는 큰 규모로 아시아 지역 퍼포먼스 자료들을 공유하기 위해 산티아고를 방문하기로 했으나 모두 무산되었고, 아쉽게도 개인 참가로 축소하여 진행됐다. 물리적 먼 거리로 인해 직접 교류가 쉽지 않았던 남미 지역과의 교류가 어렵사리 성사되었으나, 수순을 밟는 마냥 준비 단계에 그친 셈이 되었다. 이렇듯 역동적인 라이브의 현장들이 침체되는 양상들이 벌어지고 있지만, 새로운 대안책 마련을 위한 방안들이 도처에서 끊임없이 논의되고 있다.
퍼포먼스의 지각변동
일찍이 전통과의 단절을 선언하고 정통주의 미학에 반기를 들고 나섰던 아방가르드 문화예술 운동을 잠시 들여다보자. 지난 2009년에는 ‘세계 퍼포먼스 아트 100년’을 대대적으로 기억하고 2016년에는 ‘다다 100주년’을 기념하였던 해였다. 그리고 2018년 국내에서는 ‘한국 행위미술 50년’을 기념하는 전시와 페스티벌이 줄이어 벌어졌다. 그만큼 제도에서 벗어나 있던 퍼포먼스 아트라는 언더그라운드 활동들이 이제는 현대미술의 주요 흐름 속으로 들어와 중요한 단면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3) 그만큼 현대미술의 범주를 확장해나가는 현장은 어느 때 보다 더 필수적인 과정임에 틀림없다.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혁신적인 현시대의 문화와 사회적 역사를 반영하는 예술 활동은 그 확장과 변형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현재를 담아내는 예술의 언어는 진화를 거듭하고, 수많은 예술 현장들은 또 다른 소통을 담보로 계속 태어나고 있다. 경계가 무너진 현대예술 사이에서 새로운 공간과 시간을 접촉하는 현대 예술가들의 태도 변화와 도전이 요구되어진다. 그래서 퍼포먼스 아트는 형식을 말하기 이전에 그러한 규정할 수 없는 예술의 범주를 읽어낼 수 있는 해방된 하나의 통로이고, 경계를 두려워하지 않는 예술 행위를 동반한 확장으로써 새로운 전환을 위한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현대도시의 변화는 새로운 산업혁명을 꿈꾸며 미디어 감각(sensibility) 장치를 끊임없이 발전시켜 나가는 새로운 소통을 위한 도전의 연속이 뒤따른다. 더욱더 윤택한 삶을 위해서는 신기술 개발과 더불어 인간의 모습을 닮은 균형적인 감정(feeling)과 감성(emotion) 활동 부문을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더군다나 슈퍼파워를 주로 꿈꾸는 포스트 냉전시대의 도시문화는 불안과 위험에 관한 징후를 떨쳐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나 재난과 질병이 빈번한 작금의 시기에 물량주의와 속도주의에 기반한 경제성장 지상주의에 대한 성찰을 하게 만든다. 시대에 반응하고 다층적인 감각인상(感覺印象)을 견인하는 공감각(synesthesia)을 일으킬 수 있는 이러한 퍼포먼스 아트의 현장들이 줄어든다면 세상 속에서 새로운 소통을 담보로 담아내야 하는 미래에 대한 확산 의지는 꺾여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팬데믹 상황에서도 무한한 퍼포먼스 예술의 창작 발표와 교류가 지속되도록 퍼포먼스 예술 공간을 필요로 한다. 새로운 변화를 헤쳐나갈 수 있는 실험실과 같은 퍼포먼스 활동을 위한 전용 공간이 더욱더 절실히 필요한 실정이다. 서로 간에 직접 만날 수 없다면 온라인 방송국을 개설하여 전 세계 생방송을 전개하고, 오프라인에서는 다시 대면할 수 있는 상황을 기다리면서 물질과 비물질을 망라하는 아카이빙을 통해 간접적인 교류를 지속해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변화를 앞선 유무형의 기록들
다매체 실험의 서막을 이루었고 변혁의 시대를 견인하였던 퍼포먼스 아트는 아시아 지역뿐만 아니라 세계의 예술계에서 회고전, 아카이브전, 세미나 등을 통해 재조명이 수차례 이루어지고 있다. 아시아 지역 내에서는 현재에도 더욱더 가속화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지난 한국 퍼포먼스 아트의 50년을 기념하는 전시〈저항과 도전의 이단아들 ‘한국의 행위미술 1967-2017’〉(대구미술관, 2018)4)에서는 아시아 행위미술 네트워크라는 특별전이 열려 아시아 지역 퍼포먼스 아트의 아카이브와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서아시아를 아우르는 아카이브가 소개되고 네트워크의 맵이 전시되기도 하였다.
