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 동향

사진, 지구를 대신하여 인류에게 경고하다
– 작가 11인

posted 2021.12.20


황규태,〈지구 블랙홀〉, 1980~1990.

황규태,〈지구 블랙홀〉, 1980~1990.

올여름 ‘예사롭지 않은’ 무더위를 접하면서 우리는 지구의 미래를 더욱 걱정하게 됐다. 지구에서 살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지구 종말을 가리키는 시침이 점점 빨라져 파국이라는 운명의 시각에 다다를 것이라는 우려감이 초절정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경고하고 비판하는 여러 목소리가 있다. 사회 각계각층 그 누구도 표면적으로는 이를 외면하지 않는다. 하지만 메아리처럼 이내 사그라든다. 그러나 예술, 그중 미술, 그중에도 사진은 지금을 가장 적나라하게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한다. 때로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다가도 비유와 은유로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원인을 고찰하고 미래를 예언한다. 환경문제를 언급할 때 한 마디 구호보다 더 강한 시각적 충격파를 던지는 사진 장르가 갖는 힘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르포와 창작, 그 사이에서 가장 크고 거대한 공명을 일으키는 장르라 하겠다.


《월간미술》은 환경문제를 주제로 한 사진 작업을 선보인다. 11인의 작가는 각자의 방법으로 환경문제를 주제로 구현하고 있다. 최근 환경문제를 사진 작업을 통해 공론화하고 이를 아카이빙 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아카이브 사이트(ecophotoarchive.org)를 구축한 재단법인 숲과나눔 이사장 인터뷰를 통해 예술이 어떻게 환경문제를 고민하고 있고 어떤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지도 살펴본다. 이번 기획에 참여한 한 작가의 말대로 환경문제는 우리의 무의식에 각인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의식은 행위를 할 때 해결될 수 있다. 지구가 보내는 경고는 결국 우리 인류가 이전부터 스스로에게 해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 경고의 위임자를 자처한 사진의 프레임을 들여다본다.


강홍구


풍경연작으로 인간이 만든 마을이 인간에 의해 폐허가 되고 사라지는 풍경을 씁쓸하게 제시한다.


“내 작업들이 그린벨트 보존을 주장하거나 그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나는 풍경을 찍었는데 그것이 사라져버린 것뿐이다.”


〈오쇠리 풍경6〉digital photo & print 261×100cm 2004. 김포공항 소음으로 오쇠리 마을 전체가 사라진 풍경.

〈오쇠리 풍경6〉digital photo & print 261×100cm 2004. 김포공항 소음으로 오쇠리 마을 전체가 사라진 풍경.

〈그린벨트-고사관수도〉digital photo & print 215×80cm 1999-2000. 〈그린벨트〉 연작 중 폐수로 인한 오염문제를 다룬 작업. 아이러니한 상황에 대한 냉소적 패러디이다.

〈그린벨트-고사관수도〉digital photo & print 215×80cm 1999-2000. 〈그린벨트〉 연작 중 폐수로 인한 오염문제를 다룬 작업. 아이러니한 상황에 대한 냉소적 패러디이다.

사진에 저절로 담긴


나는 내 작업이 환경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거의 없다. 또 환경 보존을 위하거나 환경 사진이라고 불릴만한 작품을 의식적으로 한 적도 없다. 그저 재개발 현장, 사라진 마을, 고향인 신안군, 부산의 산동네, 서울의 공터 등을 찍고 그 위에 뭔가 더했을 뿐이다. 하지만 작품의 최종 결과물들은 기이하게도 환경에 관해 어떤 식으로든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즉 사진 속에는 일종의 사회적 무의식처럼 환경과 관련된 무언가가 포함된 것이다.


〈황학동2〉digital photo & print 260×100cm 2004.

〈황학동2〉digital photo & print 260×100cm 2004.

앞서도 말했듯이 이 모든 사진은 환경에 관한 어떤 발언을 해야지 하고 찍은 것이 아니다. 찍고 보니 환경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던 것이다. 달리 말하면 환경이란 의식적으로 찍으려 하지 않아도 사진 속에 저절로 포함되는 무엇이다. 아마도 이것이 환경 사진이 가진 진짜 본질일지도 모르겠다.


〈흰개〉digital photo print 220×90cm 2009. 은평 뉴타운 개발로 이주민이 버리고 간 개는 결국 북한산으로 서식지를 옮겨 야생화되었다.

〈흰개〉digital photo print 220×90cm 2009. 은평 뉴타운 개발로 이주민이 버리고 간 개는 결국 북한산으로 서식지를 옮겨 야생화되었다.

내 작품을 보는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환경이 공기고, 공기가 곧 환경이듯이 환경과 무관한 사진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관객이 모든 사진을 볼 때 1초만이라도 그 안에 내포된 환경적 무의식에 관해 생각해주면 만족이다.


이상일


한국 최초의 공해병 발생지역이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환경오염에 따른 주민이주사업이 시행된 온산공단과 그 주변 마을을 기록한다.


“나의 관심은 결국 사진은 ‘모든 인간이나 현상 그 자폐????체????의 동작 끝에 있는 그것, 그 외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는 롤랑 바르트의 말처럼 현실에 대한 ‘죽어버린 순간(memento mori)’일 뿐이었다”


〈메멘토모리 002-물질〉2000.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읍 당월리.

