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한국 미술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이 뜨겁다. 전 세계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한국의 수도 서울은 근래 새로운 아시아 미술시장의 중심지로서 주목받고 있다. 세계 주요 미술 매체들은 서울을 떠오르는 아시아의 아트허브로 소개하고 있는데1), 이처럼 서울이 주목받게 된 것은 기존 아시아 미술 중심지였던 홍콩의 정치 불안 상황 외에도 서울이 가진 문화적 인프라와 시장 성장 잠재력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관, 갤러리, 전시공간, 아트페어, 미술대학, 작가 및 컬렉터군 등 문화적 인프라를 충분히 갖추고 있는 서울은 관광객뿐만 아니라 해외 미술 관계자들이 방문하고 싶어하는 매력적인 도시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많은 해외 유명 갤러리들이 서울에 한국 지점을 열었고, 진출하고자 하는 갤러리 역시 늘어나고 있다2). 특히 2021년은 코로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아트페어,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이 증가하였고, 미술품 거래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해였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유족이 기증한 소장품 약 2만 3천여 점은 국민들이 미술에 더욱 관심을 갖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고, 한국 최초의 공립 공예 박물관의 개관, 리움 미술관의 재개관에 이어, 송은 문화재단 신사옥의 전시 공간까지 다양한 공간들이 새로 생겨나며 미술계에 대한 주목이 끊이지 않았다.3) 그리고 올해 9월 프리즈와 키아프의 공동 개최로 인해 수많은 국내외 컬렉터, 미술 애호가, 미술 관계자들의 한국 미술계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해보다 뜨거울 것으로 보인다.
더아트로는 한국이 가진 풍부한 문화적 인프라를 소개하고, 최근 변화하고 있는 한국의 미술 현장을 조명해보고자 이번 특집을 기획하였다. 미술관, 갤러리 외에도 도시 곳곳에 매력적인 공간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미술 행사들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새로 문을 연 전시공간이나 예술 프로젝트들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며, 미술 현장에 대한 콘텐츠 또한 대규모의 국공립 또는 사립미술관, 국제 미술행사에 치중되어 있는 편이다. 이에 더아트로는 다양한 미술 현장들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주제로 ‘공공미술’, ‘공간’, ‘작품’이라는 키워드를 선정하여 3개의 연재 특집기사를 준비했다. 첫 번째 기사 ‘도시 속 공공미술’에서는 국내 여러 지역의 공공미술을 소개한다. 도시 내 문화공간 조성을 목표로 진행되어온 공공미술 프로젝트, 그리고 시민들이 삶 속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공공미술을 알아보고, 한국 공공미술의 현주소를 들여다본다. 두 번째 ‘새로운 공간들’ 에서는 최근 새로 생겨났거나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도시 곳곳의 공간들을 중점적으로 다루어보고자 한국의 대표 미술 도시인 서울, 부산, 대구, 광주의 미술현장을 조명하는 기사를 기획하였다. 마지막으로 ‘미술 작품 속 도시’에서는 도시를 주제로 작업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도시의 다양한 모습을 조명한다. 이번 특집기사를 통해 한국의 새로운 면모를 알리고, 한국 미술의 국제적 위상을 제고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글이 한국을 찾는 많은 해외의 미술 애호가들과 시각 예술 관계자들에게 한국 문화현장 안내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번 특집의 첫 번째 기사에서는 도심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는 공공미술과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시민이 공감하고, 일상에서 쉽게 즐길 수 있는 공공미술 프로젝트” 「서울은 미술관」을 소개할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시민참여 공공미술 전시, 공공미술 컨퍼런스 개최, 공공미술 관리 등의 세부 사업을 추진하며, 작품의 선정부터 창작과정에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도시 내 적합한 환경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세부적인 관리체계를 마련하여 기존 공공미술 프로젝트들과 차별성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번 기사에서는 「서울은 미술관」의 진행 과정과 방향성 및 대표 작품들을 소개하며 서울의 '공공미술'을 살펴보고자 한다.
