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회 리옹비엔날레(2015. 9. 10~2016. 1. 3)가 '현대적 삶'을 주제로 리옹현대미술관, 라쉬크리에르, 콩플뤼앙스박물관 등 총 4개의 공간에서 개최됐다. 비엔날레 출범 떄부터 총감독을 맡고 있는 티에리라스파이(Tierry Raspail)는 올해부터 앞으로 3회에 걸친 비엔날레의 주제어를 '모던'으로 정했다. 27개국 출신 작가 60명이 참여한 가운데, 큐레이터 랄프 루고프(Ralph Rugoff)는 본전시 참여 작가의 1/5을 프랑스 출신으로 채웠다. 루고프는 전 세계적으로 팽창한 비엔날레로 인해 아이러니하게도 '모던'의 개념이 흐릇해졌다고 지적한다. 그는 전시를 통해 다시금 '모던'을 호면하며, 현 시점에서 이 개념이 얼마나 더 진화할 수 있으며 얼마나 새로운 레이어와 뉘앙스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지난 1월, 제13회 리옹비엔날레(2015. 9. 10~2016. 1. 3.)가 막을 내렸다. 1991년에 시작된 리옹비엔날레는 창설 때부터 리옹현대미술관(macLYON)의 디렉터 티에리 라스파이가 줄곧 예술 감독을 맡아 오고 있다. 이 비엔날레는 예술 감독 티에리 라스파이가 먼저 하나의 주제어를 제시한 후 이를 3회에 걸쳐 3가지 에디션의 비엔날레로 개최하는 독특한 운영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매회 초청된 큐레이터가 예술 감독이 제시한 주제어를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하거나 새로운 접근법으로 다룬다. 그간의 주제어는 역사(1991, 1993, 1995), 글로벌(1997, 1999, 2001), 시간성(2003, 2005, 2007), 전달(2009, 2011, 2013)이었다. 라스파이는 2015년부터 2년 간격으로 세 차례 진행되는 비엔날레의 주제어로 ‘모던’을 제시하고 그 첫 에디션의 큐레이터로 런던 헤이워드갤러리 디렉터 랄프 루고프를 초청했다. 그리고 루고프는 이번 비엔날레의 본전시 제목을 <현대적 삶(La Vie Moderne)>이라 칭하며 라스파이가 던진 주제어에 화답했다.
라스파이와 루고프는 이번 비엔날레를 3개의 전시와 2개의 플랫폼으로 구성했는데, 먼저 본전시는 <현대적 삶>이라는 제목으로 라쉬크리에르(La Sucriere), 리옹현대미술관, 콩플뤼앙스박물관(Musee des Confluences) 3곳에서 열렸다. 27개국 출신 작가 60명이 참여했다. 그리고 리옹현대미술관의 컬렉션을 재해석한 전시 <이 멋진 현대 세계>, 전 세계 10개 비엔날레의 큐레이터 13명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협업한 <랑데부 15>전이 빌뢰르반 현대미술연구소(Institut d’Art Contemporain)에서 개최됐다. 커뮤니티 기반의 아마추어 프로젝트 ‘베두타(Veduta)’, 론알프 지역의 젊은 작가들을 프로모션하는 150여 개의 이벤트와 전시를 연결하는 ‘레조낭스(Resonance)’도 ‘플랫폼 프로젝트’로 함께 열렸다.
티에리 라스파이는 ‘모던’이라는 키워드에 대해서 “‘모던’과 ‘모더니즘’의 역사 속 에피소드를 모두 다루는 것은 분명 무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던의 귀환’은 너무나 예기치 못한 것이어서 잠시라도 곱씹어 볼 만하다”고 말했다.1)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과 함께 1980년대에 갑자기 거대 담론, 역사의 종말과 함께 ‘모던’이 사라졌는데, 특히 전 세계적으로 비엔날레가 성행하게 되면서 ‘모던’이 희미해져 갔다고 말한다. 그러나 ‘모던’을 뒤이은 시대는 명명되지 않은 채로 있었다.(이는 2007년 제9회 리옹비엔날레의 주제 <2000년대-명명되지 않은 10년의 역사(00s-The History of a Decade That Has Not Yet Been Named)>를 보아도 알 수 있다) 라스파이는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의 “우리는 결코 모던했던 적이 없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과연 ‘모던’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에 대한 문제를 들고 루고프에게 바통을 건넸다.2)
1) Thierry Raspail, “Modern,” 13e Biennale de Lyon: Ce Fabuleux Monde Moderne (Dijon: Les presses du reel, 2015), p. 2. 2) 1의 책, p. 3.
