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 행사

타이베이비엔날레

posted 2016.11.09

제10회 타이베이비엔날레(2016. 9. 10~2017. 2. 5)가 열리고 있다. “현재의 제스처와 아카이브, 미래의 계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는 80여 명(팀)의 아티스트가 참여했다. 타이베이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본 전시와 함께 타이베이비엔날레의 20년 역사를 되짚어보는 아카이브 전시가 함께 마련돼, 아카이브를 통해 현재를 점검하고 미래를 가늠해보자는 의지도 엿보인다. 예술감독으로 초대된 코린 디즈랑스(Corinne Diserens)는 ‘수행성(performing)’을 기획의 키워드로 설정하고 현재의 수행적 제스처를 통해 미래에 대한 전망을 시도했다.




미래의 계보를 여는 오늘의 제스처

비엔날레라는 형식 자체에 대한 피로감을 토로하는 경우가 점점 더 많아지는 듯하다. 비엔날레를 보러 갈 엄두도 잘 나지 않을뿐더러 보고 나서도 남는 것은 단편적인 인상과 피곤한 육체뿐이라는 얘기다. 여전히 세계 도처에서 100여 개의 국제적인 현대미술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 대략 일주일에 하나씩 지구 어디선가에는 비엔날레를 선보이고 있는 셈이다. 사실 얼마나 많은 비엔날레가 지구에서 열리고 있는지는 그 자체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매번의 전시가 그 필연성과 정당성을 내세우는 데 성공한다면 그 개수야 얼마든지 늘어도 상관없기 때문이다. 비엔날레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까지는 비엔날레에 대한 기대감이 어느 정도 유지됐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엔 냉전의 종식과 모더니즘의 몰락, 제3세계의 약진과 탈식민주의의 전개 등 일련의 역사적 변곡점을 지나면서 동시대미술에서도 무언가 새로운 담론이 도래하리라는 기대감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 시기 동안 한국을 비롯한 제3세계 국가들 사이에서 유독 많은 비엔날레가 유치됐다는 사실도 그런 기대감의 방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다 할 참신한 담론은 생산되지 못했고 다수의 비엔날레는 2년을 주기로 반복되는 공회전의 양상을 띠게 됐다. 그리고 이 지리멸렬한 제자리걸음이 2010년대에 극심해진 비엔날레에 대한 피로감의 원인이 아닌가 싶다.


올해 한국에서 개최된 3개의 주요 비엔날레는 아예 구체적인 담론을 내놓기를 포기한 모습이었다. 광주비엔날레는 “제8기후대”라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상상의 세계를 내세우며 “예술은 무엇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전시된 작업들을 보면 실로 예술은 많은 것들을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미디어시티서울에서는 양질의 작업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으나 그것들이 내는 목소리는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라는 외계어로 수렴되고 말았다. 부산비엔날레는 “혼혈하는 지구, 다중지성의 공론장”을 표방했는데 사실상 순혈과 단독의 현대미술이란 존재할 수 없기에 결국 모든 종류의 예술적 가능성을 허용하는 관대한 외연을 지니게 되었다. 이렇듯 비엔날레가 어떤 구체적인 테제를 내놓기를 포기할 때 대체로 남겨지는 것은 단지 스펙터클과 과잉정보뿐이다. 이와 관련해 한 마디 덧붙이면 최근 미술계에서 흔히 사용되는 ‘아카이브’라는 말에 대해서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아카이브 형태의 전시는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전통적인 형식의 전시에 비해 훨씬 더 개방적이어서 관객의 기억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강점을 갖겠지만, 그것이 어떤 안이한 태도에서 기인한 경우에는 아무런 구성도 없는 한 무더기의 도큐먼트에 불과하다. 그저 과잉정보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잉이 내뿜는 역설적인 스펙터클이 관객을 압도한다. 어떤 지배적이고 일방적인 내러티브를 지우는 것은 이질적이고 다층적인 내러티브들의 숨통을 트이게 하려는 것이지 내러티브 자체의 부재를 과시하기 위함이 아니다.


