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신진 큐레이터들의 작은 플랫폼이 둥지를 틀었다.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국제문화교류 인력양성 프로그램 ‘넥스트 아카데미(NEXT Academy)’의 일환으로, 큐레이팅 그룹 미팅룸이 기획한 ‘미팅 인 아시아’(4. 6-25)가 개최됐다. 초대된 9명의 한중일 ‘젊은’ 강사들은 매주 아시아 권역 미술의 주요 이슈를 심층적으로 강의하는 한편, 비슷한 또래의 참여자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소통하며 서로의 리서치와 네트워킹을 도왔다. 아시아를 무대로 한 국제교류의 초석을 다지는 만남, ‘미팅 인 아시아’의 현장을 기획 연재로 소개한다.
국내 시각예술 기획자들이 중국 동시대 미술계와의 교류 접점을 모색하거나 한국 작가들의 중국 미술계 진출 가능성을 타진하고자 할 때, 먼저 중국 동시대 미술 지형도를 올바르게 파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미술 현장을 둘러싼 역사, 문화, 경제, 정치적 배경에 대한 충분한 사전 리서치와 이해가 필수적일 것이다. ‘미팅 인 아시아’는 중국 미술 시장의 호황에 기댄 동시대 아시아 미술에 대한 막연한 기대치나 표면적, 단편적인 현상만을 언급하는 것을 지양하고, 격변기 중국의 사회상 이면에 자리한 다층화된 미술계 양상과 특징을 심층적으로 파악해보자는 취지에서 두 차례의 관련 강연을 열었다. 그 첫 번째는 ‘중국 국제교류 프로그램을 통한 대륙 동시대 미술 현황 이해’(권은영, 중국 중앙미술학원 미술사 박사과정)이고, 두 번째는 ‘중국의 독립영화 움직임으로 읽는 아시아 근대화 과정과 동시대 아시아 미술의 양상’(동빙펑(董冰峰), OCAT 인스티튜트 예술감독)으로, 각각 4월 10일과 13일에 진행되었다.
중국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하고 개방정책을 시행한지 30여 년, 지금 국제사회는 미국을 위협하며 경제 대국의 가도에 올라선 중국의 정치경제적 성장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은 중국의 ‘소프트 파워’ 강화를 새해 첫 화두로 삼고, 자국의 문화 예술적 가치를 경제 성장의 주요 동력으로 삼아 세계무대에서 정치적, 외교적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중국 문화예술계의 키워드는 단연 ‘국제교류’이다. 권은영의 강연이 이러한 중국의 포부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국제교류 전시 사례와 역사, 그리고 이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중요하게 다루었다면, 동빙펑의 강연은 근대화 시기 사회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뭇 대조적인 성장 과정을 거친 중국의 독립영화 움직임에 초점을 두었다. 체제 비판적이고 현실 발언적인 성격을 띤 중국 독립영화의 역사와 활동상은 국가 주도의 미술 국제교류가 증폭되었던 시기에도 예술에 대한 정부의 탄압과 규제가 행해졌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두 강연을 통해 국가 이미지 제고를 위한 대외적인 문화예술외교 활동과 '지하 영화'라 불리며 반정부적 환경에서 출발한 비주류 독립영화 움직임을 대하는 중국 당국의 이율배반적 태도를 포착할 수 있다. 여기에는 중국 근대화 과정의 급속한 사회 발전상과 맞물려, 단일한 특징이나 현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중국 동시대 미술의 현주소가 있다. 국제미술교류를 대하는 중국 정부의 양면성에서 정치외교와 당대 예술의 역학관계를 짚어보자.
중국의 시각예술 국제교류의 흐름은 크게 1980년대와 1990년대, 2000년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1966-76년 문화대혁명 시기를 거쳐 1970년대 후반에는 ‘경제발전 10개년 계획’을 수립해 개혁개방 정책을 선포했고, 이에 힘입어 1980년대에는 기업 및 금융자율화를 추진, 외국기업의 투자를 독려했다. 이에 따라 미술계에도 서양의 인문 서적과 미술전문지가 대량으로 유입되어 서양미술이 소개되기 시작했고, 미국과 유럽 국가 위주의 대형 전시가 눈에 띄게 증가하였다.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보수파의 정권 장악으로 개혁 개방에 대한 열기가 일시적으로 냉각되었다가, 1992년 덩샤오핑(鄧小平)이 경제 활성화를 위해 남순강화(南巡讲话, 남방 경제특구를 순시하고 가진 담화)를 실시하고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1999년에는 사유재산 보장 헌법이 제정되면서 미술시장이 빠른 속도로 팽창하였다. 1990년을 전후해 대륙 밖에서 중국 동시대 미술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지에서 약 10여 건의 중국 미술 전시가 개최되었다.