〈메멘토모리 002-물질〉2000.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읍 당월리.

〈메멘토모리 011-미모라사〉1995.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읍 당월리.

〈메멘토모리 011-미모라사〉1995.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읍 당월리.

온산공단


나의 사진 작업은 ‘세상과 만나는 일’임과 동시에 ‘매체에 대한 현실을 탐색’하는 일이다.
우리는 세계를 만날 때 자칫 ‘보는 것’과 ‘보이는 것’에 대해 혼동하기도 한다. 보지 않고는 보임이 없고, 보이는 것이 없이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다는 것을 이용해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존재’는 ‘보이는 것의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게 된다. 작업〈메멘토모리〉는 온산공단 철거민들과 함께 살면서 환경문제를 다룬 사진들이다. 환경문제라는 나의 주체적 시선이 사라진 그 자리에는 장소의 존재론적 실체가 찍혀 은폐된 자기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은 생존의 터를 빼앗긴 어둡고 슬픈 삶의 파편들이며, 산업화 과정에서 파생된 제도 폭력의 뒷모습이기도 하다.


〈메멘토모리 022-생산〉1994,〈메멘토모리-담배〉1994,〈메멘토모리 011-고양이〉1995.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읍 당월리.

〈메멘토모리 022-생산〉1994,〈메멘토모리-담배〉1994,〈메멘토모리 011-고양이〉1995.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읍 당월리.

온산공단
우리나라 ‘공해병’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지역이다. 1980년대 초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지역에 세워진 종합단지 내 거주민들에게 전신이 쑤시고 아픈 증세가 이어지자 한국공해문제연구소가 조사를 벌여 주변 공업단지가 배출한 오염물질로 인한 공해병임을 발표했다. 이에 주민들이 주변 공해 발생 업체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 법원에 의해 피해에 대한 구체적인 인정을 한국 최초로 받았다. 이에 ‘온산병’이라는 신조어를 낳기도 했는데 지금까지 정확한 발병요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파라다이스 003-1114〉

〈파라다이스 003-1114〉.

정주하


한국 원자력발전소의 실태를 담는다. 불(火)과 함께 살 수밖에 없는 ‘불안’한 삶의 형태를 보여주며 원전의 위태로움을 제시했다.


“발전소 주변 사람들이 가지는 핵에 대한 내재적 불안과 더불어 관계가 미미한 사람들에게는 천연한 무심함이 있다”


 〈파라다이스 003-1114〉

〈파라다이스 003-1114〉.

파라다이스(PARA-DIESE)


허무하지 않으려면, 그러니까 어떤 행위를 통해 그 결과에 대한 욕구충족의 만족감/함에서 자유롭게 되려면 결론과 시작의 지점을 통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것은 바라보는 주변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내가 곧 그곳 안에 있음을 확인하고, 나를 묻어 함께 드러내는 일이다. 결론은 이미 내려져 있기에, 그 종점으로부터 지나쳐 온 정류장을 거꾸로 확인하는 일.
〈파라다이스〉는 일본 후쿠시마현 나미에 마을에서 죽지 못하고, 혹은 죽이지 않고, 살아있는 증언자/소의 사라/살아져가는 모습이며, 핵발전소 폭발 이후 살처분되지 않았거나, 못 한 피해자/소들이 어떻게 그 일을 증언하고 있는지에 대한 작업이다. 죽이지 않거나 죽지 못하는 저항의 중심에는 징벌의 의미가 있는 법. 인간의 과오 뒤에 붙어있는 욕망의 불찰은 언제나 집요하게 제물을 요구하는데. ‘이들이/소들이’ 그 제물이기를 거부하는 이유는, 사회의 조화를 다시금 회복하거나 사회조직을 더욱 강화하려는 ‘그들’의 욕망을 거부하는 데 있다.


〈파라다이스 010-1114〉,〈파라다이스 007-1114〉

〈파라다이스 010-1114〉,〈파라다이스 007-1114〉.

고정남


사건과 감정이 복잡하게 뒤섞인 사회 문화적인 현상을 가장 잘 반영하는 매체가 사진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한국적인 현상에 집중하며 작업하고 있다.


“코로나19 방역조치가 장기화하면서 사회, 생활의 거리두기로 일상적 삶이 바뀐 혼란스러운 나날이다. 최소한의 삶과 생활 주변에서 만나는 개인적 활동에 포커스를 맞췄다”


고정남_Personal Life #09-2020-1002-인천월미도.

고정남_Personal Life #09-2020-1002-인천월미도.

Personal Life #21-2020-1112-전북정읍역-25, Personal Life #24-2020-1118-광주신세계.

Personal Life #21-2020-1112-전북정읍역-25, Personal Life #24-2020-1118-광주신세계.

우을의 풍경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처음 발생한 이후 중국 전역과 전 세계로 확산된 코로나19는 새로운 유형의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호흡기 감염질환이다. 코로나19가 오면서 많은 행사가 취소되고, 학교나 공원 등 거의 모든 공공장소가 폐쇄돼 생활의 제약을 받고 있다. 코로나19 치료제가 개발됐다고는 하지만,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고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있다. ‘코로나 블루’는 ‘코로나’ 와 ‘우울감(blue)’을 합친 신조어로, 코로나19 확산으로 일상적 삶에 큰 변화가 생기면서 생긴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을 뜻한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우리는 사회적 거리두기, 생활 속 거리두기로 바뀌는 방역 조치에 혼란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Personal Life #22-2020-1113-안산대학교.