왼쪽) 제임스 티 홍(James T. HONG), ‘중국 여성으로 환생한 니체가 삶을 공유하다 환생하다’, 2016, 퍼포먼스 영상. 오른쪽) 예웨이리 & 예시치앙(YEH Wei-Li & YEH Shih-Chiang), ‘망치, YSC 쉐이난동 레지던스’, 2016, 혼합재료. 왼쪽) 제임스 티 홍(James T. HONG), ‘중국 여성으로 환생한 니체가 삶을 공유하다 환생하다’, 2016, 퍼포먼스 영상.
오른쪽) 예웨이리 & 예시치앙(YEH Wei-Li & YEH Shih-Chiang), ‘망치, YSC 쉐이난동 레지던스

아카이브와 전시, 비엔날레의 이중적 기능


1996년 시작된 타이베이비엔날레는 올해 10회째를 맞았다. 10회라는 의미있는 해를 기념하기 위해서 이번 비엔날레는 평소와는 다른 구성을 시도했다. 보통은 비엔날레가 열리는 타이베이시립미술관의 전관을 비엔날레의 공간으로 활용했었던 데 반해, 올해는 미술관의 1층과 2층을 이번 비엔날레의 전시공간으로 할애하고 3층은 지금까지 열렸던 아홉 차례의 비엔날레를 아카이브하는 전시 “낭송/문건(Declaration/Documentation): 타이베이비엔날레 1996~2014”를 선보였다. 따라서 올해의 타이베이비엔날레는 초청 큐레이터 코린 디즈랑스(Corinne Diserens)가 기획한 전시를 일컫는 것이지만, 그와 동시에 올해 버전의 전시를 포함해 20년간 총 10회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앞으로의 향방을 가늠해보는 기회이기도 한 것이다. 올해 행사의 이런 이중적 기능을 염두에 둔 듯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도 “현재의 제스처와 아카이브, 미래의 계보(Gestures and archives of the present, genealogies of the future)”다. 아카이브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포괄적으로 사유해 보는 자리로서의 비엔날레를 표방한 것이다.


이처럼 이번 타이베이비엔날레는 한국의 세 비엔날레와 달리, 어떤 구체적인 테제를 던지려 시도한다. 역사를 현재와 대질시키면서 기억을 계승하고 (재)해석하면서 미래의 계보를 상상해내는 예술적 실천에 주목한 것이다. 물론 이런 주제가 전적으로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것이 벤야민의 역사철학, 니체와 푸코의 계보학 등의 문제의식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철학자들의 이론이 여전히 우리의 시대정신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면, 마찬가지로 이번 비엔날레의 테제도 동시대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관건은 이 주제를 어떻게 독자적인 방식으로 풀어냈느냐에 있다. 코린 디즈랑스는 이번 비엔날레의 수행성을 강조한다. “아카이브를 수행하기, 건축을 수행하기, 회고전을 수행하기(performing the archives, performing the architecture, performing the retrospective)”를 기획의 방법론으로 설정한 것이다. 역사와 기억은 고정된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관점에 의해 발굴되고 구성되는 유동성을 띤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수행적 제스처가 매우 중요해지며, 미래의 전망은 기억의 발굴과 동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사건이 된다.


왼쪽) 차웨이휴(Chia-Wei HSU), ‘영혼의 글쓰기(Spirit-Writing)’, 2016, 2채널 비디오, 9분 45초. 오른쪽) 함경아, ‘Needling Whisper, Needle Country/SMS Series in Camouflage/ Imagine C02-001-01’, 2014~5, 비단, 면에 자수, 200×198cm. 왼쪽) 차웨이휴(Chia-Wei HSU), ‘영혼의 글쓰기(Spirit-Writing)’, 2016, 2채널 비디오, 9분 45초.
오른쪽) 함경아, ‘Needling Whisper, Needle Country/SMS Series in Camouflage/ Imagine C02-001-01’, 2014~5, 비단, 면에 자수, 200×198cm.

