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아트로는 한국이 가진 풍부한 문화적 인프라를 소개하고, 최근 변화하고 있는 한국의 미술 현장을 조명해보고자 이번 특집을 기획하였다. 미술관, 갤러리 외에도 도시 곳곳에 매력적인 공간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미술 행사들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새로 문을 연 전시공간이나 예술 프로젝트들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며, 미술 현장에 대한 콘텐츠 또한 대규모의 국공립 또는 사립미술관, 국제 미술행사에 치중되어 있는 편이다. 이에 더아트로는 다양한 미술 현장들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주제로 ‘공공미술’, ‘공간’, ‘작품’이라는 키워드를 선정하여 3개의 연재 특집기사를 준비했다. 첫 번째 기사 ‘도시 속 공공미술’에서는 국내 여러 지역의 공공미술을 소개한다. 도시 내 문화공간 조성을 목표로 진행되어온 공공미술 프로젝트, 그리고 시민들이 삶 속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공공미술을 알아보고, 한국 공공미술의 현주소를 들여다본다. 두 번째 ‘새로운 공간들’ 에서는 최근 새로 생겨났거나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도시 곳곳의 공간들을 중점적으로 다루어보고자 한국의 대표 미술 도시인 서울, 부산, 대구, 광주의 미술현장을 조명하는 기사를 기획하였다. 마지막으로 ‘미술 작품 속 도시’에서는 도시를 주제로 작업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도시의 다양한 모습을 조명한다. 이번 특집기사를 통해 한국의 새로운 면모를 알리고, 한국 미술의 국제적 위상을 제고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글이 한국을 찾는 많은 해외의 미술 애호가들과 시각 예술 관계자들에게 한국 문화현장 안내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번 특집의 두 번째 기사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 도시 곳곳의 공간들을 소개한다. 이미 잘 알려져 있는 국·공·사립미술관 이외에도 다양한 전시공간이 생겨나며 새로운 미술 지구가 형성되고 있다. 이번 특집에서 다루는 서울, 부산, 대구, 광주는 비엔날레, 아트페어 등 다양한 국제 미술행사들이 끊이지 않고 진행되고 있어 다양한 볼거리가 제공되는 도시이다. 각 도시마다 도시만의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러한 문화를 반영하는 여러 공간들이 존재하고, 그 공간들에는 이들이 위치하고 있는 지역의 역사적 맥락과 성격이 녹아들어 있다. 지역 곳곳 역사·문화적 성격을 담은 공간들과 그곳에서 펼쳐지는 전시 및 행사들을 통해서 도시 내 지역들의 특색과 고유한 특성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부산의 미술지형은 크게 4개 정도의 형태로 분류해 볼 수 있겠다. 공공미술관 2곳이 운영되고 있는데 1998년 3월에 개관한 부산시립미술관은 동부산권의 중심인 해운대 에 위치하고 있으며 2018년 서부산권에 문을 연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는 을숙도에 현대미술관이 있다. 두 공간의 확연한 구분은 없으나 현대미술관은 뉴미디어를 중심으로 전시를 보여주고 있으며 2년에 한번 씩 부산비엔날레 현대 미술제 메인 전시장으로 사용된다. 두 번째로 아트페어는 매년 3~4개 개최되며 대표적인 아트부산과 BAMA가 있다. 아트부산은 최초 ㈜벡스코에서 3년 정도 주관하다가 사단법인이 설립되면서 독립 기구로 매년 성장을 보인다. 10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인지도를 상승 중이다. BAMA는 (사)부산화랑협회가 운영의 주최이다. 지역 화랑을 중심으로 진행되어가면서 최근에 사무국 구조가 만들어지면서 약진을 보이고 있다. 그 외 부산미술협회 등 몇 개가 더 열리고 있으나 다른 지면에서 소개 하자.