Personal Life #22-2020-1113-안산대학교.

나는 인천에 거주하며 사진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집 근처에 있는 월미도와 자유공원을 주로 방문해 사진을 찍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주춤한 시기에 잠깐씩 대면 수업으로 전환돼 광주로 출강했고, 대면 수업 기간에는 대학 주변을 촬영했다. 가끔 서울 지인들의 전시장으로 가는 길에 목격한 장면을 찍기도 했다. 만남과 소통으로 연결된 사회적 관계망이 코로나19로 차단되며 모든 일상이 바뀌고 있다. 기약도 없이 끝없이 돌고 도는 팬데믹의 시대가 월미도 유원지의 회전목마와 닮았다. 개인의 최소한의 삶과 활동에 포커스를 맞춘 작업이다.


문선희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로 살처분된 동물들을 파‘묻은’ 것에 대해 ‘묻고’ 있다. 천만 이상의 생명이 뜬 눈으로 생을 다한 4700곳의 불온한 땅에 피어난 애도의 무늬.


“이 작업은 합리성과 경제성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우리 사회 시스템에 의해 산 채로 매장된 동물들과 함께 우리들의 인간성마저 파묻어버린 땅에 대한 기록이다”


〈2654(경기도)〉2014,〈11800_02(광주광역시)〉2014.

〈2654(경기도)〉2014,〈11800_02(광주광역시)〉2014.

〈11800_03(광주광역시)〉2014,〈2312_01(충청북도 증평군)〉2014.

〈11800_03(광주광역시)〉2014,〈2312_01(충청북도 증평군)〉2014.

2010년 겨울이었다. 매일 산 채로 파묻히는 동물에 관한 뉴스가 보도되었다. 트럭에 가득 실려 온 돼지들이 구덩이 속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살처분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그제야 알았다. 충격, 이라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살아있는 생명을 저렇게 대해도 되는 걸까?’ 너무나 모질고 잔혹한 현실에 내 안 깊은 곳에 있는 무언가가 훼손되는 기분이었다.
이렇다 할 뉴스 없이 전국 4,799곳의 매몰지가 고스란히 사용 가능한 땅이 되었다. 정말 사용 가능한 땅이 되었을까? 법정발굴금지 기간이 해제된 매몰지 중 100여 곳을 무작위로 찾아갔다. 물컹한 땅 위에서 기이한 광경을 목격했다. 동물들이 고통 속에 파묻힌 곳에서 풀들은 기이하게 죽어갔고, 대지는 깊게 상처 입었다.
숙연한 마음으로 몸을 낮추고 대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모든 사진은 정면에서 클로즈업으로 촬영했고 확대해서 프린트했다. 동일한 형식을 취한 것은 관객들이 단순히 사진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가 목도한 장면과, 그 장면을 바라보는 방식을 동시에 바라보길 바라서였다. 내 작품에 제목으로 쓰인 숫자들은 그 땅에 몇 마리의 동물이 파묻혔는지를 알리는 숫자다.


노순택


신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을 수도권으로 수송하기 위한 초고압 송전탑이 설치된 밀양을 배경으로 작업했다.


“밀양은 묻는다. 눈물을 타고 흐르는 전기 앞에서, 떳떳한 이 누구인가”


〈감전 II #CEK2309〉장기보존용 잉크젯안료프린트, 108×158cm, 2014. 신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시작해 밀양 산외면 희곡마을 용암산 기슭 103번 송전탑으로 이어지는 고압송전선.

〈감전 II #CEK2309〉장기보존용 잉크젯안료프린트, 108×158cm, 2014. 신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시작해 밀양 산외면 희곡마을 용암산 기슭 103번 송전탑으로 이어지는 고압송전선.

왼쪽〈감전 II #CEK2411〉장기보존용 잉크젯안료프린트 108×158cm, 2014, 경남 밀양 단장면 바드리마을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76만5000V의 89번 송전탑. 오른쪽〈감전 II #CEK2354〉장기보존용 잉크젯안료프린트, 108×158cm, 2014, 경남 밀양 산외면 희곡마을. 들녘에서 타오른 쓰레기 연기 너머 103번, 104번 송전탑이 보인다.

왼쪽〈감전 II #CEK2411〉장기보존용 잉크젯안료프린트 108×158cm, 2014, 경남 밀양 단장면 바드리마을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76만5000V의 89번 송전탑. 오른쪽〈감전 II #CEK2354〉장기보존용 잉크젯안료프린트, 108×158cm, 2014, 경남 밀양 산외면 희곡마을. 들녘에서 타오른 쓰레기 연기 너머 103번, 104번 송전탑이 보인다.

