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 동향

[아트 인 시티] 미술 작품 속 도시
- 리모트 컨트롤로서의 도시
“환승 없이 바로 간다”

posted 2022.03.11


더아트로는 한국이 가진 풍부한 문화적 인프라를 소개하고, 최근 변화하고 있는 한국의 미술 현장을 조명해보고자 이번 특집을 기획하였다. 미술관, 갤러리 외에도 도시 곳곳에 매력적인 공간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미술 행사들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새로 문을 연 전시공간이나 예술 프로젝트들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며, 미술 현장에 대한 콘텐츠 또한 대규모의 국공립 또는 사립미술관, 국제 미술행사에 치중되어 있는 편이다. 이에 더아트로는 다양한 미술 현장들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주제로 ‘공공미술’, ‘공간’, ‘작품’이라는 키워드를 선정하여 3개의 연재 특집기사를 준비했다. 첫 번째 기사 ‘도시 속 공공미술’에서는 국내 여러 지역의 공공미술을 소개한다. 도시 내 문화공간 조성을 목표로 진행되어온 공공미술 프로젝트, 그리고 시민들이 삶 속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공공미술을 알아보고, 한국 공공미술의 현주소를 들여다본다. 두 번째 ‘새로운 공간들’ 에서는 최근 새로 생겨났거나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도시 곳곳의 공간들을 중점적으로 다루어보고자 한국의 대표 미술 도시인 서울, 부산, 대구, 광주의 미술현장을 조명하는 기사를 기획하였다. 마지막으로 ‘미술 작품 속 도시’에서는 도시를 주제로 작업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도시의 다양한 모습을 조명한다. 이번 특집기사를 통해 한국의 새로운 면모를 알리고, 한국 미술의 국제적 위상을 제고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글이 한국을 찾는 많은 해외의 미술 애호가들과 시각 예술 관계자들에게 한국 문화현장 안내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번 특집의 마지막 기사에서 다룰 10명의 작가들은 각자 자신만의 시각으로 도시를 관찰하고, 그들이 경험한 개개인의 도시를 작품으로 나타낸다. 과거에는 도시를 풍경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많아 도시를 재현하는 작품들을 많이 볼 수 있었던 반면 오늘날에는 도시를 명시적으로 다루지 않는 작품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도시의 면면이 작품 속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 들여다볼 수 있으며, 나아가 오늘날 MZ 세대의 젊은 작가들이 도시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들을 통해 새로운 도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리모트 컨트롤로서의 도시

“환승 없이 바로 간다”


호상근,〈주차금지 시리즈 모음〉, 이미지 작가 제공.

호상근,〈주차금지 시리즈 모음〉, 이미지 작가 제공.

1969년 김구림이 제작한 영상 작업〈1/24초의 의미〉안에는 삼일고가도로, 육교, 방직 공장, 세운상가 등 당시 서울의 모습이 담겨있다. 1초에 24컷을 의미하는 제목의 이 영상 안에는 빠름과 느림이 동시에 있다. 도시의 속도를 통제할 수 없는 개인의 하품하는 모습과, 뿜어져 나오는 담배 연기가 보인다.〈1/24초의 의미〉는 흑백과 칼라가 교차되며 이제는 볼 수 없는 도시를 그린다. 도시는 변화를 기본 속성으로 한다. 2021년 12월에 쓴 이 글은 미술가들의 작업을 통과해 우리 눈앞에 나타난 도시의 몇 가지 양상을 논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 글에서 전제하는 ‘도시’는 광주, 부산, 인천, 대구, 목포, 춘천, 서울, 대전 등의 특정한 행정 지역의 이름만은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도시는 행정 구역이자 구체적인 장소로서 우리 곁에 존재한다.


