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시장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지난 9월, 예술경영지원센터는 아시아 지역 미술을 전문으로 다루는 아트아시아퍼시픽(Art Asia Pacific)과 함께 회화, 설치, 조각, 영상 등 다양한 장르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업을 담아 한국 현대미술 작가를 조망하는 도서 『Extreme Beauty: 12 Korean Artists Today』를 출간하였다.
『Extreme Beauty』는 국내외 미술계 전문가들의 비평을 통해 각 작가의 작품세계를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연령에 따른 차이와 장르적 구별을 뛰어넘은 이러한 구성은 동시대 한국 미술이 지닌 다양성과 역동성을 고스란히 반영한 결과다.
이에 더아트로는 『Extreme Beauty』를 접하기에 앞서 책에 소개된 작가들의 작업 세계에 입문할 수 있는 연속기사 “비하인드 더 뷰티”를 준비했다. 작가 자신이 가장 의미 있게 생각하는 본인의 작품을 소개하고 그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 인터뷰를 통해 해당 작품의 의미와 작가의 작품세계를 더욱 생생하게 느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신미경의 작품들은 마치 각국의 박물관 일부를 그대로 옮겨온 듯하다. 그는 서양의 고전 조각상을 비롯해 아시아의 도자기, 불상 등 각 문화를 상징하는 유물을 재현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유물들은 다른 장소에 놓임으로써 원본과는 미묘하게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는 이를 통해 공간의 차이로 인해 벌어지는 문화 간 번역의 불완전성에 관해 이야기한다. 독특한 점은 이 레플리카들이 모두 비누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그는 대리석과 같은 견고한 재료로 만들어져 유구한 시간을 견뎌온 유물을 무른 비누로 똑같이 만들어 유물의 시간성과 권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그가 비누 조각을 한 지도 20년이 훌쩍 지났다. 세간에 ‘비누 조각가’로 알려지기까지 그 20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그리고 앞으로는 조각가로서 어떤 시간을 바라보고 있을까. 이번 인터뷰에서는 그 시간을 돌아보고 또 내다본다.
작업을 시작할 때 어떠한 준비 과정을 거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작품 활동을 시작한 지 거의 30년이 되어가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계속해서 작업을 하다 보니 준비 과정과 작업을 구분하기 어려워졌어요. 제게는 작업 이외의 일상이 곧 준비과정이에요. 작업을 하지 않을 때는 책을 읽고, 여행을 가는 등 일상에서 지식이나 영감을 얻고 또 받아들이려고 노력하죠. 내가 앞으로 어떤 작품을 만들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하고요. 작업하는 시간 이외에 보내는 시간이 작업을 위한 자양분이 되는 셈입니다. 하지만 이런 시간은 말 그대로 자양분이라 거기서 곧바로 작업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에요. 흙 속에 씨앗을 심어둔 것처럼 이전에 했던 고민과 경험에서 자라난 것들이 어느 날 제 앞에 불쑥 나타나는 식이죠. 저는 그때 작업을 시작합니다.
제 작품을 예시로 들어 설명해볼까요. 〈폐허풍경(Ruinscape)〉(2018)이라는 작품을 만들기 이전에 영국에서 하드리아누스 방벽(Hadrian’s Wall)1)을 보러 간 적이 있어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라거나 영감을 얻기 위해 떠난 여행이 아닌, 정말 우연한 기회에 하드리아누스 방벽을 보러 가게 되었죠. 한 기자분과 함께 벽을 따라서 영국을 가로지르는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벽을 따라 걸으면서 보니 벽이 거의 허물어져 있는 거예요. 그 성벽은 한때 굉장히 견고했겠지만 긴 세월을 지나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그 흔적뿐인 거죠. 그런데 이 흔적이라는 것은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이라기보다 그럼에도 존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허물어진 성벽을 볼 때 본래 존재했던 것을 떠올리듯이요. 그 여행 이후에 저는 다시 작업을 하는 저의 일상으로 돌아왔죠. 저는 본래 비누로 만든 벽돌을 사용해 집을 짓는 작업을 구상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여러 현실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던 중에 성벽을 걸었던 경험이 불쑥 떠올랐습니다. ‘짓는’ 것 대신에 ‘허물어진’ 것을 보여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존재하는 것과 사라지는 것의 경계를 흔적으로 말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그렇게 유적의 흔적들을 담아낸 〈폐허풍경(Ruinscape)〉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오랜 기간 작가 활동을 이어오면서 지금까지의 작업 중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거나 작가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저에게 가장 특별한 작품이라고 하면 제 첫 비누 조각 작품인 〈번역-아프로디테〉(1998/2009 복원)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영국에서 학교 다닐 때, 캠퍼스에 있던 아프로디테 조각상을 6개월 동안 비누로 본뜬 작업이에요. 조각상 바로 옆에서 6개월 동안 작업을 하다 보니 고되었지만 앞으로의 작품 활동에 있어 등대 역할을 해주었던 작품이라 의미가 크죠.
