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 행사

Curatorial Workshop in LONDON by Project VIA - 테이트 아카이브 / 워크숍 참관기

posted 2014.02.03

가까이에서 본 영국은 ‘변하지 않는 나라’다. 사회 모든 분야에 ‘시스템’이 갖춰져 있고, 때로 답답하게 느껴질 만큼 모두가 그 시스템과 규칙을 지키면서 사회를 유지해나간다. 매우 안정적이고, 급격한 변화가 일어날 여지는 적다. 파괴와 파격으로 가득해야 할 것 같은 현대미술의 흐름은 영국과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런던은 어떻게 ‘현대미술의 심장’으로 불리게 된 것일까. 런던 큐레이토리얼 워크숍 프로그램을 통해 그 실마리를 조금은 들여다 본 것 같다.




예술가의 머릿속까지 수집한다... '현대미술의 심장' 런던의 힘

1967년 뉴욕, 샬럿 무어먼과 ‘TV 첼로’ 작업으로 세상을 뒤흔들었을 때, 야심찬 35살 예술가 백남준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프로젝트 비아(VIA)’ 런던 큐레이토리얼 워크숍에 참여했던 지난 10월, 영국 런던 테이트 브리튼 지하의 테이트 라이브러리 앤 아카이브(Tate Library and Archive)에서 그 해답을 만났다. 아카이브 담당자 애드리언 글루는 “플럭서스 관련 테이트 전시를 2차례 직접 큐레이팅한 경험이 있다. 테이트 라이브러리는 플럭서스 운동에 관해서도 양과 질에 있어 세계 어느 예술 아카이브에 뒤지지 않는 1차 자료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백남준을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라며 교과서에까지 소개하고, 그 위상에 걸맞는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과연 백남준을, 또 다른 백남준일지도 모를 우리 현대미술 작가들과 그 작업을 이해하고 보존하려는 노력을 다해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1970년대 템즈강 범람으로 침수 피해를 입은 뒤 새로 만들어진 테이트 브리튼 지하 테이트 아카이브 출입문. 잠수함 출입문처럼 강력한 수압을 견딜 수 있도록 제작됐다.1970년대 템즈강 범람으로 침수 피해를 입은 뒤 새로 만들어진 테이트 브리튼 지하 테이트 아카이브 출입문.
잠수함 출입문처럼 강력한 수압을 견딜 수 있도록 제작됐다.

테이트 지하 ‘잠수함 출입문’ 열면 세계 2위 규모 아카이브


수집품 양으로 미국 워싱턴의 내셔널 갤러리 아카이브에 이어 세계 2번째 규모인 테이트 아카이브에서 처음 느낀 감정은 ‘부러움’이었다. 1970년 설립된 이곳은 세심하게 영국과 관련 있거나 영국에서 작업했던 아티스트들과 관련된 자료들을 아카이빙하고 있다. 매일 신문의 미술 기사를 주제별로 스크랩해 축적하는 것은 물론이다. 1970년대 중반 템즈강 범람으로 침수되는 사고를 겪은 뒤, 출입문은 강한 수압을 견딜 수 있도록 잠수함 출입구를 닮은 철제 구조물로 새로 제작됐다. 자료의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온도는 섭씨 16도, 습도는 55%로 늘 한결같이 유지된다. 글루는 “처음 라이브러리가 만들어진 뒤 자료들로 가득 채운 서가 복도 하나를 채우는 데 10년이 걸렸지만, 요즘은 1년에 복도 하나가 꽉 찬다”며 “런던 외곽에 별도의 수장고를 최근 가동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아카이빙 방식도 매우 단순하고 알기 쉽다. ‘200735 Mattisse Henri’라고 쓰여 있는 자료철은 2007년 35번째로 아카이빙된 앙리 마티스의 기록이라는 뜻이다. 이곳에선 암호 같은 아카이빙 방식 때문에 자료 속에서 길을 잃는 일은 없을 것 같다.


