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호주의 미술계는 지난 25년 동안 교류해 왔다. 한-호 예술 교류에 중심적 역할을 해 온 기관인 '아시아링크(Asialink)'는 지금까지 30건이 넘는 교류 전시를 개최했다. 호주 현대미술의 대표적 작가들이 한국의 국립미술관과 광주비엔날레, 아트선재센터, 쌈지스페이스 등을 통해 소개되었으며, 호주에서는 호주현대미술관, A4컨템포러리아트센터, 아시아퍼시픽트리엔날레(APT)에서 한국미술이 전시됐다. 아시아와 호주의 문화교류를 위해 설립된 '아시아링크'의 디렉터인 사라 본드는 한-호 미술교류를 되돌아보며, 이상적인 국제 교류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전체 조건'들을 고찰한다. 이 원고는 출판을 통한 또 다른 '한-호 미술교류'의 결과물, 호주 시각예술잡지 아트링크(Artlink)와 더아트로가 공동으로 발행하는 '한국미술 특별호'(Vol35:4, 2015 Dec)에 실린 기사이다.
무언가를 주고 받는 행위는 매우 흔하고, 우리는 그것을 ‘교류’라 부른다. 교류는 무수히 많은 방식을 통해 이뤄진다. 우리는 화폐, 아이디어, 말, 장소, 그리고 가치를 갖는 모든 것을 교환한다. 그러나 컨템포러리 아트씬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은 무엇을 교환하는가? 공평한 조건에서의 ‘기브 앤 테이크’가 가능하기는 한가? 위 질문에 ‘최근 20여 년 동안’이라는 조건이 추가로 붙는다면, 대답은 명백히 “그렇다”이다. 호주 작가들은 계속해서 모험하고 도전하며, 세계 미술계의 새로운 관객과 시장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새로운 환경에 적극 개입하고 실효성을 갖는 교류를 해내기 위해서는 기존에 갖고 있었던 태도를 바꾸는 것이 필수적이다. 다수의 호주 작가, 큐레이터, 기관에서는 지난 25년 동안 한국과 아이디어, 예술, 전시를 교류해 왔다. 아시아링크(Asialink)는 호주의 전시들을 국제무대에 소개하는 데 선구적 역할을 했으며, 1990년대 초부터 작가 레지던시를 운영하는 등 아시아와 호주 간의 상호 이해를 증진시키고 호주 미술을 알리는 데 앞장서 왔다. 이 플랫폼을 통해 동시대 호주미술을 한국 동료들에게 알릴 수 있었으며, 역으로도 마찬가지로 한국미술을 호주에 소개하는 계기가 됐다. 양 국의 작가, 큐레이터는 30여 개 이상의 기획/협력/공동 기획의 전시를 개최했으며, 비엔날레를 비롯한 셀 수 없이 많은 전문적인 경험을 공유할 수 있었다.
호주에서는 1990년대 아시아에 관한 궁금증이 증폭되었고, 예술 분야도 예외가 아니었다. 키팅(Paul Keating)정부는 아시아링크 아츠 프로그램을 비롯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번창하고 있는 여러 단체를 초창기부터 적극 지원했다. 4A컨템포러리아시아아트센터(4A Centre for Contemporary Asia Art), 아시아퍼시픽트리엔날레(Asia Pacific Triennial) 그리고 다양한 아티스트-런 스페이스와 레지던시 공간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1990년대 말부터 대안공간이 주목 받기 시작했다. 사기업이 만든 쌈지아트스페이스, 아트선재센터, 대안공간루프를 통해 일군의 ‘신세대’ 한국 작가들이 급부상했다. 뒤이어 주요 국가 기관에서도 레지던시 센터를 설립하면서 서울 도심에 버려진 빌딩에 활기를 불어넣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국가의 경계와 상관없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으며, 전세계 미술계가 비슷한 고민을 함께 공유하고 있음을 인식하게 했다.