해당 작업이 작가님에게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도 궁금합니다.
이 작품이 저의 첫 비누 조각 작품이지만 저로서는 큰 걸음을 내딛으려는 시도이기도 했어요. 이 작품을 통해 여러 이야기를 하고 싶었죠. 제가 영국이라는 낯선 땅에 와서 충격받은 것 중 하나가 여기 사람들은 그들의 고전 조각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한국에서는 미술 입시를 준비하면서 여러 서양 고전 조각을 똑같이 그려내는 연습을 했거든요. 당시 저에게는 서양의 고전 조각들이 미술의 기준이자 현대적인 것이었는데, 영국에 오니 이들에게 그 조각들은 그저 구시대적인 것에 불과하더군요. 제가 영국에서 학교 다닐 당시에는 한창 개념미술이 주목받을 시기이기도 했고요. 구체적인 형상을 만들어내는 조각을 공부했던 제게 많은 고민을 안겨준 날들이었죠. 학교에 다니면서 한동안 내가 지금껏 연습해 온 조각은 무엇이었는지, 정말 조각이 구태의연한 것일 뿐일지를 고민했어요. 이 모든 고민을 담은 작품이 〈번역-아프로디테〉였어요. 이 작품을 통해서 시간과 장소의 양극단에 위치한 것들, 고전과 현대, 서양과 동양을 한 장면으로 보여주며 아이러니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외부 작업을 택한 것이기도 했어요. 저는 〈번역-아프로디테〉가 퍼포먼스를 포함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캠퍼스의 아프로디테 조각상 옆에 자리를 펴고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아프로디테를 똑같이 만들어내는 행위와 장면이 갖는 의미 또한 이 작품의 일부예요. 이 6개월은 사람들이 늘 지나치는 장식물에 가까웠던 아프로디테 조각상, 구태의연한 고전 조각상을 새로이 현대로 이끌어내는 과정이었어요. 견고한 대리석 조각상을 무른 비누로 똑같이 만들어내는 아이러니 속에서 이런 시간성을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또, 서양의 고전 조각상을 동양 여자애가 똑같이 만들어내는 장면은 서양 사람들이 보기에 신기한 장면이었죠. 그들이 늘 지나치던 조각상이 저에게는 입시 미술을 하면서 여러 차례 그려왔던 조각상의 전형이라는 걸 그들은 모르니까요. 이 또한 참 아이러니하죠.
작업과정에서 생긴 특별한 에피소드나 작품에 얽힌 비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비누에 새기다: 좌대 프로젝트(Written In Soap:A Plinth Project)〉(2012)를 할 때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이 작업은 좌대만 남아있던 조각에 기마상을 올린 작품이에요. 런던의 캐빈디시 광장(Cavendish Square)을 걷다가 거기에 빈 좌대가 있다는 걸 우연히 발견했어요. 좌대에 쓰인 것을 보니 본래 컴버랜드(Cumberland) 공작 기마상이었다고 하더군요. 우선은 런던 한복판에 빈 좌대가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물리적으로 봤을 때 좌대 위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제가 봤을 때는 시간의 덩어리가 느껴졌거든요.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시간의 덩어리를 비누로 만들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자료 조사를 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죠. 자료 조사부터 작품 완성까지 총 4년이 걸렸으니까요. 기마상에 대한 자료가 그 정도로 없을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번역-아프로디테〉 작업이 원본을 앞에 두고 그대로 본뜬 작업이라면 이 작업은 원본이 없는 상태에서 더듬더듬 만들어낸 경우예요. 자료를 찾다가 두 점의 드로잉을 발견했어요. 하나는 캐빈디시 광장의 전경을 스케치한 풍경화였고 기마상은 풍경의 한 요소로 포함되어 있었어요. 다른 하나는 기마상을 풍자해서 형태를 우스꽝스럽게 바꿔 그린 그림이었어요. 그리고 이후에 전쟁박물관 소장품 중 50cm 크기의 작은 모형 조각을 찾게 되었어요. 이 세 가지 자료를 비교하니까 서로 형태가 일치하더라고요. 그래서 본래의 형태를 유추하면서 조각상을 만들게 되었죠.
