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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의 영상들 – 거울과 스크린 사이를 읽기

posted 2022.12.23


미술과 영화의 장르적 구분이 여전히 유효할까? 요즘 세대의 관람자는 비디오 아티스트 또는 필름메이커라는 직업적인 구분에, 혹은 화이트 큐브와 블랙박스라는 장소적 특성에 얽매이지 않으며 미술관이든 영화관이든 흥미로운 작업물이라면 관심을 갖고 지켜본다. 미술관 내 영상관을 별도로 운영해온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은 최근 MMCA필름앤비디오 프로그램으로 《영화로, 영화를 쓰다》라는 제목의 상영전에서 차학경, 수전 손택 등의 작품을 상영한 바 있고 올해로 9회를 맞은 서울시립 북서울시립미술관의 “타이틀 매치” 전시에는 영상작가이자 영화감독인 임흥순과 오메르 파스트가 초청되었다. 한편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보더리스 스토리텔러’라는 섹션 아래 김희천, 무진형제 등의 작가 작품을 상영하고 동명의 책을 연계·발간하기도 했다.
이에 올해 더아트로에서는 “전시장의 영상들” 기획기사 시리즈를 준비하였다. 이번 기획기사에서는 지난 2019년 영상 이미지를 어떻게 볼 것인지 고찰하는 전시 《미디어펑크: 믿음 소망 사랑》을 기획했던 김미정 아르코미술관 큐레이터의 ‘거울과 스크린 사이를 읽기’ 글을 필두로 하여, 서사를 이끄는 매체로 영상 이미지를 다양하게 변용하는 작가 4인(팀) 김웅용, 류한솔, 박선호, 업체eobchae를 소개한다. 오늘날 장르와 공간을 오가며 등장하는 영상 이미지에 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미디어펑크》 전시 사진. 노재운, 〈보편영화〉(2019). 촬영: 홍철기. 사진: 아르코미술관 제공.

《미디어펑크》 전시 사진. 노재운, 〈보편영화〉(2019). 촬영: 홍철기. 사진: 아르코미술관 제공.

이번 기고를 준비하며 몇 년 전 준비했던 전시를 떠올렸다. 나는 2019년에 아르코미술관에서 《미디어펑크: 믿음·소망·사랑》(이하 《미디어펑크》, 2019.9.10~10.27)이라는 전시를 기획 및 진행한 바 있다. 기획 의도를 짧게 요약하면 당시 누구나 편집된 이미지의 주체가 되어 영상 이미지를 생산 및 확산하는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질문하는 전시였다. 각종 영상 미디어와 관련 이미지를 일상은 물론 전시장에서 만나는 일이 당연시됨에도 굳이 영상 이미지에 대한 논의를 반복하려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일상의 서사를 영상으로 스토리텔링 하는 현상과 이를 바로 흡수하는 시장의 구조가 맞닿으며 콘텐츠로서의 영상 이미지 확장이 가속화되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텍스트 정보가 영상 이미지로 대체되고 있음에도 전시장을 찾은 관객에게 영상 작품이 여전히 난해한 이유는 서사의 발화 방식에 있다고 가정하고, 비선형적 서사와 불투명한 이미지를 전시했을 때 충돌하는 지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했다.


《미디어펑크: 믿음·소망·사랑》(2019) 전시 포스터. 이미지: 아르코미술관 제공.

《미디어펑크: 믿음·소망·사랑》(2019) 전시 포스터. 이미지: 아르코미술관 제공.

《미디어펑크》 전시 연계 프로그램. “큐레이터 토크: 2019년의 미디어 전시를 말하다” 사진: 아르코미술관 제공.

《미디어펑크》 전시 연계 프로그램. “큐레이터 토크: 2019년의 미디어 전시를 말하다” 사진: 아르코미술관 제공.

