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시장의 중심은 자본의 줄을 타고 옮겨 다니며 한 번 형성된 시장은 그 주인 자리를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 뉴욕, 런던과 함께 현재 아시아 현대미술시장의 중심지는 홍콩이 그 교두보 역할을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서구의 유명 갤러리들은 홍콩에 분점을 내고 있으며, 아트 바젤은 2002년 미국 마이애미 진출에 이어 2013년 아시아 진출지로 홍콩을 선택했다. 이에 맞추어 홍콩 정부 또한 문화예술 산업에 아낌없는 지원을 쏟는 등 지금 홍콩에서는 아시아 현대미술시장의 안방 주인이 되기 위한 많은 변화와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아트바젤’이라는 새 옷으로 갈아입고 올해 첫 선을 보인 ‘아트바젤 홍콩(Art Basel Hong Kong)’을 들여다보면서 왜 홍콩이 아시아 현대미술시장의 중심지로 선택 받았으며, 어떠한 과정을 통해 성장해 나가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5월 22일부터 26일까지 열린 제1회 ‘아트바젤 홍콩(Art Basel Hong Kong)’은 홍콩이 뉴욕, 런던에 이어 명실공히 세계미술시장 중심이 된 것을 확인해 준 큰 행사였다.
홍콩아트페어(Art HK)는 이미 2008년에 시작했지만, 작년에 아트바젤이 이 아트페어의 지분을 60% 인수하면서 한 단계 더 그 수준이 업그레이드 되었다. 세계 최고의 아트페어인 ‘아트 바젤’의 이름이 붙은 후 첫 선을 보인 올해 행사에는 가고시안(Gagosian), 화이트큐브(White Cube), 페이스(Pace), 제임스 코헨(James Cohan), 페로탱(Perrotin) 등 세계 35개국에서 유명 갤러리 245개가 참여해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참가 갤러리와 작가들 수준은 물론, 찾아오는 관람객까지 바젤(Basel), 프리즈(Frieze), 아모리(The Armory Show) 등 서양의 내로라하는 아트페어에 뒤지지 않는 국제아트페어로 우뚝 섰다. 아시아의 주요 컬렉터들 뿐만 아니라, 유럽의 유명 컬렉터와 미술관 관계자들도 여럿 볼 수 있었다.
최근 홍콩 미술시장의 분위기가 뜨거운 이유로는 우선 세계 미술시장 호황의 영향을 꼽을 수 있다. 이번 아트바젤 홍콩이 열리기 직전인 5월 둘째 주와 셋째 주 뉴욕에서 열린 옥션위크(Auction Week: 뉴욕 크리스티와 소더비에서 인상파/근대미술 경매와 현대미술 경매로, 가장 큰 세일이 이루어지는 경매 주간)에서는 여러 신기록들이 세워져, 미술품 구입의 열기가 식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뉴욕 크리스티에서 열린 현대미술 이브닝 경매에서는 하룻밤에 낙찰총액 4억9500만달러(약 5500억원)를 거둬 들여 미술경매 역사상 최고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출품된 작품 70점 중 단 4점만이 판매에 실패했다.