글 정일주(퍼블릭아트 편집장)
‘제 눈에 안경’, ‘콩깍지’ 등으로 표현되는 ‘호감’. 이는 연애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사사건건, 물건을 고르거나 진로를 선택할 때 역시 ‘내가 좋은 것’, ‘내 눈에 예뻐 보이는 것’에 마음이 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도시도 마찬가지이다. 무례하고 무정하며 야속하다고 여기는 한 아무리 오래 머물러도 애정이 생길 리 없다. 하늘은 잿빛이고 거리는 콘크리트처럼 차갑고 단단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구석이 있어야 정을 붙이고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 우리나라 도시들은 예쁘다고 여길만한 부분이 꽤 많다. 산과 나무, 공원과 고궁이 있고 대학가엔 활력이, 구석구석에 감탄스런 예술 혼이 숨 쉬기 때문이다.
공공미술도 도시에 호감을 갖게 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한때 ‘건축물 미술작품’으로 통용되던 공공미술은 점차 그 본의를 찾아 여러 형태로 완성되고 있다. 공공미술은 가장 중요한 덕목을 소통으로, 그것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먼저 교감하고, 교감을 이루기 위해 삶의 일부가 되는 것을 전제한다. 그러면서 물질과 비물질, 설치와 프로그램 등 자유자재로 파생되고 있는 것이다. 광주, 부산, 대구 등 대도시뿐 아니라 강원도와 제주도까지 각 지방자치단체가 공공미술을 적극 끌어들임으로써 브랜드를 각인하고 대중의 호응을 유도하며, 지역 사회와 문화를 기반으로 한 미술들은 이제 아카이브 역할까지 병행한다. 여기 장소의 매력은 물론 도시의 경관까지 포괄하는 폭넓고 창조적인 공공미술들을 집합하니, 원한다면 지금 당신도 만끽할 수 있다.
GPS에도 잡히지 않는 남북출입사무소, 그 바로 옆에 ‘통일을 위한 플랫폼’이란 뜻의 Uni마루가 있다. 2021년 가을, 비무장지대(이하 DMZ) 내 마련된 이 첫 예술 공간은 국내외 32명 작가가 참여하는 대규모 현대미술전시로 개관을 알렸다. 평화와 생태, 두 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비무장지대를 이상화시키거나, 이국화시키거나, 과도하게 타자화시키는 시각을 배제한 작품들은 미술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비록 멀고 진입하기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DMZ는 한국전쟁의 상처이자 흔적이며, 우리가 진입할 수 없는 금단의 구역, 경계이다. 군사적 완충지대이면서도 유엔군이 주둔하므로 냉전의 역사가 여전히 지속되는 곳이다. 현재라는 시간성이 잘 느껴지지 않는 이곳에, 전시를 만들어 선보인 정연심 홍익대 교수는 비무장지대의 경계, 그 경계를 넘어서는 물리적인 특징과 탈물질적인 정보 등을 모두 이용하는 기획을 세웠다. 그리고 그 모든 작품은 당신과 나, 남과 북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공공미술로 구현됐다.
경의선 남쪽 최북단 역이자 북으로 가는 첫 번째 역, 도라산역도 전시 공간 중 하나인데, 민통선 남방한계선에서 대략 700m 떨어진 이 역은 향후 한반도 분단의 상징적 장소이면서 남북교류의 관문이라는 이중적인 역사적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통일이 이뤄지거나 혹은 남북의 왕래가 가능해졌을 때 남과 북을 연결하는 주요 거점이 될 도라산역 라운지에 독특한 미디어월을 설치하고 작가 이예승의〈일렁이는 풍경 - 우리를 우리라 부를 때〉(2021)를 비롯해 강이연, 금민정의 스펙타클한 영상을 송출한다. 빛과 영상의 물결로 평화와 연계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작품들은 영구 전시될 계획이다.