본 글이 주목한 것은 동시대 한국의 미술가들이 담는 도시가 지닌 역동성과 변화무쌍함이다. 순차적으로 버추얼(가상), 내러티브(서사)의 방법론, 자신의 신체를 이용한 움직임을 살펴볼 것이다. 한편 글의 부제인 ‘환승 없이 바로 간다’는 2021년 12월 한 신문 기사에서 다루는 내용에서 착안했다. 해당 기사는 영남권 복선전철화 사업으로 인해 3년 후면 서울에서 해운대까지 2시간 40분에 도착한다고 쓴다. 기사에서 알려주는 사실 하나가 더 있다. 영남권 복선전철 사업으로 신설된 울산 태화강역의 디자인이 그것이다. 울산 태화강역의 디자인은 “울산의 상징인 고래의 이미지”를 건축 외관에 적용했다.1) ‘환승 없는 직행’의 속도 감각과 도시의 ‘오래된 상징’은 오늘날 국가 정책 시스템이 상정하는 도시의 이중적 욕망에 대해 보여준다. 도시든 농촌이든 속전속결을 전제로 하는 지체없음의 다이내믹과 해당 도시가 지닌 깊은 역사와 풍부한 맥락은 도시를 둘러싼 이중적 욕망이다. 이는 어떻게 동시에 공존할 수 있을까?


오늘날 도시는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쏟아 부은 용광로다. 계획 도시 이후에 지체된 현상으로서의 도시는 어느 부분 노후되었다. 또 어느 부분 변방과 중심의 위치를 자본의 흐름에 따라 변경시켜 나간다. 도시와 비도시, 중심과 주변, 부동산 정책, 개인 서사와 심리의 문제와 같이 어떤 관점을 택하느냐에 따라 ‘도시’는 서로 다른 대상을 지칭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아파트 게임』의 저자 박해천은 2010년대의 서울에 대해 이렇게 썼다. “확실히 서울은 뜨겁게 가열된 특정 공간들로 들썩거리기도 했지만, 그 후경에서는 빠르게 늙어가며 차갑게 냉각되고 있었다. 급격한 온도 차이가 만들어 내는 도시의 이중적 면모는 확실히 서울이 지닌 독특한 고령화 현상과 연관된 것이었다.”2) 오늘날 미술가들 또한 ‘가열과 냉각’의 이중적 상황에 놓인 도시 안에 있다. 작가들은 유무형의 미디엄을 통해 도시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들을 생산해낸다.


도시는 전면에 있다


2000년대 중후반, 도시는 회화 작업을 하는 작가들에게 주요한 그리기의 대상으로 부각되었다. 왜 그랬을까? 도시 재개발을 둘러싸고 눈앞에 드러난 풍광이 변화하고 있었던 점이 큰 이유였다. 당시 미술 잡지의 다양한 특집들이 도시의 사라져가는 시공간, 노스텔지어로서의 감각을 회화로 증명해내려는 작업을 등장시켰다. 그러나 오늘날 도시는 눈앞의 변화를 재현하거나 기록하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에 놓여있다. 도시로 지칭되는 대상, 도시를 둘러싼 인식의 프레임 자체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에 따라 도시 담론과 기술은 가상화된다. ‘도시’라는 말은 새로운 정의를 요하는 까닭이 이 때문이다. 즉 오늘날 도시는 땅에 있지 않고 전면에 있다. 이물감을 자아내고 멀미와도 유사한 새로운 감각을 불러일으키면서, 온라인을 둘러싼 다양한 이름들(메타버스, VR, AR) 들과 함께 간다.


김아영,〈수리솔 : POVCR〉, 2021. 이미지 작가 제공

김아영,〈수리솔 : POVCR〉, 2021, 이미지 작가 제공.

김아영,〈수리솔 : POVCR〉, 2021. 이미지 작가 제공

김아영,〈수리솔 : POVCR〉, 2021, 이미지 작가 제공.

도시를 다루는 첫 번째 양상으로서 ‘가상(virtual)’의 문제를 논하고자 한다. 김아영의 2021년 작〈수리솔 : POVCR〉은 VR 작업이다. 이 작품은 도시보다 우주, 지구의 차원을 논하는 듯 하나 경험해보면 바닷가 한 도시를 거점으로 한다. 평행우주와 같은 작업 안의 시공간 안에서 ‘일어나라(awake)'는 명령과 함께 시작되는 시공간이 펼쳐진다. 김아영의 작업은 전시장에 앉아있는 관객의 시야, 평행감각, 운동감각을 모두 교란시킨다.〈수리솔 : POVCR〉은 해수면의 가상 연구소를 배경으로 한 듯 하지만 실재하는 부산 기정 유구한 지역 특산품인 다시마를 등장시킨다. VR 공간으로 들어간 도시 부산의 ‘기장’이라는 지역의 존재는 전시장 문을 열고 들어와 의자에 앉아 VR 기기에 몸을 맡긴 채 김아영의 작업에 ‘탑승’한 관객에게 새로운 도시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은 걸어 들어가는 감각을 넘어 해일과 파도가 몸 전체로 다가오고 밀려 들어가는 광속의 복합적인 실체로서의 도시이다.