희생을 직시하라


“어떤 전쟁은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쩔 수 없는 전쟁” 혹은 “더 큰 전쟁을 막기 위한 전쟁.” 이런 말 속에 함정은 없을까. 전쟁의 본질을 바로 보려면 전쟁에서 누가 희생되는지를 봐야 한다. 이보다 더 정확하게 꿰뚫어 보려면 누가 이익을 취하는지를 보면 된다. 전쟁은 저 먼 곳 아프가니스탄에서만, 더 먼 시간 1950년 한반도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작은 전쟁들, 교묘하게 포장된 전쟁들은 우리의 생활을 감싼다. 전기의 생산과 유통, 소비를 둘러싼 전쟁은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에게 전쟁보다 더 간절한 건 물론 전기다. 좋은 전기, 착한 전기는 과연 있을까. 누군가는 핵(원자력)발전이야말로 친환경 발전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태양광과 풍력이야말로 우리의 미래를 열어줄 거라 말한다. 또 누군가는 석탄화력이야말로 이른바 ‘가성비의 끝판왕’이라 칭송한다.
신고리 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초고압 전기를 도시의 전기소비자에게 실어 나를 송전탑 건설을 둘러싸고 밀양의 늙은 농부들과 정부는 극심한 갈등을 빚었다. 농부들 또한 엄연한 전기소비자지만, 논밭 위를 가로지르는 송전탑 설치는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경찰과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은 마을공동체를 이간질하는 전술을 썼고, 효과적이었다. 농부들은 정부와 싸우는 동시에 이웃과도 싸워야 했다. 어떤 농부들은 억울함을 호소할 데 없어 목숨을 끊었다. 어떤 농부들은 감옥에 갇혔고, 어떤 농부들은 감당하기 힘든 벌금폭탄을 맞았다.


왼쪽〈감전 I #CEB2603〉장기보존용 잉크젯안료프린트, 108×158cm, 2013, 경남 밀양 골안마을. 정부의 일방적인 송전탑 건설 강행을 막기 위해 현장으로 오르려는 환경운동가를 경찰이 가로막고 있다. 오른쪽〈감전 I #CDK0201〉장기보존용 잉크젯안료프린트, 108×158cm, 2013, 경남 밀양 바드리마을 입구. 신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한 76만5000V의 초고압 전기를 도시로 내보낼 송전탑을 설치하기 위해 공권력이 몰려올 거라는 소식을 듣고 늙은 농부들은 밤새 길목을 지켰다. 산속에서 망을 보는 주민 김옥희 씨의 모습.

왼쪽〈감전 I #CEB2603〉장기보존용 잉크젯안료프린트, 108×158cm, 2013, 경남 밀양 골안마을. 정부의 일방적인 송전탑 건설 강행을 막기 위해 현장으로 오르려는 환경운동가를 경찰이 가로막고 있다. 오른쪽〈감전 I #CDK0201〉장기보존용 잉크젯안료프린트, 108×158cm, 2013, 경남 밀양 바드리마을 입구. 신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한 76만5000V의 초고압 전기를 도시로 내보낼 송전탑을 설치하기 위해 공권력이 몰려올 거라는 소식을 듣고 늙은 농부들은 밤새 길목을 지켰다. 산속에서 망을 보는 주민 김옥희 씨의 모습.

끝내 송전탑은 산맥을 잇듯 “보기 좋게” 흐르며 완공되었다. “핵발전이 그토록 안전하고 친환경적이라면 서울 한강변에 지을 일이지 왜 먼 바닷가에 짓고, 그 전기를 실어나르겠다며 조용한 산골을 쑥대밭으로 만드느냐”는 농부들의 외침에 누가 알아들을 만한 친절한 가르침을 줄 것인가. 2015년 밀양의 할배 할매들이 ‘탈핵 탈송전탑 원정대’를 꾸려 2900㎞ 대장정을 한 끝에 펴낸 보고서엔 이런 문장이 있다. “그랬다.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전기는 우리 문명의 거울이건만, 언제나 그렇듯 우리는 거울 보기에 게으르다.


박형근


보이지 않는 생태계의 교란과 지형의 변화와 뉴타운 개발로 멸실될 위기에 처해 ‘결코 편안하지 않은’ 주거환경과 일상을 기록한다.


“인간의 영역 확장을 위한 욕망의 실현만큼 우리에게서 멀어진 가치, 그것들과의 공존과 상생은 사진 속에서 치열한 투쟁의 은유들로 채워졌다”


Forbidden forest-37, C print, 150x190cm, 2018, 제주 곶자왈이라는 특별한 자연환경을 촬영하면서 깨달은 초월적 세계에 대한 이미지. 지구의 심부로부터 솟아오른 뜨거운 용암 위에 생성된 특이한 숲과 그 안에 침전, 퇴적되어 간 인간의 역사가 토해내는 숨결에 대한 명상적 기록이다

Forbidden forest-37, C print, 150x190cm, 2018, 제주 곶자왈이라는 특별한 자연환경을 촬영하면서 깨달은 초월적 세계에 대한 이미지. 지구의 심부로부터 솟아오른 뜨거운 용암 위에 생성된 특이한 숲과 그 안에 침전, 퇴적되어 간 인간의 역사가 토해내는 숨결에 대한 명상적 기록이다.