세 번째 부산도 예외 없이 비엔날레라는 이름을 내걸은지 20년이다. 물론 전의 역사를 보면 1981년 청년비엔날레라는 이름으로 맥을 이어왔다는 후대의 스토리들이 이지만 부산비엔날레라는 이름은 2002년이 처음이다. 타 비엔날레와 다른 점은 매년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에서 개최한다. 격년제로 바다미술제와 현대미술제를 연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현대미술제를 부산비엔날레라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부산이 한국을 대표하는 항구의 도시라는 것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부산을 찾는 미술관계자들마다 한결같이 하는 말이, 바다를 보러 가자고 한다. 그만큼 부산은 바다가 상징이다. (사)부산비엔날레 조직위원회가 운영하며, 30년 이상의 시간을 품어온 바다 미술제가 대표적인 행사이다. 그 30년은 부산비엔날레의 역사보다 훨씬 오래된 시간이다. 정리하자면 부산비엔날레조직원회는 바다미술제와 현대미술제를 격년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 10월 기장 일광의 작은 어촌마을 해수욕장에서 바다미술제는 20대 젊은 인도 큐레이터의 감독 아래 행사를 마쳤다. 여러 가능성과 화젯거리를 남긴 행사였다. 바다미술제 전시감독으로 외국인이 선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다. 잠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1981년 지역의 청년 예술가들이 중심이 되어 국내 최초의 비엔날레인 부산청년비엔날레를 만들었고, 이후 바다미술제라는 이름으로 1987년에 광안리와 해운대 해수욕장을 중심으로 10년 넘게 행사가 진행되었다. 그러다가 해운대 신도시의 지리적 팽창으로 다양한 행사가 만들어지게 되면서, 바다 미술제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행사는 서부산권의 송도와 다대포 해수욕장으로 장소를 옯겼다가 2021년에 부산 동쪽 끝자락으로 다시 이동한 셈이다. 시대가 변하면 내용과 형식도 바뀌게 마련. 그러나 바다 미술제는 해수욕장에 어울리는 장소성을 가진다.
국내 미술 현장과 다르지 않게, 2000년대를 시작으로 부산의 미술 판은 시대 요구를 읽어내며 현대미술을 수용하는 장치가 마련되었다. 한 가지 예로, 1998년 부산국제아트페스티발(PICAF)이 출범하면서 지금의 부산비엔날레의 옷을 입게 되었다. 그때 대안공간 섬이 활동을 시작하면서, 지역에서는 대안공간이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그 공간은 대안공간 반디라는 이름으로 바꿔 달고(이하 반디) 2011년 가을 문을 닫을 때까지 18년이라는 시간 동안 다양한 실천을 벌여왔다. 그 이야기는 다른 지면을 통해 논의되길 기대하며 여기서 일단락 해두자. 2000년 즈음 집단 창작촌으로 시작한 오픈스페이스 배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오픈스페이스 배는 지역에서 최초로 레지던시를 진행하며, 지금도 부산 원도심에서 왕성한 활동들을 이어가고 있다. 이후 부산은 대안적 성격을 강하게 띤 공간 힘을 비롯하여, 다른 지역에서 말하는 신생공간의 성격과는 다른 형태의 공간들이 생겨나고 있다. 대안공간의 역할이 한국 미술계에서 많이 언급된 것은 사실이다. 다만 서울에서 나타나는 방식을 그곳이 아닌 부산에서는 다른 색깔로 구현하는 건 그릇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면 부산에서 시각예술을 기반으로 하는 공간을 묶어서 정리해보고자.
1. 해운대는 상업화랑의 거점인가?
