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 동향

[아트 인 시티] 새로운 공간들(4) 광주
- 도시역사와 만나는 광주의 문화지형도

posted 2022.03.08

더아트로는 한국이 가진 풍부한 문화적 인프라를 소개하고, 최근 변화하고 있는 한국의 미술 현장을 조명해보고자 이번 특집을 기획하였다. 미술관, 갤러리 외에도 도시 곳곳에 매력적인 공간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미술 행사들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새로 문을 연 전시공간이나 예술 프로젝트들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며, 미술 현장에 대한 콘텐츠 또한 대규모의 국공립 또는 사립미술관, 국제 미술행사에 치중되어 있는 편이다. 이에 더아트로는 다양한 미술 현장들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주제로 ‘공공미술’, ‘공간’, ‘작품’이라는 키워드를 선정하여 3개의 연재 특집기사를 준비했다. 첫 번째 기사 ‘도시 속 공공미술’에서는 국내 여러 지역의 공공미술을 소개한다. 도시 내 문화공간 조성을 목표로 진행되어온 공공미술 프로젝트, 그리고 시민들이 삶 속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공공미술을 알아보고, 한국 공공미술의 현주소를 들여다본다. 두 번째 ‘새로운 공간들’ 에서는 최근 새로 생겨났거나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도시 곳곳의 공간들을 중점적으로 다루어보고자 한국의 대표 미술 도시인 서울, 부산, 대구, 광주의 미술현장을 조명하는 기사를 기획하였다. 마지막으로 ‘미술 작품 속 도시’에서는 도시를 주제로 작업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도시의 다양한 모습을 조명한다. 이번 특집기사를 통해 한국의 새로운 면모를 알리고, 한국 미술의 국제적 위상을 제고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글이 한국을 찾는 많은 해외의 미술 애호가들과 시각 예술 관계자들에게 한국 문화현장 안내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번 특집의 두 번째 기사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 도시 곳곳의 공간들을 소개한다. 이미 잘 알려져 있는 국·공·사립미술관 이외에도 다양한 전시공간이 생겨나며 새로운 미술 지구가 형성되고 있다. 이번 특집에서 다루는 서울, 부산, 대구, 광주는 비엔날레, 아트페어 등 다양한 국제 미술행사들이 끊이지 않고 진행되고 있어 다양한 볼거리가 제공되는 도시이다. 각 도시마다 도시만의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러한 문화를 반영하는 여러 공간들이 존재하고, 그 공간들에는 이들이 위치하고 있는 지역의 역사적 맥락과 성격이 녹아들어 있다. 지역 곳곳 역사·문화적 성격을 담은 공간들과 그곳에서 펼쳐지는 전시 및 행사들을 통해서 도시 내 지역들의 특색과 고유한 특성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도시역사와 만나는 광주의 문화지형도

동시대 새로운 문화공간에 대한 관심은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 특정 지역을 꼽을 필요 없이 문화공간의 양적, 질적 증가는 문화향유 뿐 아니라 지역의 풍경을 바꾸는데 기여한다. 문화공간, 특히 문화예술축제, 미술관이나 화랑 등이 지역의 외곽 혹은 소외지역을 변화시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많은 지역이 자생적 문화공간의 등장과 기존 풍경과의 조화를 만들고 있는데, 광주광역시 또한 예외가 아니다.

대한민국 남서쪽에 위치한 광주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문화수도다. 한국 남종화의 지키며 남도 전통화단을 일군 의재 허백련, 남도 판소리의 대명사 임방울로 알려진 예향의 도시이다. 세계적인 미술축제인 광주비엔날레가 1995년부터 2년마다 열리며, 2005년부터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격년으로 개최되어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보여주는 장(field)이 되고 있다. 2014년 유네스코 미디어아트창의도시로 선정되면서 광주는 매해 미디어아트 관련 국제 포럼 및 미디어아트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다. 예향과 문화의 도시 광주는 또한 한국 현대사에서 민주화 항쟁지로서 상징적인 역사성을 지닌 곳이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 운동의 숭고한 희생 위에 굳건해진 한국 민주주의의 성지이자 ‘UN지정 인권도시’이기도 하다.

제2회 광주비엔날레(1997) 전시 관람 대기줄, 이미지 광주광역시청 제공.