왼쪽 Tenseless-50, Flow, C print, 103x130cm, 2007, 건설 폐기물을 불법 매립한 현장에서 촬영한 이미지/ 며칠간 내린 비에 시멘트벽 안에서 흘러나온 녹슨 물이 지면을 붉게 물들인 장면. 오른쪽 Fishhooks-120,Green lake, 120x150cm, C print, 2013, 인간의 목적에 의해 육지와 바다 환경에 가해진 혼돈과 폭력에 대한 은유. 근대화 이후, 혹은 인간이 지구의 표면을 장악해 나간 순간부터 자연, 영토, 자원, 개발의 문제는 인간의 범주 안에서 기획, 실행되었다. 인간의 영역 확장을 위한 욕망의 실현만큼 우리에게서 멀어진 가치, 그것들과의 공존과 상생은 이 사진 속에서 치열한 투쟁의 은유들로 채워졌다.

왼쪽 Tenseless-50, Flow, C print, 103x130cm, 2007, 건설 폐기물을 불법 매립한 현장에서 촬영한 이미지/ 며칠간 내린 비에 시멘트벽 안에서 흘러나온 녹슨 물이 지면을 붉게 물들인 장면. 오른쪽 Fishhooks-120,Green lake, 120x150cm, C print, 2013, 인간의 목적에 의해 육지와 바다 환경에 가해진 혼돈과 폭력에 대한 은유. 근대화 이후, 혹은 인간이 지구의 표면을 장악해 나간 순간부터 자연, 영토, 자원, 개발의 문제는 인간의 범주 안에서 기획, 실행되었다. 인간의 영역 확장을 위한 욕망의 실현만큼 우리에게서 멀어진 가치, 그것들과의 공존과 상생은 이 사진 속에서 치열한 투쟁의 은유들로 채워졌다.

희미해진 인식


그간 나를 구성하고 있는 내외부적 요인과 환경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사진작업의 주 로케이션이 숲과 공원 또는 도시 주변부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그 안의 변화와 생성을 관찰, 기록했다. 이성에 기반한 과학적 분석 대상으로서 환경이 아니라 감각 이전의 원시적, 근원적 요소로서의 생명을 느끼고 호흡하고자 했다.
초기작〈텐슬리스(Tenseless, 2004-2015)〉에서 이러한 환경 인식은 문명화된 자연 너머의 세계에 대한 상상력에 기대어 재생과 순환의 메커니즘으로 표현되었으며, 제주의 곶자왈과 원시림을 촬영한〈금단의 숲(Forbidden Forest, 2008-2017〉에서 숲은 인간 역사에 대한 성찰과 화해의 공간으로 묘사되었다. 그리고 경기도 안산. 화성 시화 간척지 일대를 기록한〈낚싯바늘(Fishhooks, 2010-2016)〉연작은 급격한 환경변화가 초래한 비극에 대한 치열한 투쟁의 은유들로 채워졌다.


지성배


실제로 공장에서 노동자로 활동했던 경험이 녹아든 작업이다. 기계부품과도 같은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결국 인간 존재의 따뜻한 복원을 시도한다.


“나는 흘러내리는 밤을 걸어서 천천히 그 장치들 속으로 들어갔다.(…) 장치들로부터, 그것들의 굉음으로부터 거리감을 유지하며 낮과 어둠 속의 차가운 정적들을 미적 교감으로 끌어내고자 했다”


〈human refinery 01〉, 젤라틴 실버프린트 140X90cm 1999~2000.

〈human refinery 01〉, 젤라틴 실버프린트 140X90cm 1999~2000.

〈Voyage Of The Night〉, gelatin silver print, 50.8x70cm(20x24inch), 2001

〈Voyage Of The Night〉, gelatin silver print, 50.8x70cm(20x24inch), 2001.

공장지대


수년간 공단의 별밭을 거닐었다. 차갑고 무거운 공기가 부유하는 공단의 밤은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기계장치들의 소란 속에서 끓어 넘치고 있었다. 나는 흘러내리는 밤을 걸어서 천천히 그 장치들 속으로 들어갔다. 적막하기만 했던 밤들, 때론 고독했고 때론 무서웠던 밤들을 지나면서 기계와 인간(나)에 관한 연작은 시작됐다. 나의 몸과 기계가 맞닿아 나(인간)의 신체가 전락(轉落)하는 과정을 표현한〈인간정제소 Human Refinery〉와 기계장치에 대한 일련의 대결 구도로서 기계성에 의한 인간성 상실, 부품화되어 가는 현실을 직시하며 굴복할 수 없는 삶의 진정성을 찾아보고자 한〈어둠의 정원 Garden of Night〉, 그리고 연작의 마지막 부분인〈밤의 항해〉를 통해 인간의 삶은 결국, 기계장치의 부속물이 아닌 삶의 부합이라는 인식에 의미를 두고자 했다. 그러나 여전히 부속적인 삶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온기를 찾아볼 수 없었던 지난 작업에 비해 나름의 온기를 제공하고자 노력했으며, 장치들로부터 또 그것들의 굉음으로부터 거리감을 유지하며 어둠 속의 차가운 정적들을 미적 교감으로 끌어내고자 했다. 또한 대상의 관조를 통한 폭넓은 시선을 유지하려고 했다.〈공장지대〉연작은 나의 어두운 지난날들의 고백이 될 것이다. 이제 길고도 짧았던〈밤을 향한 항해〉를 마치려 한다. 아직 암울하기만 한 공단의 환경과 인간의 문제를 잠시 별들에게 맡겨 두기로 하며…


 왼쪽〈garden of night 02〉, gelatin silver print, 50.8x70cm(20x24inch), 1999,  오른쪽〈garden of night 01〉, gelatin silver print, 50.8x70cm(20x24inch), 1999.

