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코리아 갤러리 위켄드가 10월 14일부터 16일까지 3일간 한남동 블루스퀘어 복합문화공간 네모(NEMO)에서 개최됐다. 한국 현대미술의 해외시장 진출 및 국제 미술계와의 네트워크 확장을 위해 올해 처음으로 런칭한 이 행사는 국내 갤러리 및 작가의 쇼케이스와 아티스트 토크, 해외 초청 인사를 중심으로 한 국제 패널토크 등으로 구성됐다. 국제적 전문 인사들이 한데 모여 오늘날의 아트마켓을 진단하는 동시에, 이들을 포함한 미술인들이 한국 미술 현장에서 다각도로 교류하게 하는 새로운 형식이 시도됐다. 행사에 참여한 필자의 생생한 참관기와 함께 한국 아트마켓의 전망에 대해 살펴본다.
지난 10월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가 반가운 뉴스를 전했다. 올해 KIAF의 총 거래액이 약 235억 원을 기록하며 지난해 거래액(약 180억 원) 대비 무려 31%가 상승한 것이다. 행사를 주관한 한국화랑협회는 이 상승세의 비결로 전체 관람객 중에서 작품을 구매한 실제 컬렉터의 비중이 늘어난 점을 꼽으며, “전문 컬렉터와 미술 애호가들에게 홍보를 강화한 점이 주효했다”고 자평했다. 실제로 올해 KIAF에는 해외 유명 컬렉터, 아트페어 관계자, 갤러리스트, 아트 어드바이저, 저널리스트 등 아트마켓 전문가들이 대거 방한하여 화제를 모았다.
사실, 이들 중 다수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한 ‘코리아갤러리위켄드’의 ‘VIP 초대 손님’들이다. 코리아갤러리위켄드는 한국 현대미술의 해외시장 진출 및 국제 미술계와의 네트워크 확장을 후원하고자 올해 처음으로 런칭한 행사. 특별히 KIAF 기간과 맞추어 개최한 이번 행사에 아트마켓의 전방위를 아우르는 다양한 국제적 인물을 초대하고, 이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KIAF를 함께 방문했던 것이다.
코리아갤러리위켄드는 10월 14일부터 16일까지 3일간 한남동 블루스퀘어 복합문화공간 네모(NEMO)에서 개최됐다. 행사는 국내 갤러리 및 작가의 쇼케이스와 아티스트 토크, 해외 인사를 중심으로 한 국제 패널토크 등 총 3가지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국제 패널토크에 발표자로 직접 나선 인사뿐 아니라 해외 아트마켓의 주요 플레이어들을 행사의 관객으로 대거 참여시킨 점이다. 총 30여 명에 이르는 초청 인사는 중국계 인도네시아 컬렉터 부디 텍(Budi Tek), 홍콩 건축가 겸 컬렉터 윌리엄 림(William Lim), 타이완 컬렉터 루디 쳉(Rudi Tseng), 프리즈(Frieze) 미국 및 아시아 디렉터 애비 뱅서(Abby Bangser), 전 아트바젤홍콩 공동 디렉터 아넷 쉔홀저(Annette Schonholzer), 홍콩 파라사이트(ParaSite) 큐레이터 코스민 코스티나(Cosmin Costinas), 런던 리슨(Lisson)갤러리 콘텐츠부장 오시안 워드(Ossian Ward), 웹진 아트뉴스(ARTnews) 편집장 사라 더글라스(Sarah Douglas) 등으로 그 명단이 매우 화려하다. 이들 중 다수가 갤러리위켄드를 계기로 한국에 처음 방문했다는 점도 눈여겨 볼 일이다. 물론, 이 행사가 해외 인사에게만 국한된 자리는 아니다. 국내 미술 관계자 및 관심 있는 일반인에게 사전 신청을 받아 입장할 수 있도록 했다.
코리아갤러리위켄드의 초청인사는 KIAF의 부대행사인 K-ART컨버세이션(10. 12~15)에서도 활약했다. 홍콩 유명 디자이너 겸 컬렉터 앨런 찬(Alan Chan), 런던 이콘(IKON)갤러리 디렉터 조나단 왓킨스(Jonathan Watkins), 뉴욕 뉴스쿨대학 문화미디어학과 교수 맥킨지 와크(McKenzie Wark) 등이 특별강연을 펼치며 ‘갤러리 주간’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한편 갤러리위켄드의 본 행사가 열린 네모에서는 14일 개막식 퍼포먼스로 무용가이자 음악감독, DJ로 활동하는 김주헌이 양반춤을 선보였다. 전통적인 양반춤에 현대음악과 현대무용을 접목시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퍼포먼스였다.