전통적으로 문화도시이자 민주화 역사를 토대로 한 광주는 5개 구(區) 90여개 동(洞)에 현재까지 크고 작은 문화공간이 생성되어 문화수도로서의 면모를 더해가고 있다. 구별로 각각 다른 문화적 성격을 표방하고 있는데, 북구는 국립광주박물관, 광주시역사민속박물관, 광주시립미술관, 광주과학관,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이 소재한 국공립 박물관 미술관 중심의 공간이다. 동구는 옛 구도심의 예술의 거리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동구청 미로센터가 자리한 복합문화예술공간과 무등산 아래로 사립미술관의 섞여 있는 문화복합 지구라 할 수 있다. 남구는 근대문화유산을 기반으로 신흥 문화공간이 차츰 확장되는데, 양림미술관, 이이남스튜디오, 아트폴리곤, 십년 후 그라운드가 왕성히 활약하고 있다. 서구는 광주광역시 시청사 위치하고 5.18 기념공원, 광주시립미술관 분관 하정웅미술관, 김대중컨벤션센터가 자리한 상권과 공립 기관이 복합적으로 구성되었다면, 조금 뒤늦게 출발한 광산구는 케이티엑스광주송정역을 중심으로 산업단지 문화재생 1번가인 소촌아트팩토리가 있으며 교육과 산업 및 커뮤니티 기반의 문화공간이 형성되고 있다. 최근 동구와 남구에 새롭게 자리잡은 몇몇 공간은 민간 시설을 비롯해 지자체 유관기관 등 여러 유형의 문화적 장면을 창안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광주 문화지형도의 큰 갈래 형성 이후 섬세한 실핏줄과 같은 문화적 리좀(Rhizome)의 생성을 이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5개 구로 구획하여 각각의 문화공간을 통해 광주의 문화지형도를 파악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비엔날레가 열리는 북구의 국공립미술관들

광주시립미술관 리암 갈릭 워크 라이프 이펙트, 전시 전경, 2020

북구는 국공립 미술관과 박물관이 모여있다. 호남지역 첫박물관으로 1978년 개관한 국립광주박물관은 신안해저문화재 수중발굴로부터 기틀이 잡혀 현재 ‘아시아 도자문화 실크로드’ 거점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하며 130,000여점의 국보, 보물 등의 문화유산을 소장하고 있다. 1987년 개관한 광주시역사민속박물관은 민속문화 원형의 발굴과 보존, 전승을 위해 사라져가는 민속자료를 수집, 전시하고 있다. 세계 3대 비엔날레로 꼽히는 광주비엔날레재단과 전시관은 북구 중외공원문화벨트 내에 있다. 70여만평 넓게 펼쳐있는 중외공원에는 자연 속 놀이시설과 산책로 그리고 미술관이 함께 있다. 지역미술의 중심체로서 1992년 개관한 광주시립미술관은 재일동포 2세인 하정웅이 메세나 정신으로 고국의 미술 발전을 위해 212점의 작품을 기증하여 미술관 발전에 크게 공헌한 것에 힘입었고, 1995년 광주비엔날레 창설에 기반이 되었다. 최근 리암 겔릭, ZKM 소장품전 등으로 지역을 넘어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무등산에서 5.18 민주화성지에 이르는 동구의 문화공간

동구는 전통적으로 광주의 중심지로 금남로와 충장로의 시내로부터 무등산으로 이어지는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중심으로 동구청, 전일빌딩, 예술의 거리, 동명동 인근에서 무등산으로 이어지는 동구는 사립미술관들을 비롯해 다양한 문화공간들이 있다. 옛 전남도청과 전남도의회가 있던 자리에 2015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개관하며 문화적 큰 축을 형성하였다. 아시아 최대규모의 복합문화예술기관인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민주, 인권, 평화의 광주정신 위에 세워진 아시아문화의 플랫폼이다. 아시아문화의 창의성과 다양성을 기반으로 국제적인 문화예술 콘텐츠를 제작하고 확산하는 이 기관은 재미 건축가 우규승의 설계로 완공되었다. 문화창조원, 예술극장, 어린이문화원, 민주평화교류원, 정보원의 주요 공간은 모두 지하에 있고 여기서 창제작 및 전시, 공연, 페스티벌 등 다양한 콘텐츠로 대중과 만나며 상단 부분은 녹지로 확보하여 시민들의 공원으로 활용하게 하였다.

