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 행사

비디오아트만을 위한 아트페어 루프바르셀로나(LOOP Barcelona)에 가다

posted 2015.10.08

올해로 12회를 맞은 비디오아트 전문 아트페어 루프바르셀로나를 찾았다. 루프바르셀로나는 비디오아트가 미술시장에서 거래되기 어렵디는 세간의 편견을 꺠고, 특별한 프로그램과 기획력으로 세계적 비디오아트페어가 되었다. 호텔 공간을 쇼룸 삼아 펼쳐지는 '루프 아트페어' , 전세계 영상예술 전문가들의 네트워킹 '루프 스터디' , 그리고 공공미술관과 학교, 병원, 거리 등 도시 곳곳에서 펼쳐지는 비디오아트 전시 '루프 페스티벌' 등으로 바르셀로나는 영상 예술 축제 분위기로 물든다.




2015년 5월 28일부터 6월 6일까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루프바르셀로나가 개최되었다. 루프바르셀로나는 올해로 12회를 맞은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비디오아트만을 다루어 온 아트페어다. ‘미술시장에서 비디오아트를 위한 시장을 과연 만들 수 있는가?’는 필자의 오랜 화두였는데, 그 이유는 비디오아트는 다른 미술장르에 비해 복제가 가능하고 기술력에 의해 더 빨리 낡은 것이 되곤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비디오만을 전문으로 하는 아트페어가 많지 않고, 개최를 한다고 해도 갤러리들의 참여는 저조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리스크를 안고 아트페어가 개최되고, 12년간 매년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2015 루프 바르셀로나 '루프 페스티벌' 행사 장면2015 루프 바르셀로나 '루프 페스티벌' 행사 장면

확장된 프로그램, 비디오아트의 판로 개척


이 축제의 공동디렉터인 에밀리오 알바레즈(Emilio Alvarez), 카를로스 듀란(Carlos Duran)은 이 행사의 공동설립자이자, 오늘날까지 공동 총괄감독을 역임하고 있는 이들이다. 공동 디렉터인 에밀리오 알바레즈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미술작품을 수집하던 차에 비디오아트가 눈에 들어왔고, 비디오아트만을 전문으로 하는 아트페어를 개최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에 미치자 실행에 옮겼다고 한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그가 성공적으로 오랜 기간 동안 비디오아트페어를 개최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첫 번째는 유럽에 넓게 펴져있는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 두 번째는 비디오아트의 미술시장으로의 가능성을 예상하고 전문가 시스템을 구축하며 꾸준히 축제를 발전시켜갔다는 점, 세 번째는 비디오아트가 판매될 수 있는 다양한 통로를 개척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징은 비디오아트페어의 프로그램 구성에서도 드러난다. 2015년 6월 6일에 진행한 에밀리오 감독과의 인터뷰에서 비디오아트페어를 시작으로 '루프 페스티벌', '루프 스터디' 등 총 세 개의 프로그램으로 확장되었다고 말한바 있다. 즉, 루프 바르셀로나는 아트페어를 중심으로 시민이 공공장소에서 비디오아트를 무료로 감상할 수 있는 '루프 페스티벌'과 전문가들의 심화 토론, 대중 강좌, 교류 목적을 띠고 있는 '루프 스터디'로 프로그램 기반이 다져지게 되었다.


왼쪽) 2015 루프바르셀로나 '루프 아트페어'  행사 전경 오른쪽) 2015 루프바르셀로나 '루프 아트페어'  행사 전경왼쪽) 2015 루프바르셀로나 '루프 아트페어' 행사 전경
오른쪽) 2015 루프바르셀로나 '루프 아트페어' 행사 전경

쇼룸이 된 호텔, 루프 아트페어


먼저, 2015년에 개최된 '루프 아트페어'는 23개국 총 45개 갤러리에서 45점의 작품이 소개되었다. 아트페어는 6월 4일 오프닝을 시작으로 6월 6일에 공식적인 일정을 마감한다. 마지막 날인 6월 6일에는 2015년 루프 상으로 선정된 작품의 갤러리 룸에 스티커를 붙여 수상을 알린다. 2015년에는 치웬 갤러리(Chi-Wen Gallery)에서 소개한 치엔 치 창(Chien-Chi Chang) 작가의 "차이나타운(China town)"이 선정되었다.


