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요코하마트리엔날레가 8월 4일 개막해 11월 5일까지 88일간 열렸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섬과 성좌와 갈라파고스.'기워드로 접속된 주제는 말 그대로 고립,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창조성, 독립성을 의미하는데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분쟁과 경제문제 등 다양한 가치를 충돌하는 양상을 펼쳐놓았다. 3인의 공동감독(오사카 에리코, 가시와기 도시오, 미키 아키코)체제로 열린 이번 트리엔날레는 참여작가 수를 대폭 줄여 (약 40명(팀), 2014년 79명(팀)) 작가들이 전시공간을 충분히 확보했으며 집중도와 완성도를 높였다는 평가다. 그 접속과 고립의 현상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전후 일본 사회에 미술이 제도로서 정착하는 데 기여해 온 전시 형태의 예술 지원 제도의 역사는 짧지 않다. 예를 들어 국가가 <문화청 예술제>를 주최하기 시작한 것은 1946년, 다시 말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바로 이듬해였다. 한편, 국외를 향해 점진적으로 시야를 넓혀간 <일본국제미술전(도쿄 비엔날레로 명칭 변경)>은 마이니치 신문사와 일본국제미술진흥회 공동 개최로 1952년 시작되었다. <도쿄 비엔날레>는 1990년 제18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지만,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을 제1회로 하는 새로운 <도쿄 비엔날레>를 구상하는 움직임에 대한 소식이 구체적으로 들려오고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요코하마 트리엔날레는 역사적인 국제미술전의 맥락, 그리고 올해에도 5개 도시에서 진행 중인 지역예술제 유행과는 다른 계기로 시작되었다. 1997년 외무성이 국제미술전 정기 개최에 대한 방침을 결정했고, 국제교류기금(Japan Foundation)의 검토를 통해 개최지로 선정된 것이 요코하마다. 2001년 9월부터 67일간 진행된 제1회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메가 웨이브: 새로운 통합을 향하여>는 약 3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나아가 2004년에는 요코하마시가 ‘창조도시정책’을 발표했고, 트리엔날레는 이 정책의 중심 프로젝트가 되었다.
제1회로부터 4년이 지난 2005년에 개최된 제2회 요코하마 트리엔날레는 디렉터가 바뀌는 논란 속에 치러졌다. 처음 디렉터로 지명된 건축가 이소자키 아라타(磯崎新)는 세계 각국의 미술재단에 재정적인 지원을 요청, 각 재단이 건축가에게 의뢰해 파빌리온을 세우고, 재단이 선정한 아티스트가 전시를 하는‘큐레이터 부재’의 새로운 국제전 〈World Atlas of Contemporary Art〉 안과 제 2안 〈Imagine or Imaginaire de l’homme〉가 연이어 주최 측에 의해 거부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결국 이소자키가 디렉터 직을 사퇴, 개막일을 약 9개월 남긴 시점에 아티스트 가와마타 다다시(川俣正)가 후임으로 취임하게 된다. 가와마타가 3인의 큐레이터와 함께 이끈 제 2회 <아트서커스: 일상으로부터의 도약>은 그 실험성을 평가받았다. 2008년의 제 3회 〈Time Crevasse〉는 디렉터인 큐레이터 미즈사와 쓰토무(水沢勉)를 비롯 다니엘 번바움,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등 해외 스타 큐레이터들이 참가했고, 현재까지 최다 관객인 약 55만 명을 동원하는 기록을 세웠다. 한편, 2011년의 제 4회 〈Our Magic Hour: 세계를 어디까지 알 수 있을까〉를 주제로 한 제 4회 행사는 기자회견이 열린 당일 오후에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하는 악재 속에서도 무사히 개최되었다. 그리고 아티스트 모리무라 야스마사(森村泰昌) 1인 예술감독 체제로 전환해 미술계 화제가 된 제5회는 〈화씨 451의 예술: 세계의 중심에는 망각의 바다가 있다〉라는 타이틀로 열렸다.
지난 8월 4일, 요코하마 미술관 관장 오사카 에리코(逢坂恵理子)와 부관장 가시와기 도시오(柏木智雄), 팔레 드 도쿄의 수석 큐레이터를 지내고 현재 베네세 아트 사이트 나오시마 인터내셔널 예술감독인 미키 아키코(三木あき子), 3인의 공동 디렉터가 이끄는 제6회가 〈섬과 성좌와 갈라파고스〉라는 타이틀을 걸고 개막했다.
미술관 입구 기둥과 외벽에 설치된 약 800벌의 구명조끼와 구명 보트 15척. 〈Safe Passage〉(2016)과 〈Reframe〉(2016)을 합친 아이웨이웨이(艾未未) 작업의 볼륨과 색채, 단게 겐조(丹下健三) 특유의 권위적인 건축, 그리고 미술관 앞 광장의 분수 앞에서 옷을 벗고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시리아 난민들이 사용한 뒤 버린 구명조끼들을 그리스 레스보스 섬에서 수집한 것이라는데, 작가는 “예술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가교가 되어,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게 하고 커뮤니케이션을 심화하고 확장시킨다”라는 메시지를 영상으로 전해왔다.