권은영은 앞서 살펴본 점진적인 개방정책의 역사를 바탕으로 2000년대에 접어든 중국 미술계는 정부 차원, 학술 차원, 민간 차원의 국제 교류가 보다 상호보완적으로, 실질적인 형태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문화외교의 주요 플랫폼으로 기능하는 양대 도시는 베이징과 상하이인데, 무엇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2010년 상하이엑스포라는 굵직한 국제 행사가 기폭제가 되었다. 특히, 정부가 제12차 5개년 규획 기간(2011-2015)을 설정하면서 국제교류 정책이 본격 가동되었다. 이에 따라 밖으로는 해외 유수 박물관 및 미술관과 대규모 국제 교류 전시 협약을 체결하고, 안으로는 중국 내 박물관 및 미술관 개혁을 추진하여 예술 인프라를 빠른 속도로 확대하고 있다.
주요 국제교류 전시로는 “피카소 중국 대전”(2011), 상하이비엔날레 주최측과 프랑스 퐁피두센터가 공동 주최한 “전기장: 초현실주의와 그 너머”(2012), 중국과 독일이 문화교류의 일환으로 2005년부터 준비한 독일미술 전시 “계몽 예술”(2012), 중국과 영국 수교 40주년 문화교류사의 기념비적인 성과로 평가되는 “도자기의 소리: 대영박물관, 빅토리아앤알버트 박물관 소장 도자기 전”(2012)과 이탈리아 정부와의 교류 협약 체결에 따른 “피렌체와 르네상스: 명가명작전”(2012)이 개최되었다. 또한 “자연과 서양예술: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품전”(2013)과 “루벤스, 반다이크, 플랑드르화파: 리히텐슈타인 왕실 소장품전”(2013), 중불 수교 40주년을 기념하는 “우호왕래 역사견증”(2014)도 소개되었다.
이렇게 중국 정부와 서양 국가들 간의 장기적, 구체적 협약 체결에 따라 이루어지는 대형 교류 전시는 중국 내부적으로는 자국민들의 서양 예술문화에 대한 이해 증진에 기여하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서양 강대국들과의 우호적 관계를 형성하고, 문화강국으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전략적 방편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장 개방과 국제화로의 전진을 앞세운 외부로의 개방이 내부의 개방, 즉 자국 내 문화예술정책에 대한 자유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같은 맥락에서 동빙펑은 1990년대를 기점으로 한 중국의 독립영화(独立电影)의 탄생과 창작활동의 배경은 동아시아 미술을 넘어 서구 미술과의 영향 관계 속에서 파악해야 하며, 그 역사적, 미학적, 정치적 측면의 복합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그가 정의하는 독립영화의 범주는 1990년대 일어났던 다양한 유형의 영상 창작 방식과 미학적 태도를 아우르는 폭넓은 개념이다. 이는 영상이라는 매개체로 당대 사회와 문화를 반영했던 신다큐운동(新纪录运动)과 비디오아트(录像艺术)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다.
독립영화의 흐름은 크게 1)1990년대 태동기, 2)2001년 제1회 베이징독립영화페스티벌 발족 이후의 황금기 3)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최 이후 정부의 검열이 강화된 침체기로 구분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1990년대 초 중국 정부의 슬로건은 경제발전과 국제화의 추진이었지만, 중국 내부의 당대 예술 활동은 오히려 강도 높은 관리 감독을 받고 있었다. 공공장소에서 상영될 수 없고 오직 사적인 공간과 범위 내에서만 유통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일명 ‘지하영화(地下电影)’라고도 불렸다. 중국 내에서 체제에 대한 반역과 보이콧을 의미하는 ‘독립’이라는 단어는 매우 민감한 정치적 색채를 드러내는 것으로, 독립영화라는 명칭 자체도 이후 외국 평론가들이 명명한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이 당시 주요한 전위적인 예술가와 작품이 모두 중국 밖에서 출현했다는 것, 그리고 처음 중국 독립영화에 주목한 것도 서구사회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당시 작품들은 냉전 종식 이후 공산주의 국가에 대한 향수적 호기심을 가졌던 서구라는 타자의 기대치와 관심사를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었으며 서구화, 국제화된 예술의 특징이 두드러졌다. 서양에서 중국 동시대 미술 전시의 개최 열기가 점화되었던 것도 바로 이 시기이다.