이 아트페어가 다른 아트페어와 다른 독창적인 부분은 아트페어의 장소가 전시장이 아닌 호텔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매년 카탈로니아 람블라스 호텔 1층 및 지하 전체를 대관하여 한 객실에 한 갤러리의 작품이 소개된다. 호텔의 객실을 활용한다는 점이 상당히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의 호텔 공간을 활용하여 예술과의 접점을 만들고, 관심이 없으면 쉽게 볼 수 없는 비디오아트를 호텔 손님들에게 제공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온 게스트 및 전문가들이 호텔에 머무를 수 있도록 호텔 가격을 할인해주는 이벤트도 함께 진행한다. 이러한 장점은 루프 바르셀로나에 찾아온 게스트 및 갤러리 관계자, 수집가들이 자연스럽게 3일간 아트페어에 집중하면서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서로 교류를 할 수 있는 장치로 제공된다.


한국의 대부분의 아트페어가 전시장을 대관하여 부스와 가벽을 설치하는데 머무는데 비해 호텔 아트페어는 상업과 이어지는 또 다른 통로를 제공한다는 데 의미가 크다고 본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싱글채널 비디오아트로 약 100인치 정도의 똑같은 포맷의 스크린과 HD급의 프로젝터로 제공된다. 관객들은 침대에 누워서 보거나, 의자에 앉아서 보기도 하고, 바닥에 길게 누워서 자연스럽게 작품을 감상하기도 한다. 기존 아트페어 전시장에서는 시간예술을 보기가 쉽지 않았던 것과 다르게 루프 아트페어의 1층 전시장은 확실히 어두운 화면에서 제공되는 호텔의 비디오룸으로 인해 작품을 집중적으로 감상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2015 루프바르셀로나 '루프 페스티벌'  전시 전경2015 루프바르셀로나 '루프 페스티벌' 전시 전경

비디오아트의 세계적 전문가들, 루프 스터디


필자가 공식적으로 참여하게 된 프로그램인 '루프 스터디'의 '전문가 미팅'(Professional Meetings) 프로그램은 전세계 비디오아트 전문가들이 모여 그 해의 주제를 중심으로 리더가 세부 주제를 제시하고, 패널들이 그 세부 주제를 중심으로 모여 그 분야에 관해 토론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2015년 루프 바르셀로나의 주제는 총 세 가지로 이루어졌다. 첫째는 '비디오 수집하기는 무엇인가?'(WHAT ABOUT COLLECTING VIDEO ART?), 둘째는 '무빙 이미지 배급에 관한 사안'(ISSUES ON DISSEMINATION OF MOVING IMAGE), 셋째는 '이미지들의 뒤: 사운드'(BEYOND THE IMAGES: SOUND)가 그것이다.


카사 아시아(Casa Asia) 예술감독인 메네네 그라스(Menene Gras Balaguer)의 주재 하에 진행된 ‘디지털 시대의 비디오아트 전송과 유통의 역설들’에서는 점점 변해가는 비디오아트에 관한 다양한 전송 방법과 유통의 과정, 애로 사항들을 살펴보는 시간이었다. 독일 모멘툼(Momentum) 갤러리 디렉터인 레이첼 리츠 볼로흐 박사(Dr. Rachel Rits-Volloch)의 주관으로 진행된 ‘두 가지 길: 협력과 탐구를 통한 발전적 수집들’에서는 각 단체 및 공간에서 진행되고 있는 비디오아트의 수집과 협력의 방법들을 함께 고민해보는 토론이었다.


또한 전문가 미팅 프로그램은 개인적으로 너무나 자극이 되는 시간이었다. 전 세계의 비디오아트 전문가와 비디오아트를 논의하는 것도 행복했지만, 한국에서는 거의 대화 상대를 찾지 못해 담아두었던 주제와 의제들을 마음껏 물어보고, 담소를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의 대부분이 약 10여 년 이상 비디오아트 일을 해온 사람들이기에 그 논의의 깊이는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깊었다. 비디오아트 전문 채널, 비디오아트 전문 갤러리, 비디오아트 전문 콜렉터, 비디오아트 전문 큐레이터 등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비디오아트와 관련된 다양한 직업군과 대안 시장에 대한 논의들로 인해 왜 전문가들이 루프 바르셀로나를 찾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한국에서 약 16년간 현장에서 일을 해오며 받을 수 없었던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과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을 운영해오면서 부족했던 부분도 알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왼쪽)  2015 루프바르셀로나 옥외 전경2015 루프바르셀로나 '루프 아트페어'  행사 장면 (사진: 김장연호) 오른쪽) 2015 루프바르셀로나 '루프 스터디' 에 참여한 비디오아트 전문가들 (사진: 김장연호)왼쪽) 2015 루프바르셀로나 옥외 전경2015 루프바르셀로나 '루프 아트페어' 행사 장면 (사진: 김장연호) 오른쪽) 2015 루프바르셀로나 '루프 스터디' 에 참여한 비디오아트 전문가들 (사진: 김장연호)