김희천,〈썰매〉, 2016, 영상 스틸컷, 이미지 작가 제공.

김희천, 〈썰매〉, 2016, 영상 스틸컷, 이미지 작가 제공.

김희천,〈썰매〉, 2016, 영상 스틸컷, 이미지 작가 제공.

김희천, 〈썰매〉, 2016, 영상 스틸컷, 이미지 작가 제공.

‘스마트 씨티’로서의 도시를 둘러싼 기술은 변화한다. 작가들이 도시를 다루는 방법론 또한 변화한다. 리모컨, 시공간 컨트롤의 대상으로서 도시가 등장한다. 다음 절차와 스텝으로 진입하는 도시 공간에서 현실의 드라이브가 어디를 목표로 하는가는 다르다. 도로는 여기저기를 통과하고, 다른 길을 뚫으려 하다가 언제나 막히는 듯 하다. 작품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감각은 도시를 실재와 가상을 원격 이동하는 데이터와 겹쳐놓는다. 작가 김희천의 일련의 작업들은 도시를 보고 다루는 방식을 도시의 외관과 인간 주체가 지닌 신체의 껍데기와 연관시킨다. 김희천의 영상 작업〈썰매〉(2016)는 거대도시 도시와 개인의 스마트 저장기기 안에 들어온 도시 안, 실재와 데이터를 상대한다. 서울의 숭례문, 광화문과 시청, 청와대로 가는 길목인 경복궁 근처 등에서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는 확성기와 태극기를 동원한 정치 이벤트들에서 과거와 현재가 교란된다. 작가는 클래식한 서사와 정교한 감각 사이에서 움직인다. 여기서 작가가 헤집고 다니는 길은 새롭게 쓰인 변신의 방식을 다룬다. 추상화된 도시와 신체/정신과 동기화되는 배경으로서의 도시는 가까워지거나 멀어져간다. 카메라 줌인 줌아웃은 ‘시점 생성과 조절’의 또 다른 말이다. 김희천의 작업에서 나타난 도시 서울, 혹은 어딘가로 이동하는 공간은 속도를 타고 종착지에 다다르거나 파괴된다.


김익현,〈모두가 연결되는 미래〉, 2016, 사진, 이미지 작가 제공.

김익현,〈모두가 연결되는 미래〉, 2016, 사진, 이미지 작가 제공.

김익현,〈모두가 연결되는 미래〉,  2016, 사진, 디지털 잉크젯 프린트, 종이, 가변 크기, 미디어시티서울 설치전경. 이미지 작가 제공.

김익현,〈모두가 연결되는 미래〉 설치 전경, 2016, 이미지 미디어시티서울 2016 제공, 촬영 홍철기.