과거 그림 수장고였던 테이트 아카이브에는 현재 약 25만점의 미술관련 자료들이 모여 있다. 도록이나 팸플릿 뿐 아니라, 서신과 스케치, 작품과 제작 도구 등도 직접 아카이빙하는 것이 특징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이름이 적힌 선반 위에는 커다란 종이 박스와 함께 오래된 가죽 가방이 하나 놓여 있었다. “베이컨과 관련된 사람이 기증한 물품입니다. 아직 아카이빙되지 않았기 때문에 저 속에 뭐가 있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어쩌면 베이컨의 미공개 유작이나 그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사적인 편지들이 가득 들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예술과 관련된 것이라면 눈에 보이는 것들 뿐 아니라, 예술가의 머릿속도 테이트 아카이브의 수집 대상이다. 대표적인 것이 영국 도서관(British Library)과 함께 진행 중인 예술가 인터뷰 프로젝트. 현재까지 약 150여명의 예술가들이 전문 인터뷰어와 공동 작업으로 길게는 60시간 넘는 음성 기록을 남겼다. 이 내용은 모두 텍스트로 옮겨지며, 인터뷰 오디오와 함께 대중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이런 모든 아카이빙 작업은 기업들의 적극적 기부와 참여로 고용된 30여명의 전문가들의 손으로 세심하게 이뤄진다.


아카이빙 작업이 한창이던 플럭서스와 백남준 관련 자료들아카이빙 작업이 한창이던 플럭서스와 백남준 관련 자료들

테이트로 보내기만 해도 한국 미술자료 축적 가능


싱가포르와 중국에서 온 큐레이터와 함께 두 번째 아카이브 공간을 둘러볼 때는 한국 관련 자료들이 모인 선반도 볼 수 있었다. 책 몇 권과 5~6년 단위로 묶인 자료철 몇 개가 전부였다. 신문사에서 미술을 담당하는 동안 내 책상에도 매주 수십 권의 전시 도록과 팸플릿, 책들이 도착했었다. 그 많은 한국 현대미술의 현장과 증거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 걸까. 테이트 라이브러리를 둘러보던 한국 큐레이터 한 사람은 “한국에 수많은 미술대학과 연구자들이 있지만, 사실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 줄 책 한 권, 그 흐름을 제대로 짚어줄 예술 아카이브 한 곳 제대로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고 했다.
혹시 테이트에 한국 현대미술 도록과 전시 팸플릿 아카이브가 이토록 빈약한 것은 수집 정리하는 과정에서 걸러내지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카이브 담당자 글루는 “걸러내거나 버리는 것은 없다. 테이트 라이브러리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들이나 아카이브 담당자들에게 도착하는 것은 모두 아카이빙된다”고 했다. 한국의 갤러리와 미술관들이 이들에게 우편으로 도록과 팸플릿을 보내기만 해도, ‘현대미술의 심장’으로 불리는 런던 한 가운데에 우리 미술의 기록을 심어 넣을 수 있다는 뜻이다. 더 많은 런던의 연구자와 큐레이터들이 한국 현대미술 작가들을 접하고 재평가하는 기회를 갖게 될 수도 있다.


테이트 아카이브에 보관중인 한국미술 관련 자료들. 책 몇 권과 팸플릿 철 몇 권이 전부다.테이트 아카이브에 보관중인 한국미술 관련 자료들. 책 몇 권과 팸플릿 철 몇 권이 전부다.

한국미술은 고난의 역사에 어떻게 답하고 있나


“눈에 띄는 한국 예술가의 숫자는 적은 편인데, 그들이 다루는 주제는 매우 글로벌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예술은 20세기 한국이 겪은 특별한 고난의 역사를 다루도록 요구받지 않나?”
―대니얼 허먼(Hermann), 화이트채플 갤러리 큐레이팅 연구센터장
“1980년대 이전 한국에서 미술은 사실상 수묵화 아니면 민중미술 뿐이었다. 그 두 흐름의 틈에서 포스트모던한 예술가들이 자라났다. 그들에게 과거의 유산은 근대적인 것이며, 극복 대상이다.” ―고원석, 베이징 아트미아 재단 큐레이터


이번 프로젝트 비아의 런던 큐레이토리얼 워크숍 프로그램에서 또 하나 흥미진진했던 순서는 테이트 모던에서 열린 테이트 아시아-태평양 미술연구소와의 워크숍이었다. 한국에서 온 큐레이터 6명이 테이트 모던, 영국예술위원회 등 현지 예술계 관계자들과 한 테이블에 앉았다. 젊은 큐레이터들은 현대미술의 중심인 런던 한 복판에서 당당히 자신들의 프로젝트를 소개했고, 한국 현대미술의 현주소로부터 예술에 있어 큐레이터의 역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화가 오갔다. 독일 출신인 화이트채플 갤러리의 허먼 센터장은 한국 예술의 역사적 역할에 대해 궁금해 했다. “분단과 통일을 겪으며 독일 예술이 요구받았듯, 한국 예술 역시 사회의 집합적 정체성(collective identity)과 정신적 상처(trauma)를 보듬는 촉매적(catalytic) 역할을 요구받지 않느냐”는 질문이었다. 고원석 큐레이터는 그에 대한 대답을 한국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서 찾았다. “독재 붕괴와 민주주의 성립, 전통의 파괴와 자본의 권위화, 단기간에 이뤄진 이 복잡한 과정을 지켜본 새로운 세대의 예술가들에게 근대의 문제는 관심 밖이다.”