이제 세부 프로그램의 면면을 살펴볼 차례다. 먼저 ‘갤러리 쇼케이스’는 국내 갤러리에게 공모 형식으로 신청을 받아 20개 갤러리를 최종 선정했다. 기혜경(북서울시립미술관 운영부장), 박영택(경기대 교수), 서진석(백남준아트센터 관장), 윤진섭(미술평론가), 현시원(시청각 공동 디렉터)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선정된 갤러리 20곳은 네모의 3개 층 전체를 활용하여 갤러리별 ‘대표선수’들의 작품을 개인전 형태로 각각 선보였다. 이는 국내 아트페어에서 흔치 않았던 새로운 시도로, 콘셉트 면에서 마치 아트바젤과 아모리쇼에서 보았던 ‘Insights’ 섹션의 한 장면 같기도 했다. 다만 달랐던 점은 부스별로 가벽 대신에 오픈된 벽면에 각 갤러리의 이름과 대표 작가의 약력을 명시하여 각 전시를 구분 지은 점이다. 1층 전시장 입구에는 김영나(국제갤러리)의 조각과 이승희(박여숙화랑)의 설치 작품이 ‘센터 피스’로 전시됐다. 김영나는 속이 훤히 뚫려 있는 흰색 사각형 조각 위에 특유의 미니멀한 그래픽 패턴을 칠한 작품을 선보였고, 이승희는 도자기로 형상화한 대나무 모양의 조각 수십 점을 모래 위에 꽂듯이 설치하여 대나무숲을 형상화했다. 그밖에도 공근혜갤러리의 민정연, 갤러리선컨템포러리의 박지혜, 스페이스비엠의 로와정 등이 개성 있는 회화, 콜라주, 설치 작품을 각각 선보이며 눈길을 끌었다. 전시는 갤러리위켄드가 열린 3일 동안 개최됐으며, 현재는 온라인상에 VR전시로 구현되어 당시의 장면을 화면으로 만나볼 수 있다. 갤러리 쇼케이스와 연계되어 아티스트 토크도 열렸다. 김영나와 로와정이 소속 갤러리의 갤러리스트 및 평론가, 컬렉터와 함께 마주앉아 작품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했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한 ‘국제 패널토크’도 자세히 살펴보자. ‘아트딜러스 토크’, ‘컬렉터스 토크’, ‘토킹갤러리즈’ 세 섹션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먼저 14일에는 아트딜러스 토크가 첫 테이프를 끊었다. 멕시코 쿠리만주토(Kurimanzutto)갤러리 공동 설립자이자 아트딜러인 호세 쿠리(Jose Kuri)의 사례를 함께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그는 ‘유목하는 갤러리’라는 콘셉트를 가지고 1990년대 당시 자국의 젊은 작가였던 가브리엘 오로즈코(Gabriel Orozco), 다미안 오르테가(Damien Ortega), 아브라암 크루비예가스(Abraham Cruzvillegas) 등과 함께 실험적인 전시를 열어 국제적 입지를 다졌다. 또한 이곳에서 전시한 아드리안 빌라 로하스(Adrian Villar Roas), 알로라&칼자딜라(Allora & Calzadilla), 리크릿 티라바니야(Rirkrit Tiravanija) 등이 기념비적인 설치와 퍼포먼스로 크게 주목 받으며 세계 주요 비엔날레 및 미술관의 전시로 커리어를 이어간 사례도 함께 설명하며, 갤러리 경영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작가에게 집중할 것”과 “실험을 멈추지 말 것”을 조언했다.