왼쪽〈garden of night 02〉, gelatin silver print, 50.8x70cm(20x24inch), 1999, 오른쪽〈garden of night 01〉, gelatin silver print, 50.8x70cm(20x24inch), 1999.

오석근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비롯한 매개체로 외부와 접촉하는 시간이 급격히 늘어가고 있다. 모니터로 송출된 풍경을 다시 촬영한다.


“광학기기에서 또 다른 광학기기로 전달, 복사된 창밖 풍경의 이미지는 현실의 풍경을 더욱 기이하게 왜곡한다”


철거의 풍경


프로젝트 인천(仁川)은 인천의 기억, 역사,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바다를 마주하던 작은 어촌마을 제물포는 1883년 개항 이후 일본의 식민지 도시로 탈바꿈됐다. 일제는 제물포 일대의 갯벌을 매립하여 수탈과 전쟁을 위한 도크, 공장 그리고 창고를 세웠다. 1950년 한국전쟁 시기, 인천의 주요시설은 인천상륙작전으로 인해 파괴되고 다수의 민간인이 희생되거나 집을 잃었다. 이후 산업화, 근대화라는 국가적 대의 아래 기업은 일본이 조성한 산업부지와 시설을 저렴하게 불하받거나 갯벌을 매립하고 또 공장을 세웠다. 이렇듯 인천의 자연은 험난했던 근현대사 속에서 언제나 반복적으로 희생되어왔다. 해양도시이지만 바다를 마주할 수 없는 이 아이러니는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되묻던 질문이며 한해 한해 공유지를 매립해 거대하게 확장되는 도시 인천의 풍경을 마주하는 건 비극에 가까웠다. 현재 강화 등 섬을 제외하고 인천 서구에서 남동구까지의 내륙의 해안선 중 원형을 가진 곳은 슬프게도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현재 확장된 인천의 모습이 제국 일본이 그렸던 인천의 미래 모습과 일치한다고 이야기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시간이 흘러 도시를 가득 채웠던 식민지, 산업화의 다양한 흔적들 즉 일제 강점기에 세워진 공장, 창고, 사택, 내항, 조병창(미군부대) 등은 그 기능을 다 하여 보존과 활용, 철거와 정화 사이에 끊임없는 논쟁을 생산하고 있다.


〈인천 (仁川) 01〉, 가변크기, Digital c-print, 2018.

〈인천 (仁川) 01〉, 가변크기, Digital c-print, 2018.

해안을 매립하고 1968년 준공한 동양화학건물로 2018년 철거 당시의 모습을 촬영했다.
어린 시절 제2경인 고속도로를 오고 갈 때 항상 마주하던 공장으로 공장 일대에 초록색 폐수가 가득한 풍경이 여전히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 있다. 오랜 시간 소다회를 생산한 본 공장은 폐석회 등 다양한 환경 문제를 야기해 왔고 이는 현재 진행 중이다. 동양화학은 공장의 일부 부지를 공적인 활용 즉 뮤지엄파크(인천시립미술관 + 박물관)를 위해 기부채납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토양오염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있으며 뮤지엄파크 외의 부지에는 신식 아파트를 지을 예정이다. 공장 용지를 주거 용지로 용도 변경할 때 얻는 시세차익은 실로 엄청나다. 모두의 공유지를 어떻게 기업이 사유화, 자본화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생각한다.


왼쪽〈인천 (仁川) 23〉, 가변크기, Digital c-print, 2019. 오른쪽〈인천 (仁川) 14〉, 가변크기, Digital c-print, 2018.

왼쪽〈인천 (仁川) 23〉, 가변크기, Digital c-print, 2019. 오른쪽〈인천 (仁川) 14〉, 가변크기, Digital c-print, 2018.

화수부두는 인천 내륙에 유일하게 남은 갯벌포구이다. 이 자연포구는 일제 강점기 매립을 시작으로 해방 이후 산업화를 거치면서 현재의 십자형 포구로 변형됐다. 한때는 인천 어업의 중심지였지만 연안부두가 생긴 이후 쇠락의 길을 걸어왔다. 현재 화수부두에는 선상 파시, 굴막, 공장, 선상횟집, 아파트가 함께 공존하고 있어 인천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으로 인식된다. 몇 년 전 해수청과 지자체는 준설토 투기장의 필요성과 주변 공장의 폐수의 악취를 막는다는 핑계로 북성포구매립사업을 추진하였다. 시민사회로부터 매립 후 땅 나누어 먹는 개발사업이라는 많은 비판과 저항을 받았으나 이를 끝까지 밀어붙여 현재 포구의 많은 갯벌이 또다시 매립되었다. 2번 사진은 2019년에 촬영한, 갯벌을 다시 매립되기 전 북성포구의 모습이며 3번 사진은 북성포구 갯벌 위에 펼쳐진 기름띠이다.


왼쪽〈인천 (仁川) 22〉, 가변크기, Digital c-print, 2019, 가운데〈인천 (仁川) 21〉, 가변크기, Digital c-print, 2019, 오른쪽〈인천 (仁川) 25, 26, 55, 31〉, 가변크기, Digital c-print, 2019.