메인 전시장인 요코하마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면, 넓은 중정이 위치한 건축적 특성을 살린 전시장 구성이 눈에 들어온다. 중앙에는 일본 신사에 걸리는 금줄 형태를 띤 인도네시아산 대나무 조형물인 조코 아비안토(Joko Avianto)의 〈The border between good and evil is terribly frizzy〉가 설치되었고, 전시장 입구와 출구 역할을 하는 좌우 계단의 한 편에는 섬을 테마로 한 MAP Office의 설치작업이, 그 맞은편에는 철학, 수학, 해부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청한 연속 공개토론회인 요코하마 라운드의 자료가 전시되었다.
올라퍼 엘리아슨의 〈Green light – An artistic workshop〉은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이민자와 난민 출신 참여자들의 모습이 식민주의 시대를 연상시킨다는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이번에는 연결성과 고립이라는 트리엔날레의 주제하에 일반시민의 참여를 전제로 전시되었기에 아티스트의 사회적 역할 변화와 사회적 통합(inclusion)을 제안하는 작가의 의도가 있는 그대로 잘 전달된 듯하다. 유럽이나 중동의 국가들과는 달리, 난민 문제나 인종이나 종교 문제와 시민들의 일상 생활 사이에 거리가 있는 일본이라는 배경이 해외 작가들의 정치사회적 문맥의 작품을 또 다른 거리와 각도에서 다시 보게 하는 면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베트남의 프로펠러 그룹(The Propeller Group)과 멤버인 투안 앤드루 응우엔(Tuan Andrew Nguyen)의 개인 작업이 갖는 의미는 컸다. 특수한 젤 블록 안에서 베트남 전쟁에 사용된 소비에트의 탄환과 미국의 탄환을 충돌시킨 프로펠러 그룹의 〈AK-47 vs. M16〉(2015) 역시,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상에는 전쟁과 폭력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하는 작업이다. 그리고 작가들의 부모 세대에 해당하는 베트남 보트피플에 관한 역사적 자료들과 그들이 머물렀던 섬을 배경으로 미래를 그린 픽션이 교차하는 단편영화 〈The Island〉(2017)는 42분의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쉽사리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요코하마 미술관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이번에 일본에 처음 소개된 30대 작가들의 작업이었다. 중국과의 갈등이 끊이지 않는 신장 위그르 자치구에서 출생한 자오자오(Zhao Zhao)는 사막에 냉장고와 전선을 옮겨 설치한 뒤, 차게 식은 맥주를 꺼내 마시는 과정을 영상과 설치로 보여주었다. 배경이 된 타클라마칸 사막은 위그르어로 죽음의 바다란 뜻으로 한번 들어가면 돌아오지 못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실크로드는 이 사막의 가장자리를 지나는 길이었다고 한다. 중국에서 정치적인 발언이 갖는 위험성을 생각하면 자오자오의 이 불온한 유머에는 죽음의 바다로 뛰어드는 것과 맞먹는 용기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뉴욕에서 포스트인터넷 세대의 아티스트로 주목받고 있는 이안 쳉(Ian Cheng)은 프로그램에 의해 리얼타임으로 자동 시뮬레이션되는 가상 생태계를 그린 작업 〈Emissary Forks at Perfection〉(2015~2016)을 발표했다. 한번 사망했다 살아난 21세기의 인간과 신의 사자로 설정된 일본 개 시바견이 환경과 감정이라는 요인의 영향을 받는 닫힌 세계 안에서 ‘불안정하고, 불확실하고, 복잡한 애매모호성의 지평’ 너머로 변화해간다. 우연의 일치이지만, 자오자오와 이안 쳉이 각각 아이웨이웨이와 피에르 위그의 스튜디오에서 일한 경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접속성과 고립을 국가 단위로 생각하면 개국과 쇄국에 해당될 것이다. 막부 시대의 종말과 메이지라는 새로운 시대로의 변화 속에서 서양 문물에 대한 ‘개항’을 상징하는 도시 요코하마의 장소성에 주목하는 작업들도 선보였다. 미국 플리머스 출신 작가 샘 듀런트(Sam Durant)의 〈Pictures of Japanese American encounters, Commodore Perry’s voyage, the battle of Tsushima and the Portsmouth Treaty. Marching to the drumbeat of freedom, from cherry blossoms to container ships〉는 일본과 미국의 첫 만남에 관련된 역사적 자료들과 상징적인 오브제들을 재배열한 복합적인 작업으로서, 청교도와 미 대륙을 다룬 전작의 연장선에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요코하마에서 수학한 다무라 유이치로(田村友一郎)는, 대형우편선 히카와마루, 해상안보자료관, 세관자료 전시실, 외국인 묘지 등 요코하마의 역사적인 장소를 모르스 신호로 연결해, 각각에 얽힌 기억과 장소를 별자리처럼 잇는 작업 <Γ(감마)좌>를 제작했다.