그런가하면 2018년 남북합의 후속조치로 상호검증을 거쳐 불능화한 곳으로, DMZ 내 평화를 지속하고 재무장을 방지하는 남북간의 의지를 상징하는 파주 철거 GP(Guard Post)에도 작품이 설치됐다. 양혜규 작가의 신작〈비대칭 렌즈 위의 DMZ 철새 – 키욧 키욧 주형기舟形器(흰배지빠귀)〉(2021)가 그 주인공인데, 작가는 2018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두 정상이 나눈 대화를 녹취하려는 기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새소리와 가끔 울려대는 카메라 셔터 음들만 생중계되었던 상황에서 영감을 받아, 당시 여러 새소리 중 하나인 흰배지빠귀의 모형을 만든 것이다. 두개로 절단된 투명한 흰배지빠귀는 관람자의 시점에 따라 하나로 합쳐지거나 나뉘어 보이며 우리의 상황을 은유적으로 대변한다.
공공, 모두의 예술을 지향하는 이 전시의 압권은 도라산역 야드에 설치된 슬기와 민의 가로 1,430m의 대형 타이포그래피 작품〈이곳/저곳〉(2021)이다. 남쪽에서는 이곳, 그리고 북쪽에서는 저곳으로 읽히는 초대형 낱말은 같은 곳을 지향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간극을 체감케 한다. 이처럼 대한민국 가장 북단에 놓인 공공미술들은 말한다. “미술, 예술에는 결코 경계가 없다!”
광주폴리
지난 2010년 국제세미나 개최를 통해 가닥을 세운 ‘광주폴리’는 그 이듬해 정식 준공했다. ‘폴리(Folly)’의 건축학적 의미는 본래의 기능을 잃고 장식적 역할을 하는 건축물을 뜻한다. 원래 폴리란 유럽의 대저택 정원에 있는 기능이 없는 장식적 건축물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영국, 프랑스 등에 사례가 많다. 그 후 스위스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베르나르 츄미’가 프랑스 라빌레뜨 공원에 35개의 건축구조물을 설치하면서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폴리가 세상에 알려졌다. 이 공원이 일련의 폴리를 통해 일반인과 전문가에게 연구, 관찰, 볼거리를 제공하며 방문자와 공원의 상호작용적 활동을 이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 광주폴리의 개념이다. 한마디로 광주폴리는 공공 공간 속에서 장식적인 역할 뿐 아니라, 기능적인 역할까지 아우르며 도시재생에 기여할 수 있는 건축물을 의미한다.
“도시 안에서 단위개체로 작동하기보다는 군집되어 하나의 패턴을 형성하며 그 영향력을 발휘”하겠다는 광주폴리의 의지처럼 그것은 2010년대에 다양한 실험을 펼치며 도심공동화를 경험하고 있는 광주광역시 구도심지역에 강력한 문화적 힘을 전달했다. 2011년 추진한 세계적 건축 거장들이 참여한 광주폴리 프로젝트를 비롯해 ‘역사의 복원’을 주제로 한 11점의 광주폴리Ⅰ, ‘인권과 공공공간’을 주제로 한 8점의 광주폴리Ⅱ, ‘도시의 일상성–맛과 멋’을 주제로 한 11점의 광주폴리Ⅲ 등 총 30개의 광주폴리가 광주 전역에 설치됐으며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에 맞춰 2020년 5월 광주폴리IV가 완공됐다. ‘광주다움’을 주제로 구도심에서 광주 진입로인 톨게이트까지 상호작용하면서 도시의 예술적 미감을 펼쳐내는〈무등의 빛〉은 도시를 찾는 누구나 감상할 수 있다.
