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 동향

미디어아트의 보존·복원과 백남준의〈다다익선〉

posted 2022.12.15


〈다다익선〉 (부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사진: 남궁선

〈다다익선〉(부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사진: 남궁선

〈다다익선I(N.J.P I)〉 (1987). 싱글 채널 비디오, 컬러, 무음, 26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다다익선I(N.J.P I)〉(1987). 싱글 채널 비디오, 컬러, 무음, 26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필자는 과거 2006년부터 ‘미디어아트 아카이브 네트워크 포럼’이라는 국제행사를 약 5회 진행했었다. 이 포럼은 독일 카를스루에 미디어아트 센터(Zentrum für Kunst und Medien, 이하 ZKM), 미국 시카고 비디오 데이터뱅크(Video Data Bank), 인도네시아 OK 비디오 페스티벌(OK Video Festival), 네덜란드 몬테비디오(Montevideo), 일본 인터커뮤니케이션센터(InterCommunication Center, 이하 ICC), 영국 팩트(FACT), 우리나라 대안공간 루프 등 유수의 미디어아트 전문기관들이 모여 미디어아트 작업의 복원과 보존, 디지털 매체로의 변환, 이를 위한 국제적 기술 표준화 시스템 개발 등 다양한 주제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는 또한 사라져 가는 아날로그 시대의 미디어아트 작업을 지속시키기 위한 매우 중요한 포럼이기도 했다.


이 포럼을 통해 알게 된 흥미로운 점은 전 세계 미디어아트 기관들이 저마다의 정책과 비전을 바탕으로 미디어아트 작업을 보존·복원하고 있었다는 것이었고, 이에 관해 대략 3가지 방법적 정책을 취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첫째는 독일의 ZKM 방식이다. 그들은 미디어 작품 보존·복원에 있어, 시각적 원본성을 철저히 고수하고 있다. 예를 들면 그들은 수명이 다해가는 미디어 작품의 브라운관 TV를 대체할 수백, 수천 대의 TV를 수장고에 보관하고, 지금도 지속적으로 대체 TV들을 사들이고 있다. 심지어 신형 프로그램으로 호환될 수 있는 구시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까지 많은 비용을 들여 다시 복원·제작한다. 모니터나 비디오 플레이어 같은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시각으로 인지할 수 없는 소프트웨어조차도 그 원본성을 지키려 하는 것이다.


둘째는 일본의 ICC 방식으로 미디어 작품의 보존·복원에 있어, 창작자의 동의하에 작품의 시각적 원본성을 변형시킬 수 있는 방식이다. 그들은 아예 미디어아트 작품을 소장할 때 구입 계약서와 보존·복원 설명서, 이 두 가지 서류를 작가와 함께 작성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진화하는 신매체들을 소장 미디어 작품에 적용시키고, 재제작 할 수 있는 권한을 작가로부터 미술관이 위임받는 것이다. 예를 들면 브라운관 TV는 LED 모니터 - OLED 모니터로 바꿀 수 있고, 도스(DOS)는 윈도우(Window)로 변환할 수 있다. 미디어 작품의 시각적 원본성보다는 내면의 개념을 더 중시하는 것이다.


마지막은 영국의 FACT 방식으로 미디어 작품의 보존·복원에 있어, 관람객들이 시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것은 되도록 교체하지 않고 그 외의 것은 모두 교체하는 방식이다. 즉 TV나 비디오 플레이어 등 외부로 보이는 하드웨어는 될수록 원본을 유지하고, 노출되지 않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들은 변환시킨다는 것이다. 심지어 원본성이 어느 정도 그럴듯해 보이면 TV의 케이스는 그대로 놓아두고 내부의 브라운관을 평면 모니터로 교체해 대중들이 작품의 원본성을 의심치 않게 한다.


