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각예술 기획 인력의 해외 네트워크 구축과 지원을 위해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기획한 ‘프로젝트 비아(PROJECT ViA)’ 가 비아 살롱(ViA Salon) 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리서치를 공유하는 정기 세미나를 열기 시작했다. 지난 6월 19일, 첫 번째 살롱에서는 2013년 뉴욕 퍼포마(Performa) 현장에 다녀온 참가자들이 <비주얼 아트와 퍼포밍 아트 사이-퍼포마 13을 중심으로 한 다원, 다학제적 경향>이라는 주제로 나눔의 장을 열고 서로의 이야기와 의견을 나누었다.
참석자들의 대다수는 공연 예술계와 시각 예술계 종사자들이었다.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의 서현석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세미나는 두 번의 발표와 라운드 테이블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발제를 맡은 김해주 독립 큐레이터는 퍼포마의 탄생 배경과 참관했던 퍼포먼스에 대한 내용을 다뤘고, 뒤이어 변방연극제 임인자 예술 감독은 공연예술의 시각에서 바라본 퍼포마와 주목해 볼만한 북미 지역 페스티벌에 대한 내용을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두 발표자 모두 최근 퍼포먼스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미국 현장에 대한 관심으로 이번 리서치를 하게 되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후 이어진 라운드 테이블에서는 퍼포먼스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현대 시각예술의 동향과 퍼포먼스의 아카이빙 문제에 대한 이슈들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김해주 큐레이터는 로즐리 골드버그(Roselee Goldberg)가 퍼포마(PERFORMA)를 창립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면서 발제를 시작했다. 골드버그는 1960-70년대 아방가르드 퍼포먼스 현장에서 이론적 담론을 생산했던 이론가이자 큐레이터이다. 다다이즘이나 초현실주의를 퍼포먼스의 기원으로 삼아 미술사에 편입시키는 텍스트들을 다수 생산했고, 뉴욕 아방가르드 복합문화예술기관 더 키친(The Kitchen)에서 로리 앤더슨(Laurie Anderson), 메레디스 몽크(Meredith Monk)와 같은 퍼포먼스 예술가의 작업을 큐레이팅하기도 했다. 1979년에는 퍼포먼스 예술에 대한 이론서 『퍼포먼스 아트: 미래파에서 현재까지 Performance Art: From Futurism to the Present』를 저술했는데 20년이 지나도록 퍼포먼스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크게 변화되지 않은 것에 자극되어, 2004년 퍼포마를 시작하게 된다. 미술 기관, 페스티벌, 비엔날레처럼 퍼포먼스 프로그램이 정기적으로 운영되기도 하지만, 특히 퍼포마는 규모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진다. 뉴욕의 오십여개 기관 및 공공장소에서 한 달 동안 백편이 넘는 퍼포먼스 공연과 행사를 선보인다는 사실은 그 규모와 범위를 가히 짐작하게 한다. 퍼포마는 이론적 연구를 통해 퍼포먼스에 대한 담론을 생산하는 퍼포마 인스티튜트(Performa Institute)와 2년마다 개최되는 퍼포먼스 비엔날레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골드버그는 2년마다 미술사적 주제를 퍼포마의 중심 화두로 삼으면서 아방가르드 예술의 진원지 역할을 하던 미국의 옛 영광을 재고한다. 또한, 퍼포먼스가 하나의 장르로 미술관에 자리를 확보할 수 있도록 커미션 프로그램 제작을 지원하고 있다. 김해주 큐레이터는 참관했던 공연 가운데 조안 조나스(Joan Jonas), 벤 패터슨(Ben Patterson)과 같은 올드 보이들의 퍼포먼스를 베스트로 꼽으며, 관람객의 참여를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간결하고 과하지 않음에서 오히려 감동을 받았다는 감상을 전했다.
한편, 임인자 예술 감독은 ‘언더 더 레이더(Under the Radar)’, PS122의 ‘코일 페스티벌(Coil Festival)’, 브루클린 음악 아카데미(BAM)의 ‘넥스트 웨이브 페스티벌(Next Wave Festival)’ 등을 예로 들며 그동안 뉴욕에서 전통적으로 퍼포먼스를 선보이던 기관들이 창작물을 계속 생산해내기 보다는 작품의 유통 문제에 더욱 집중해왔다고 말했다. 그간 퍼포먼스에 대한 지속적인 환기와 창작 노력은 영국의 테이트나, 프랑스의 퐁피두센터와 같은 공공기관의 지원 아래 주로 유럽에서 이루어지는 듯하였다. 그러나 뉴욕에서 새롭게 시작된 퍼포마와 ‘아메리칸 리얼네스(American Realness)’ 페스티벌은 미국 퍼포먼스의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고, 그들의 예술적 영향력이 점차 확대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퍼포마와 마찬가지로 아메리칸 리얼네스 역시 공연뿐만 아니라 공연예술을 기반으로 한 전시 프로그램을 함께 구성한다. 뉴욕 이외에도 미국의 여러 지역에서 활발하게 운영되는 페스티벌이나 기관으로는 미니애폴리스의 ’워커아트센터(Walker Art Center)’, 시애틀의 ‘온 더 보드(On the Boards)’, 오스틴의 ‘퓨즈박스 페스티벌(Fusebox Festival)’, 캐나다의 ‘푸쉬 페스티벌(Push Festival)’등이 있다.