김익현의 2016년 작〈모두가 연결되는 미래〉는 ‘사진술’을 둘러싼 시스템이라 할 만한다. 사진의 대상은 서울이다. 작가에게 문제되는 것은 지리정보 기술로서 오늘날의 도시와 지리가 인식되는 방식이다. 김익현은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볼 수 있는 구체적인 건물과 서울 정동의 익숙한 담벼락과 우회로 등을 등장시킨다. 작가의 사진은 언뜻 보면 서울을 촬영한 결과물로 보이지만 그 결과물은 단일한 것들이 아닌, 불균질하고 상이한 것들의 결과물이다. 작가는 여러 이미지들을 촬영한 후 이어 붙여 파노라마 형태의 도시 풍경으로 제시한다. 몇 초만 더 들여다보면 회색의 수직 수평의 그리드가 건물 안팎에서 어긋나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건물에 금이 간 것을 포착한 것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압축하고 이어 붙여 만든(만들어진) 이미지”를 작가 김익현이 포착한 것이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당시 이런 글을 남겼다. “현실과 가상은 이제 겨우 밀도, 해상도 정도의 차이만 갖고 있다. (중략) 이런 이미지들로 만들어진 서울을 한참 배회하다 보면 틈 없이 견고하게 이어 붙어 매끈해진 미래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가끔 검게 구멍 난 곳을 보며 1960년대 광학정찰위성의 수고로움을 떠올린다.”3) 작가가 쓴 글은 그의 도시 관측이 도시의 지리정보를 감각하고 기록하는 기술에 대한 의심과 질문과 붙어있음을 보여준다. 도시를 기록하고 매개하는 방식의 ‘기술’은 그 도시의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지 방식과 능력을 결정짓는다. 김익현의 조사에 따르면 2004년 구글은 지리정보 기업 키홀을 인수했고, 2013년에는 스마트폰 사용자가 360도 파노라마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스피어 어플리케이션이 출시됐다. 작가의 작업은 이렇듯 도시의 과거와 미래, 개인이 체감할 수 있는 현실과 가상의 관계를 질문한다.


오석근, 《적산가옥》전시전경. 이미지 작가 제공.

오석근, 《적산가옥》전시전경, 이미지 작가 제공.

오석근, 《적산가옥》전시전경. 이미지 작가 제공.

오석근, 《적산가옥》전시전경, 이미지 작가 제공.

내러티브의 방법, 흩어진 도시


도시를 둘러싼 두 번째 관찰로 내러티브(서사)의 방법론을 통해 도시가 어떻게 등장하는지 살펴보자. 이때 내러티브는 작가의 리서치, 역사, 관찰의 방법들을 통칭한다. 도시와 개인이 만나는 방식으로서 역사는 여전히 작가들에게 풀어야 할 주제로 기능한다. 오늘날 도시를 둘러싼 만들기의 입장은 폐허를 일으키겠다는 계획과는 다르다. 여전히 분단국가이자 국방국가로서 집단통제 시스템 하의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몇 도시들은 현재진행형의 정치적 현황으로서의 공통 의제가 산재하는 장소다. 이때 도시는 전쟁과 분단의 기억, 개인의 서사와 집단 서사가 충돌하는 배경이자 주체 자체다. 작가 오석근이 도시 인천 및 경기 지역을 연구 조사하는 방식은 기존 사회학, 지리학, 역사학 등의 프레임을 교차시키며 현지 조사와 인터뷰, 정책적 제언까지를 포함한다. 다양한 도시 리서치를 진행해온 작가 오석근은 일본 작가 카마다 유스케, 건축가 이의중과 함께 《적산가옥》전(2021.9.25.-10.11, 인천 부연)에서 인천 지역의 적산 가옥을 연구한 결과물을 사진, 설치, 도면 등을 통해 제시했다. 이는 과거 즉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적산가옥의 문화가 어떠한 형태로 변형해나갔는지에 대한 탐구인 동시에 ‘적의 집’이라고 불렀던 가옥에 대한 문화유산을 오늘날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책적 제언이기도 하다.


《제인 진 카이젠: 이별의 공동체》 전시 전경, 2021, 아트선재센터 ⓒ 2021. 아트선재센터. 사진: 김상태.

《제인 진 카이젠: 이별의 공동체》 전시 전경, 2021, 아트선재센터 ⓒ 2021. 아트선재센터. 사진: 김상태.

제인 진 카이젠(Jane Jean Kaisen)의 영상 작업〈이별의 공동체〉(2019)에도 과거와 오늘이 함께 있다. 작가는 제주 해녀들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으며 고향인 제주도의 자연, 사물, 샤머니즘 등의 현재를 논한다. 제주 출생의 입양인 출신인 작가에게 이야기는 반드시 제주와 떨어질 수 없다. 그는 개인의 고백과 상호주체성(inter-subjectivity), 국가와 여성 공동체의 문제를 넘나든다. 제주학살 생존자인 무당 고순안의 삶, 시인 김혜순의 시, 한국 전쟁 등의 역사적 사실이 매우 구체적인 사물의 이미지로 되살아난다. 도시로서의 제주는 변하지 않는 원시적인 자연과 역사를 간직한 보고(寶庫)다.