중국 예술에 대한 이러한 국제적인 관심과 2000년대 국내 정치적 압박이 느슨해진 사회 분위기를 타고, 예술가와 감독을 중심으로 한 자발적인 영화단체 조직들이 생겨났다. 이들의 창작과 상영, 교류 활동은 곧 제1회 베이징독립영화페스티벌의 발족으로 이어졌다. 페스티벌은 정부 심의 기준을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개막 후 불과 며칠 만에 강제 종료되었지만, 이후 베이징 외 다양한 도시에서 독립영화페스티벌이 이어지며 독립영화는 황금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계기로 국가 차원의 대형 국제교류 행사가 가장 활성화되었던 시기, 독립영화계는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된다. 정부의 선전 요구에 부합되지 않는 수많은 독립영화페스티벌이 대대적인 검열과 탄압으로 정지되었고, 급기야는 리시엔팅(栗宪庭)영화재단이 보유하고 있던 독립영화아카이브의 전면 압수 수색과 몰수가 단행되었다. 이 재단은 베이징독립영화페스티벌의 주최처이자 중국 독립영화 연구와 보존에 가장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던 곳이다. 오랜 기간 이 재단의 예술감독으로서 페스티벌 기획에 참여했던 동빙펑은 가장 개방적인 정치 외교적 행보를 보인 시기의 중국 정부가 감행한 이 극단적 조치 덕에, 중국 독립영화는 다시 1990년대 지하영화의 상태로 되돌아갔다고 평가했다.
이렇게 장기적인 검열과 제재 하에서도 강렬한 정치적 색채를 띠었던 중국의 독립영화는 점차 사회적 현실과 문제를 담는 객관적 기록의 차원을 넘어 영상이라는 매체의 구조와 예술언어에 대한 보다 자유로운 미학적 실험을 시도했다. 예컨대, 양푸동(杨福东)과 왕지엔웨이(汪建伟), 펑멍보(冯梦波)과 같은 작가들이 체제나 현실 비판에 더해 자신만의 예술성을 작품에 녹여내기 시작했는데, 동빙펑은 이들의 미학적 개성이 보다 심도 있는 현실 비판의 가능성을 열었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독립영화가 비로소 정치적 상징성의 속박에서 벗어나 소재와 형식, 전달방식이 다원화되었다는 뜻이다.
더불어, 정부 당국의 지속적인 감시는 독립영화 창작과 정치 표현 활동에 중요한 변화를 야기했다. 전면적인 아카이브 몰수와 페스티벌 탄압으로 존폐 위기에 처한 리시엔팅영화재단의 소식을 접한 세계 각국의 대학과 연구기관들이 힘을 모아 대륙 밖에서 페스티벌 주최를 추진하고 그 활동을 지지하고 나섰다. 또 재단은 그간의 가시적인 활동보다 저술 및 출판과 같은 연구 활동에 집중하면서 정부와의 장기전에 돌입했다. 우웬광(吴文光)이나 아이 웨이웨이(艾未未)와 같은 작가들의 다큐멘터리 작업 방식도 과거와는 확실히 차별화된 양상을 보인다. 우웬광은 농민들에게 카메라를 주고 중국에서 오랫동안 금기시 되었던 화제인 ‘대기근’(1959-1961) 시절의 이야기와 기억을 그들이 직접 촬영하도록 하여, 가장 소박하지만 가치가 높은 구술사 자료들을 수집해 예술로 승화시켰다. 아이 웨이웨이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중국에서는 요주의 인물이다. 특히 인터넷망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정부 권력과의 충돌 현장을 고발하고, 예술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목소리를 드높이는 그의 다큐 시리즈에는 늘 국제 미술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그리고 이 같은 관심은 그 국제적 파급력을 의식한 중국 정부의 검열 강도와 예술문화정책 결정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쳐왔다.
이처럼 독립영화계는 내부적으로는 정부 체제와 대립적 관계에 있으면서, 외부적으로는 국제 미술계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성장해왔다. 즉, 중국 독립영화는 동아시아 주변 국가뿐만 아니라 서구와의 교류와 이에 따른 영향 관계에 따라 국제예술계의 화두와 흐름에 지속적으로 응답하면서, 때로는 생존전략의 차원에서 독자적인 창작 주제와 언어, 형식을 개척해왔다. 그리고 여기에는 분명 현 정부의 대외적 국제교류 비전과는 동떨어진 각각의 온도차와 시각차가 존재한다. 중국은 2011년에 박물관 사업 중장기 발전계획 요강에서 2020년까지 전국의 박물관 및 미술관 수를 약 5만 개로 확충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자그마치 5만 개이다. 예술 인프라의 양적 팽창도 좋지만, 독립영화와 같이 역사적, 정치적 특수성을 가지고 국제적으로 독자성을 자랑하는 예술 움직임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규제 완화와 정책적 지원을 통해, 자국 문화예술의 다양성 장려와 개방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수용해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참고자료
권은영 ‘시각예술을 통한 중국의 문화외교: 상하이와 베이징의 대형 국제 전시를 바탕으로’ : 김병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차이나하우스, 2014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현대미술이론(Contemporary Art Theory)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동대학원에서 시각문화(Visual Cultures)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미팅룸(meetingroom)의 아트 아카이브 연구팀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공저로는 『셰어 미: 공유하는 미술, 반응하는 플랫폼』 (스위밍꿀, 2019)과 『셰어 미: 재난 이후의 미술, 미래를 상상하기』 (선드리프레스, 2021)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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