이번 크리스티와 소더비 두 경매를 통해 잭슨 폴록, 바넷 뉴먼, 로이 리히텐슈타인, 장-미셸 바스키아, 게르하르트 리히터 등 현대미술 슈퍼스타들이 작가 최고기록을 갱신했다. 이런 결과로 아직 세계미술시장이 들떠 있을 때 아트바젤 홍콩이 열렸으니, 미술 애호가들은 더욱 흥분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세계 미술업계는 이미 아시아, 특히 중국으로 눈을 돌린 지 오래다. 중국은 미국에 이은 세계 2위의 경제강국인데다가, 미술시장으로도 미국, 유럽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국제미술시장 분석기관인 아트프라이스닷컴(artprice.com)의 집계에 따르면 이미 중국은 2010년부터 작년까지 3년 연속으로 세계 미술경매 낙찰총액 점유율 1위 국가이다. 중국의 미술시장 정보사이트인 아트론(Artron)이 운영하는 AMMA의 자료에 의하면 중국에서는 지난 한 해 동안 14만9509점의 작품이 경매로 팔려 모두 50억6800만 달러의 낙찰총액을 거뒀다. 2011년보다는 다소 수그러든 수치이지만 2008년 이후 꾸준히 상승해왔다. 이는 전세계 경매낙찰작품 총액의 40% 가 넘는 액수다. 세계 미술업계가 중국을 향해 핸들을 돌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탈리아 콘티뉴아(Continua) 갤러리의 디렉터 마리오 크리스티아니(Mario Christiani)는 “베이징에 우리 갤러리가 있어서 2009년부터 홍콩아트페어에 참여하고 있는데, 아트바젤이 인수한 후 아트페어의 질이 더 좋아진 것을 느낄 수 있다. 홍콩 지역을 비롯해 아시아의 컬렉터들이 우리에게 중요한 고객인데, 홍콩은 아시아 손님들이 오기에 좋은 위치여서 외국 갤러리들에게 중요한 곳이다. 게다가 작품 거래에 대한 세금 혜택이 있고 모든 것이 모여 있어 사업을 하기에 좋기 때문에 미술시장으로서 큰 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홍콩은 우선 미술 비즈니스를 하기 쉬운 곳이다. 홍콩은 미술시장 강국으로 우뚝 선 중국의 이점을 갖고 있으면서 중국 본토와 달리 미술품 거래에 면세 혜택이 있고, 세계 주요 금융기관이 들어와 있다. 또한 영어가 통하기 때문에 외국기업이 비즈니스를 하기에 훨씬 쉽다. 이런 이유로 홍콩에서 미술시장이 빠른 속도로 성장했고, 여러 면에서 뉴욕과 런던의 미술시장과 비교되곤 한다.
중국 본토에 비해 현대미술 거래가 월등히 많은 것도 홍콩의 장점이다. 중국의 미술시장 규모가 크다 해도, 본토에서 이루어지는 미술경매는 절반 정도가 전통 서화와 골동품이다. 이는 중국 미술애호가들이 전통 서화를 서양 현대미술보다 좋아하는 경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크리스티와 소더비 등 외국 경매회사들이 단독으로 중국 본토에서 경매를 하는 것이 중국법으로 사실상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에 비해 홍콩에서는 소더비와 크리스티를 비롯해 외국 경매회사와 갤러리들이 자유롭게 사업을 할 수 있다. 서울옥션도 2008년부터 홍콩지사를 두고 자체 경매를 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현대미술 작품이 홍콩에서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는 것이다.
해외 갤러리들이 홍콩을 택한 또 하나의 이유는 지리적 특성상 아시아 컬렉터들에게 접근하기 쉬운 곳이기 때문이다. 아트페어가 열린 5월 넷째 주 홍콩에서는 한국 미술관계자들을 빠짐없이 다 볼 수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트바젤 홍콩을 맞아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아트 투어단을 꾸려 찾아오기도 했다.
이미 홍콩은 음식과 쇼핑의 천국으로 한국, 대만, 일본인들에게 관광도시로서 인기가 높은 곳이다. 게다가 아트바젤 홍콩이 열린 장소인 ‘Hong Kong Convention & Exhibition Center’에서 멀지 않은 상업 중심가인 센트럴 지역에는 이미 2009~2010년부터 가고시안, 화이트 큐브, 벤 브라운, 펄램, 레만 머핀, 페로탱 등 뉴욕, 런던, 파리에서 1~2위를 다투는 세계적인 갤러리들이 들어와 있었다. IFC 빌딩이나 랜드마크 몰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빌딩에는 동서양 현대미술작가들이 작업한 우수한 공공미술작품들이 들어서 있다. 안그래도 놀거리와 먹을거리가 풍부한 홍콩에 미술애호가들의 눈을 만족시킬 수 있는 볼거리까지 가득하니, 아시아 미술애호가들의 발길을 홍콩으로 돌리기에 충분하다.