구동희,〈비상-수평선〉, 2020, 스티로폼 CNC, 닻, 가변크기, 이미지 작가 제공.

구동희,〈비상-수평선〉, 2020, 설치 전경, 이미지 작가 제공.

구동희,〈비상-수평선〉, 2020, 스티로폼 CNC, 닻, 가변크기, 이미지 작가 제공.

구동희,〈비상-수평선〉, 2020, 설치 전경, 이미지 작가 제공.

한편 도시는 특정한 행정 권역의 명칭을 뛰어넘어 땅과 조형물을 둘러싼 보편어로 확장된다. 이때 도시는 이미 있는 곳, 이미 존재하는 시스템으로서의 레디메이드이다. 작가 구동희의 2020년 덕수궁에서 선보였던 작업〈비상-수평선〉은 도시를 둘러싼 ‘공공미술’을 수집 연구 조사한 독특한 결과물이다. 그는 여러 영상, 설치 작업에서 입체와 평면의 관계, 도시 공간과 풍수지리의 지정학적 문제들을 화면 안에 담아왔다.〈비상-수평선〉(2020)에서 작가는 전국 공공조형물의 이미지 중 ‘비상(飛翔)’이라는 키워드로 검색되는 결과물들을 모았다. 그는 전국 15개 도시에 있는 비상 조각들 이미지들을 찾아 이 형태를 변형했고 철, 나무, 금속 등의 재료를 인덱스 삼아 색으로 입혔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도시의 상징물을 미니어처로 축소시켜 물 위에 부표로 띄웠다. 형광색의 작은 구조물 여럿이 덕수궁 연못에 둥둥 띄어져 있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그의 계획 안에서 전국 도시 곳곳에서 ‘비상’의 이름으로 웅장하게 서 있던 이미지들은 애완(愛玩)물과 기념(記念)비 사이에서 수평선을 일구는 가벼운 물체들로 변화했다. 이는 각 도시마다 자리하는 공공조형물의 상투성을 각인시키는 동시에 도시의 조형물 생산을 둘러싼 작가의 입체적인 해석을 보여준다.


호상근,〈남산과 날씨 07(봄)〉, 2017, 종이위에 연필, 색연필, 354X277mm, 호상근,〈남산과 날씨 06(여름)〉, 2017, 종이위에 연필, 색연필, 354X277mm, 호상근,〈남산과 날씨05(가을)〉, 2017, 종이위에 연필, 색연필, 354X277mm, 호상근,〈남산과 날씨 13(겨울)〉, 2017, 종이위에 연필, 색연필, 354X277mm, 이미지 작가 제공.
호상근,〈남산과 날씨 07(봄)〉, 2017, 종이위에 연필, 색연필, 354X277mm, 호상근,〈남산과 날씨 06(여름)〉, 2017, 종이위에 연필, 색연필, 354X277mm, 호상근,〈남산과 날씨05(가을)〉, 2017, 종이위에 연필, 색연필, 354X277mm, 호상근,〈남산과 날씨 13(겨울)〉, 2017, 종이위에 연필, 색연필, 354X277mm, 이미지 작가 제공.

호상근,〈남산과 날씨 07(봄)〉, 2017, 종이위에 연필, 색연필, 354X277mm, 호상근,〈남산과 날씨 06(여름)〉, 2017, 종이위에 연필, 색연필, 354X277mm, 호상근,〈남산과 날씨05(가을)〉, 2017, 종이위에 연필, 색연필, 354X277mm, 호상근,〈남산과 날씨 13(겨울)〉, 2017, 종이위에 연필, 색연필, 354X277mm, 이미지 작가 제공.