해운대 지역은 지금 이 순간에도 미술을 담아내는 공간이 생겨나고 또 없어지고 있다. 해운대는 부산시립미술관과 이우환 미술관이 위치한 곳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상업 갤러리의 요람이기도 하다. 그곳이 한때 정점을 이룰 때는 50여 개의 화랑이 활동했고, 현재는 20여 개 공간이 운영 중이다. 신도시 개발과 함께 부산의 상업화랑들은 그 동네로 다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본과 동행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니 말이다. 달맞이 고개를 중심으로 오랜 시간 자리하고 있는 조현화랑, 갤러리 조이, 맥 화랑, 갤러리 이듬이 자리를 잡고 있으며, 최근에는 메르씨엘 빌딩에 카린 갤러리가 새로이 이름을 내걸고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또 복합공간 레이어드가 달맞이에 활동 중이며, 고개 넘어 청사포에는 갤러리 아트 숲이 지역작가들을 위한 전시회를 꾸준히 열고 있다. 그곳은 실험적인 활동보다 꾸준한 작품 공개와 거래를 통해 제 역할을 하고 있다. 해운대 해수욕장 부근에는 모노크롬을 주로 다루는DATE 갤러리가 제법 긴 호흡으로 운영되고 있으며,유진갤러리, 갤러리 유, 지역의 작가를 가장 많이 소개하고 오랜 시간 운영해온 화인갤러리 등 소형 상업 화랑과 더불어, 고은사진미술관, BMW 포토스페이스 등이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이들 사진 전문 갤러리가 수년째 기업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2. 다시 원도심으로
10여년 전 원도심 창작공간 활성화 일환으로 생긴 또따또가라는 커뮤니티가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스튜디오 임대료를 3년간 지원해주는 일이 이 장소의 특색이다. 2019년까지 또따또가는 1km 이내에 있는 건물 빈 곳을 빌어 작가들을 수용해왔다. 최근에는 규모를 키워서 한 건물 전체를 임차해서 밀도 있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런 식의 원도심 활성화는 젠프리피케이션의 역풍을 감당하기가 어려웠고, 건물 전체를 임차해서 공간 운영하는 대안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또따또가 단체가 운영하는, 스페이스 닷, 또따또가갤러리, 창의가게는 입주 작가 전시공간으로 활용되며, 소액의 대관비로 지역의 다른 작가들에게 장소를 개방하고 있다. 창의가게는 원도심협동조합의 주요 거점이며, 주로 생활미술 등 시각예술의 저변 확대를 꾀하고 있다. 여기는 지역 신진 작가들에게 특히 선호도가 높다. 대신 전문적인 인력이 없는 탓에 큐레이터쉽이 작가들을 수혜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은 있다.
또따또가 바로 맞은편에*오픈스페이스 배가 2019년부터 독립된 4층 건물에 둥지를 틀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현하고 있다. 그동안 오픈스페이스 배가 만들어 온 국내외 네트워크를 통해 많은 관계자가 그곳을 방문하고 있다. 예선빌딩 1층 공간에는 오픈스페이스 배의 분관과 유사한 형태로 안녕,예술가라는 전시장이 운영되고 있다. 안녕예술가는 생애 첫 개인전, 공공기금 지원신청에 선정되지 못한 프로젝트를 수용하는 실험적 공간이다.
부산 시가의 또 다른 상징인 산복도로에도 미술의 자취는 많다. 오래된 시영 아파트 한 켠에 예술공간 영주맨션이 여성작가들이 중심이 된 아티스트 런 베이스로 운영 중이다. 그곳은 동시대 현대미술의 키워드를 연구 중이다. 최근 영도가 핫 플레이스로 부상하고 있다. 3,000평의 규모인 초대형 카페 피아크 지하 1층에 갤러리가 운영 중이며, 남항동에 레트로 덕천이라는 공간도 작년에 덕천동으로부터 이전해 왔다. 그곳은 젊은 작가와 기획자들이 중심이 되어 운영되며, 인근 김해와 창원 지역 작가군과 협력하며 전시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곳은 예술, 교육, 문화, 청년, 공간이라는 다섯 개의 아젠다를 내건 청년예술가 집단이다.
부산 사투리로 맨 끝이라는 뜻의 끄티라는 공간도 프로젝트 방식으로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장소가 가지는 특성을 적극적으로 살린 실험적인 전시를 그곳에 가면 만날 수 있다. 한편 최근 들어 북항 개발이 가속도를 올리면서, 오페라 하우스 건립과 각종 문화지구가 새롭게 조성될 부산항의 움직임을 주목할 필요도 있다. 북항은 걸어서 10여 분 거리에 닿는 원도심과 하나로 묶여, 향후 어떠한 조화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3. 오래된 그러나 새로운 길. 망미단 길
망미단길은 최근에 가장 주목 받는 지역이다. 고려제강 공장의 창고를 부산비엔날레 현대미술제 전시공간으로 활용하면서 시작된 그곳은 F1963이라는 이름을 달고 이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곳에는 부산문화재단이 관리하는 기획전시가 열리는 석천홀이 있으며, 국제갤러리 부산점과 현대 모터스튜디오까지 다양한 전시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시간을 그대로 머금고 있는 거친 공간이 주는 매력은 개항 도시 부산의 향기를 잘 보여준다. 엄청난 규모를 지닌 석천홀은 다양한 주제 전으로 젊은 작가들의 선호도가 높은 공간이다. 부산에서 보기 드문 복합 문화공간의 성격을 띠는 그곳은 다양한 인문학 강연과 공연이 함께 이루어지며, 예스24 서점과 식당가 같은 문화와 상업 공간이 함께 입점해 있다.