바다미술제
그런가하면 바다의 도시 부산에는 ‘바다미술제’가 있다. 2021년 가을, 인도 출신의 리티카 비스와스(Ritika Biswas) 감독 아래〈Non-/Human Assemblages 인간과 비인간: 아상블라주〉란 타이틀로 행사를 선보인 바다미술제의 시작은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88서울올림픽’ 프레올림픽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시작된 행사는 1987년부터 1996년까지 해운대 해수욕장과 광안리 해수욕장을 주요 개최장소로 활용하면서 대중적이고 특색 있는 야외전시를 지향하며 매년 개최됐었다. 그러다 2000년부터 2010년까지 부산비엔날레 행사에 통합·개최됐고 이후, 바다미술제를 독자적인 문화브랜드로 성장시키겠다는 부산시와 (사)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의 기획 아래 2011년부터 매 홀수 해마다 독립 개최되고 있다.
한편 ‘2021바다미술제’는 어촌 마을을 낀 아담한 해변, 기장군 일광해수욕장을 무대로 마련됐다. 국내외 22명(팀)의 참여 작품으로 소박하게 꾸려진 행사는 회화, 설치, 영상 등을 마을회관, 해변, 하천 다리, 주택가, 아파트 외벽에 설치, 작품이 마을에 스며들게 했다는 평을 얻었다. 비스와스 감독은 전시기획 단계부터 일광해수욕장에 관심을 보였는데 다중집합이 어려운 시기, 대규모 장소보다는 상업적이지 않고 아담한 해수욕장을 선호했고 하천과 다리, 공원과 포구에 형성된 어촌마을 등을 보유한 곳이야말로 적지라 여겼다고 한다.
일광해수욕장은 고려 시대부터 많은 인사들이 유람했던 기장 8경 중 하나로, 수심이 얕아 가족단위들이 많이 즐기는 해수욕장이다. 기존 ‘바다미술제’의 형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전시 방식을 모색하고 상대적으로 문화예술 콘텐츠들이 부족한 지역에 예술적 활력을 불어넣은 행사는 대중과 언론의 호응을 얻으며 다음 행사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대중 친화적 요소와 소통을 주요 덕목으로 하는 바다미술제는 역사와 전통 측면에서 공공미술 선구자 역할을 자처한다.
APAP
경기도 안양 곳곳에는 깜짝 놀랄만한 현대미술 거장들의 작업이 놓여 있다. 그 중 하나는 2019년 설치된 카트야 노비츠코바(Katja Novitskova)의〈지구 잠재력(도마뱀, 지구)〉.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이하 APAP)’ 6번째 행사의 커미션으로 제작된 작품은 철과 알루미늄 골조로 된 약 2×2m 크기의 조각이다. 생물학적 위기의 시대, 오늘날 포화상태가 된 미디어 문화에 대해 조사하며 테크놀로지, 과학연구 및 물리적 세계의 관계에 대한 담론들을 생태학적 차원으로 접근해 온 카트야 노비츠코바는 인터넷 출처의 지구와 다양한 행성들과 생명 공학 및 유전자 연구에 사용되는 동물·유기체들의 이미지 조합으로 형성된 작품을 영구 설치했다.
한편 전 세계 옥션에서 연일 새로운 기록을 깨는 작가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의〈헬로, 안양 위드 러브〉또한 안양 한복판에서 만날 수 있다. 물방울무늬를 한 커다란 꽃과 다섯 마리의 강아지로 이뤄진 작품은 2007년 ‘APAP 2’ 커미션 작품이다. 자신만의 환상과 꿈을 작품을 통해 표현해온 작가는 “내가 의기소침했을 때, / 다양한 색으로 빛나는 다섯 마리의 강아지들과 / 나는 꿈나라와 같은 안양에 왔습니다.“로 시작하는 시를 작품과 함께 보내왔다.
도시가 공공미술 개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APAP’는 최근 ‘도시재생’이라는 관점을 투영해 ‘공생도시’라는 대주제를 바탕으로 안양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의 여러 도시가 가지고 있는 경계와 문제점을 다룬 바 있다. 그것은 옛것과 새것, 구도심과 신도심, 원주민과 이주민 등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하고 대립하는 상충적인 문제점들을 ‘문화적 상생에너지’로 해결하려는 노력인 그 자체였다. ‘APAP 6’는 ‘예술, 테크놀로지, 도시, 환경’ 등의 공생 관계를 짚으며, ‘환경적 가치, 문화적 가치, 사회적 가치’의 세 가지 방향성에 주목했다.