오는 11월에 열리게 될 2021년 판아시아’5)는 ‘In Finite: Live Hive’라는 주제로 다시 준비되고 있다. 시의성의 유한한 시대이지만 무한한 지속력을 강화하기 위한 국제예술 교류의 가능성을 실험하기 위한 자리이며, 라이브의 예술 현장을 기록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IN FINITE(유한한/무한한)’는 현재의 시의성(한계) 앞에서 삶의 변곡점을 발견해나갈 수 있는 무한한 퍼포먼스 예술의 방향성을 의미한다. 코로나 현황으로 인한 세상의 ‘유한한(Finite)’ 멈춤은, 삶을 이끌어나가는 방식, 교류와 소통의 방식, 그리고 대면하는 방법을 송두리째 바꿔나가도록 재촉한다. 현대예술의 ‘무한한(Infinite)’ 잠재성을 통해, 질병과 재난이 빈번한 작금의 시기에 물량주의와 속도주의에 기반한 경제성장 지상주의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물질(오프라인)과 비물질(온라인)이라는 유형과 ‘무형(Live)’의 예술을 ‘기록(Hive)’하는 방식에 대한 필수 불가결한 탐구를 이어나가서 지속적인 작품 연구와 새로운 방식의 국제적인 연대를 찾아내고자 한다. 혁신을 꿈꾸며 계속적으로 개발되고 있는 미디어의 세상 속에서, 이러한 균형적 발전을 통해 상실된 인간의 정서적 활동을 가미하고자 하며 새롭고도 낯선 소통에 관한 필요성을 환기하고자 한다.6)
2008년부터 기록되어 온 아시아 퍼포먼스 아트, 라이브 아트 기관들 그리고 예술가들의 퍼포먼스 작품 기록들의 전시를 앞두고 있다. 국가의 경계를 초월하기 어려운 현시점에서 국내 예술가들이 모여 라이브의 작품 발표를 하고, 국외의 예술가들은 온라인 생방송을 통해 각국의 현지에서 작품 발표를 한다. 그리고 10주년 판아시아를 기념하기 위해 폴란드 3개 도시에서 개최되었던 ‘민주주의 맥락에서 바라본 폴란드-한국의 퍼포먼스 아트’7) 국제세미나와 작품 발표 교류전을 다시 한국에서 온라인 세미나를 통해 개최하게 된다. 올해에는 미얀마의 대표 기관도 함께 참여하여 민주주의의 맥락에서 바라본 국제 퍼포먼스 아트의 실제적인 현황을 논의할 계획이다.
새로운 변모를 준비하기 위해 ‘인피니트 미디어: 소로 브로드캐스트(Infinite Media: SORO Broadcast)’라는 방송국 개설과 더불어 ‘스페이스 소파(Space SOPA)’라는 퍼포먼스 공간 오픈을 준비 중이다. 멈춰 서버린 라이브 예술 현장을 다시 지속할 수 있는 하나의 실마리가 되고, 끊임없이 삶의 변곡점을 찾아 나서는 현장이 되기를 바란다.
1)‘라이브 아트’ 용어는 1980년대 중반에 영국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분류를 회피하거나 확장되는 예술 작품들을 생각하는 예술가들은 굳이 그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당시 예술가들은 퍼포먼스로도, 연극으로도 불릴 수도 없거나, 전적으로 무용도 아닌 당시의 어떠한 카테고리에도 어울리지 않는 작품 활동을 하고 있었다. 1970년대 이래 퍼포먼스 아트가 미국에서 확립된 장르로 되어오는 동안 라이브 아트는 라이브를 근간으로 하는 예술 작품들의 다양성을 인지해가는 하나의 도전이었다. 조슈아 소페어(Joshua Sofaer), “What is Live Art?”, 2002-, DVD, 영국
2)2008년부터 한국에서 개최되고 있는 국제예술협력기구이자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서아시아를 아우르는 30여 개국의 퍼포먼스 아트, 라이브 아트 기관, 예술가들의 교류전이다. 2018년에는 10주년을 기념해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창조원, 일민미술관에서 개최되기도 했다.
3)문재선, 「퍼포먼스의 해방구(解放區), 전용 공간의 필요성」, 『서울아트가이드』, 2018년 9월호
4)국제화 시기(2000-): 특별전〈아시아 행위미술 문재선 컬렉션〉
5)PAN Asia(Performance Art Network Asia): 국가의 경계를 초월하여 아시아 각 국가가 지니고 있는 다양하고 풍부한 전통과 그들의 현재 사회 상황을 퍼포먼스 아트의 연계와 협력을 통해 서로 공감하며, 아시아적 정서와 우정의 교류를 통해 국가 간의 개별적인 특수성과 차이점 그리고 ‘아시아’라는 공통점과 보편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한국을 아시아 퍼포먼스 아트의 정보 거점 및 교류의 플랫폼으로 조성하고 아카이브(2008-2021)를 구축하여 협력에 의한 아시아 현대미술-라이브 아트, 퍼포먼스 아트의 방향성과 정체성을 재조명하고 교환예술 활동을 통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정립하며, 지속적 삶의 담론을 형성하고자 한다.
6)2021년 판아시아(퍼포먼스 아트 네트워크 아시아) 주제 내용 중에서 발췌
7)“Something in Common? Polish and Korean Performannce Art in Democaracy”, 폴란드-Art & Documentation Association+한국-판아시아(퍼포먼스 아트 네트워크 아시아), http://www.journal.doc.art.pl/pdf22/art_and_documentation_22_something_in_common_intro.pdf, 2021년 8월 24일 접속
퍼포먼스 : 시대에 반응하는 예술 - 팬데믹 시대의 퍼포먼스와 사이버 예술
글쓴이 문재선은 2008년부터 현재까지 판아시아(퍼포먼스 아트 네트워크 아시아)의 예술감독으로 활동 중이고, 2018년에는 인도 찬디가르에서 개최된 ‘모니힐즈 퍼포먼스 아트 비엔날레(Morni Hills Performance Art Biennale)’의 예술감독을 역임했으며, 2016년에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라이브러리파크 아카이빙 프로젝트’에서 ‘아시아의 퍼포먼스 아트-자원 분포 현황 및 콜렉션 구축 심화방안 연구’의 책임연구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총체예술을 표방하는 ‘SORO 퍼포먼스 유닛’ 예술그룹의 작가,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