사실 미술에서 전시를 통해 다시금 모던을 소환하는 것은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가 먼저 시작했다. 그는 2009년 테이트트리엔날레의 큐레이터를 맡아 <얼터모던(Altermodern)>전을 열고, 저서 《래디컨트(Radicant)》를 발표했다.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설명 가능한 시대가 끝났다며, 오늘날의 전지구적인 문화예술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지역성과 보편성이 서로 교환될 수 있는, 네트워크된 ‘군도(archipelago)’ 형태의 모더니티를 제시했다. 그렇다면 랄프 루고프는 이 비엔날레에서 ‘모던의 귀환’을 어떻게 설명했을까?
루고프는 “과거와의 깨끗한 단절을 선언하고 싶은 충동, 전통과의 파열을 부추기는 것은 매우 두드러진 모더니스트의 제스처”라며, “근대의 종말을 선언하고자 하는 우리의 반복적인 욕망 역시 모더니티의 징후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그에게는 다양한 경로의 모던 프로젝트가 여전히 활발하게 작동하며, 이것이 우리의 지각까지 변형시키는 형태를 만들고 있다는 대안적인 시나리오가 더 가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비엔날레 본전시인 <현대적 삶>에서 이러한 시나리오의 가능성에 대한 탐험을 시작한다. 그가 밝히는 전시 제목의 레퍼런스는 목가적인 프랑스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인 레몽 드파르동(Raymond Depardon)의 <현대적 삶>(2008)과, 지금으로부터 150여 년 전 《르피가로(Le Figaro)》에 실린 샤를 보들레르의 글 <현대적 삶의 화가>(1863)가 있다. 루고프는 ‘모던’이 지나간 시대의 시간적 파편이나 유산을 제시할지라도 여전히 우리의 현재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쓰일 수 있다고 말한다.
루고프는 전시 제목이 단순히 전시의 내용이나 주제를 환기시키는 것을 넘어 ‘모던’에 대해 보다 많은 질문을 던지기를 바라는 것이다.3) ‘모던’에 대한 작금의 논의가 이 개념이 얼마나 더 진화할 수 있는지, 얼마나 새로운 레이어와 뉘앙스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그리고 변화하는 맥락에 적응함으로써 스스로를 계속 보수할 수 있는지 조명하고자 한 것이다. 루고프는 이번 전시에서 현재 삶의 역설적인 특징들을 진단하고 반영하는 작가들을 불러 모았으며, 이를 통해 동시대 문화가 이전의 사건과 전통을 관통하고 반응을 구성하는 방법들에 대해서 보여 준다고 말한다. 참여 작가들은 현재의 상황과 이미지들을 탐구하고 있더라도 과거 역시 파고들었다. 이는 얼마나 다양한 과거의 순간들이 현재와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한 유동적인 감각을 보여 준다.4)
실제로 이번 비엔날레의 출품작 중 상당수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들여다보거나 현재의 일시성이 과거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주는데, 특히 리옹 지역의 정치 및 역사에 관해 파고든 작업들이 시선을 끈다. 루고프 역시 가장 먼저 “이 비엔날레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고 자문했다. 비엔날레 전시인 만큼 국제적인 시야를 보여 줘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비엔날레를 방문하고 이용하는 사람들을 최우선으로 고려할 생각이었다고 하니, 작가들이 리옹의 문화와 역사를 중요한 리소스로 이용한 것은 상당히 자연스러워 보인다.5) 그는 참여 작가의 1/5에 해당하는 인원을 프랑스 작가로 선정했고, 이들 중 상당수는 리옹의 역사와 상황을 추론해 나가는 신작을 제작했다. 몇몇 작가들은 리옹 주민들과 협업해 제작을 진행했다. 이렇게 제작된 작품들로 루고프는 무수한 역사적 시간들이 동시대 문화의 균질화된 이미지들 속에 은폐되었음을 환기시킨다.