15일에는 ‘컬렉터스 토크’와 ‘토킹갤러리즈’가 오전과 오후에 연이어 진행됐다. ‘컬렉터스 토크’는 티로시델리온(Tiroche DeLeon)컬렉션 설립자 세르주 티로시(Serge Tiroche), DSL컬렉션 공동 설립자 실비안 레비(Sylvian Levy), 재무 컨설턴트 출신 컬렉터 알라인 설바이스(Alain Servais)의 컬렉션 사례를 청중과 공유했다. 아트 컨설턴트 박은주가 모더레이터로 참여했다. 세 컬렉터 모두 유럽이나 미국이 아닌 다른 대륙의 작가 컬렉션을 다수 보유하고 있으며, 컬렉션 투자 관련 수익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세계 주요 미술관에 작품을 적극적으로 대여해 준다는 점이 공통점이었다. 세르주 티로시는 자신의 자산 투자 경력을 활용, 예술가의 자산과 작품에 투자해 실제 수익으로 돌려주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특히 그의 티로시델리온컬렉션은 자신의 컬렉션을 기반으로 한 아트펀드 사업으로 컬렉션 목록에는 양혜규와 서도호도 있다고 한다. 실비안 레비는 자신의 미술품들을 ‘뮤지엄 타입 컬렉션’으로 정의하며 3가지 특징을 소개했다. 첫째, 좋아하는 작품만 사지 않고, 자신을 자극시키는 도전적인 작품을 사는 것. 둘째, 컬렉션을 자주 사고팔며 가지치기 해나가는 것. 셋째, 컬렉션을 적극적으로 공개하고 공유하는 것. 그의 컬렉션은 파리 기메(Guimet)미술관, 베이징 울렌스현대미술센터(UCCA), 싱가포르국립미술관 등 세계 곳곳에서 전시된 바 있다. 중국미술에 특화된 컬렉션을 보유한 그는 컬렉션의 디지털화도 진행 중인데, “멀리 떨어져 있는 중국 관객들에게 자국 대가의 작품을 효과적으로 공유”하려는 비전을 귀띔하기도 했다. 알라인 설바이스는 컬렉터로서 스스로에게 예술이란 무엇인지 지속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방한 때 방문한 일민미술관의 김용익 개인전을 언급하며 예술과 삶의 본질적 관계를 끈질기게 천착해 온 작가에게 깊이 공감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오후의 ‘토킹 갤러리즈’ 세션은 미국의 경매회사인 필립스 부회장 로버트 맨레이(Robert Manley), 저널리스트 출신으로 최근 아모리쇼의 디렉터가 된 벤자민 지노시오(Benjamin Genocchio), 미국아트딜러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아담 쉐퍼(Adam Sheffer) 총 3인의 라운드테이블로 진행됐다. 아트뉴스페이퍼 및 파이낸셜타임즈에서 30여 년간 활동해 온 베테랑 저널리스트 조지나 아담(Georgina Adam)이 모더레이터로 참여했다. 이들은 한국의 갤러리가 직면한 다양한 의제를 놓고 토론을 이어갔다. 과거 갤러리가 지인들 위주로 알음알음 작품을 판매하는 기초적 개념이었다면, 현재는 세계와 연결되어 지역의 트렌드를 송수신하는 적극적 개념을 띠고 있다고 짚었다. 한국 갤러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중소규모 갤러리는 글로벌한 ‘메가 갤러리’와 달리 의사결정이 민첩하고 명민하게 상황 변화에 대처할 수 있다는 데에서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벤자민 지노시오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온갖 스펙터클과 이벤트가 사람들을 자극하는 “주목의 경제(attention economy)”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흥미로운 요소가 몰려 있는 아트페어에서 단 한 번의 노출이 갤러리의 ‘각개전투’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역설했다. 그런데 정작 그가 지휘하는 아모리쇼는 기존에 전개하던 아시아 지역 섹션을 폐지했다. 왜 그랬을까? “관련 시장은 유럽과 미국 이외 지역에서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아트페어는 뭐니 뭐니 해도 개최 지역에서의 수요가 가장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로버트 맨레이는 “중국 혹은 라틴 아메리카 컬렉터들이 특히 자국 작품을 크게 선호한다”고 이야기를 보탰다. 이것은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이야기다. 작품에 대한 지역 내 수요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국적을 이야기하는 것은 협소한 시각일 수 있다. 예를 들면 아트바젤홍콩에서 아시아적 이슈를 다룬 출품작을 구입하는 컬렉터가 반드시 아시아인은 아니기 때문이며, 오히려 해당 이슈에 천착하는 ‘특화된 컬렉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패널 각자가 한국 갤러리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로버트 맨레이는 “단색화를 익히 알고 있다”며 1년에도 몇 번씩 방한할 정도로 중요한 시장으로 여긴다고 밝혔다. 벤자민 지노시오는 “한국은 일본과 비교해도 인프라가 좋은 편”이라며 다양한 취향의 수많은 갤러리, 비영리 기관과 기업 미술관의 공존, 정부의 영리한 지원까지 조목조목 예를 들었다. 최근 한국에 자주 나타나는 전시 경향으로 한국의 현대미술사를 성찰하고 재정의하는 성격의 전시가 봇물을 이룬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청중으로 함께 한 오시안 워드는 “기업재단의 꾸준한 후원에 주목하고 있다”며 삼성미술관 리움, 아트선재센터 등을 예로 들었으며, 애비 뱅서도 “프리즈아트페어의 메인 섹션에 한국 갤러리가 다수 참여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의 전망도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로컬 갤러리의 해외 아트페어 진출 전략에 대해서는 “만병통치약 같은 처방법은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아넷 쉔홀저는 “아시아 미술은 유럽과는 달리 각자가 서로 너무 다르더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작가의 성장이다. 작가가 노출되었을 때 길게 보아 작가의 커리어에 가장 좋을 만한 곳을 찾으라”고 조언했다.