동구청 미로센터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등장하기 이전 동구의 예술의 거리는 화랑과 미술품 재료상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광주의 미술계 많은 이들이 새로운 예술을 선보이고 성장했던 이 예술의 거리에 최근 ‘미로센터’의 등장으로 활기가 더해지고 있다. 동구청 산하 복합문화공간 미로센터는 ‘지역예술인의 문화발전소’를 표방하며 2019년 11월에 개관하였다. 문화×도시×재생을 실현하는 공간으로 기존 4층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무등갤러리를 확장해 갤러리, 극장, 라이브러리, 공방, 다목적 공간, 야외행사장 등 예술의 거리 활성화를 위한 거점시설을 갖추고 있다. 지역자원 기반 및 국제예술교류,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프로젝트 운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예술의 거리 내 상가들 사이에 위치하여 접근성이 매우 좋으며, 실제 이 공간의 운영 전략이 기관 주체가 아니라 지역민 주체라는데 큰 의미가 있다.

동구 인문학당

동구 인문학당 내부(다실)

동구에는 광주 최초의 근대식 공립학교였던 서석초등학교와 중앙도서관의 근현대 역사적 정취가 남아있는 동명동이 있다. 근현대 역사의 시간을 입은 견고한 주택들이 여전히 멋스러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데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개관 이후 조용한 이 지역에 상점과 음식점 등이 등장하며 주택가와 상업지구가 결합해가는 풍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동명동 중앙도서관 위쪽 근현대를 관통한 듯한 ‘김성채 고택’은 한옥을 바탕으로 서양과 일본의 근현대 건축 양식이 절충된 매우 흥미롭고 특별한 건축이었으나, 폐허의 위기에 놓이자 동구청에서 문화공간으로 만드는 계획을 마련해 예술가들에 의해 공간의 기억을 보존하며 ‘동구인문학당’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정원이 아름다운 고택의 원형에 시민들에게 개방될 인문학적 문화공간화 하는데 있어 회화, 설치, 영상, 공예, 디자인 등 다양한 성격의 작가들은 참여하여 곧 시민을 맞이할 준비가 한창이다.

김성채 고택에서 동명동 카페거리를 오가는 보행자 통로에서 특별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길이 110m의 보행자 전용로에 ‘서울로 7017’을 설계한 네덜란드 건축가 위니 마스(Winy Maas )의 폴리 ‘아이 러브 스트리트(THE I LOVE STREET)’가 자리한다. 2011년부터 도시재생사업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광주 폴리의 대표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로 작가와 서석초등학교 학생들이 협업한 결과물이다. 이처럼 광주 전역에 걸쳐 펼쳐진 이 프로젝트는 뜻밖의 공간에 등장하여 문화적 풍경으로서 보다 확장된 도시의 호흡을 만들고 있다. 그간 설치된 31개 작품들은 탄탄한 개념과 예리한 시선의 국제적 예술가들이 참여하여 도심 보행로, 콘크리트 바닥, 지하철 내부, 공중화장실 등 다양한 곳에서 광주시민들의 일상의 순간에 만날 수 있다.

의재미술관

동구의 위쪽으로 무등산 자락에는 한국 남종화의 마지막 계승자로 알려진 의재 허백련의 삶과 예술을 기리는 의재미술관이 자리한다. 노출 콘크리트와 나무로 간결하게 마감한 건축물이 아름다운 의재미술관은 최근 개관 20주년으로 새롭게 단장하여 재개관하였다. 운림동 인근 주택가에는 한국 현대 추상의 독자적 세계를 걸어온 우제길의 예술 세계를 보여주는 우제길미술관이 소재해 있다. 현대미술 뿐 아니라 최근 생태와 환경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는 무등현대미술관도 동구 무등산 입구에 위치해있다. 이외에도 동구에는 민속품들을 수집해 전시한 비움박물관이 과거 생활사를 이해시키는 데 도움을 주고 있으며, 은암미술관은 시민과 문화적 소통을 목표로 다양한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근대역사문화가 살아 숨 쉬는 남구의 문화공간