미디어아트의 보존·복원에 있어 원본성, 경제성, 안정성, 지속성은 4가지 중요한 원칙이다. 원본성은 작품의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에 얼만큼 충실하냐이고, 경제성은 보존·복원하는데 들어가는 경제적 비용에 관한 문제다. 안정성은 복원에 사용하는 미디어 매체가 얼마큼 안정적으로 가동되고 유지되는가를 말한다. 예를 들면 브라운관 TV보다는 LED 모니터가, 하드 드라이브보다는 메모리 드라이브가 발열이나 충격에 더 안정적이다. 또한 지속성은 미디어 매체의 사용 변환 주기를 이야기한다. 예를 들면 VHS 시스템은 약 40년 사용됐고, DVD 시스템은 약 20년 그리고 이제는 디빅스(Dvix)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블루레이(Blu-ray)는 잠깐 사용되었다가 풀HD에 밀려 국제 표준이 되지 못하고 있다. 기왕이면 기술적으로 가장 오래 지속될 수 있고 또한 국제적으로 오랫동안 범용화될 수 있는 표준 미디어 매체를 사용하는 것이 작품 보존의 지속성을 높일 수 있다. (가속화된 디지털미디어 기기의 변환 주기로 인해 하나의 국제기술표준이 탄생한 후 사용주기가 5년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의견도 ‘미디어아트 아카이브 네트워크 포럼’에서 제기되고 있다.)


〈다다익선〉재가동 기념식 전경, 2022.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다다익선〉재가동 기념식 전경, 2022.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이제,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백남준의〈다다익선〉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알다시피 얼마 전 대대적인 복원을 통해〈다다익선〉의 TV들은 다시 살아났다. 특히 백남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전 세계 미술관들은 브라운관 TV의 보존·복원 문제에 있어서 현재에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브라운관 TV를 사용했던 아날로그 미디어 작품들의 복원 선택지는 네 가지 정도일 것이다.


첫째는 원본성에 가장 충실하고 경제성, 안정성, 지속성은 포기하는 것이다. 즉 똑같은 브라운관 TV 모니터를 다시 사들여 전면 보수·복원하는 방법이다. 아직은 브라운관 모니터를 구할 수 있다. 여분의 백업 모니터도 구입해 놓으면 지속성을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브라운관 모니터의 수명은 길게 봐야 20년을 넘질 못한다. 또한 경제적 비용은 다른 해법들 보다 가장 많이들 것이며 안정성도 상대적으로 낮을 것이다.


둘째는 원본성은 다소 포기하더라도 경제성, 안정성, 지속성을 높이는 것이다. 즉 LED 모니터로의 전면 교체 방법이다. 원본성은 훼손되지만 유지 소비전력도 매우 낮고 상대적 모니터의 수명도 길다.


셋째는 첫째와 둘째의 혼합방법으로 브라운관 TV의 케이스는 그대로 사용하고, 내부의 튜브 브라운관만 LED 모니터로 교체하는 방법이다. 둘째 해법보다는 경제적 비용은 다소 상승하지만 원본성은 그나마 비슷해 보일 것이다.


넷째는 원본성, 경제성, 안정성, 지속성을 다 충족해줄 수 있는 신 기술 매체가 상용화될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OLED TV가 상용화된다면 브라운관 앞에 필름 TV를 접착해 작품 보수를 간단하게 할 수가 있다. 심지어 가까운 미래에는 더 간편한 스프레이 TV가 출시될 수도 있다. 기술의 발달은 가속화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기술 매체의 변환 시에 원본의 왜곡이나 경제적 비용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10년 전 VHS 영상을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하는데 10만 원이 들었지만 지금은 1만 원이고 화질은 더 좋아졌다.)


〈다다익선〉10인치 모니터 해상도 비교, 2020.

〈다다익선〉10인치 모니터 해상도 비교, 2020.

〈다다익선〉정밀진단 오실로스코프, 2019. CRT 디스플레이 파형측정 실시.

〈다다익선〉정밀진단 오실로스코프, 2019. CRT 디스플레이 파형측정 실시.

