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는 오랜 비엔날레 역사를 지닌 동남아시아 국가다. 매 홀수 년 3개의 도시(자카르타, 족자카르타, 수라바야)에서 비엔날레가 동시에 펼쳐지고 있다. 비엔날레 현장은 인도네시아 미술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장이다. 1974년 설립된 자카르타비엔날레(2015. 11. 15~2016. 1. 17)는 지난해 최초로 해외 큐레이터 찰스 에셔를 영입하여 국제적 소통에 나섰다. 1988년 설립된 비엔날레족자(2015.1 11. 1.~12. 10)는 '갈등을 해킹하기'라는 주제 아래 자생적 아트씬의 활력을 보여주었다. 프로젝트 비아(Project VIA) 리서치 프로그램을 통해 현장을 찾은 필자가 두 비엔날레의 접점과 차이점을 비교 분석한다.
2015년 11월 인도네시아의 3개의 도시, 자카르타(Jakarta), 족자카르타(Yogyakarta), 수라바야(Surabaya)에서 비엔날레가 열렸다. 이번 행사를 통해 비엔날레가 대형 단체전 이상의 어떠한 새로운 시각이나 질문도 제시할 수 없는 그저 하나의 일반명사가 되어버렸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국제 미술계에서 인도네시아가 차지하고 있는 미미한 위상을 그 원인으로 설명하기에 앞서 오늘날 국내에서 우후죽순 개최되는 자치단체들의 ‘비엔날레’ 행사도 별반 다름없어 보인다. 돌이켜보면 국제 비엔날레 행사가 국제미술계에서 활동하는 저명한 큐레이터와 인기 있는 혹은 중요한 작가, 학자들을 초청하여 자국 내 미술과 협업을 통해 스스로의 위상을 세우고 홍보하기 위한 도구가 되었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잘 알려진 국제 비엔날레들이 예외 없이 그러한 과정을 통해 입지를 다져 왔고, 그 과정에서 많은 비용과 시간, 노력이 소요됐다. 동시에 초대된 해외 인사들의 입지를 굳히는데 또한 기여했고, 이들은 다시 해외 곳곳에 난립하는 비엔날레들로 초대된다.
물론 인도네시아의 현대미술계를 지구 한편의 지역적 경향으로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인도네시아는 이미 동남아시아 현대미술의 가장 중요한 현장이며 시장 측면에서도 최대 구매력을 보여주는 동남아시아미술의 실질적인 중심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 활동의 인프라 측면에서 제3세계 국가의 면모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오늘날의 인도네시아 미술이 여러 가지 얼굴과 모순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2015년에 열린 자카르타비엔날레와 비엔날레족자를 비교해 보는 것은 인도네시아 미술계의 현재 실정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사례다.
자카르타, 족자카르타, 수라바야는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큰 도시들로, 인도네시아 현대미술의 실질적인 중심지이다. 다수의 예술가와 전시공간들이 주로 족자카르타에 모여 활동하고 있는 반면, 미술시장은 자카르타와 수라바야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인도네시아 미술계의 큰 특징이기도 하다. 즉 시장과 현장이 각기 다른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한편 자카르타비엔날레와 비엔날레족자의 묘한 경쟁 구도를 보면 매년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의 신경전이 떠오른다. 비엔날레족자보다 며칠 늦게 오픈한 자카르타비엔날레 오프닝에 참석하여 미술 관계자들이 두 비엔날레를 저울질하며 이야깃거리를 찾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고, 또한 비엔날레 관계자들도 해당 비엔날레에 대한 평가에 촉각을 세우고 있음을 감지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수도라는 지리적 이점으로 기관과 기업의 지원이 다른 지역보다 비교적 나았던 자카르타비엔날레와 공적 자원이 턱없이 부족하여 민간과 예술가들의 지원이 절실했던 비엔날레족자의 실력 대결을 보는 것은 여간 흥미롭지 않았다.
1974년에 설립되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자카르타비엔날레는 2015년 처음으로 해외에서 큐레이터를 영입했으며 그 인물은 이미 국제 미술계에 잘 알려진 ‘수퍼’ 큐레이터 찰스 에셔(Charles Esche)다. 비엔날레 조직 위원장인 아데 데르마완(Ade Dermawan)은 자카르타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비영리 미술인 단체 루앙루파(Ruang Rupa)의 주요 멤버이자 예술가다. 공적 지원이 부족한 척박한 환경 속에서 루앙루파가 다져온 커뮤니티 활동과 사회 활동의 저력은 놀랄만하다. 해외 미술계와도 네트워크를 잘 이뤄 온 루앙루파가 이제 인도네시아 미술계에서 주류로서의 기득권을 행사하고 있는 상황이 우선 인상적이고, 게다가 찰스 에셔라는 더 커다란 주류 미술계 인사를 영입하여 자카르타비엔날레, 나아가 인도네시아 미술계의 국제적인 위상을 다지기 위한 첫 시도가 매우 야심차다.