결국 동시대 미술에서 지속해서 제기되는 문제인 이미지 다시 보기로 귀결되는 이 전시에는 전시가 미처 닿지 못한 지점을 보충할 연계 프로그램들이 필요했다. 그중 하나는 기획자들과의 대화였다. 당시 디지털 미디어 환경을 다룬 전시가 다른 기관에서도 꼭 한 개 이상은 계획되어 있음을 발견하고1) 이를 기획한 큐레이터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사전회의에 참여한 기획자들에게 2019년에 다수 기획된 미디어 관련 전시들, 비슷한 단어가 반복되는 이유,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영상 작품을 어떻게 볼 수 있을지 질문했다. 그러나 참여자 중 일부는 그러한 전시가 많다는 데 동의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이상하게도 그 답변이 꽤 오래 기억에 남았다. 질문과 답변이 중의적인 탓도 있겠으나 양쪽 모두 과연 ‘미디어 전시’라고 부를 수 있는 전시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과 회의를 품고 있었을 것이다. 당시 내가 정리했던 전시 목록에 출품된 작품 다수는 미디어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으나 그 자체에 대한 질문 대신 이를 매개로 변화한 사회의 단면을 비춰보고자 했다. 그래서 영상 미디어는 일종의 거울인 동시에 보는 일과 그 구조의 전환을 독촉하는 중개자처럼 보였다. 《미디어펑크》도 마찬가지였을 테다. 결국 그 답을 곱씹게 된 이유는 매체로서의 영상에 대한 고찰이 부재하며 한정된 언어로만 맴도는 영상 읽기가 만연함을 확인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후에도 나는 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고 여전히 이미지 안과 밖의 세계를 연결한 단서를 찾아 영상과 그곳에 내재된 시간을 바라본다.


이후 팬데믹을 거쳐 전과는 다른 세상을 맞이한 이후에도 영상 작품은 전시장에 굳건히 자리했다. 스크린과 관객의 일대일 대면을 넘어 이제 전시들은 과학기술 사회의 속도 및 그 결과에 관련된 미래에의 의문과 의심, 혹은 기대를 주제로 VR, AR, 메타버스, 인공지능 등의 기술들이 적용된 미디어 작품들을 소환한다. 2) 관객은 휴대폰이나 HMD(Head Mount Display) 등을 이용하여 앱, QR코드를 실행시켜 전시장이 아닌 곳에서 작품을 관람하거나 실감형 콘텐츠라는 이름의 ‘스마트한’ 풍경을 만난다. 전시장에서 만나는 각종 크기, 형태의 스크린과 관객의 심리적 거리는 가까워지는 듯 보인다. 작가들은 이제 블랙박스나 스크린을 통해 영상 이미지를 단독으로 사용하는 대신 다른 매체와 자연스레 접속시켜 세계관을 확장해나간다. 그러나 이 글에서 나는 융복합이나 디지털 환경, 데이터 시스템 등 근래 미디어를 떠올릴 때 엉겨 붙는 명사들을 뒤로하고 다시 영상 이미지와 서사 그리고 그들이 작동되는 방식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 글에서 소개하는 작품들은 영상이기에 가능한 발화의 형식을 획득하고 픽션과 논픽션을 뒤섞어 우리가 마주한 현실을 자각하게 만든다.


《미디어펑크》 전시 사진. 김웅용, 〈웨이크〉, 2019, 싱글채널 비디오 설치, 19분 10초. 촬영: 홍철기. 사진: 아르코미술관 제공.

《미디어펑크》 전시 사진. 김웅용, 〈웨이크〉, 2019, 싱글채널 비디오 설치, 19분 10초. 촬영: 홍철기. 사진: 아르코미술관 제공.