수행성의 강조는 이번 비엔날레의 요소들을 구성하는 데에도 주요한 원리가 된다. 올해는 전시 외에도 상영회 퍼포먼스 심포지엄 강연 출판이 모두 동등한 자격으로 비엔날레를 구성한다. 타이베이시립미술관 1층에 독립적으로 위치한 ‘소극장(Little Cinema)’에서는 일주일 단위로 마련된 상영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전시장 안팎에서 비엔날레 기간 동안 9개의 퍼포먼스가 열린다. 세 차례로 나눠서 열리는 심포지엄에서는 미술가뿐만 아니라 철학자 역사학자 인류학자 문필가 안무가 영화감독 음악가 등이 모여 대중과 함께 다양한 형태의 토론을 이어가며, 9월부터 12월까지 매달 열리는 강연은 미술사학자 공조우지운(Gong Jow-Jiun)의 기획 하에 여러 토론자들을 불러 타이완의 사진사에 기록된 종교적인 민속 축제의 이미지들을 탐구한다. 12월 10~11일 동안 열리는 출판 관련 행사에서는 아시아의 미술 독립 출판에 관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이처럼 올해 비엔날레는 미리 완성된 결과물을 관객에게 선보이는 형식이 아니라 행사 기간 내내 수행적 성격을 유지하는 형식을 취한다.


또한 전시 속의 또 다른 전시로서 기획된 프랑스 안무가 자비에 르 루아(Xavier Le Roy)“회고전(Retrospective)”이 12월 9일부터 4주 동안 열린다. 15명의 타이완 퍼포머들과의 협업으로 진행되는 이 작업은 현재를 같은 시공간에 공존하는 여러 시간들의 결합으로 경험하게 만드는 상황들을 연출하면서 “회고전을 수행하기”가 무엇인지 예증한다. 르 루아가 1994년부터 2014년까지 창작한 솔로 작업들에 기반을 두되, 퍼포머 개개인의 전기적 요소들을 포함시킴으로써 회고전이 과거의 단순한 재생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예기치 않은 만남을 주재하는 행위임을 보여준다.


아카이브를 수행, 즉 어떤 제스처로 이해하는 것은, 단지 다수의 도큐먼트들을 한곳에 모아두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들의 다양한 조합을 통해 생성되는 이질적인 내러티브들의 가능성을 긍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 내러티브들을 가시화하여 개인적, 집단적 기억의 다양성을 복원하려는 노력까지 아우르는 것이다. 이렇듯 아카이브를 언제나 내러티브의 문제와 함께 결부시켜 사유하고 실천할 때, 과거는 박제화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고 현재는 고립의 덫에서 해방되며 미래는 새로운 출구의 지위를 얻을 수 있다.


임흥순, ‘북한산/북한강’, 2015/2016, 2채널 비디오, 26분 33초, 타이베이비엔날레 설치 전경. 임흥순, ‘북한산/북한강’, 2015/2016, 2채널 비디오, 26분 33초, 타이베이비엔날레 설치 전경.