루고프는 비엔날레는 결국 일시적 구조체로 2년에 한 번씩 개최된다는 점에서 그 안에 일시성을 포함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비록 비엔날레가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예술의 발전상을 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시간을 측정하는 수단인 시계의 기능도 행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6) 그런 의미에서 그는 현대적 삶이 동시에 양립할 수 없거나 역설적인 시간대를 등재하고 환기하는 시계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는 마리나 핀스키(Marina Pinsky)의 사진 작업인 (2013)이 이와 같은 접근법을 상징하는 것으로 예시했다. 이 작품은 낫과 시계 문양이 화려하게 프린트된 옷감 위에 여러 종류의 손목시계와 시계들이 진열되어 있는 사진이다. 이 사진을 만들기 위해 작가는 두 개의 매우 다른 노출 시간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하나는 낮에 다른 하나는 밤에 찍은 것이다. 핀스키의 사진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진의 속성이라고 치부하는 단일한 시간을 포착하기보다는 선택 가능한 일시성들을 반영하는 시간의 재현을 한데 모았다. 한나 허트지히(Hannah Hurtzig)의 <나이트 레슨 2>는 죽은 자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삶에 어떻게 개입하고 영향을 끼치는지 이야기한다. 영상은 철학자 뱅시안 데스프레(Vinciane Despret)가 주방에서 식사를 준비하면서 죽음에 대한 다양한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데스프레는 죽은 자들이 산 자들의 삶에 어떻게 들어오는지, 또한 산 자들이 어떤 특별한 일들을 하게 만드는지 말한다. 그는 죽은 자의 죽음은 더 이상 산 자들이 그들을 기억하지 않는 때라고 하는데, 이는 지금 시점에서 모던을 호명하는 것이 모던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임을 암시하는 것으로도 읽힌다. 즉 사람들이 더 이상 모던을 호명하지 않는 때야말로 모던의 종말이 되는 것이다.
3) Ralph Rugoff, “La Vie Moderne,” 1의 책, p. 8.
4) 1의 책, pp. 8-9.
5) Raspail, “Ce Fabuleux Monde Moderne,” 1의 책, pp. 14-15.
6) Rugoff, 1의 책, pp. 9-10.
파비앙 지로(Fabien Giraud)와 라파엘 시보니(Raphaël Siboni)는 견직물 산업으로 융성했던 리옹에서 부르주아의 착취와 탄압에 항거한 노동자들이 반란을 벌이는 모습 등 도시의 과거를 환기시키는 영상을 선보였다. <The Unmanned(La Memoire de Masse)>(2015)는 1834년 견직물 노동자들의 반란 중 하나인 ‘블러디 위크’를 언급한다. 당시 견직물 노동자들은 수공업 체제에서 자동화, 대량 생산 체제로 가는 것에 반대했다. 영상에서 천공을 하는 장면은 이 자동화 시스템을 은유하며, 오늘날 컴퓨터로 자동화된 세상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사람이 아닌 기계와 컴퓨터에 의해서 돌아가는 시스템, 그 속에서 인간은 더 이상 경제적 주체가 아니다. 작가들은 리옹의 특수한 역사를 언급하는 40여 분의 영상으로 19세기 노동자들의 폭동이 21세기 우리의 삶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환기시킨다.
한편, 아흐메트 오구트(Ahmet Ö ∨ güt)는 <Workers Taking Over the Factory>(2015)에서 뤼미에르 형제가 리옹에서 영화를 발명한 지 120년이 지난 지금, 스펙터클의 세상이 어떠한지 보여 준다. 뤼미에르 형제의 첫 영화인 <리옹의 뤼미에르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1895)은 노동자들이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모습만을 반복적으로 보여 주지만, 오구트는 전시장에 영사기가 장착된 빈티지 미싱 기계를 도열하여 19세기 많은 노동자들의 빈곤과 실업을 야기한 직물 산업의 기술적 발전을 암시하면서, 동시에 오늘날의 경제 문제를 언급한다. 오구트는 리옹의 뤼미에르인스티튜트에서 촬영을 진행하면서 3천 명의 노동자들이 공장을 나올 때 파산한 기업들의 배너를 흔들게 했으며 미싱 기계에 앉은 관람객들이 이를 볼 수 있게 했다. 리옹의 주민이 동시대의 모습에서 과거를 환기할 수 있도록 하는 영리한 방법인 것이다.
마리넬라 세나토레(Marinella Senatore)는 다양한 사회경제적 배경을 가진 커뮤니티들과 6개월 동안 협업한 작업을 라쉬크리에르와 리옹현대미술관에 전시했다. 그는 일반인들이 리옹의 역사를 보다 직접적으로 실감할 수 있는 방법을 취했다. 비엔날레 공식 주제가를 지역민들과 함께 만들어 비엔날레의 오프닝 연설이 있는 동안 제창케 했으며, 시각 장애인들이 1894년의 노동자 반란을 소재로 한 노래 <직공들(Les Canuts)>을 부르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사회의 다양한 요소들을 한데 모으고 창작의 전체 과정을 커뮤니티들과 공유하는 것을 선호하는 그의 작업 방식은, 다양한 과거의 순간들이 현재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주고자 한 기획자들의 의도와 합치된다.