왼쪽〈인천 (仁川) 22〉, 가변크기, Digital c-print, 2019, 가운데〈인천 (仁川) 21〉, 가변크기, Digital c-print, 2019, 오른쪽〈인천 (仁川) 25, 26, 55, 31〉, 가변크기, Digital c-print, 2019.

1938년, 인천 일본조계지의 일본인 인구가 팽창하면서 일본인 묘지였고, 한국인의 초가집이 있었던 신흥동에 신도시가 들어섰다. 풍광이 좋은 산 정상에서부터 미곡창고가 가득한 바다까지 당시의 계급, 직업, 국적에 따라 일식 건물의 유형이 다르게 위치한 동네이다. 사진은 2019년 촬영하였으며 당시 민간 재건축조합이 29층 아파트를 짓기 위해 신흥동의 여러 건물을 철거하고 있던 때이다. 4번의 사진은 철거된 적산가옥이며 5번 사진에서는 신흥동에 현존하는 다양한 일식 건축물 등을 압축적으로 볼 수 있다. 6-9번 사진은 신흥동 일식가옥의 내부의 사진으로 시간의 층위와 생활문화사를 읽을 수 있다.


황규태


황규태의 작업에는 묵시록적인 메시지가 작품 곳곳에서 출몰한다. 지구온난화, 대도시 속 소외, 감시와 통제 사회의 도래 등이 그것이다. 또한 자본의 성지가 곧 생명의 무덤임을 역설한다.


왼쪽〈불모의 지구별〉대략 1억년 마다 한 번씩 기후 대참사를 겪는다는 지구, 그 후 생물 다양성을 회복하는 데 1000만 년이 걸린다고 한다. 앞으로 인류에 의한 대참사가 예고되어 있다. 그 때 인류는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오른쪽〈행성〉1995~2000.

왼쪽〈불모의 지구별〉대략 1억년 마다 한 번씩 기후 대참사를 겪는다는 지구, 그 후 생물 다양성을 회복하는 데 1000만 년이 걸린다고 한다. 앞으로 인류에 의한 대참사가 예고되어 있다. 그 때 인류는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오른쪽〈행성〉1995~2000.

〈불타는 도시 I〉1969.

〈불타는 도시 I〉1969.

“불모의 땅이 된 지구의 모습과 대도시의 늙은 타이탄, 육식이 낳은 폐해등 나는 1960년대부터 푸른 별 지구에 닥칠 환경위기를 상상하며 작업했다.”


왼쪽〈아메리카〉R프린트 1980년대 엄청나게 버려지는 1회용 용기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았다. 오른쪽〈빽투더퓨처〉1980년대 촬영한 요소(캘리포니아 해안가, 미국 자연사박물관 유인원 모형, 도시에서 발견한 쓰레기, 나비 등)를 2000~2005년 디지털로 재작업했다. 유인원이 과거에서 현대로 여행왔다는 설정하에 천재지변으로 폐허가 된 도시의 모습을 표현했다.

왼쪽〈아메리카〉R프린트 1980년대 엄청나게 버려지는 1회용 용기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았다. 오른쪽〈빽투더퓨처〉1980년대 촬영한 요소(캘리포니아 해안가, 미국 자연사박물관 유인원 모형, 도시에서 발견한 쓰레기, 나비 등)를 2000~2005년 디지털로 재작업했다. 유인원이 과거에서 현대로 여행왔다는 설정하에 천재지변으로 폐허가 된 도시의 모습을 표현했다.

사진으로 쓰는 미래 예언서


미국에 첫발을 디딘 후 컬러 현상소에서 일을 했다. 심심풀이 장난으로 찍은 필름을 태워보다가 언뜻 ‘이것을 프린트해보면 어떨까’해서 시작한 것이 ‘버닝 시리즈(Burning Series)’다. 만 레이(Man Ray)가 자기 이름을 따러 ‘레이오그라피(Rayography)’라 명명한 것을 흉내내서 나는 나의 기법을 ‘버노그라피(Burnography)’라 했다. 지금도 심심하면 필름을 태우고 논다.〈불타는 도시 I〉(1969년)은 그렇게 탄생했더. 이 사진의 배경은 1960년대 LA다운타운이다. 이렇게 태워놓고 보니 원자탄이 떨어지면 이 모양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불타는 도시가 되었다. 그리고〈행성〉(1995~2000)은 내가 화성(Mars)에 갔을 때 찍은 지구다. 얼마나 아름답던지! 그런데 우리들의 후대에도 그렇게 아름다운 지구를 볼 수 있을지. 칼 세이건(Carl Sagan)의 말처럼 ‘아름답고 연약한 푸른 점 하나’를 태워보았다. 사막 같은 불모의 행성이 되었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도 없겠지. 그리고〈도시의 인상 I〉(1969),〈도시의 인상〉(1969~70)의 배경은 1960년대 LA이고, 두 장의 빌딩 슬라이드를 겹치고 아래쪽에 눈을 몽타주했다. 도시는 핏발 선 눈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도시의 큰 빌딩을 등에 지고 힘겨워하는 늙은 타이탄이 보인다.


〈바벨탑〉한강변 소각장 깡통이나 일회용 용기 등을 무작위로 태우는 광경을 촬영, 디지털 작업해 공중에 올라가는 형태를 구현하여 인간의 욕망을 패러디했다.