먼저 김웅용은 과거의 한순간에 다른 목소리와 장면을 덧붙여 시공간을 뒤흔든다. 《미디어펑크》에서 작가는 〈WAKE〉(2019)를 선보였는데, 이 작품은 1996년에 벌어진 세 개의 사건(통일대축전, 강릉무장공비 침투 외)을 다룬다. 그러나 이를 분석하는 대신 이미지로 파편화되는 인물들의 입장을 다룬다. 즉 시위 장면을 기록한 필름이 현상되면서 사건을 경험한 이, 기억하는 이 그리고 받아들이는 이들의 감각이 얽히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그 어떤 ‘사실’도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분절된 이미지와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목소리까지 꿈처럼 교차된다. 스크린 뒤에서는 마치 연극 무대와 같이 영상 이미지에 맞춰 조명이 움직이는데 이는 이미지로서의 서사에 극적인 효과를 제공할 뿐 아니라 빛이 없으면 존재하지 못하는 영상 이미지와 필름의 운명을 상기하게 한다. 시제와 장소가 엇갈려 조각난 단면들은 이러한 요소들과 상응과 마찰을 반복하며 영상 안과 밖의 시간 모두에 우리가 어디쯤 와 있는지를 알 수 없게 만든다.


류한솔은 B급 고어물의 틀을 차용해 유혈이 낭자한 가학적인 행위를 연출한다. 다만 그 피와 살이 젤리와 스티로폼, 마네킹, 물감류의 물질들로 이루어져 시각과 더불어 촉각을 우선적으로 자극하게 된다. 영상에 등장하는 모든 게 조잡한 가짜임을 알고 있음에도 작품에서 인물이 잘리고 베이며 터뜨림을 당할 때 폭력은 러닝타임과 함께 체감된다. 〈버진 로드〉(2021)가 전시되던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하루하루 탈출한다》(2021)에서는 작품 앞에 관람을 주의하라는 문구가 있었다. 그런데 분명 잔인한 설정은 불쾌함을 유발함에도, 사물 특유의 형질들로 인해 〈버진 로드〉는 ASMR 콘텐츠의 젤리를 삼키는 소리와 바다포도를 치아로 터뜨릴 때의 쾌감과 유사성을 획득한다. 또한 신체를 반으로 갈라 괴수화한 주인공의 ‘셀프’ 결혼은 제목인 〈버진 로드〉의 의미를 뒤엎는다. 훼손된 신체가 가져오는 공포와 시선 전복의 희열은 비등한 무게로 〈버진 로드〉를 보는 욕망 가득한 눈을 이끌어간다.


박선호는 주변에서부터 그러모은 자료들에서 서사를 출발시킨다. 작가는 관객이 다른 이의 경험에 접속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재료로 영상을 선택했다고 말한다.3) 〈진주와 헉스 테이블 가족〉(2018)에서는 이미지 판매 사이트에서 어머니가 구매한 한 이미지의 기원을 찾아 나간다. 진주 목걸이를 한 금발의 여성은 책의 표지로도, 상품 페이지의 모델로도, 그리고 수많은 이미지가 아카이빙된 사이트의 타임라인에 흐르다 어느덧 작가의 어머니에게 닿는다. 이름 모를 그녀와 그녀의 신체는 빠르게 이동‘당하고’ 수정 및 소비된다. 이와 함께 〈여성과 가전〉(2021)은 가전 기기와 관련된 광고나 신문 등이 송출하는 규정성(規定性)의 문구들이 여성에게 가하는 암묵적인 제재와 책임론, 역할론 등이 병렬된다. 그래서 가전 앞에서 미소 짓는 여성의 모습과 “인간의 꿈과 기술이 만나는 21세기”라며 벅찬 어투로 읊조리는 옛 미디어 속 내레이션은 어느 한 시점의 아카이브 기록이 아닌, 공회전하는 현재 진행형 메아리로 들린다.