그런데 이 작품을 공개하고 나니 논란이 일었어요. 기마상의 주인공인 컴버랜드 공작이 스코틀랜드를 정벌했던 악명높은 사람인데, 이 조각상이 등장했다는 사실이 스코틀랜드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역사적 아픔에 트리거가 된 거예요. 저는 당시 영국에서 지냈지만 한국에서 자란 사람이다 보니 그들의 역사적인 맥락에 대해 잘 알지 못했죠. 이후 몇 년이 흘러 사람들이 이 조각상을 거의 잊어버릴 때쯤 이 기마상이 다시 언급되기 시작했어요. 스코틀랜드가 독립하기 위해 투표를 했는데 그때 함께 거론되더군요. 그만큼 스코틀랜드 사람들에게 그 기마상이 상징하는 바가 컸던 거예요. 그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어요. 유물은 오랜 세월이 흐르며 다른 의미를 체득하는 동시에 유물에는 당시의 역사와 그에 얽힌 사람들의 기억과 감정까지도 새겨진다는 사실을요. 노예제를 찬성했던 사람들의 조각상이나 옛 전쟁 영웅들의 조각상이 내려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죠. 단지 작품으로서의 의미만 갖지 않는다는 점에서 조각의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SNS가 익숙한 요즘 세대에게 '밈'을 만들고 퍼뜨리는 것은 일종의 놀이입니다. '밈'은 인터넷에서 복제와 재생산을 거치며 전파되는 이미지나 텍스트, 영상 등을 칭하는데요. 이처럼 요즘 세대에게는 복제와 편집, 재생산의 과정이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전부터 재생산의 맥락과 맞닿아 있는 작업을 해오신 작가님께서는 최근의 경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밈’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 굉장히 흥미로워요. 그런 일련의 현상들이 ‘밈’이라는 단어로 정립되었다는 이야기잖아요. 제가 20년 넘게 지속해 온 작업을 ‘밈’으로도 설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밈’은 하나의 이미지나 텍스트를 가지고 그것을 복제하고 변형한다는 것이 큰 특징인 것 같은데요, 그 과정에서 본래의 맥락이 재맥락화되는 것이죠. 재맥락화되는 과정에서 이해와 오해의 상황이 생기는데 저는 그것이 이해와 오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을 던지는 작업을 해왔어요. 무언가를 이해, 오해라고 규정할 수 있으려면 본래의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잖아요. 그런데 원본이 가지는 본래의 의미, 유일한 가치라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이렇게도 해석되고 저렇게도 해석되는 ‘밈’의 원본이 가진 본래 의미가 둘 중 무엇인지 생각했을 때, 둘 다 아닐 수도 있고 어쩌면 처음부터 어떤 의미를 갖고 있지 않은 것일 수도 있는 거예요.
제 작품 중 〈번역 시리즈(Translation Series)〉(2006~2013)는 동아시아의 도자기를 다루고 있는데, 보시면 우리가 떠올리는 도자기의 전형이에요. 상징적인 중국풍 이미지들이 들어간 도자기를 비누로 만들었어요. 하지만 정작 중국 사람들은 〈번역 시리즈〉의 도자 이미지를 자신들의 전통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가 생각하는 중국 도자기의 전형은 옛날에 중국 도자기가 유럽에서 유행할 당시에 유럽 사람들의 취향에 맞춘 도자기를 대량으로 수출하면서 만들어졌어요. 이렇듯 하나의 장면이나 이미지, 텍스트는 각각 다른 시간과 공간에 놓일 때 모두 다른 의미를 갖는 거예요. 저는 〈번역 시리즈〉뿐만 아니라 제 작업을 진행하면서 항상 다른 시간대와 다양한 장소들 사이에서 필터 역할을 해왔는데 이런 측면이 ‘밈’의 특성과 연결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흥미롭습니다.