디지털 시대에 필수인 온라인 홍보 전략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오시안 워드는 “트위터, 인스타그램 포스팅으로 시선을 사로잡고, 다음 단계로 웹사이트에 올라 있는 작가의 비디오, 관련 에세이 등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우리의 이름에 시선이 머물게끔 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양질의 콘텐츠 그 자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인터넷을 작품의 재료로 사용하는 ‘포스트 인터넷’ 작가들의 온라인 활동과 관련하여 갤러리가 “이 트래픽을 오프라인으로 끌어오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벤자민 지노시오는 “‘VIP아트페어’와 같은 온라인아트페어의 도전은 철저하게 실패로 끝났다”며 “사람들이 실제 경험과 참여를 원하는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예술경영지원센터는 본 프로그램과 별도로 전체 초청인사들과 함께 3일간 한국 전시장 순례도 이어갔다. 14일에는 서울 강북 지역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국제갤러리, 학고재, 이화익갤러리, 아트선재센터, 금호미술관, 갤러리현대, 미디어시티서울비엔날레, DDP 등을 방문했다. 15일에는 서울 강남 지역에서는 KIAF(코엑스 A, B홀)를 비롯해 플랫폼-엘컨템포러리아트센터, 송은아트스페이스, 아뜰리에에르메스 등을 돌아봤다. 14일과 15일 저녁에는 국제갤러리와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각각 국내외 미술계 인사들이 모이는 ‘네트워킹 파티’도 개최했다.
이렇게 용기 있는 첫 발을 디딘 코리아갤러리위켄드. 한국 아트마켓의 재도약을 위해 준비부터 실행까지 수많은 전문 인력이 참여하고, 유례없는 국제적 규모로 기획한 행사다. ‘아트마켓’을 주제로 ‘고수’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청해 듣고, 이들이 실제 한국의 현장에서 다각도로 교류하게 한 새로운 형식의 행사다. KIAF의 매출 상승세라는 긍정적인 신호도 보았다. 하지만, 그밖에 가시적 성과는 지금으로선 확답하기가 어렵다. 국내외 미술계 인사들의 네트워크 확장, 국내 미술관계자들의 세계 미술시장에 대한 이해 증대, 해외 미술관계자들의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호감도 증가라는 일련의 목표는 일회성 행사로 거둘 수 있는 소득은 분명 아니다. 그러나 이번 행사가 한국 아트마켓의 ‘양’보다 ‘질’을 향상시키는 데 집중했다는 점에서 희망을 본다. 한국 경제에 여전히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가운데, 갤러리위켄드가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해마다 이어지기를 바란다. 꾸준히 내실을 다지는 행사로 업그레이드되며 얼어붙은 한국 아트마켓을 녹여주는 계기가 되어 주기를 기대하며 이 글을 맺는다.
《아트인컬처》 기자. 미술 현장의 이야기를 한글과 영어로 기록 중. 《ArtReview Asia》 《a.m. post》 등에 기고. 《Korean Art: The Power of Now》 (Thames & Hudson, 2014) 출판 어시스턴트, '이병복: 3막 3장' (아르코미술관, 2013), 'Re-designing the East' (토탈미술관, 2013) 전시 코디네이터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