“현대미술 살리려면, 제멋대로 놀게 둬라”


테이트 아시아-태평양 미술연구소의 이숙경 큐레이터는 “한국에서 ‘미술도 K-pop처럼 집중 지원해 키우자’는 식의 얘기를 들으면 깜짝깜짝 놀란다”며 예술에도 경제 논리를 적용하려는 한국 사회의 조급증을 지적했다. “자원을 집중 투입한다고 단기간에 ‘미술계의 싸이’를 만들 수는 없으며 그런 산업적 접근은 예술가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고원석 큐레이터는 “한국 대학들이 몸집을 불리는 과정에서 인구나 시장 규모에 비해 너무 많은 예술가와 큐레이터를 생산했다. 공급은 많고 수요는 적어 직업적 안정성도 깨졌다”고 했다. 이숙경 큐레이터는 “너도 나도 석·박사를 한다. 과잉이다. 한국의 젊은 예술인들도 나라 밖으로 눈을 돌려 길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테이트 모던의 매튜 게일 전시 부문장(Head of display)은 “예술에 있어 큐레이터의 창조적 역할은 무엇인지 함께 얘기해보고 싶다”고 했다. 비영리전시공간협의회 사무국장 박정연 큐레이터는 “이미 주류인 예술가와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예술가를 발굴해 함께 성장하는 멀고 험난한 길을 가는 것”이라고 답했다. 런던 에이전시 갤러리의 베아 데 수자 관장은 “1990년대 런던 예술판은 다루기 힘들고 제멋대로인(unruly) 사람들로 넘쳤고, 거기서 새로움이 탄생했다. 한국 예술판은 제멋대로 놀려는 사람보다 잘 훈련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브리스톨 아놀피니 미술관 전 관장인 톰 트레버 역시 “제멋대로(unruliness)에 방점을 찍고 싶다”고 했다. “함께 땅바닥에 구르고 서로 부딪칠 때 에너지가 넘쳐흐르고 정말 뭔가 생겨났다. 예술은 그런 충돌 속에서 꽃 핀다.”


테이트 아시아-태평양 미술연구소와의 워크숍테이트 아시아-태평양 미술연구소와의 워크숍

런던을 ‘현대미술의 심장’으로 만든 힘은 어디서 온 걸까


가까이에서 본 영국은 ‘변하지 않는 나라’다. 사회 모든 분야에 ‘시스템’이 갖춰져 있고, 때로 답답하게 느껴질 만큼 모두가 그 시스템과 규칙을 지키면서 사회를 유지해나간다. 매우 안정적이고, 급격한 변화가 일어날 여지는 적다. 파괴와 파격으로 가득해야 할 것 같은 현대미술의 흐름은 영국과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런던은 어떻게 ‘현대미술의 심장’으로 불리게 된 것일까. 런던 큐레이토리얼 워크숍 프로그램을 통해 그 실마리를 조금은 들여다 본 것 같다. 예술가의 영혼까지 수집하는 ‘테이트 라이브러리’의 집요함이 그 첫 번째다. 전통과 역사를 축적하고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는 새로운 창조도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제멋대로 구르고 제 맘대로 놀면서 서로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에너지”를 강조하는 갤러리스트와 큐레이터들의 태도 역시 또 하나의 힌트다. 규격에 맞춰 복제품을 생산해내는 교육과 예술 환경, 트렌드에 따라 비슷비슷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예술계 분위기에서는 새로운 창조 역시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제공]이태훈

이태훈 /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조선일보 문화부에서 미술과 종교 분야를 담당했다. 무라카미 다카시, 장 샤오강, 피터 린드버그, 김종학 등을 인터뷰했고, 국내외 전시와 아트페어를 취재하고 기사로 썼다. 현재 영국 연수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