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한국미술 해외진출 전략 컨퍼런스 '아트북과 카탈로그 레조네의 현재: 연구.출판.디지타이징과 아카이빙'(2016. 1. 22~24,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멀티플렉스홀 외)이 열렸다.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미국 카탈로그 레조네 학회(CRSA)와 공동으로 기획한 이 컨퍼런스는 아시아 최초로 열린 '카탈로그 레조네'와 '아트북'에 대한 국제적 논의의 장이었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모든 자료를 총 망라하는 '카탈로그 레조네'와 책으로 접하는 예술작품인 '아트북'의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시각예술 컨텐츠의 기획에서부터 연구,출판과 아카이빙, 그 이후의 활용까지 디지털 시대의 맥락 안에서 조망했다.
‘아트북’과 ‘카탈로그 레조네’ 분야의 전문지식을 나누고 현안을 점검하는 국제 컨퍼런스가 열렸다.(‘아트북과 카탈로그 레조네의 현재: 연구, 출판, 디지타이징과 아카이빙’, 1. 22~24)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감정인력 양성 및 작가 전작도록 발간 등 ‘감정기반 구축 사업’의 일환으로 기획된 이번 컨퍼런스는 총 세 번에 걸친 ‘2016 한국미술 해외진출 컨퍼런스’ 시리즈의 첫 번째 컨퍼런스였다. 마크 폴리조티(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출판 편집장), 디트마 엘거(게르하르트 리히터 아카이브 디렉터), 제인 워먼(폴 세잔 소사이어티 부회장), 데이비드 그로즈(아티펙스 프레스 디렉터), 수잔 쿡(CRSA 학술이사), 샤론 플레처(IFAR 상임이사), 서성록(한국미술품감정협회장), 전민경(국제갤러리 대외협력디렉터), 김은영(국립현대미술관 교육정보서비스팀장) 등이 연사로 참여한 가운데, 컨퍼런스가 열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멀티플랙스홀은 미술 출판의 최첨단 지식을 만나려는 관객들의 참여로 발 디딜 틈 없는 성황을 이뤘다.
‘카탈로그레조네’는 작가에 대한 모든 작품과 자료를 기록한 책으로, 작가 연구의 중대한 기초자료가 됨은 물론 미술품 진위감정의 ‘기준점’이 되는 자료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이미 몇 세기에 걸쳐 보편화되어 있는 반면 국내의 사례는 매우 미미한 수준에 머무른다. 국내의 계속되는 위작시비와 미술시장 침체를 타계하기 위해, 우리 미술계에서는 무엇보다 근현대미술 연구 기반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번 컨퍼런스는 해외 카탈로그레조네 분야의 석학들로부터 직접 실무 경험과 전문 지식을 배울 수 있는 적절한 기회가 되었을 뿐 아니라, 한국 미술의 체질개선 및 국제 진출의 해법을 다각도로 타진해 볼 수 있는 논의의 장으로써 많은 기대를 모았다.
오늘날 ‘카탈로그 레조네’와 ‘아트북’은 모두 미술과 관련된 자료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아카이빙하고 조직화하여 독자·이용자에게 다가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할 뿐 아니라, 급변하는 디지털 출판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기도 하다. 기술적 도구와 매체 형식에 대한 기획은 그것이 다루는 내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컨퍼런스에 모인 다수의 편집자와 연구자들은 그들의 작업에서 ‘디지타이징’을 핵심적 이슈로 인식하고 있었다.
첫 번째 섹션 ‘아트북: 무엇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의 첫 발표를 맡은 마크 폴리조티는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온라인 출판을 이끌고 있는 당사자로서, 오늘날의 변화된 출판 환경에 미술관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에 대해 전했다. 그는 디지털 디바이스로 정보를 접하는데 익숙한 관객들을 위해 디지털 가이드와 도록을 출판하고 있지만, 물리적인 실체인 ‘상품’으로써 ‘감각적인’ 기쁨을 줄 수 있는 아트북의 장점이 여전히 수많은 독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술관이 출판물을 통해 더 많은 독자와 만나기 위해 책표지와 마케팅에 기울이는 노력을 구체적인 제작과 판매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뒤이어 발표한 데이비드 그로츠 아티팩트 프레스 편집장은 디지털 카탈로그 레조네 제작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서 특허를 취득했고, 이를 통해 척 클로즈의 디지털 카탈로그 레조네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는 디지털 카탈로그 레조네의 장점으로 실시간 업데이트와 수정이 가능하다는 점, 또 정보들을 엮고 분류하기 편하다는 점을 들었다. 반면 이런 정보 수정 기능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정보의 정확성 및 저자의 권위를 의심하게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무엇보다 디지털이 새롭고 트렌디하다는 이유만으로 시류를 따르는 것은 좋지 않으며, 목표와 의도에 맞는 기획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또한 디지털과 인쇄물의 특징을 모두 포괄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과정에서 겪은 경험을 공유했다.