두 발제가 끝난 뒤, 서현석 교수와 국립현대미술관의 이수연 학예사가 합류하여 라운드 테이블이 시작되었다. 우선 작품으로서 미술관이라는 제도권에 들어가려는 퍼포먼스에 대한 이론적 배경을 간략하게 정리한 후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1960년대부터 이본느 레이너(Yvonne Rainer)와 저드슨 무용단(Judson Dance Theater)을 중심으로 회자되었던 ‘포스트모던 댄스’라는 용어는 시각예술에서 논의 되었던 포스트모더니즘 용어와는 상당한 시각차가 존재했다. 미국 퍼포먼스의 경우, 모더니즘에 대한 성찰과 장르의 경계에 대한 탐문이 유예된 채 공백기가 이어졌고, 2000년대에 들어서서야 퍼포먼스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시각예술 분야에서도 퍼포먼스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공백기 동안 유럽에서는 퍼포먼스의 한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품들이 공공기관의 지원 아래 지속적으로 창작되었다.
미술관이라는 제도 안에서 퍼포먼스가 작동할 때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의 〈시소 See saw〉(1971/2012)는 사회 정치적 맥락들이 생략된 채 미술관에서 퍼포먼스 작품이 선보일 경우 관람객들이 이를 참여적인 놀이 내지 반대로 만져서는 안 될 조각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시소〉는 1971년 테이트 미술관에서 처음 공개되었던 작품으로, 지난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한 《무브 move》전에 선보이기도 했다. 모리스는 미니멀한 조각 작품들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선보이고자 했던 테이트 미술관 측의 기대를 저버리고, 관객 참여 형태의 전시를 제안하였다. 즉, 관람객이 몸의 중력을 느껴보는 등, 다양한 조건에 놓인 신체를 인식할 수 있는 전시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막상 전시가 개관되자 관람객들은 안무가처럼 작품의 의미를 생각하기 보다는 이를 놀이기구로 인식할 만큼 과도하게 움직였다. 결국 사고가 발생하여 전시 5일 만에 철수하게 되었다. 이와는 반대로 30년이 지나 국립현대미술관에 설치된 같은 작품은 화이트 큐브 공간에 덩그러니 놓이게 되었다. 이는 조각 작품처럼 관람객들이 만지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했고, 미술관 측에서는 퍼포머를 고용해서 보는 이들의 참여를 유도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퍼포마를 비롯하여 미국 미술계의 퍼포먼스에 대한 구애는 과거의 퍼포먼스를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의 문제와 직결되며, 어떻게 퍼포먼스 아카이빙을 다룰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이슈들로도 이어진다. 퍼포먼스는 한 번 공연되면 다시 볼 수 없기에 퍼포먼스를 촬영하는 행위는 리서처들에게 매우 유혹적이다. 물론 촬영된 영상이 퍼포먼스의 재현을 도와준다는 면에서는 유용하겠지만, 영상이나 물성화된 오브제들 자체가 실제 현장에서의 경험을 백퍼센트 담보하지는 못한다. 퍼포먼스를 재현 한다고 해도 새로운 작업이 되기 때문에 무형의 아카이빙에 대한 논의들이 지속적으로 이슈화 되고 있다. 아카이브를 매개로한 리서치 퍼포먼스 작업의 예로 뉴 뮤지엄(New Museum)에서 있었던 《퍼포먼스 아카이빙 퍼포먼스(Performance Archiving Performance)》가 소개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사라 우키(Sara Wookey)의 ‘리댄스(reDANCE)’는 라이브 퍼포먼스, 워크숍, 토론을 통해 퍼포먼스 아카이브의 비물질성을 탐구하는 프로젝트이다. 우키는 이본느 레이너의 〈트리오 A Trio A〉를 재연하고 남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안무가로, 작품을 실제로 재현할 때 안무의 역사성과 비영구성이라는 상반된 경계를 넘나든다.
퍼포먼스 공연과 더불어 관련 전시 및 부대 행사들이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퍼포마는 퍼포먼스를 한 도시에서 집약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영향력 있는 행사임에는 틀림없다. 국가 보조금 없이 후원과 각종 기관의 협력을 통해 26억원의 예산이 투여되고, 뉴욕의 다양한 문화 기관과 공공장소를 활용하는 퍼포마의 행사 운용 능력은 매우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 자본의 논리에 잠식당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이야기들이 중론을 이루었다. 이는 적은 예산에도 풍부한 컨텐츠를 보유하고 사회를 향한 저항 의식과 예술가들 사이의 연대의식이 존재했던 1960년대의 분위기가 오늘날 흐려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했다.
라운드 테이블에서 미술 기관들의 퍼포먼스 흡수 현상에 대해 간략하게 논의가 되긴 했지만, 미술관을 비롯한 상업 갤러리들의 퍼포먼스에 대한 수용력과 수집 정책 변화에 대한 내용을 모두 논의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세계 유수의 미술 기관들이 다학제적 퍼포먼스를 앞 다퉈 받아들이면서, 기존의 미술관 관행과 부딪치는 현 미술관들의 수집과 복원의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더 나눌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뒤늦은 출발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다원예술은 퍼포먼스의 역사성을 복원하여 미술사 안으로 편입시키기 위해 엄청난 물량 공세와 함께 제도권으로 진입하려는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를 보면서 2000년 이후 한국에서도 활발하게 공연되고 논의되고 있는 다학제적인 경향의 퍼포먼스가 향후 나가야할 길에 대한 여러 갈래의 질문들을 떠올릴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프로젝트 비아 홈페이지:http://www.project-via.kr/index.asp
퍼포마13 홈페이지:http://13.performa-arts.org/about/about-performa-13
이유진은 백남준아트센터 큐레이터로 《말에서 크리스토까지》(공동기획), 《부드러운 교란: 백남준을 말하다》, 《러닝머신》(공동기획),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수상 작가전 - 더그 에이트킨: 전기지구》 등의 전시를 기획하였다.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인터뷰 프로젝트, 국제예술상 등을 진행하였고, 최근에는 다양한 예술교육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