〈바벨탑〉한강변 소각장 깡통이나 일회용 용기 등을 무작위로 태우는 광경을 촬영, 디지털
  작업해 공중에 올라가는 형태를 구현하여 인간의 욕망을 패러디했다.

박부곤


땅이 경험하고 기억하는 수많은 자국을 기록하기 위해 대형카메라로 장노출을 해 작업한다. 파괴와 생성을 거듭하는 땅의 현재와 땅속에 매장됐을 과거의 도시를 사유하게 한다.


〈Tracking-Revolution-5〉, C-print, 152x190cm, 2014, 지구의 공전을 트래킹 작업으로 표현하여 모든 곳에 작용하는 보이지 않는 힘의 속성과 의미를 드러내려 했다.

〈Tracking-Revolution-5〉, C-print, 152x190cm, 2014, 지구의 공전을 트래킹 작업으로 표현하여 모든 곳에 작용하는 보이지 않는 힘의 속성과 의미를 드러내려 했다.

〈Tracking-20〉, C-print 152×190cm 2013, 땅에 새겨진 개발의 흔적들을 따라 걸으면서 땅의 기운을 느끼고, 마침내 출발지점으로 돌아가는 육체적 행위로 현실의 인식과 반성, 자연의 회귀를 염원한다. 붉은색 땅과 붉은색 트래킹 궤적은 대지와 인간인 나의 생명성을 표현한다.

〈Tracking-20〉, C-print 152×190cm 2013, 땅에 새겨진 개발의 흔적들을 따라 걸으면서 땅의 기운을 느끼고, 마침내 출발지점으로 돌아가는 육체적 행위로 현실의 인식과 반성, 자연의 회귀를 염원한다. 붉은색 땅과 붉은색 트래킹 궤적은 대지와 인간인 나의 생명성을 표현한다.

“땅은 인공적이고 문화적 구성체이자 선택물이 되었다. 필연적이지만 우리 삶의 현재 모습은 땅에 새겨진 수많은 생성과 파괴의 자국을 통해서 기억될 뿐이다”


왼쪽〈Mechanical City-10〉C-print 152×190cm 2012, 동탄2신도시 건설 현장과 멀리 보이는 동탄신도시. 오른쪽〈Mechanical City-9〉C-print 152×190cm 2013, 암석이 폭파된 직후와 산이 평지로 만들어지는 프로세스를 보여주는 건설 현장.

왼쪽〈Mechanical City-10〉C-print 152×190cm 2012, 동탄2신도시 건설 현장과 멀리 보이는 동탄신도시. 오른쪽〈Mechanical City-9〉C-print 152×190cm 2013, 암석이 폭파된 직후와 산이 평지로 만들어지는 프로세스를 보여주는 건설 현장.

처연하여 숭고하다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시골에서 자란 나는 도시의 팽창과 수요가 만든 개발 현장의 안타까운 풍경을 지나칠 수 없었다. 땅의 변화를 처연하고 숭고한 아름다움으로 기록하는〈대지(The Land)〉연작으로 사진 작업을 시작했다.
내가 아닌 누군가의 이기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로 생겨난 풍경으로 생각했던 나의 작업이 인간의 역사가 만든 견고하고 거대한 구조에서 필연적인 일이며,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삶이 만든 풍경을 기록한 작품임을 부인할 수 없었다. 딜레마에 빠진 현실과 나의 작업은 땅에 새겨진 개발의 흔적들을 따라서 걷는 것으로 땅의 기운을 느끼고, 마침내 출발지점으로 돌아가는 육체적 행위를 장노출 사진으로 기록한〈트래킹(Tracking)〉연작으로 이어졌다.
인간의 역사가 만든 구조의 형성과정과 인간 사회를 초월한 우주 순환과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우리의 위치를 시험하는 가변 설치 작업 ‘불연속 세트’를 만들어〈순환의 재구성〉전과〈유토피아의 초상〉전을 열었다.


〈불연속 세트-1〉사진. 모터. 램프 가변크기 2020, 외부는 지구 표면의 사진으로, 내부는 밤 풍경과 인식과 반성을 표현한 트래킹 사진으로 설치된 작품의 내부로 들어가면 중앙에 모터, 전선과 동파이프의 접촉에 따라 회전운동과 램프의 점등이 반복되는 우주의 순환을 암시하는 설치물 사이를 관람하며 돌아서 나오게 된다. 우리는 관람만 하며 돌아 나왔지만, 관람 방향에 따라 시작(α)과 끝(Ω)을 결정하게 된다.

〈불연속 세트-1〉사진. 모터. 램프 가변크기 2020, 외부는 지구 표면의 사진으로, 내부는 밤 풍경과 인식과 반성을 표현한 트래킹 사진으로 설치된 작품의 내부로 들어가면 중앙에 모터, 전선과 동파이프의 접촉에 따라 회전운동과 램프의 점등이 반복되는 우주의 순환을 암시하는 설치물 사이를 관람하며 돌아서 나오게 된다. 우리는 관람만 하며 돌아 나왔지만, 관람 방향에 따라 시작(α)과 끝(Ω)을 결정하게 된다.

※ 이 원고는 월간미술 2021년 11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월간미술과 콘텐츠 협약을 맺고 게재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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