상품의 특성을 가지며 내러티브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아트북’에 비해, 카탈로그 레조네는 보다 학술적 성격을 갖고 있으며 방대한 자료를 포괄하는 아카이브의 특징이 강조되는 만큼, ‘디지타이징’의 장점을 폭넓게 적용할 수 있는 분야다. 세 번째 섹션 ‘포스트디지털시대의 아카이빙과 퍼블리싱: 오픈 엑세스, 그리고 공유’의 발제를 맡은 제인 워먼 폴 세잔 소사이어티 부회장은 ‘폴 세잔, 종이책에서 온라인까지: 역사적 자료의 보존과 공유’라는 제목 아래, 현재 모두가 무료로 볼 수 있는 폴 세잔 아카이브가 탄생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1936년 리오넬로 벤츄리의 폴 세잔 회화·수채화 카탈로그 이후, 50여 년에 걸친 후속 연구 끝에 두 권의 책으로 발간된 회화작품 카탈로그, 그리고 그 이후 이 자료들의 디지털화 작업을 통해 탄생한 온라인 카탈로그레조네까지, 각각의 시기 및 제작 환경에서 직면했던 어려움과 고민의 과정을 상세히 들을 수 있었다. 지금도 방대한 연구결과와 자료들을 업데이트 중인 폴 세잔 온라인 카탈로그 레조네는 이름과 이메일 주소 입력만으로 누구나 접속하여 오늘날의 극대화된 온라인 기술의 장점을 작품과 함께 체험해 볼 수 있다.
카탈로그레조네는 무엇보다 ‘감정 분야’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무엇을 기록할 것인지를 선별하는 기준을 세우는 데 있어 우리에게 다양한 질문과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이 같은 이슈에 심도 있게 접근하고자 마련된 두 번째 섹션의 제목은 ‘카탈로그 레조네: 진실의 기록과 기준’으로, 위작 판별의 문제와 이와 관련된 법률적 사항들, 진품을 선별하는 방법과 사례에 대한 내용을 포괄했다.
첫 번째 발표를 맡은 서성록 한국 미술품감정협회 회장은 국내에서 불거진 위작 문제 및 관련 사례와 그것이 미술계에 미친 영향을 구체적으로 짚어 주었고, 국내에서 발간된 대표적인 두 개의 카탈로그 레조네의 제작 사례도 소개했다. 샤론 플랫처 국제미술연구재단(IFAR) 상임이사는 카탈로그레조네가 상아탑을 넘어 전 세계 옥션하우스와 갤러리 등 미술계 전반에 미치고 있는 강력한 영향력에 대해 설명하며, 감정분야 인력의 실태와 카탈로그 레조네 제작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법적인 문제들을 설명했다. 디트마 엘거 게르하르트리히터 아카이브 디렉터는 생존해 있는 작가가 직접 작품을 선별하고 참여한 사례로 볼 수 있는 게르하르트 리히터 카탈로그 레조네의 세부적 제작 과정을 공유했다. 아울러 캔버스의 뒷면과 고유번호, 작가의 서명 외에도 다양한 진품 판정의 기준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알렸다.
1월 22일 세 섹션에 걸쳐 진행된 컨퍼런스를 마치고, 연이은 이틀간의 심화 워크숍(1월 23일 ‘카탈로그 레조네 연구와 제작 사례: 다큐멘팅, 아카이빙, 업데이팅’, 1월 24일 ‘아트북 퍼블리싱의 현재와 미래: 프로젝트 사례를 통해 본 세부적인 출판 실무 과정’)이 이어졌다. 컨퍼런스에 참여한 대부분의 연사들이 소수의 인원들과 보다 집중적인 학습과 토론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이번 컨퍼런스로 모아진 아트북과 카탈로그 레조네를 둘러싼 열띤 관심과 논의들이 우리 미술계 발전의 기반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