이 글은 호주-한국이 함께한 프로젝트를 나열하기 위해서 쓴 것이 아니다. 대신 진취적으로 새로운 길을 모색했던 몇몇 주요 인물과 대학, 국립 미술관, 사립 미술관 주도로 진행된 몇몇 프로젝트에 관한 고찰에 가깝다. 이 같은 교류가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다른 문화권의 새로운 맥락에서도 충분히 이해되기 위해서는 협력과 충분한 조사가 필수적이며, 개인적, 전문적인 관계 속에서 세심하게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큐레이터 김홍희, 큐레이터 김선정, 비디오아트의 선구자인 백남준과 작가 이우환은 호주 미술계의 주역인 아시아링크 설립자 앨리슨 캐롤(Alison Carroll), 그 외 작가, 큐레이터, 갤러리, 대학과 함께 추후에도 지속가능한 협력을 위한 견고한 프레임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93년, 아시아링크는 “호주의 금: 호주 컨템포러리 금속공예”전을 서울에서 순회전의 형태로 소개했다. 피터 팀스(Peter Timms)와 레이 스테빈스(Ray Stebbins)가 기획했으며, 이후 10년 동안 다양한 매체를 탐구하는 13개의 호주 전시가 잇따라 개최됐다. 1997년에 이뤄진 주목할만한 교류의 성과는 “한국호주 현대미술 교류전: 센스(Sense)”(1997. 11. 11~12. 7)다. 기획자 스튜어트 쿱(Stuart Koop)과 강재영은 문자 그대로 각 나라의 작가가 동시에 타국에서 전시를 개최하는 방식의 ‘교류’를 진행했다. 서울 환기미술관에서는 “피오나 폴리(Fiona Foley) & 조프 로우(Geoff Lowe)”전이, 멜버른 CCP에서는 “신경희 & 박기원”전이 개최됐다. 또한 1998년에는 큐레이터 제이슨 스미스(Jason Smith)가 이끄는 빅토리아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of Victoria)과 큐레이터 김선정이 운영하는 아트선재센터의 상호 교류를 후원했다. 이 전시는 호주 작가를 소개하는 첫 번째 주요 전시였고, 하워드 아클리(Howard Arkley), 트레이시 모펫(Tracey Moffat), 샐리 스마트(Sally Smart), 앤 자할카 (Anne Zahalka), 캐시 테민(Kathy Temin) 등이 참여했다. 같은 해에 뒤이어 빅토리아국립미술관에서는 김선정이 기획한 “속도의 느림-동시대 한국 미술(The Slowness of Speed – contemporary Korean art)” 전이 개최됐고, 1999년 AGNSW(Art Gallery of New South Wales) 에서도 소개됐다.
아시아링크 아츠에서 첫 번째로 한국에서 사람은 이본 보그(Yvonne Boag)이다. 그는 워커힐아트센터에서 협력기획자로 참여한 “친밀감: 한국과 호주의 11명의 작가들(Affinities: 11 artists from Korea and Australia)”전을 선보였다. 2001년에는 마이클 스넬링(Michael Snelling)이 기획한 브리즈번현대미술관(IMA)의 “트레이시 모펫: 극도의 흥분(Tracey Moffat: Fever Pitch)”전이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려 이목을 집중시켰다. 2011년에는 “또 다른 현실(Selectively Revealed”전 (2011. 10. 27~12. 11)이 열렸다. 이 전시는 당시 호주 미디어전문 전시 기획단체 엑스페리멘타(Experimenta Media Arts) 디렉터 클레어 니드험(Clare Needham), 사라 본드, 아시아링크와 고양문화재단 수석 큐레이터 김언정이 공동 기획했다. 전시는 소셜미디어의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의 불분명성을 주제로 다뤘으며, 한국과 호주작가 7인이 참여했다. 뿐만 아니라 2012년에는 크레이그 월시 & 히로미 탱고(Craig Walsh & Hiromi Tango) 의 홈 레지던시 프로젝트가 광주비엔날레 큐레이터 알리아 스와스티카(Alia Swastika)의 섹션에서 소개된 바 있다.