강원트리엔날레
‘강원국제트리엔날레’는 ‘2018평창동계올림픽’ 유산 사업으로 출발한 강원국제예술제의 일환이다. 강원도 전역을 예술 공원화하는 것을 목표로 3년 단위로 강원도 곳곳을 순회하는 유목형 행사 강원국제예술제는 첫 개최지로 홍천을 선정하고 2019년 ‘강원작가전’, ‘2020년 강원키즈트리엔날레’, 3년 차 마지막 행사로 올해 ‘강원국제트리엔날레’를 선보였다.
2021년 강원트리엔날레는 현대인이 처한 재난과 환경오염, 코로나19 등의 위기 상황을 맞아 재생의 기대와 회복의 전망을 제시하겠다는 의지를 바탕으로 장소별 4개 전시를 구성했다. 우선 와동분교를 생태 위주의 작품으로 꾸렸는데, 이제 쓰임을 다한 각 교실에는 생태 주제를 탐구하는 회화와 영상, 설치 작품을 학교 옆 마당에 설치된 비닐하우스에는 네잎클로버와 야생화, 옥수수 등 작물을 소재로 한 환경 예술을 펼쳐보였다. 옥외 재생 재료를 사용한 건축물 정태규의 ‘건축형 카페’에서는 한국형 패스트푸드 장터 국수와 한국형 슬로우푸드 젓갈, 꿀 등을 판매하며 색다른 공공미술을 선뵀다.
홍천 외곽의 옛 탄약정비공장 전시는 단연 이목을 집중시켰다. 아날로그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키네틱아트로 시작된 공간에는 영상작품부터 첨단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작품까지 즐비했기 때문이다. 야외의 비탈진 공간에 데크를 만들어 전망대와 예술작품이 한데 어우러진 공간을 선보이고, 곳곳엔 조각 작품도 설치돼 있었다. 홍천미술관은 아카이브를 위한 공간으로 꾸며 강원작가전과 강원키즈트리엔날레의 행사 영상과 사진 등을 자료화해 선보였으며 홍천중앙시장에서는 상인과 함께 하는 공연과 미디어 아트 쇼를 개최했다. 이제 강원도를 방문하게 된다면 아름다운 자연과 특별한 먹을거리뿐 아니라 흥미로운 미술까지 꼭 즐기길 바란다.
프로젝트 제주
2022년 1월 9일까지 제주도립미술관엔 공공미술〈프로젝트 제주: 우리 시대에_At the Same Time〉가 개최된다. “제주가 가진 자연적 특성과 인공적인 특성을 고려하여 제주의 안(자연적 측면)과 밖(인공적 측면)을 동시에 아우르는 실험적인 시도!” ‘프로젝트 제주’를 기획·총괄한 제주도립미술관은 행사를 이렇게 소개한다. 행사엔 제주의 다양한 자원에 지속적 관심을 가지고 활동해온 작가 13팀이 초대됐는데, 그들은 미술관 공간을 구조화하는 미디어 작업을 통해 예술을 삶과 연결시킨다. 이는 예술이 우리의 삶, 환경, 체험 방식, 인식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에 관한 궁극적 이야기인 셈이다.