2021년 두산연강예술상을 수상한 업체eobchae는 웹 기반의 창작, 사운드, 퍼포먼스 등 다양한 범주를 넘나들며 활동한다. 업체코인, 딕톡, 루지, 다오(DAO) 등의 낯익은 단어가 등장하는 업체의 세계에는 미래를 향한 속도와 그 기대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깔려 있다.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하여 업체코인의 상승을 기대하는 이들을 그린 〈루지를 타고 도망치는 사람들〉(2022)에서는 오늘날 상승과 하강의 곡선과 숫자로만 통용되는 암호화폐의 그림자를 떠올리게 한다. 《eoracle》(두산갤러리, 2022.9.21~10.19)에서는 다수결의 원칙을 충실히 따르는 듯 보이지만 결국 예/아니오의 두 가지 답으로만 종결되고 그 발언권조차 ‘업체코인’ 보유량에 따라 달라지는 세계를 그린다. 자신의 의지대로 가능했다고 판단했던 플랫폼도 결국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는 시스템 속 시스템이었음을 확인하게 하는 업체의 세계관은 금융화에 포섭된 가속의 시대를 견유적 태도로 응시한다.


신체의 일부가 된 사각의 스크린은 아무렇지 않게 전쟁과 재난의 이미지를 눈앞에 실시간으로 대령한다. 더 짧고 자극적인 이미지를 편집할 수 있게 SNS 플랫폼들은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한다. 예술작품은 이러한 현실을 거울처럼 충분히 반영하거나 모사하고, 혹은 그 시스템에 흡수되어 버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미지로 추동하는 서사와 영상이라는 매체가 밀접하게 맞닿아 범람하는 이미지로 길 잃은 눈을 환기할 때, 영상 예술의 역할을 확인하게 된다. 모든 것을 콘텐츠로 보이고 싶어 하는 오늘날, 전시장의 영상들은 무엇이 되고 싶은 것일까. 거울과 스크린에서 분리될 수 없는 우리의 눈은 다시금 그들을 읽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각주]

1) 당시 내가 참고했던 주요 전시는 다음과 같다. 《당신의 하루를 환영합니다》(수원시립미술관, 2019.4.2~6.30), 《불온한 데이터》(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19.3.23~7.28), 《줌 백 카메라》(박수지 기획, SeMA벙커, 2019.9.6~9.25), 《보안이 강화되었습니다》(코리아나미술관, 2019.4.25~7.6) 외
2) 이와 관련하여 참고할 만한 국내 주요 전시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Follow, Flow, Feed 내가 사는 피드》(아르코미술관, 2020.7.09~8.23), 《더블 비전 Diplopia》(아르코미술관, 2020.9.24~11.29), 2021 텔레피크닉 프로젝트 《당신의 휴일》(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021.9.14~11.14), 《호텔, 디스토피아》(문현정 기획, SeMA벙커, 2022.7.20~8.7), 대전과학예술비엔날레 《미래도시》(2022.8.2~2022.10.30) 외
3)김가현, 김얼터, 손의현, 전현지 기획, 『날 것(The Raw)』(전시도록, 인천아트플랫폼, 2022.5.3~5.29), 118쪽.


김미정

회화와 예술학을 전공했다. 《미쓰–플레이》(공동기획, 인사미술공간, 2014), 《오늘, 아무도 없었다》(아트 스페이스 풀, 2018), 아르코미술관에서 《미디어펑크: 믿음·소망·사랑》(2019), 《홍이현숙 개인전: 휭, 추-푸》(2021), 《투 유: 당신의 방향》(2022), 인사미술공간에서 《월간 인미공》(2021~2022) 시리즈 등을 기획했다. 2017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아카데미 큐레이터 연구생으로 선정, 2018~2019년 김우진, 전보경 작가와 함께 '지속가능성'을 논하는 콜렉티브 Z-A로 활동하며 2018 창동레지던시 하반기 프로젝트팀으로 입주했다. 현재 아르코미술관 큐레이터로 재직 중이며 사회구조 및 제도 내에서 쉬이 통용되는 언어들이 미끄러지고 부딪히는 장면을 담는 작품과 전시에 관심을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