역사와 기억을 통해 현재를 바라보다


타이베이비엔날레는 1996년에 열린 첫 회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매회 해외 큐레이터를 초청하여 전시의 국제적 면모를 부각시켜 왔다. 후미오 난조(Fumio Nanjo), 제롬 상스(Jerome Sans), 댄 카메론(Dan Cameron), 안젤름 프랑케(Anselm Franke), 니콜라 부리요(Nicolas Bourriaud) 등이 초청 큐레이터를 역임한 바 있다. 올해 비엔날레에 초청된 코린 디즈랑스는 프랑스의 큐레이터로서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등의 여러 미술관에서 큐레이터를 역임했고 현재는 브뤼셀의 예술학교 erg의 디렉터로 재직 중이다. 그가 선별한 이번 비엔날레의 참여 작가 80여 명을 살펴보면 그중 30명 이상의 작가가 타이완 출신이다. 해외 큐레이터가 비엔날레 개최국의 작가들을 대거 선별한 것이 다소 이례적이다. 또한 2014년에 열린 9회 비엔날레에는 양혜규가 유일한 한국인 작가로 참여했던 것에 반해, 올해는 함경아, 임흥순, 박찬경, 임민욱, 정은영, 변월룡 등 총 6명이 참여작가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도 눈에 띈다. 여기에 베트남, 캄보디아 등의 작가까지 가세해 아시아작가들이 참여작가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그 외엔 서구권, 중동, 남미 등의 작가가 골고루 포진되어 있다. 큐레이터가 타이완 작가들에게 많은 자리를 제공하고 그 외에는 지역의 안배를 고려해서 참여작가를 선별한 흔적이 보인다.


왼쪽) 왕모린(WANG Mo-Lin) & 블랙리스트 스튜디오(Blacklist Studio) & 아우소예(AU Sow-Yee), ‘햄릿 머신의 해석학’, 2015, 퍼포먼스, 70분. 오른쪽) 다린 압바스(Dareen ABBAS), ‘모래시계’, 2016, 나무, 모래, 레진캐스팅, 가변크기, 타이베이비엔날레 설치 전경. 왼쪽) 왕모린(WANG Mo-Lin) & 블랙리스트 스튜디오(Blacklist Studio) & 아우소예(AU Sow-Yee), ‘햄릿 머신의 해석학’, 2015, 퍼포먼스, 70분. 오른쪽) 다린 압바스(Dareen ABBAS), ‘모래시계’, 2016, 나무, 모래, 레진캐스팅, 가변크기, 타이베이비엔날레 설치 전경.

전시에는 주제에 걸맞게 역사와 기억을 직간접적으로 참조하면서 현재와 대조하고 공명시키는 작업들이 빈번히 눈에 띈다. 그런데 어떤 역사와 기억이 각각의 작업 속에 반영되어 있는가? 먼저 언급할 만한 특징으로는 지난 세기의 주요작가들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자양분을 얻은 작업들이 전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마농 드 보어(Manon de Boer)는 존 케이지의 ‘4분 33초’를 재해석한 영상 작업을 선보였고, 사단 아피프(Saadane Afif)는 마르셀 뒤샹의 그 유명한 레디메이드 작업 ‘샘’(1917)의 100주년을 1년 앞두고 세계 곳곳의 출판물에 묘사된 ‘샘’의 이미지들을 수집하는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있다. 피에르 르기용(Pierre Leguillon)이 선보이는 퍼포먼스는 우리에게 흔히 검은색 모노크롬의 화가로 알려져 있는 애드 라인하르트(Ad Reinhardt)가 왕성한 수집가이기도 했다는 숨겨진 면모를 소개하면서 아카이브적 충동의 계보를 재창안해보려는 강연의 형식을 띠고 있다. 이외에도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이본 라이너(Yvonne Rainer) 등을 참조한 동시대작가들의 작업을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이런 일련의 작업들이 참조하고 발굴하는 역사와 기억의 대상은 미술사적이고 미학적인 것들이다.