행사 타이틀 ‘우리 시대에_At the Same Time’은 어떻게 지어졌을까. 이는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의 책과 수전 손택(Susan Sontag)의 유고집 제목에서 발췌해 합친 것으로 특히 평론가이자 소설가였던 손택의 말년 원고와 강연을 모은 책 ‘앳 더 세임 타임(At the same time)’의 ‘동시에’라는 뜻과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의미를 적극 가져온 것이다. 행사를 총괄 기획한 이나연 제주도립미술관장은 이 책에 있는 “소설가들은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공간적·시간적으로 축소할 권리를 바탕으로 한 윤리적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란 문장의 소설가 자리에 작가, 기획자, 기업가를 넣어도 무방하단 생각을 했단다. 무엇이든 창작을 하거나 새 조직을 만드는 이들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에’라는 거대한 제목을 달았지만, 사실 제주라는 한정된 공간과 자원만을 이용한 ‘우리 시대’를 연출한 전시는 소통을 매개하는 미술관이 급변하는 환경에서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살피는 것과 지역 공동체의 문화적 조건을 이해하고, 기술과 예술,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여 향유할 수 있는 예술의 가치를 확장하는 것에 집중한다.
환경적이고(Environmental) 사회적이며(Social) 지배구조가 유연한(Governance) 전시는 특히 전시구조물을 만들거나 홍보물을 만들 때 지속가능성을 가장 염두에 뒀고, 작가가 중심이 되는 전시라기보다는 전시를 구현하며 소통을 하는 과정이 드러나는 전시이길 지향한다. 미술관 안에 있는 중앙정원을 전시공간으로 제시하고 생태미술을 하는 제주작가 3명이 팀을 이뤄 중정에 제주식생으로 곶자왈을 시각 예술가들의 언어로 만들거나 미술관 로비의 유휴공간을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기획자가 팀을 이뤄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능한 관람객 쉼터로 바꾼 색다른 작품 또한 만날 수 있다.
전에 없이 청정한 하늘에 미혹된 탓인지, 몸과 마음이 전전반측하여 여행 생각만 나는 요즘이다. 더러 “코로나로 얻은 것도 많다”는 말을 주고받는데, 국내 곳곳을 발견하고 경험하는 일이야말로 팬데믹으로 새삼스레 깨닫게 된 즐거움 중 하나가 아닐까.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바이러스로 신날게 없는 일상이지만, 우리의 터전에서 조금 벗어난 각각의 도시에 풍요로운 자연과 더불어 품격 높은 공공미술들이 마련돼 있다. 대한민국의 북쪽 끝 비무장지대에서 남쪽의 제주 섬까지 도심 곳곳에 공공을 위한 미술이 펼쳐져있는 것이다.
1)관련 기사들은 다음과 같다.
Wallpaper, ‘Art and Seoul: global galleries are flocking to Korea’s capital’, 2021.07.11.,
https://www.wallpaper.com/art/mark-bradford-profile-hauser-wirth-menorca/
ARTNews, ‘The New Art Hotspot in Asia: Seoul’s Fast-Rising Scene Is Attracting International Attention’, 2021.06.08.,
https://www.artnews.com/art-news/news/seoul-south-korea-art-cities-to-watch-1234595000/
The Art Newspaper, ‘Korean wave: could Seoul become the art capital of Asia?’, 2021.10.15.,
https://www.theartnewspaper.com/2021/10/15/korean-wave-could-seoul-become-the-art-capital-of-asia
2)2016년 삼청동에 프랑스 갤러리 페로탕(Perrotin)에 이어 2017년 뉴욕 갤러리 리만 머핀(Liman Maupin)이 개관하였고, 한남동에는 페이스 갤러리(Pace), VSF(Various Small Fires)가 각각 2017년, 2019년에 서울 지점을 열었다. 뒤이어 작년 4월 독일 쾨닉 갤러리(König Galerie)가 청담동에 생겼으며, 10월 오스트리아 갤러리 타데우스 로팍(Thaddaeus Ropac)이 한남동에 첫 아시아 지점을 열었다.
3)2021년 국내에 새로 개관한 전시공간은 전국에 총 142개이다. 서울아트가이드, 「2021년 전시공간의 변화, 142개 처 개관」, 2022.1월호 Vol.241, pp.58-61.
아트 인 시티 - 도시 속 공공미술(2) 어디까지 아니? 서울시 공공미술
[아트 인 시티] 새로운 공간들(1) 서울 - Untitled & Titled Spa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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