루앙루파의 성장이 흥미로운 이유는 이처럼 척박한 환경에서 활동하는 비영리단체들이 서구의 기득권 미술계의 주목을 받기에 용이하다는 점이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운영하는 미술관이나 단체들, 갤러리의 수준이 국제적인 기준에 못 미치고 있으며, 오히려 미술시장이 미술계를 좌지우지하는 현실과 달리 비영리단체의 활동은 폭넓은 스펙트럼과 유동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서구 미술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사회, 정치적 문제점들을 제안한다는 장점이 있다. 그것이 아마도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이 비주류 문화에서 찾고자 하는 타인에 대한 관심, 그리고 그것을 통한 스스로의 우월성을 다짐하는 공식이 되어버린 듯하다. 따라서 이번 찰스 에셔라는 유럽의 주류 큐레이터의 눈에 들어온 인도네시아, 특히 환경문제로 악명이 높은 자카르타라는 대도시의 수자원 문제, 역사의식, 그리고 젠더문제는 어쩌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주제들이었을지 모른다. 전시 제목 “앞으로도 아니고, 뒤로도 아니고(Maju Kana, Mundur Kena)”는 궁극적으로 미래나 과거가 아닌 지금 현재를 바라보자는 제안이다. 자카르타의 현재, 지금 이 시점에서 인도네시아가 당면한 사회 문제들을 현지의 젊은 기획자, 예술가들과 함께 살펴보고, 이끌어내고, 이야기하는 일종의 ‘교육의 장으로서의 비엔날레’가 2015년 자카르타비엔날레가 제시하는 가장 중요한 화두였다.
찰스 에셔는 인도네시아 각지에서 선출된 문학과 시각 예술 분야의 다양한 배경을 가진 6명의 젊은 큐레이터들과의 장기적 협업을 통해 매년 홍수로 고통받는 자카르타의 상하수 문제, 식민지와 독재시대에 대한 역사 인식, 여성과 성적소수자 문제 등 오늘날 인도네시아가 안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비엔날레를 통해 예술가들의 다양한 시각과 목소리를 소개했다. 과연 이 방대한 사회 문제를 얼마나 현실적으로,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은 차치하고, 유럽인 큐레이터의 방법론에 근거하여 구성된 이번 전시가 인도네시아를 잘 모르는 이방인들에게 충분히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제시할 수 있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네덜란드 작가 렌조 마틴즈(Renzo Martens)의 90분짜리 다큐멘터리 ‘Episode III’는 (자카르타비엔날레 또한 피해갈 수 없었던) 현실 재현의 문제점을 역설적으로 드러낸 좋은 예다. 국제 언론을 통해 비춰지는 콩고의 빈곤문제를 따라가는 이 작품은 빈민문제가 서구사회를 위하여 어떻게 설정, 구현되고 재해석되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이방인의 시각으로 재구성되는 다른 세계의 현실은 더 이상 현실이 아닐 수 있음을, 단시간 지역 문제에 뛰어들어 비엔날레라는 형식으로 재구성되는 지역의 사회문제는 진실이 아닐 수 있음을 역설하는데, 결과적으로 우리는 재현과 해석의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자카르타와 족자카르타 두 곳에 모두 초대된 인도네시아 작가 티타 살리나(Tita Salina) 영상 퍼포먼스와 설치작품 ‘1,001번째 섬-인도네시아 열도에서 가장 지속가능한 섬’은 자카르타의 주택문제와 홍수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정부가 제시한 인공섬과 관련된 것이다. 자카르타만의 32km의 장벽을 세워 바닷물의 유입을 막고, 그 장벽 위에 200만 인구가 거주할 수 있는 거대 인공도시를 세우려는 공상과학만화 같은 이 계획은 현실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바다 오염과 어부들의 생계를 위협하게 될 것이다. 작가는 어부들과 함께 바다에서 모은 쓰레기 더미로 섬을 만들었다.
전시의 구성 면에서 ‘구당 사리나(Gudang Sarinah)’라는 오래된 창고 건물에서 열린 자카르타비엔날레는 혼란한 대도시를 거니는 경험을 구현하기 위해 작품 배치와 동선을 어지럽게 설계했다. 찰스 에셔는 여러 개의 캄퐁(인도네시아 바하사어로 시골 동네)이 모여 있는 동남아시아의 여느 곳처럼 전시장 내에 여러 개의 구역을 만들고 각 캄퐁에서 다양한 행사들이 열리는 형태로 전시를 구성했다. 우리는 어떠한 대도시의 혼란 속에도 각자의 질서가 존재하며, 인간의 삶은 여전히 지속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매년 벌어지는 홍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같은 삶을 반복하고, 정치적인 풍파 속에도 역사는 만들어진다.
이처럼 비엔날레가 혼란을 대변하는 대도시의 구석구석을 은유하듯 꾸며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고요하게 놓인 세련됨을 발견하게 된다. 발을 들여 놓는 순간 그 복잡함에 현기증이 날 것도 같지만 절대 길을 잃지 않도록 만들어진 나름의 질서가 있다. 의도적인 혼란을 가장하더라도 잘 정제된 세련됨이 피해갈 수 없는 유럽인 큐레이터의 내공이자 손길임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자카르타비엔날레는 유사한 형태로 만들어진 비엔날레족자와 크게 차별화된다.