이번 국립현대미술관의〈다다익선〉보존·복원에는 이중 첫째와 셋째 방법을 혼합해 사용했다. 즉 큰 사이즈의 TV는 오리지널 브라운관 TV로 복원했고 구하기 어려운 작은 사이즈의 모니터는 LED 모니터로 복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술계는 아직도〈다다익선〉의 복원 문제에 대해 약 두 가지 관점이 대립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첫째는 원본성에 충실하기 위해 대부분의 모니터를 중고 브라운관 TV로 유지하며 LED 모니터는 소량 사용한 것에 대해 잘했다는 관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왜 〈다다익선〉의 모든 TV를 보다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LED 모니터로 전면 교체하지 않았냐는 관점이다. 여기서 두 번째 관점을 선호하고 있는 전문가들은 살아생전의 백남준 의견을 명분으로 제시하고 있다. “나의 작업은 개념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외부의 매체는 바뀌어도 상관없다”라고 작가가 말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신 기술 매체로 얼마든지 교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미디어 작품의 복원에 대한 형상의 변형 혹은 유지의 권한은 창작자에게만 있는 것일까? 향유자에게도 있는 것은 아닐까? 하나의 예술작품이 탄생했을 때 그것의 미학적, 사회적 가치 합의는 분명 향유자의 몫도 있다. 귀족 부인을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의〈모나리자(Gioconda)〉를 약 500년 동안 세계의 보물로 추앙하며 유지했던 것도 향유자들이다. 창작자인 다빈치는 그저 귀족 부인의 초상을 그렸을 뿐인데 이렇게 역사적인 보물이 되리라곤 그 자신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몇 해 전 ‘아트 바젤 홍콩(Art Basel Hongkong)’에서 백남준의〈TV 부다〉를 보았다. 아트페어 첫날에는 분명 부처상과 함께 마주하고 있는 사각의 빈티지 TV를 보았지만 바로 다음 날, 그 TV는 매우 얇은 LED 모니터로 교체되어있었다. 아마도 브라운관 TV가 고장이 났었나 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필자는〈다다익선〉의 원본성에 충실하기 위해 모니터 대부분을 중고 브라운관 TV로 유지한 것에 대해 잘했다는 관점에 한 표를 주고 싶다. 나는 향유자이자 소장가로서 LED 모니터의〈TV 부다〉보다 빈티지 TV의〈TV 부다〉를 갖고 싶기 때문이다.


필자는 앞서 이야기한 독일 ZKM의 고집적인 원본 고수의 작품 보전 정책에 대해 질문한 적이 있다. 그들은 이렇게 답변했다. “미디어 고고학적인 측면에서 각 시대에 사용되었던 기술 매체와 시스템도 작품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일부다.” 심지어 ZKM은 미디어 작품을 설치할 때, 타 미술관처럼 미디어 기기들을 박스 안에 가리거나 각종 케이블을 졸대를 사용해 깔끔하게 정리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노출한다. 그것들조차 작품의 일부라는 것이다. 나는 ZKM의 답변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수명이 있는 미디어 작품의 보존·복원 문제는 결코 소수 전문가들의 연구를 통해선 해결할 수 없다. 신기술은 상용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 지구적 범용화가 중요하기 때문에 전 세계 모든 기관과 전문가들이 같이 모여 연구·합의해야 한다. 또한 미술계만이 모여서 할 수 있는 과제도 결코 아니다. ‘미디어아트 아카이브 네트워크 포럼’이 잠시 중단됐던 이유는 디지털 기술 매체를 선도하는 것이 미술계가 아니라 디지털 산업계였기 때문이었다. 올해 미래형 미술관을 표방하고 있는 울산시립미술관에서 ‘퓨처뮤지엄 포럼’이 다시금 열린다. 전 세계 약 15개 미디어아트센터가 모여 미디어 작품의 보존, 복원 국제기술표준 과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이번에는 글로벌 디지털 기업도 동참한다. 또한 미술, 기업, 과학, 사회학 등 다학제 간 논의기구로도 발전시킬 계획이다. 역사가 짧은 전자기술 매체예술도 이미 미술사의 중요한 축이다. 우리는 역사를 지키고 보존해야 한다.


※ 이 원고는 퍼블릭아트 2022년 11월호에 수록된 것으로, 글의 일부는 『서울아트가이드』에 게재됐던 필자의 원고를 발췌하였습니다. 이 글은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퍼블릭아트와 콘텐츠 협약을 맺고 게재하는 글입니다.

서진석

서진석은 현재 울산시립미술관 관장으로 재임 중이며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을 역임했다. 1999년 한국미술계 최초의 대안공간인 루프를 설립하고 국내 젊은 작가들을 발굴·지원해왔다. 다양한 국제 활동을 통해 형성한 아시아 미술인들과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2010년에는 〈A3 아시아현대미술상〉, 2011년부터 〈아시아창작공간 네트워크〉, 2014년부터 〈무브 온 아시아〉 등을 기획해 작가들을 발굴하고, 아시아 미술의 새로운 담론을 생산하고 있다. 또한 ‘티라나 비엔날레(Tirana Biennial)’(2001), ‘리버풀 비엔날레(Liverpool Biennial of Contemporary Art)’(2010) 등 다수의 국제 비엔날레 기획에 참여했고 전 세계 여러 미술 기관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한국미술 글로벌화에 주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