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시장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지난 9월, 예술경영지원센터는 아시아 지역 미술을 전문으로 다루는 아트아시아퍼시픽(Art Asia Pacific)과 함께 회화, 설치, 조각, 영상 등 다양한 장르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업을 담아 한국 현대미술 작가를 조망하는 도서 『Extreme Beauty: 12 Korean Artists Today』를 출간하였다.
『Extreme Beauty』는 국내외 미술계 전문가들의 비평을 통해 각 작가의 작품세계를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연령에 따른 차이와 장르적 구별을 뛰어넘은 이러한 구성은 동시대 한국 미술이 지닌 다양성과 역동성을 고스란히 반영한 결과다.
이에 더아트로는 『Extreme Beauty』를 접하기에 앞서 책에 소개된 작가들의 작업 세계에 입문할 수 있는 연속기사 “비하인드 더 뷰티”를 준비했다. 작가 자신이 가장 의미 있게 생각하는 본인의 작품을 소개하고 그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 인터뷰를 통해 해당 작품의 의미와 작가의 작품세계를 더욱 생생하게 느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 남부의 섬 ‘바시비에르(Vassivière)’의 한 외딴 조각 공원은 밤마다 초록의 형광으로 빛난다. 낮에 받은 빛을 흡수해 밤에 방출하는 인광 안료를 칠한 스케이트 파크, 〈OTRO〉(2012) 때문이다. 이 인광 스케이트 파크는 구정아 작가의 설치 작품으로, 바시비에르 도시 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되었다. 바시비에르는 대부분의 지역이 그린벨트로 묶여있어 밤이 되면 깜깜하고 인적이 드물었다. 그는 인광 스케이트 파크를 설치해 깜깜하고 조용한 바시비에르의 밤을 밝혔고, 스케이트 파크에는 스케이트보드를 든 아이들과 밤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렇듯 그는 낙후된 유휴 공간을 작품을 통해 지역 주민들이 서로 연결되는 공간으로 되살렸다. 이후 그의 스케이트 파크는 2015년 영국 리버풀 비엔날레, 2016년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 2019년 밀라노 트리엔날레를 비롯하여 세계 곳곳에서 제작되며 구정아의 트레이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스케이트 파크 연작을 비롯하여 구정아는 그의 작업을 통해 지속적으로 ‘공간’에 대한 관심을 보여왔다. 〈닥터 포크트(Dr.Vogt)〉(2010)에서는 전시장 한 층의 바닥을 형광 분홍색으로 칠하고 조명 빛의 산란을 이용해 전시장을 형광 분홍빛으로 채우는 연출을 시도함으로써 작품이 걸린 벽뿐만 아니라 전시장 공간 전체를 작품 안으로 끌어들였다. 인광 안료로 별을 그린 연작, 〈Seven Stars〉(2020)는 환한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별을 볼 수 없지만 전시장의 불을 끄면 빛나는 별을 볼 수 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빛과 어둠의 공간, 상반된 두 공간이 한 전시장 안에 공존한다는 점을 드러낸다. 이처럼 구정아는 작품을 통해 우리 주변을 둘러싼 익숙한 공간을 신체적, 감각적으로 경험하게 만듦으로써 공간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공간으로 재창조한다.
작업을 시작할 때 어떠한 준비 과정을 거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현장답사를 자주 나가는 편이에요. 답사 후에는 조사를 시작하는데, 지금 널리 논의되는 주제와 그 방향은 무엇인지 염두에 두고 조사를 진행합니다.
오랜 기간 작가 활동을 이어오면서 지금까지의 작업 중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거나 작가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저는 〈EF〉 연작, 〈Glow in the Dark Skate Park〉 연작, 〈Your Tree My Answer〉, 〈Seven Stars〉 등의 작품에 애착이 갑니다. 저는 이 작품들을 여전히 갈고 닦고 있습니다. 예술 작품을 만든다는 건 많은 인내가 필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해당 작업이 작가님에게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도 궁금합니다.
이 작품들은 제가 외부의 공동체와 만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었어요. 제 내면의 중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에게 능숙하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할 수 있게 해준 작품들입니다.
‘스케이트 파크’ 연작 등 야외 공간에서 다수의 사람에게 선보이는 작품의 경우 그것이 놓이는 장소 또한 작업과정에 주요한 고려 대상일 것 같습니다. 장소에 따라 작품의 매체, 성격 등에 어떠한 차별점을 두고 접근하시나요?
스케이트 파크 연작은 설치 작품이기 때문에 대부분 장소가 정해진 이후에 작품을 만들게 됩니다. 늘 주어지는 장소가 다르다 보니 작품을 만들 때마다 설치 장소를 고민하며 작업하게 되는데요. 그렇기에 스케이트 파크 연작은 공공의 장소에서 제 작품이 어떻게 사용되고 예술 작품으로서는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이해하고 배우게 되는 작업입니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작업을 진행하시는 만큼 매체 역시 작가님 작업에 중요한 부분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주제에 어울리는 매체를 선정하는 작가님만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저는 여러 매체를 사용해서 작품을 만들어왔어요. 작품을 만들 때는 다양한 계획을 떠올리며 생각해두었던 주제와 맞춰봅니다. 어떤 매체와 방법이 이 작품의 주제와 어울릴지 생각해보는 과정이죠.
작업과정에서 생긴 특별한 에피소드나 작품에 얽힌 비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계속하는 한 작업은 제 삶을 변화시켜요. 때로는 다른 사람들의 삶까지도요. 이 점이 작품 활동의 특별한 점이 아닐까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작품 활동을 한다는 것이 작가님 삶에는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듣고 싶습니다.
작품 활동은 제 삶을 추동하고, 형성하는 힘이 되어 줍니다. 동시에 복잡한 것들을 덜어내고 단순한 삶을 살 수 있게 만들어주는 활동이기도 합니다.
구정아는 작품을 통해 ‘공간’을 만들어내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그는 여러 장소에 거주하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 설치, 조각, 회화, 무빙 이미지, 건축 프로젝트 등 다매체를 아우르며 작업한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다원적인 작업 방식을 반영하듯, 그의 작품은 기존의 장소성을 탈피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낸다. 쿤스트할레 뒤셀도르프, 디아재단 및 디아비콘 미술관, 파리 퐁피두센터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베니스 비엔날레, 리버풀 비엔날레, 광주 비엔날레와 뉴욕 유대인박물관, 솔로몬 R. 구겐하임미술관,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등에서 단체전에 참여했다. 2002년 휴고보스상 최종 후보, 2005년 에르메스 미술상 수상자, 2016년 주영한국문화원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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