동구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예술의 거리, 동명동으로 이어진 문화공간으로부터 남구 양림동으로 가면 양림오거리의 펭귄마을을 가장 먼저 만나게 된다. 펭귄마을에는 최근 23개의 공예 공방이 생겨 공예품을 만들어 판매도 하고 관람객이 체험을 할 수 있다. 양림동은 100여 년 전 기독교 선교사들이 둥지를 틀면서 서양문물의 통로와 같은 곳이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선교사에 의해 여학교와 병원을 만들어 ‘서양촌’이라 불렸고 대형교회가 6개 소재하여 지역민의 65%가 기독교인인 특성이 있다. 양림동의 선교문화와 기독교전통은 1904년 광주양림교회로부터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남구의 선교문화 전통에 예술적 풍취가 더해지며 새롭게 관심을 받고 있는 양림동에는 남구청에서 운영하는 ‘양림미술관’을 비롯하여, 故이강하 화백의 삶과 예술세계, 시대별 작품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이강하미술관’, 광주를 기반으로 활약해온 한희원 작가의 예술세계를 만날 수 있는 ‘한희원미술관’이 소재해 있다.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양림동의 광주선교부가 있던 우일선교사 사택 및 호랑가시나무 선교문화의 전통에 기반하여 본격적인 문화공간으로 자리한 곳이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미술관’이다. 양림산 일대, 과거 풍장터였던 선교사 묘지 끝자락에 자리해 있다. 항일의병 투쟁지이자, 한반도 기독교 포교지, 미국의 지정학적, 군사적 영향력의 거점이기도 했던 다층적 역사 위에 세워진 아트폴리곤은 수십년간 비어 있었던 선교사 사택 차고를 증축하여 갤러리, 공연, 인문학 강좌를 할 수 있는 복합 공간으로 재탄생된 곳이다. 2021년 광주비엔날레 전시공간으로도 활용되어 더욱 주목받았다. 아트폴리곤 과 함께 운영되는 호랑가시나무창작소는 문학, 미술, 음악, 영화, 미디어 등 다양한 장르의 창작자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만나고 작업을 완성하는 공간이다. 창작소로 쓰이는 원요한 사택이 1950년대 지어진 걸 고려하면, 이 주변의 건축물은 대개 그 즈음 조성된 것이 조금씩 변화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십년후 그라운드

양림동 근대역사문화 풍경을 그대로 이어 문화공간화한 ‘10년후 그라운드’가 최근 문을 열었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한 모임공간"을 표방한 이 곳은 여행자 라운지카페이자 복합문화공간이다. 1975년 세워진 은성유치원의 추억과 역사가 깃들어 있는 장소적 가치를 그대로 이어가서 미래를 위한 문화공간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교육, 커뮤니티, 출판 등 다양한 지식서비스부터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제시하는 식음서비스, 삶의 경험을 확대하는 폭넓은 문화예술프로그램까지 문화기획과 실천이 이루어는 곳이다. 양림쌀롱을 통해 문화적 이벤트를 만들고 지역공동체와 함께 했던 그간의 시간을 복합문화공간 안에서 실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2020년 양림골목비엔날레라는 이벤트를 아트폴리곤, 이이남스튜디오와 기획하여 주목을 받았고 올해 미술주간으로 더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양림골목비엔날레는 그림을 전시하되 한 장소에다 모아놓지 않고 갤러리와 카페, 음식점, 빈집 등에 분산하여 전시하여, 골목 상권을 비롯 지역과 함께 하는 특별한 이벤트였다. 이러한 움직임의 주축에 10년후 그라운드가 있었다. 작가들과 상인들, 주민들을 만나 대화하고 과정에서 마주한 시민들의 주체적이고 자발적 의지와 공동체 의식에 의해 만들어졌던 소박하지만 마을전체가 문화적 풍경에 어우러진 모습으로 기억된다.