1984년 개관 때부터 리옹현대미술관의 디렉터로 일해 온 티에리 라스파이는 이번 비엔날레에서 미술관의 컬렉션을 ‘모던’이라는 스펙트럼으로 재조명한 <이 멋진 현대 세계>전을 선보였다. 그는 비엔날레에 미술관 컬렉션을 선보이는 이유를 아주 간단하게 말한다. 리옹현대미술관과 리옹비엔날레의 창립 시기는 각기 1984년과 1991년으로 불과 7년 차이며 이들은 한 예술 프로젝트의 두 모습이라는 것이다. 라스파이에 의하면, 과거 리옹비엔날레에서는 리옹현대미술관의 컬렉션 작품을 많이 선보였다. 동시에 미술관은 비엔날레를 위해 제작된 많은 작품을 소장해 왔다. 라스파이는 이 점에 주목하고, ‘모던’의 시선으로 리옹현대미술관과 리옹비엔날레 간의 구조적인 연결, 본질적인 일치를 보여 주고자 했다. 이는 라스파이가 미술관과 비엔날레의 수장을 동시에 맡고 있기에 가능한 특징이기도 하다. 또한 리옹현대미술관의 컬렉션 방침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라스파이는 미술관 소장품 수집 방침을 ‘시간 중심의 컬렉션’으로 세웠다. 미술관은 작가들의 개인전을 개최할 때마다 비엔날레 수준의 규모로 미술관 전체 공간을 할애해 왔고, 작가들에게 신작을 위한 주제어를 제시해 왔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울레이에게는 ‘삶(living)’을, 로버트 모리스에게는 ‘정신/신체(mind/body)’를 제시하는 식이다. 이렇게 구성한 개인전을 통해 미술관은 작가들이 구성하고 부여한 어떤 ‘순간’을 컬렉션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컬렉션은 가상의 미술사로, 이것을 재구성하려는 시도를 할 때에는 시대나 양식으로 환원될 수 없는 파편들의 미완성 컬렉션이 된다.
라스파이는 미술사적 측면에서는 컬렉션이 일관성이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운동이나 지역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특정 순간에 제작된 특정 작업에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라스파이는 <이 멋진 현대 세계> 출품작은 앞서 말한 대로 대부분 작가들의 개인전 때 제작한 신작으로 리옹현대미술관에 소장된 작품들이지만, 이는 포괄적인 작품과 시간의 카테고리로 분류된다기보다는 훨씬 더 관습적인 작업들이고 아카데믹하며 미술관학적인 원리에 합치한다고 본다. 다만, 오늘날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컬렉션은 확장된 모던한 세계이며, 이러한 새로운 종류의 모던이 기준점이자 그림자로서 오늘날의 미술의 조건이라고 보았다.7) 라스파이와 루고프는 모두 이번 리옹비엔날레를 과거 위에 현재를 덧쓰는 일종의 ‘양피지(palimpsest)’로 활용하고 있다. 과거가 완전히 지워질 수 없는 흔적이라고 하면,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 위에 덧대어 쓰인 현재를 보게 된다. 그리고 모던은 끊임없이 다시 쓰이고 또 쓰이는 것일 수도 있다. 니콜라 부리오가 ‘얼터모던’을 말하고, 할 포스터(Hal Foster)가 동시대 이론가, 큐레이터들에게 컨템포러리에 대한 질문을 던져 컨템포러리는 여러 개의 현재가 존재하는 불안정한 상황이라는 것을 확인한 지 6년이 지났다. 그리고 아직 리옹비엔날레의 모던 3부작 중 2회가 남은 만큼, 이들이 그리고/또는 우리들이 소환하는 모던이 어떤 식으로 이 시대에 정박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에게 무심히 왔다가 떠나가는 것들의 가속도만큼이나 모던은 빠르게 왔다가 빠르게 멀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미래를 현재에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에게 말이다.
7) Raspail, 1의 책, pp. 10-13.
[사진 제공: 이성휘, 리옹비엔날레]
※ 본 기사는 (재)예술경영지원센터 프로젝트비아(PROJECT ViA)의 지원으로 아트인컬처와 더아트로가 함께 기획·게재하는 글입니다.
하이트문화재단 큐레이터. KAIST 산업디자인과,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졸업. 제2회 아트선재 오픈콜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