두 비엔날레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전시를 이루는 시각의 주체를 규정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자카르타비엔날레가 유럽인의 시각과 방법론을 빌어 국제적인 수준에 다다르고자 했다면, 비엔날레족자는 인도네시아의 시각에서 스스로와 타자의 세상을 바라보고자 했다. 비엔날레족자는 1988년 설립되어,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한 족자카르타 미술계의 활성화에 기여해 왔으며 2010년 재정비 후 10년간 ‘적도 연작(Equator Series)’을 진행하고 있다. 즉 위도 상 적도에 놓여 있는 여러 국가들과 협업을 통해 전시를 만드는 프로젝트로, 2011년에는 인도, 2013년에는 아랍에미리트, 그리고 2015년에는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 작가들과 협업했다.
‘갈등을 해킹하기(Hacking Conflict)’ 라는 주제 아래 열린 비엔날레족자는 시각예술가이자 음악가, 디자이너, 기획자로 활동하는 인도네시아의 웍더록(Wok the Rok)과 나이지리아 출신의 작가 쥬드 아노귀(Jude Anogwih)가 공동기획했다. 적도상에 위치하는 여러 나라 가운데 두 곳이라는 것 이외에, 두 나라의 중요한 공통점이나 차이점을 찾고자 한 시도는 그 개연성이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그리고 그 어려움은 실제 전시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두 국가는 1998년 군사독재에서 벗어났다는, 역사적이라기보다 오히려 숫자의 우연성에 더 가까운 공통점을 갖고 있다. 물론 기나긴 식민지 역사, 강대국에 의한 자원 수탈, 또한 개발도상국으로서 대도시화와 정치적인 혼란의 여정 역시 유사하게 겪고 있다. 이는 나이지리아와 인도네시아에 국한된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두 나라의 오늘날의 모습이 전시의 주요 소재로 제시됐고, 결국 커다란 오케스트라의 화음보다 솔로 연주자들의 활약이 더욱 돋보였다.
음악 용어가 떠오르는 이유는 비엔날레족자 전시에 소개된 많은 작품들이 음악이나 퍼포먼스와 같이 시간 예술을 근간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시장은 작품을 전시하는 상시 공간이기보다 하나의 큰 무대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었다. 이르완 아흐멧(Irwan Ahmett)과 티타 살리나의 작품 ‘1755년의 반환: 기얀티 조약을 해킹하기’는 여러 개의 강연과 퍼포먼스로 이루어진 작업이다. 18세기 네덜란드 회사에 자치권을 빼앗긴 기얀티 조약을 현재로 불러온 이 작업에는 5세 가량의 시각장애인 소년이 기얀티 조약의 내용을 노래로 암송하는 퍼포먼스가 있다. 고유의 문자가 없었던 18세기 족자카르타에서는 조약 내용을 암송해야 했고, 기억력이 출중한 어린 소년이 그 조약 내용을 오늘날 재현하고 있으며 그 모습은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고 슬펐다. 이 외에도 엄청난 소음의 퍼레이드를 거리에서 시연하고, 눈을 가린 관람객들이 청각으로 전시를 경험하게 하는 등 비엔날레족자는 매일 실시간으로 열리는 전시장이자 공연장 같았다.
매개자로서의 기획자와 창작자로서의 기획자가 보여주는 전시는 이처럼 확연하게 달랐다. 일반적인 잣대로 전시를 비교, 평가하기에는 두 비엔날레의 시각과 태도, 시작과 진행이 너무 달랐고 그런 점에서 인도네시아 미술의 무시할 수 없는 저력을 보게 됐다. 다만 그 어떤 사연에도 불구하고 비엔날레, 즉 전시라는 활동은 결국 시각적인 결과물이기에 자카르타비엔날레의 숨겨진 세련됨에 더 많은 점수를 줘야 할 것이며, 또한 당면한 사회문제를 효과적으로 발언하고 그 답안을 찾아가고자하는 시도 면에서도 높은 수준의 전시를 보여줬다. 한편 비엔날레족자는 재정적인 한계, 인프라나 인력지원 등 수많은 내부 문제와 같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전시를 일구고자 했던 어마어마한 노력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술창작의 중심지로서 족자카르타가 보여준 현재진행형의 예술 활동은 외부 기획자가 결코 할 수 없는 현장감과 에너지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화할 수 없는 일반성을 만들기 위해 적도를 중심으로 운영하는 비엔날레족자는 콘텐츠 면에서 자카르타에 뒤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앞으로 남은 두 번의 적도 연작에서는 좀 더 심도 있는 연구와 그에 따른 완성도 있는 전시가 태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 이 글은 아트인컬처와 시각예술 글로벌 기획인력 육성사업 프로젝트 비아(PROJECT ViA)가 함께 기획·게재하는 글입니다.
독립큐레이터. 고려대 영상문화학과 박사 수료. 갤러리현대, 아트라운지디방, 솜씨 디렉터 역임. 모스크바비엔날레(2009), 류블랴나그래픽 비엔날레 특별전(2009), 부산비엔날레(2006) 큐레이터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