호상근의 작업은 도시의 몇 장소들을 미시사적으로 들여다보는 관찰 행위에서 지속된다.〈남산과 날씨〉(2017-2020) 연작은 창밖을 보다가 보이는 풍경으로 채택된 남산타워를 4년 넘게 간헐적으로 그린 것이다. 종이 위에 연필, 색연필로 그린 이 작업에서 남산타워는 어두운 밤에 보이지 않으며 황사로 덮인 때에는 뿌옇게 윤곽만 보인다. 그는 스마트폰 카메라의 고정 노출을 감지하듯, 눈앞의 실제 풍경을 테스트한다. 도시의 특정 장면을 고정된 대상이 아닌, 변화하는 ‘상태’로 간주하고 포착하는 것은 상시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오늘날의 이미지 캡처 방식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작가는 눈앞의 것을 그리며 실제 도시 기록에 충실하다. 호상근의 또 다른 작업〈주차금지 시리즈 모음〉에서는 도시의 미시적인 풍경, 생활 관습이 드러난다. 그는 골목 안쪽에 위치한 돌, 화분, 의자, 폐품 등의 주차금지 공표 용 사물을 그렸다. 그는 (1) 문래동 (2) 경리단길 (3) 을지로 1가 (4) 상수역 근처 등의 지역을 표기함으로써 주차용 사물이 위치했던 정확한 도시 내 지역을 기억해낸다.4)


박선호〈사간의 빛〉, 2021, 이미지 작가 제공.

박선호, 〈사간의 빛〉, 2021, 이미지 작가 제공.

도시를 둘러싼 서사는 건축물을 주된 화자로 불러일으키며, 여성의 새로운 화자를 초대한다. 20대 후반의 작가 박선호의〈사간의 빛〉(2021)은 사간동에 위치한 1975년도에 건설된 한 짙은 건물의 안팎을 다룬다.5) 이 건물은 동그란 조명이 있는 나선형 계단을 간직한 곳으로 출판과 인쇄문화를 둘러싼 여러 활동들을 지속해온 단체의 소속 건물이다. 그는 2021년 이 작품에서 출판문화협회 건물을 지하 창고에 있던 낡은 앨범을 훑는 여성의 손, 옥상에서 내려단 본 송현동의 녹음 짙은 나무, 1970년대 구호 액자 ‘책은 만인의 것’이 걸려있는 실내에 중첩시킨다. 여러 역사를 간직한 한 건물이 화자가 된 이 길지 않은 영상이 비추는 것은, 잘게 쪼개진 주체들의 이야기로 분산된, 도시의 관점들이다.


박선호〈사간의 빛〉, 2021, 이미지 작가 제공.

박선호, 〈사간의 빛〉, 2021, 이미지 작가 제공.

도시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


미술 작품에서 드러나는 도시의 세 번째 경향으로서, 작가가 직접 움직이는 경우는 매우 주요한 특성이다. 카메라를 들고, 자신의 스코어(지시문)를 들고 작가들은 도시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가 나온다. 한 번 더 앞서 등장했던 박해천의 논의를 인용해보자. 그는 한국에서 “도시화란 1940년대와 1960년대 사이 출생한 이들에게 제한적으로 제공되었던 지리적 이동의 서사이자 계층 상승의 경로였다”6)고 쓴다. 여기서 핵심은 2010년대 이후 “큐브 생태계”로 도시 생활권이 재편되는 시점이다. 도시가 아닌 자가(自家), 집이 아닌 방으로 쪼그라든 시공간적 경험 안에서 “큐브 생태계”를 벗어나거나 인지하는 작업들에 주목해보자. 이는 오늘날의 경향으로서 자신의 신체(리서치까지 포함)를 이용해 도시를 경험하는 시도와 연관된다. 송주원의 영상 작업 도시의 골목 사이를 춤추는 인물을 담는다. 좁은 골목과 옥상, 오래된 집과 건물들 사이에서 움직이는 인물은 도시의 오래된 인공미, 사람들이 살아간 흔적들과 상대한다. 건물과 도시, 집과 마당이 멈춰있다면 여성 인물, 그리고 때로 더 많은 공동의 여성 인물들이 모이고 흩어져 춤을 춘다. 송주원의〈나는 사자다〉(2019)는 도시 성남을,〈풍정.각(風情.刻)-푸른 고개가 있는 동네〉(2018)은 서울역 가까운 오래된 동네를 42개의 계단, 고층빌딩의 빛과 서울로 7017 주변의 건물 등으로 구체적으로 감각한다.7)


송주원,〈풍정.각(風情.刻)-푸른 고개가 있는 동네〉, 2018, 이미지 작가 제공.