홍콩에서 미술작품이 무작정 잘 팔리는 것은 아니지만, 미술시장 선진도시의 성격을 점점 갖춰가고 있다. 홍콩에 지점을 두고 있는 한 미국 갤러리의 딜러는 “예년에 비해 컬렉터들이 신중해 진 것을 느낄 수 있다. 여러 번 방문해 작품을 보고 또 보고, 작가에 대해 묻고 또 묻고 나서 구매를 결정한다. 그래서 판매까지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이런 점에서 오히려 성숙한 미술시장의 참된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홍콩은 아시아 지역의 갤러리와 경매회사들에게도 중요한 장소다. 동서양 미술계가 앞다투어 이 곳으로 들어오고 있으니, 우리 작가들을 세계에 소개하는 곳으로써도 중요하다. 이번 ‘아트바젤 홍콩’에도 국제, 313아트프로젝트, 인, 학고재, PKM, 스케이프 등 국내 갤러리 11개가 참여했다.
국내 미술시장이 급성장하던 2006~2007년에는 젊은 작가들이 국내에서 유명해지기 전에 홍콩 경매에서 먼저 알려져 한국에서 인기를 끄는 동인이 되기도 했다. 홍경택 작가가 좋은 예이다. 이번 아트바젤 홍콩 기간 중에 열린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그의 대작 ‘연필 I(Pencil I)’이 663만 홍콩달러(약9억7100만원)에 낙찰됐는데, 이 그림은 지난 2007년 5월 같은 경매에서 당시 환율 기준으로 7억8000만원에 낙찰돼 당시에도 한국 작가 최고기록을 세웠었다. 당시 홍콩 경매를 계기로 국내에서 홍경택 작가에 대한 인지도가 급상승했었다.
아시아의 톱 컬렉터들 뿐 아니라 아시아에 살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컬렉터들이 홍콩을 찾는다는 사실 역시 중요하다. 2008년부터 홍콩에 지사를 두고 있는 서울옥션의 최윤석 이사는 “홍콩 경매를 통해 한국 작가를 해외에 직접적으로 소개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국내외 시장에서 거래되는 국내 작가의 저변을 넓힐 수 있다. 해외 고객과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에도 홍콩 경매가 큰 도움이 된다. 이를 통해 결국 국내 경매에도 도움이 되면서 선순환 구조를 형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옥션은 아트바젤 홍콩 마지막 날인 5월 26일에 경매를 했는데, 야요이 쿠사마, 이우환, 쩡 판즈, 펑 정지에, S.H. 라자, 램 쿠마 등 아시아 작가들의 작품을 내세워 낙찰률 65%에 낙찰총액 3643만 홍콩달러(약 53억원)를 기록했다. 여기에서 김환기의 ‘산월’이 140만 홍콩달러(약 2억 300만)에 한 대만 컬렉터에게 팔리기도 했다.
물론 홍콩이 아직 뉴욕과 런던에 비하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아트바젤 홍콩이 열리는 기간인 5월 말은 스위스에서 열리는 6월의 아트바젤과 기간이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아 ‘최고 작품’을 다 선보이기에는 무리가 있다. 아트바젤 홍콩을 찾은 한국의 한 컬렉터는 “세계적 갤러리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작품은 가지고 오지 않은 것 같다. 최고의 작품은 곧 스위스에서 있을 아트바젤에서 풀기 위해 아껴놓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계미술시장은 이미 아시아로 방향을 전환하고 달려오고 있다. 특히 요즘처럼 우리 국내에 미술시장을 옥죄는 사건사고들이 많을 때에는 국제시장으로 돌파구를 찾는 것이 중요한데, 홍콩이 그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