아시아링크 아츠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이 전시들을 성공적으로 끝마친 몇몇에 의해 입 소문이 났으며 작가와 큐레이터들이 계속해서 참여하고 있다. 1995 년 참여한 이본 보그는 한국과의 관계를 20년 이상 지속해 왔다. 그는 여러 전시를 기획했으며, 국제교류 프로젝트에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아시아링크 아츠와 파트너십 관계를 유지했던 쌈지스페이스의 설립자 김홍희는 2000 년대에 이르러 호주 작가와 큐레이터가 서울을 탐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또한 한국과 연결 끈을 놓치 않고 있었던 큐레이터 사라 투톤(Sarah Tutton)과 알렉시 글라스-칸토(Alexie Glass-Kantor)를 비롯해 작가 이안 해이그 (Ian Haig), 라리사 효스(Larissa Hjorth), 리차드 깁렛(Richard Giblett), 애쉬 키팅(Ash Keating) 등을 초청하기도 했다. 서울에 점차 정부의 지원을 받은 레지던시 공간이 늘어나면서 시드니의 아트스페이스는 국립현대미술관의 고양창작스튜디오, 창동창작스튜디오와 상호교환 파트너십을 지난 5년 동안 지속적으로 유지했다. 또한 오용석, 로커스트 존스(Locust Jones), 가이 벤필드(Guy Benfield), 서혜영, 케빈 플랫(Kevin Platt)은 현재 아이디어를 상호 교환하고 있다.
호주현대미술관(The Museum of Contemporary Art in Sydney)은 4년마다 진행할 예정인 두 번째로 큰 규모의 교류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뉴 로맨스: 예술과 포스트휴먼(New Romance: Art and the Posthuman)” 전은 호주현대미술관 큐레이터 안나 데이비스(Anna Davis)와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 최홍철이 공동으로 기획해 서울과 시드니에서 선보인다. 2011년, 2012년에 열린 “텔미 텔미: 한국-호주 현대미술 1976~2011(Tell Me Tell Me: Australian and Korean Art 1976-2011)”은 동일한 두 기관이 협력해서 만든 전시다.
“뉴 로맨스"는 한국과 호주의 큐레이터가 수차례 리서치 한 결과물이다. 한국과 호주의 14명의 동시대 작가를 선별해 신작과 구작을 모두 전시했다. 호주 작가로는 레베카 바우만(Rebecca Baumann), 이안 번즈(Ian Burns), 헤이든 파울러(Hayden Fowler), 패트리샤 피치니니(Patricia Piccinini), 저스틴 숄더(Justin Shoulder), 스텔락(Stelarc), 웨이드 마리노스키 (Wade Marynowsky), 한국 작가로는 정승, 진시영, 강애란, 이상현, 이소요, 이기봉, 양원빈이 참여했다. 출품된 작품은 포스트휴먼이 맞닥뜨리게 될 개념을 탐구한다. 인간과 비인간, 생물과 기계, 식물과 동물, 자연과 문화 기존의 이분법적 구분방식을 재고찰하는 데 중점을 둔다. 서울에서는 2014. 9. 22~2015. 1. 15까지 전시가 열리며, 호주현대미술관에서는 2016. 6. 30~9. 4까지 개최된다.
언급한 것보다 더 잘 구조화된 교류라 함은 더 많은 작가, 큐레이터, 학자, 기관 등을 다양한 종류의 만남을 갖고, 전시, 컨퍼런스, 아트페어에 초청하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교류를 통해서 명백히 분리된 정체성으로서의 ‘한국성’과 ‘호주성’을 탐색해야 할까, 혹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서로에 대해 호기심이 많은 협력자로 남는 것이 좋을까?
아시아링크 아츠의 디렉터이자 큐레이터이며, 순회전시 조직기구인 NETS 빅토리아의 회장이다. 아시아링크 아츠는 멜버른대학에서 운영하는 아시아링크의 한 분과이다. http://asialink.unimelb.edu.au/ar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