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신진 큐레이터들의 작은 플랫폼이 둥지를 틀었다.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국제문화교류 인력양성 프로그램 ‘넥스트 아카데미(NEXT Academy)’의 일환으로, 큐레이팅 그룹 미팅룸이 기획한 ‘미팅 인 아시아’(4. 6-25)가 개최됐다. 초대된 9명의 한중일 ‘젊은’ 강사들은 매주 아시아 권역 미술의 주요 이슈를 심층적으로 강의하는 한편, 비슷한 또래의 참여자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소통하며 서로의 리서치와 네트워킹을 도왔다. 아시아를 무대로 한 국제교류의 초석을 다지는 만남, ‘미팅 인 아시아’의 현장을 기획 연재로 소개한다.
미팅인아시아 주제와 기획의 어떤 점에 이끌렸는지? 미팅룸에서 처음 메일을 받고 스팸인줄 알았다. (웃음) 모 기관에서 컬렉션 위원으로 초대한다는 황당한 메일을 받은 직후여서 그랬다. 바로 미팅룸을 구글링해 봤는데, 비평계에서 활동하는 세계적 큐레이터들의 자료가 죽 뜨는 것을 보고 그 성향을 짐작했다. 진지하게 ‘아시아성’에 대한 주제를 탐구하고 있는 미팅인아시아 프로그램에 초대받아 영광이다. 파리에서 큐레이토리얼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여러 방향으로 리서치 중이었는데, 이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부끄럽지만, 한국 방문은 처음이다.
타이페이비엔날레, 상하이비엔날레 등 ‘매머드 급’ 미술행사에 참여해 왔다. 비엔날레라는 ‘관례화된’ 틀과, 당신이 젊은 기획자로서 갖는 신선한 아이디어 사이에서 모순을 느낀 적은 없었나? 한국에선 지난 광주비엔날레에 검열 사태가 벌어져 여러 젊은 큐레이터들이 절망감을 느꼈다. 한국과 같은 심각한 상황을 겪은 것은 아니지만, 나도 상하이비엔날레를 기획할 당시 비슷한 절망감을 느낀 적이 있다. 대만은 검열과 같은 문제로부터 매우 자유로운 편이다. 그런데 상하이비엔날레를 기획하면서는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라고 생각하게 될 정도로 공고한 제도적, 상업적 장벽을 경험했고 한동안 우울했다. 하지만 나중에 스스로 생각해 봤을 때, 내가 고민한 바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예술을 하는 것이기도 했다. 예술가들은 어떤 장애물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표현할 방법을 안다. 직접적으로 싸우는 식이 아니라 예술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예술적 아이디어와 목표를 성취한다.
큐레이터들이 리서치 플랫폼을 만들고 지속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작게 시작했지만 좋은 프로그램을 무기로 성공한 사례가 많다. 규모는 중요치 않으며, 프로그램만 좋다면 얼마든지 확장할 수 있다는 걸 아시아의 여러 국제교류 허브들이 증명하고 있다. 내가 일하고 있는 홍콩의 파라/사이트도 매우 작은 공간으로 출발했지만 현재는 국제적 평판을 가진 공간으로 성장했다. 홍콩의 아시아 아트 아카이브(AAA)도 15년 전에는 소박하게 시작했지만, 오로지 좋은 프로그램을 통해 성장해 현재 뉴욕에서도 운영되고 있으며 아시아 미술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아카이브 기관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미팅인아시아의 출발에 기대를 건다.
유럽에서 중국현대미술을 소개하는 일을 해왔다. 아시아와 영국을 잇는 네트워킹 과정에서 당신이 발견한 '아시아성'은 무엇인가? 나는 일정 부분 ‘영국인의 시각’에서 아시아에 대해 생각하는 것 같다. 내가 홍콩에 있을 때는 아시아에 대한 특별한 인식을 갖고 있지 않았다. 홍콩에선 아무도 내 중국인 정체성에 대해서 묻지 않았기 때문인데, 영국에서는 달랐다. 내가 정체성과 관련된 주제를 다루는 큐레이터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지금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서구의 모델로부터 벗어난 아시아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내 안에 가지고 있는 서구성은 무엇이며, 동서양 사이에서 홍콩이라는 도시가 갖는 정체성은 무엇인가?’ 이런 의문들을 풀기 위해서는 오로지 아시아의 이웃한 지역들과 대화를 가지는 것만이 해결책이다. 특히 동시대 미술 실천에 있어서 한국과 홍콩의 상황은 비슷한 점들이 많다. 그래서 서로가 나눌 수 있는 근본적 고민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큐레이터들이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지속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 추천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는가? 큐레이터 레지던시가 한 방법일 수 있다. 내가 영국에서 큐레이터 레지던시를 운영했을 때, 참여자들에게 위시리스트를 요청했었다. 그들이 어떤 기관과 일하고 싶고 어떤 관계자와 만나고 싶은지를 말이다. 때로는 무턱대고 ‘테이트모던에서 전시하고 싶다’는 것처럼 황당한 사항도 있었지만, 이 위시리스트를 실현해주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은 나 자신에게도 전혀 모르는 기관과 접촉하고 네트워킹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국제 큐레이터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경우, 보통은 2주면 그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고 본다.