마지막으로, 작품 활동을 한다는 것이 작가님 삶에는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듣고 싶습니다.
엉뚱한 비유일 수 있는데 옛날 전래동화에 보면 ‘팔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해서 팔 하나 주고, ‘다리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해서 다리 하나 주고 결국은 몸만 남아서 데굴데굴 굴러서 산에서 내려갔다는 이야기가 있죠. 저는 작업하면서 이 이야기를 종종 떠올려요. 저에게 작업이란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 데굴데굴 굴러가는 것 같은 느낌이거든요. (웃음)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작업을 해오면서 여러 갈림길에서 다른 선택지가 왜 없었겠어요. 하지만 저는 작업을 제일 잘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일이 가장 필요했던 것 같아요.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더 좋은 작업을 한다는 것 외에 원하는 것은 없어요. 가장 큰 걱정도 작업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고요. 그만큼 작업은 저에게 중요해요.
짧지 않은 작업 활동을 계속해 오면서 느낀 것은 작품에는 제 생각과 움직임이 남는다는 거예요. 작업을 통해 제 인생을 남기고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작업을 지속하는 데 큰 힘이 돼요.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저는 작업을 마라톤처럼 이어 나가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작업을 중심에 두고 더 좋은 작업에 대해 생각하면서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요. 애쓰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그럴 만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면, 그거면 더 바랄 게 없다고 생각해요.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어요. 2015년에는 세라믹을 공부하기 위해서 석사 과정을 시작했고 2017년에 졸업했어요. 세라믹이라는 소재에 특별히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 새로운 소재를 시도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무작정 뛰어들었죠. 저는 비누를 소재로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품을 만들어왔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비누라는 소재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가’, ‘비누 조각을 했던 작가가 없었기 때문에 내가 이 분야를 선점하면서 익숙함에 젖어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자성적인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제 작품 생활을 마라톤이라고 생각했을 때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는다면 저에게 좋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접해보지 않았던 소재들을 점차 다루면서 비누 이외에도 제가 다룰 수 있는 재료를 다변화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중견 작가로서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이 두렵기도 하지만 앞으로의 제 작업을 위해 저를 내던져보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각주]
1) 잉글랜드 북부의 동해안에서 서해안까지 약 120㎞에 걸쳐 있다. 로마 하드리아누스 황제(재위 117∼138)가 픽트족을 몰아내고 국경을 확실히 하기 위하여 쌓았다. 방위와 주거시설을 겸하였으며 383년 로마 군대가 철수하자, 17세기 초까지 스코틀랜드의 침입에 대비한 방벽으로 사용하였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하드리아누스 방벽 [Hadrian's Wall]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신미경은 서울대 미술대학 조소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런던대 슬레이드 미술대학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대학원 시절의 비누 조각 퍼포먼스가 주목을 받으며 졸업 후 1998년 영국 헤이워드 갤러리(Hayward Gallery)에서 열린 전시 《예술과 패션 100년(Addressing the Century: 100 Years of Art & Fashion)》에 초대받아 대영박물관의 그리스 조각을 비누로 만들었다. 이후 2004년 대영박물관 로비에서 비누 조각 퍼포먼스를 진행했고 런던에서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국내에서는 아르코미술관, 코오롱 스페이스K,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대학교 미술관, 성곡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으며, 국외에서는 중국 상하이의 학고재갤러리, 영국에서는 헌치 오브 베니슨 갤러리(Haunch of Venison, London), 벨톤하우스(Belton House), 브리스톨 시립박물관(Bristol Museum)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주최 '올해의 작가상' 4인에 선정되었으며, 2015년 싱가포르 푸르덴셜아이어워즈(Prudential Eye Awards) '베스트 신진 조각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런던과 서울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www.meekyoungsh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