이이남 스튜디오

양림동 근대 역사적 공간에 자연과 예술의 열린 공간을 지향하는 미디어아트 특화공간 이이남스튜디오가 2020년 11월 문을 열었다. 미디어아트로 국내외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이남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한자리에 모아 전시하고, 지역민들에게 작품감상과 함께 휴식을 제공하고자 하였다. 입구에는 시민이나 방문객들의 편안한 접근과 힐링을 위해 사랑채와 같이 카페테리아를 마련하고 1층부터 3층까지 이이남 작가의 작품 공간과 자료실 등이 있다. 특히 개방감이 좋은 실내외 공간 구성의 카페테리아와 자연스럽게 연결된 미술관 공간으로 최근 양림동의 핫플레이스 중 하나가 되었다. 이 곳은 원래 5·18 당시 참혹한 현장을 목격하고 일기로 기록하고 국제사회에 그 진상을 알리는데 힘썼던 아놀드 피터슨 목사의 사택이 있었다. 이를 모 제약회사가 물류창고로 사용해 오다가 이이남 작가에 의해 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하여 탄생한 것이다. 기존의 갑갑한 창고 흔적을 모두 걷어내어 통창과 천정을 개방하여 각 층 실내와 하늘을 연결하면서 자연 채광을 극대화한 것도 멋스럽다. 천창에 펼쳐지는 하늘풍경, 미디어아트의 변화무쌍한 빛이 공간 전체에 드러나는데, 양림동의 고즈넉한 분위기에 생동감을 주는 문화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서구의 문화공간, 하정웅미술관과 신세계갤러리

하정웅미술관

5.18 개념공원과 광주시청, 김대중컨벤션센터가 있는 서구의 대표적인 문화공간은 광주시립미술관 분관인 하정웅미술관과 무각사 전시공간 및 로터스갤러리, 그리고 신세계갤러리를 꼽을 수 있다. 무각사가 불교 사찰임에도 불구하고 로터스 북카페나 로터스갤러리는 좋은 예술을 선보이고 있어 다수의 사람들이 찾는 문화공간이다. 신세계갤러리는 지역미술계 발전에 다양한 각도에서 기여하는데, 좋은 전시를 통해서 뿐아니라 신세계공모전을 매년 개최하여 작가 발굴과 지원을 꾸준하게 하고 있다.

하정웅미술관은 1982년 옛 전남도지사공관으로 지어진 공간에서 공공기관 이전부지 공원화사업에 의해 상록근린공원으로 조성되었다가 숲속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역사가 있다. 2006년 9월부터 2016년 8월까지 광주시립미술관 분관 상록전시관으로 운영되다가, 광주광역시에 1993년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총 2,523점의 미술작품을 기증한 재일 교포 동강 하정웅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그가 기증한 이우환, 전화황, 곽인식, 최승희 사진, 샤갈, 피카소, 앤디워홀 등 작품을 적극 활용하기 위해 2017년 3월 광주시립미술관 분관 하정웅미술관으로 명칭을 변경 재개관하였다. 광주시립미술관은 하정웅미술관 운영을 통해 디아스포라, 인권과 평화로 집약되는 하정웅컬렉션과 민주·인권·평화라는 광주의 정체성을 연계한 특화된 가치를 개발하고자 한다.

광산구 소촌아트팩토리

소촌아트팩토리

광주시의 다른 지역과는 다른 문화공간을 광산구에서 찾을 수 있다. ‘소촌아트팩토리’가 그 사례인데, 2014년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에 선정된 프로젝트에서 시작되어 구현되었기 때문이다. 소촌농공단지 관리사무소와 민방위대피소로 쓰였던 과거의 건물들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홍보관 아시아문화마루에 쓰였던 컨테이너들이 덧대어져 새로운 문화재생공간으로 변모하였다. 산업단지의 문화예술 거점 공간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져 ‘문화재생 1번지’라는 수식이 붙는다. 네 개의 미술전시공간, 공연, 인문 프로그램 등 다양한 콘텐츠로 시민들과의 문화적 소통을 나누고자 하고 있다.

광주의 5개구로 나누어 살펴본 문화공간은 동구나 남구에 더 많이 분포되었다는 사실 뿐 아니라, 건축 공간의 리모델링을 중심으로 시설이 완성되거나 목적이 전환되는 사례들도 많다는 것이다. 즉 광주의 새로운 문화공간은 각각 장소성과 정체성을 달리하지만 새로 건축하기 보다 기존의 공간 위에 새로움을 더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점에 공통적이다. 동구 궁동 미로센터, 동명동 근대 고택의 인문학적 공간, 남구 아트폴리곤, 십년 후 그라운드, 이이남 스튜디오는 광주에 새롭게 부상하는 문화공간이지만, 이들 공간의 주체는 지자체를 포함해서 수십년간 문화적 활동에 몸담고 실천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도시 생태계 안에서 문화공간의 역할이 무엇인지 인지하고, 공동체와 함께 문화화 호흡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