여기서 걸어서 10분 정도 이동하면, 수영 팔도시장 안에 공간 힘이 있다. 2014년 《옥상의 정치》를 첫 기획전으로 내건 공간 힘은 예술의 사회적 기능과 가시화되지 않은 것들을 비판적 시각으로 풀어내는 예술가들을 주목한다. 당연히 분명한 주제 의식을 기반으로 전시와 학술 세미나를 진행한다. 10년이 되어가는 공간 힘은 국내 비영리공간의 모범적인 사례로, 많은 작가의 관심을 받고 있다. 공간 힘의 구성원을 중심으로 조직위원회는 앞서 언급한 지역 최초의 대안공간 반디가 진행했던 국제비디오페스티발을 계승하고 있다. 열악한 지역 상황에도 불구하고, 비디오 아트의 장을 마련하고 행사를 꾸려가는 일은 찬사를 받을만하다.
젊은 작가들이 협업으로 야심차게 자리를 마련한 현대미술회관은 4명의 여성 작가가 낡은 주택을 개조하고, 디자인과 순수미술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 런 베이스이다. 목요일에서 토요일까지만 전시공간을 오픈하는 방식이며, 주중에는 각자의 작업과 삶에 집중하고 있다. 현대미술회관이 있는 망미동은 최근 몇 년 사이 망미단길이라는 이름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곳에는 독립서점, 편집샵, 카페, 복합문화공간, 커뮤니티 음식점 등이 오래된 동네의 주택들을 하나씩 형태를 바꾸며 복고적인 분위기로 새로운 문화지구를 형성하고 있다. 여기엔 최근 몇 년 사이에 아트 랩, 공간 영영, 이젤갤러리 같은 대관 위주의 작은 갤러리들이 생겨났다. 특히 도시고속도로 고가다리 밑에 콘테이너 하우스가 100미터 이상 새로이 조성되었다. 그곳은 비콘 그라운드라는 이름이 붙었고 장애인 창작 공간 같은 다양한 커뮤니티 공간이 입주해 있다. 지역 특성상 광안리 해변과 가깝고, 예전 분위기의 골목길이 남아 있는 동네이다. 그렇지만 앞으로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글을 맺으며
필자의 기준으로 부산의 미술 공간을 세 개의 권역으로 나누어 보았다. 부산은 동부산에 비하여 낙후된 서부산을 균형 발전이라는 과제로 안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 속에서 부산 현대미술관이 을숙도에 새롭게 개관한 지 5년이 되어 가고 있다. 그곳에서 상대적으로 멀지 않은 곳에 부산문화재단이 직영하고 있는 홍티 레지던시가 들어서 있다. 다만 민간에서 움직이는 전시공간은 별다르게 생겨나지 않고 있다. 아무래도 동부산 권역에 관한 문화계의 오랜 잠재적 인식이 작용하는 것 같다. 반면에 젊은 예술가들이 요구하는 창작과 작업공간은 여전히 서부 부산권의 덜 부담되는 임대료가 좌우하며 작가들이 몰려들고 있는 실정이다.
정리하자면, 앞서 언급했듯이 부산 미술의 태동은 원도심이었고, 현대화의 흐름에 중심은 자연스레 신도시 해운대 일원으로 넘어갔다. 20여년 동안 해운대와 신도시에는 여러 공간이 등장했다. 최근 대한민국 전체의 시각예술 경향은 거대한 디렉션을 이루기보다 젊은 작가들의 아티스트 런 방식의 소소한 연대 결합 방식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이를 통해 그들은 자유로운 창작활동과 전시문화를 추구하는 경향을 읽을 수 있다. 이곳 부산도 예외는 아니다. 부산은 타 도시에 비해 개방적이다. 그래서 부산 경남 나아가 수도권의 작가들까지 이곳에 진입하여 무리 없이 활동 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이제 전시장은 곧 화이트큐브라는 인식은 해체되어 가는 중이다. 작품 발표의 기회와 커뮤니티 활동은 어쩌면 메타버스 시대에 따라 또 다른 영역인 디지털 공간에 유효한 거점을 마련할 것 같다는 예상조차 이제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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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문화재단 생활문화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