송주원, 〈풍정.각(風情.刻)-푸른 고개가 있는 동네〉, 2018, 이미지 작가 제공.

송주원,〈나는 사자다〉, 2019, 이미지 작가 제공.

송주원, 〈나는 사자다〉, 2019, 이미지 작가 제공.

작품 속에 등장하는 도시의 경향을 살피는 이 글에서 세 가지 양상은 혼재되어 새로운 말하기, 새로 쓰기의 방식을 창출한다. 가상, 내러티브, 직접 자신의 경험을 내던지는 방식은 서로 중첩되어 작품 안에 등장한다. 20대 여성 작가인 정유진은〈신두꺼비〉(2021) 영상에서 도시를 둘러싼 개인사와 공적 역사 사이의 혼란을 부감의 카메라 시점과 가족의 목소리로 다룬다. 작품은 개포동 아파트 단지에 살았던 작가의 경험을 어머니와 오빠의 두 화자를 중첩시켜 등장시킨다. 부동산 투자에 관심을 가져온 어머니의 입장과 가상 화폐의 움직임에 몰두하는 오빠는 서울 개포동이라는 욕망의 진지를 개인화된 또 다른 열망의 대상으로 상정한다. 도시를 실제 땅으로 인식하는 1995년 생 작가의 부모 세대와 가상 화폐가 실제 땅보다 중요해진 또 다른 세대 사이에서 그는 새로운 집을 상상한다.


정유진,〈두꺼비: 베타버전〉, 2021, 싱글채널비디오, 15분, 이미지 작가 제공.

정유진,〈신두꺼비〉, 2021, 싱글채널비디오, 15분, 이미지 작가 제공.

본 글은 오늘날 한국의 작가들이 도시에 주목하는 양상을 탐구하고자 했다. 본 글은 온오프라인 전면에 등장한 도시, 내러티브를 구축하는 방식, 도시 안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는 수행적 측면을 살펴보았다. 동시대 한국의 미술가들은 박상영의 소설집 제목 『대도시의 사랑법』(2019)과 같이 제목 전면에 ‘도시’를 초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언제나 특정한 도시와 대화하고 있으며 도시의 일부와 마주 선다. 낯선 도시를 걸을 때처럼 신선한 공기를 마주하는 경험이 귀해진 판데믹 시기의 3년 차, 우리에겐 도시를 보는 새로운 눈과 시야가 필요하다.


1)머니투데이 2021년 12월 12일, "2024년 서울~해운대 2시간40분, 환승없이 바로 간다"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1121014124644976
2)박해천, 「가열과 냉각, 2010년대 서울의 두 측면」, 『솔리드 시티 전시 도록』, 세화미술관, 2021.
3)김익현 작가노트, 2016년 작성.
4)https://bgaworks.com/pages/4
5)이 작업은 국제도서전의 70년 역사를 다루는 아카이브 전시 《긋닛 : 뉴월드커밍》(2021.9.8.-9.12, 성수동 에스팩토리, 기획 이상길 현시원) 전에 선보였다. 국제도서전을 기획한 주체는 출판문화협회로 1975년 협회가 뜻을 모아 이 건물을 건설했다.
6)박해천, 위의 글.
7)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 사전 프로그램 웹 사이트 참조. http://www.seo-sema.kr 송주원의 작업은 여러 곳에서 전시 상영되고 있으나 이 작업들은 근래〈경계에서의 신호〉(2021.9.28 - 11.7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선보였다.


관련기사 읽기

[아트 인 시티] 도시 속 공공미술 (1) Borderless in Public art
[아트 인 시티] 도시 속 공공미술 (2) 어디까지 아니? 서울시 공공미술
[아트 인 시티] 새로운 공간들(1) 서울 - Untitled & Titled Spaces
[아트 인 시티] 새로운 공간들(2) 부산 – 누가 문화의 불모지라고 했지?
[아트 인 시티] 새로운 공간들(3) 대구 전시공간 가이드 : 최신 패치 버전
[아트 인 시티] 새로운 공간들(4) 광주 - 도시역사와 만나는 광주의 문화지형도

현시원 / 독립큐레이터

독립 큐레이터. 전시를 기획하고 이미지나 미술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