그런데 이런 성격의 작업들이 현재의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과거의 유산들이 대부분 서구권 미술사에 속한 것이라는 사실은 아쉬움을 남긴다. 물론 오윤의 ‘원귀도’와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를 참조하면서 제작한 박찬경의 3채널 영상작업 ‘시민의 숲’, 지난 세기 타이완의 아방가르드 예술가 황화첸(Huang Hua-Chen)이 쓴 실험극 ‘예언자’를 다시금 현재로 소환해 낸 수유시엔(Su Yu Hsien)의 작업 등이 있지만 비율상으로 소수일 뿐이다. 그렇다면 비서구권 세계의 과거에서 끌어올린 기억은 어떠한 성격의 것인가? 그것은 대부분 지난 세기의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갈등의 기억들이거나 까마득한 과거의 신화나 민담 같은 것들이다. 첸치에젠(Chen Chieh-jen)의 작업은 과거 한센병 환자를 수용하던 공간을 주제로 식민주의적 근대성의 문제를 상기시키며, 티파니 청(Tiffany Chung)은 도시계획과 이주 등 산업화로 인해 빚어진 갈등을 지도의 형태로 시각화한다. 함경아와 임흥순의 작업은 지난 세기의 이데올로기적 갈등이 오늘날 한국에서 여전히 상존함을 드러내며, 타이완 작가 셰이크(Shake)도 정치 경제 문화 이데올로기가 착종된 지정학적 역사의 문제를 다룬다. 전시에 참여한 남아공 출신 작가 산투 모포켕(Santu Mofokeng)조 락틀리프(Jo Ractliffe)는 모두 인종차별의 역사와 기억을 사진의 형식으로 담아낸다. 그런가 하면 베트남 작가 트루옹 콩 퉁(Truong Cong Tung)이나 타이완 작가 슈치아웨이(Hsu Chia-Wei)는 민속신앙이나 민담에서 현재의 정치적 상황을 이해할 단서를 발견해낸다.


왼쪽) 셰이크, ‘The Subduction Zone-Our Suite de Danes’, 2016, HD 컬러 비디오, 사운드, 7분 31초. 오른쪽) 박찬경 ‘시민의 숲’, 2016, 비디오(b&w), 지향성 사운드, 27분. 왼쪽) 셰이크, ‘The Subduction Zone-Our Suite de Danes’, 2016, HD 컬러 비디오, 사운드, 7분 31초.
오른쪽) 박찬경 ‘시민의 숲’, 2016, 비디오(b&w), 지향성 사운드, 27분.

미래의 계보를 만드는 유사성이란?


미학적 유산과 정치적 유산 사이의 경중을 가릴 수는 없다. 동시대작가들에게 이 둘은 모두 중요한 참조와 발굴과 해석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많은 경우 서로 촘촘하게 뒤얽혀 있다. 문제는 이번 비엔날레가 미학과 정치 사이의 구별을 한 지역과 다른 지역 사이의 구별과 겹쳐 놓는 것처럼 보일 때 생긴다. 마치 한편에 서구권의 미학적 전통이 있고, 다른 한편에 비서구권의 정치적 전통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비서구권 국가 중 다수가 이데올로기 갈등과 식민화의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그것 못지않게 발굴해내야 할 미학적 유산을 품고 있으며, 또한 서구권 국가가 지난 세기에 찬란한 미학적 성취를 이뤄낸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그에 못지않게 많은 정치적 격변을 겪은 것도 사실이다. 서로 유사하지 않은 미학과 정치가 뒤섞여 있는 동시대의 현실을 작위적으로 갈라놓아 외관상 유사하다고 보이는 것들끼리 재편할 때, 결코 미래의 계보는 세워질 수 없다. 유사한 과거와 유사한 현재가 만나면 그로부터 연역되는 건 유사한 미래뿐이다. 이것은 엄밀히 말하자면 미래가 아니라 그저 현재의 지루한 연장일 뿐이다. 미래는 연역되는 것이 아니라 발명되는 것이다. 유사하지 않은 시간과 공간이 서로 마주쳐 전혀 뜻밖의 유사성이 만들어질 때 새로운 시간의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한다. 우리는 그 가능성을 미래라고 부른다.

김홍기 / 미술평론가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번역가.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동대학원 철학과 석사 졸업. 파리3대학 미학과 박사과정. 기획 전시로 "손혜민&존 리어든: 사소한 조정"(인천아트플랫폼, 2011). 역서 《반딧불의 잔존》(위베르만 지음, 길,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