비디오아트의 대중화, 루프 페스티벌


마지막으로 가장 길게 열리는 '루프 페스티벌'에 관한 글로 마칠까 한다. 루프 페스티벌은 5월 28일에 시작하여 6월 6일 폐막을 한다. 이 기간 동안 각 공간에서 특별 프로그램이 기획되고, 각 공간에서는 한 작가 또는 그룹전이 각 공간마다 진행이 된다. 바르셀로나 전역에서 진행되는 '루프 페스티벌'은 미술관, 갤러리를 넘어 도시 거리, 병원, 학교 등 다양한 공간에서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다. 전시는 카달루나 독립 미술관(Museu Nacional d’Art de Catalunya), 리세우 음악관(Cercle del Liceu, CCCB) 등 바르셀로나 전 지역 시립미술관, 국립미술관 등 다양한 공간에서 진행이 된다. '루프 페스티벌'은 위의 각 장소에서 싱글채널 비디오아트, 비디오설치, 사운드아트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공개되고 있다.


예를 들자면, 피카소 미술관의 1층 빈 공간에 피카소 미술관에 소장된 피카소 작품과 연관된 비디오아트를 설치한다. 1층 공간에 소개된 라우렌트 피에벳(Laurent Fiévet)의 작품 "케롯타의 방법(Carlotta’s Way)"(2014)은 알프레도 히치콕의 "현기증(Vertigo)"과 디에고 벨라스케즈(Diego Velazquez)의 "시녀들(Las Meninas or The Family of Philip IV)"이 오버랩 된 비디오아트이다. 이러한 고전미술과 현대미술의 접점을 찾는 기획을 통해 미술의 경계를 확장하고 관객과의 새로운 소통을 시도하려는 흔적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피카소 미술관에서 "시녀들"을 오마주한 피카소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 '루프 페스티벌' 일환으로 기획된 라우렌트의 작품과 피카소의 작품을 서로 비교하고 이야기할 수 있어서 재미있는 기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5 루프바르셀로나 '루프 페스티벌'  전시 전경2015 루프바르셀로나 '루프 페스티벌' 전시 전경

과거와 접점을 만들고 교류하는 영상예술


스페인에서는 비디오아트가 하나의 현대미술 개념을 넘어 다양한 미술공간과 고전 미술의 콜라보도 함께 기획되고 있었다. 한국의 고전미술과 근대미술, 현대미술이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미술문화에 아쉬움이 느껴졌다. 루프 바르셀로나를 통해 비디오아트페어로서의 측면뿐만이 아니라 비디오아트, 영상예술이 어떻게 과거의 미술과 접점을 만들고 교류할 수 있는지, 그 하나의 묘책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는 예술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루프 바르셀로나가 긴 시간동안 열리며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도 예술과 예술가에 관대한 사회적, 문화적 풍토에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다양한 미술관들의 전시기획 역시 오브제 미술, 콜라보, 회화, 비디오아트, 조각, 설치, 디자인, 타이포그래피 등 한 주제를 다양한 예술로 풀어놓는 식이였다. 어느 하나에만 귀속되지 않았다. 비디오아트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루프 바르셀로나에 한번 쯤 가보기를 추천한다. 상하조직이 아닌, 연결망으로 조직화된 21세기 새로운 인터넷 조직형으로 움직이고 있는 오늘날의 현대미술의 가능성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장연호 /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예술총감독

경희대학교에서 미디어예술학과 석사와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화연구학과 박사를 수료했다. 2005 년 ‘올해의 예술상’을 받은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2000~2015)을 기획하고 있으며, 홍대앞 미디어극장 아이공 디렉터, 2005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출강, “2012서울국제뉴미디어아트비엔날레” 평가위원을 지냈다. 이 외 주요기획으로“페미니즘 비디오 액티비스트 비엔날레”(2003,2005,2007,2010), “대안영화 오노요코 기획전”(2010), “마야 데렌 기획전”(2010), “샹탈 아커만 기획전”(2007),“빌 비올라 기획전”(2007) 등이 있으며, 대표 출판물로는 '디지털 영상예술 코드읽기'(2003), '카메라를 든 여전사'(2005), '한국 뉴미디어아트의 십년'(2010) 등을 기획하고 책임 편집했다. 약 20년간 진행되어온 한국 디지털 영상예술의 지형도를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