히로시마에 거주하는 중견작가 야나기 유키노리(柳幸典)는 개항기념관의 지하실을 활용해, 일련의 핵폭탄 실험과 2차대전의 패전, 승전국인 미국 주도로 만들어진 일본헌법 9조 등에 대해 폐허의 이미지로 문제를 제시하는 신작을 발표했다. 명백한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는 공간임엔 틀림없지만, 북한의 위협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을 핵무장시켜야 한다는 미국 내의 목소리가 보도되는 현시점에서는 역설적으로 읽히는 면도 없지 않았다.
동일본대지진과 망각에 대한 저항을 테마로 지난 4월호에서 소개한 하타케야마 나오야(畠山直哉)와 ‘Don’t Follow the Wind’ 프로젝트 팀의 작업은 현지 관객들이 아직도 몸으로 기억하고 있는 시간을 생생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Don’t Follow the Wind 프로젝트에 참여한 12팀의 아티스트는 2015년 3월 11일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주변의 귀환곤란지역 내에 작품을 설치하고, 그 지역에 출입이 다시 허가될 때까지 무기한 진행되지만 ‘볼 수 없는’ 전시를 계속하고 있다. 이번에는 일본 국내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위성전시의 형태로, 해당 지역 출신 세 가족이 생활 도구들로 만든 헬멧을 쓰고 감상하는 360도 영상을 통해 아직 갈 수 없는 전시를 체험하게 하는 작품 〈A Walk in Fukushima〉(2016~2017)와 미래의 입장권 등을 전시했다.
우지노 무네테루(宇治野宗輝)는 세부 배선 하나 하나까지 직접 설계한 〈Plywood Shinchi〉(2017)를 발표했다. 트레이드 마크인 미캐니컬 키네틱 사운드 퍼포먼스(mechanical kinetic sound performance)와 영상 프로젝션으로 구성된 작품 안에서 작가는 20세기 후반의 균질화된 소비사회인 도쿄 변두리라는 출생 배경이 자신의 음악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하며 자신을 ‘미국 경유의 미래파’라고 정의했다. 그와 한 공간을 공유한 독일의 크리스티안 얀코프스키(Christian Jankowski)는 아티스트 역시 세상의 관점을 유연하게 한다는 의미에서는 마사지사와 같다며, 현지 마사지사들을 동원해 요코하마 시내의 공공 조각들을 주물러 그들 안의 기의 흐름을 현재와 연결시킨다는 콘셉트의 신작 〈Massage Masters〉(2017)를 선보였다. 기발한 아이디어이지만 함께 전시된 폴란드 국가대표 역도선수들이 바르샤바 시내의 역사적 인물상을 들어올린 〈Heavy Weight History〉(2013)에 비해, 작업의 결과물이 갖는 ‘힘’이 부족해 보여 아쉬웠다.
이번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참여작가 명단이 발표되었을 때 많은 이를 놀라게 했던 것은 작가 수의 ‘축소’였다. 1회의 109명, 역대 최소인 지난 회의 65팀(79작가)보다도 훨씬 적은 약 40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는 각 작가가 여러 점의 작품을 전시함으로써, 작은 전시들의 집합체로서 구성된 국제전을 구상했기 때문인데, 결과적으로는 각 작가가 좀 더 넓은 공간을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특히, 빨간 벽돌 창고라는 이름을 가진 관광 명소인 아카렌가소코 1호관은 접근성이 떨어지는 서브 전시장으로 인식되기 쉬운 장소적인 한계를 넘어, 전시 공간의 집중도와 완성도에 있어 호평을 받았다. 우지노와 얀코프스키 이외에도, 젊은 작가 고니시 토시유키(小西紀行)가 회화 연작 〈A Group of Solitude〉에서 보여준 햇살 아래 맨살을 드러낸 회화의 존재감이나, 퍼포먼스로 잘 알려진 아이슬란드의 라그나르 카르탄슨(Ragnar Kjartansson)의 9채널 비디오의 합주 〈The Visitors〉 (2012) 등이 좋은 예가 되겠다.
예정대로라면, 제7회 요코하마 트리엔날레는 올림픽과 더불어 전국의 관심이 도쿄에 쏠리는 2020년에 개최된다. 앞에서 언급한 도쿄 비엔날레가 실현된다면, 다른 지방 도시들과는 달리 수도권에 속하는 요코하마의 입지는 운영면에서 적지 않은 부담 요인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현존하는 일본 최고의 국제전인 요코하마 트리엔날레가 어떠한 접속성과 고립을 통해 자신만의 색깔을 제시해 나갈 것인지 기대된다.
※ 이 글은 월간미술 2017년 10월호(393호)에 먼저 수록되었으며,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월간미술과 콘텐츠 협약을 맺고 게재하는 글입니다.
마정연은 도쿄예술대학의 박사학위논문을 기초로 한 저서 <일본 미디어아트 비평사> (ARTES PUBLISHING, 2014)의 출간 이후, 타마미술대학 JSPS 특별연구원, 국립신미술관 객원연구원, 월간미술 도쿄통신원으로 활동 중이다. 국제심포지엄 <미디어와 예술 사이: 야시아 라이하트의 1960년대 전시기획을 읽다> (2015)를 기획했고,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6 등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