미팅인아시아 프로그램에 초청받았을 떼, 어떤 주제와 관심사를 공유하고 싶었나? 나는 미술적 측면에서 바라본 중국의 독립영화에 대해 강의했다. 이번에 한국에 방문하면서, 개인적으로 ‘한국의 일제시대 영화와 현재의 영화는 어떻게 다른가?’라는 물음을 가졌었다. 한국 근현대사 속 분단과 해방에 대한 관심인데, 이는 아시아 국가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주제다. 아시아 국가들에서 일본의 침략을 받은 시기에 제작한 영화들은 아주 중요한 역사적 자료다. 단지 역사 연구에 그치는 주제가 아니라 아시아의 ‘현대성’을 찾는 일과도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근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우리에게 나타난 것이 아니다. 아시아의 역사적 배경 아래서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예술적 형식이 나타난 부분에 주목했고, 과거를 보며 현재의 논의를 이어가고자 했다.
베이징에서 예술기관 OCAT의 디렉터를 맡아 개관을 앞두고 있다. 비영리 리서치센터를 표방하고 있는 만큼 아시아 국제교류에 대해서도 비전이 있을 것 같다. 이제껏 한중일 교류가 여럿 있었지만 대부분 상업적인 영역에서 출발해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접근을 고민하고 있다. 미팅인아시아 프로그램과 같이 서로 만나서 협력하고 토론하는 활동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단기 워크숍을 조직할 생각이고, 미술 영역 외부에 있는 사람들을 많이 끌어들여 미술과 다른 분야와의 만남으로부터 새로움을 모색하고 싶다. 내가 주목해 온 독립영화나 영상 작업의 매력 역시 기존 미술 영역의 안과 밖을 넘나드는 자유로움, 그리고 대중을 끌어들일 수 있는 힘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중을 오가며 교류와 연구 활동을 해왔다. 앞으로 중국 진출을 바라보는 예비 기획자에게 해줄 이야기가 있다면?
양국 미술 교류 상황을 지켜봤을 때 개선해야 할 점이 있다면? 중국 현지에서 열리는 국제교류전은 보통 3~7년 장기적으로 준비된 후 열리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 현장에 계신 분들은 1~2년 안에 결과를 원하시는 경우도 많더라. 외교 차원에서 보다 장기적으로 준비될 수 있었으면 하고, 여러 지원도 늘어난다면 정말 좋겠다. 또 국제교류 전시에서는 상대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작가 위주로 소개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젊은 작가에 대한 관심도 아쉽다. 덧붙여 미팅인아시아에 제안하고 싶은 점은, 동아시아를 아우르는 프로그램이니만큼, 한자 문화권에서 통용될 수 있도록 이름이나 명칭에 한자를 병기해 주는 것은 어떨까?
미팅인아시아 프로그램을 처음 제안 받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수년 전부터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교류 전시에 참여했고, 양국 미술씬을 지켜봐 왔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독립큐레이터 입장에서 본 일본의 상황 알려주고 싶었다. 동시에 미팅인아시아는 ‘아시아’라는 큰 화두에 대해 스스로 되짚어 볼 기회가 되었다. 사실 일반적으로 현대미술을 생각할 때 머릿속에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미국과 유럽이 아닐까? 근래 들어 뉴욕현대미술관이나 테이트모던이 아시아를 포함해서 보다 넓은 지역으로 관심을 확장하고 그 역사를 재해석하는 움직임 등이 있는데, 그들이 말하는 역사에는 누락된 것도 많을 것이다. 이제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역사는 그런 거대담론의 역사 말고, 각각 따로따로 생각하는 작은 역사들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미팅인아시아와 같은 기회를 통해 논의 하면서, 이제 ‘아시아 중심으로 생각할 수 있는 시대가 오는가?’라는 물음을 스스로 던져봤다.
큐레이터들의 고민을 이어갈 수 있는 웹사이트를 계획하고 있고 그 방향도 고민 중이다. 개인적으로 주목하고 있는 일본의 네트워크 플랫폼이나 아카이브를 소개한다면? 3.11 대지진 후에 만든 재난에 관련된 아카이브가 있다. 미디어와 관련해서는 센다이 미디어테크가 센터 포 리멤버링 3.11을 운영하고 있다. 한편으론 동북대학교에서 같은 주제로 데이터 위주의 아카이브도 운영하고 있다. 현재 이 아카이브를 미술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데이터 아카이브는 어떻게 쓰는지가 정말 중요하고 조심해야 할 부분도 많은데, 두 곳 모두에 관여하면서 뭔가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 중이다.
관련링크
파라사이트 : http://www.para-site.org.hk
아시아 아트 아카이브(AAA) : http://www.aaa.org.hk
OCAT(Overseas Chinese Town Contemporary Art Terminal) : http://ocat.org.cn
센다이 미디어테크 : http://www.smt.jp/en/
센터 포 리멤버링 3.11 : http://recorder311-e.smt.jp/
동북대학교 : http://www.tohoku.ac.jp/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